김용민, 4·11 총선에 대해 말하다

김용민 소개/인터뷰 2012.08.04 10:13

 

 

4월 총선 이후 그간 일체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김용민 교수를 만났다. 이것이 총선 후 그의 첫 공식 인터뷰인 셈이다. 사실 그는 ‘나는꼼수다’(나꼼수)의 멤버이기 이전에 <복음과상황>(복상)에 ‘김용민의 MB뉴스데스크’라는 코너의 고정 필진이다. 복상은 그가 총선 출마로 인해 피치 못했던 지난 두 달 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코너를 이어가기 전에 그와의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총선 완주 강행, 나꼼수의 향후 역할과 방향,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비판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새로 오픈한 오프라인 카페(벙커원)까지 그간 궁금했던 내용을 물었다. 인터뷰는 애초 기대한 바와 달리, 대담이 아닌 서면으로 진행됐다. 그만큼 생생하진 않다. 하지만 비교적 차분하게 관련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간에서 느껴지는 비판의 날이 마냥 차분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김용민 교수가 직접 입력한 답변들을 날 것 그대로 옮겨 적으니 독자들도 자간에 흐르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총선 후 특이할 만한 인터뷰도 않고 나꼼수 외 공적 활동도 안 했는데,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어떤 시간을 보냈

는지 궁금하다.

 

발언 꽤 열심히 했다. 트위터를 통해. 다만 인터뷰는 안 했다. 기자의 독해 능력 여부 걱정도 있겠지만, 간악한 저의로 본의를 왜곡하지 않겠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다. 추가 문답이 없는 한계는 있으나 내 의견이 첨삭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의사 표시의 가장 효과적 방법은 독자와 나 사이에 중간 유통 단계 없이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다. 나는 나꼼수와 트위터를 통해 내 입장을 밝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생각 정리가 온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멘탈리티 붕괴 상태다. 그런데 이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

 

4·11 선거 결과부터 이야기해 보자. 크게 김용민 개인과 야권 전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두 차원 모두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 있겠다. 김어준 총수는 “(김용민의 막말과 관련한) 파문이 시작된 순간부터 우리(나꼼수)는 김용민의 낙선을 받아들였다”고 한 바 있다. 어떤가, 두 차원 모두에서 예상한 결과였나?

 

‘낙선을 예상하고 선거 운동했느냐’는 말인가. 원칙론으로 말하자면, 선거를 일주일여나 남기고 유권자의 마음을 예단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선거 출마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전투’ 중에는 희망도 좌절도 쉽게 못한다. 판세 분석 대신 지지 호소가 더 시급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당시는 닥쳐온 파문을 낙관은 아니어도 다만 난관이라 여겼다. 내 나름의 진정성을 보인다고 금식기도를 하면서 정상적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젠 믿을 대상이 하나님과 유권자 뿐’이라는 각오였다.) 장악된 언론의 맹폭은 도를 넘었고, 심지어 ‘김용민이 기독교를 비방했다’는 마타도어(흑색선전)까지 더해졌지만, 역설적으로 굳어진 선거 분위기가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장외 집회를 악천후 속에서도 두 차례나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까지 계획에 없는 지원전을 펼치며 전전긍긍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44%의 득표를 차지했다. 다만 당선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이게 내 선거의 양상이었다.

 

이런 가운데 야권은 예상했던 과반은 물론 1당에도 못 미쳤다. 지난 18대 총선 때보다 50석이 더 늘었고, 직선제 개헌 이후 첫 국회의원 선거인 1988년 총선 이래 두 번째로 최다 의석을 차지하고, 총 득표수(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VS 새누리당과 나머지 당)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패배’로 간주됐다. ‘압승’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긴 나도 정치 입문 이전부터 MB의 목줄을 잡고 놓을 정도의 압도적 총선 의석 확보를 야당에게 기대했다.

 

양자 모두 예상된 결과였는가를 물었는가. ‘정치는 생물이다’로 답하겠다. 누구도 마지막까지 ‘판단 제로’였다.

 

우선 개인 차원에선 왜 사퇴가 아닌 완주를 강행했는가?

 

‘사퇴와 낙선의 차이가 없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당선이 아니라는 점은 같다지만, 사퇴와 낙선은 엄연히 다르다. 당일 나를 선택한 유권자의 표가 무효 또는 유효가 되느냐의 중요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원갑 선거구의 유권자는 지난해 12월 정봉주라는 예비 후보자를 선택할 권리를 빼앗겼다. 이명박 정권이 부당한 판결로 잡아 가뒀기 때문이다. 정봉주와 정치적 동지 관계인 나의 출마는 ‘정봉주를 잡아 가두는 그 얄팍한 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상징이 담겨 있다. 그런 이유로 출마했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

 

그러나 선거운동 중 파문이 터졌다. 후보자 중에는 누구도 이명박 정부 심판이라는 대의를 대체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과 조중동은 나의 사퇴를 압박했다. 지역구민의 심판을 받아 낙선하는 게 도의인가, 새누리당 조중동 등 외부 세력의 요구로 자진 사퇴해야 도의인가. 완주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어느 누군가는 ‘된장인지 똥인지 굳이 확인하려는’ 만용이었다며 나의 판단을 깎아내렸다. 그러나 다시 이야기한다, 나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정당 차원에서 얘기해 보자. 일부에선 김용민 교수의 막말 파문으로 인해 격전지의 야권 단일 후보에게 1~3% 포인트 가량의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15석 정도가 새누리당에게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한편 리얼미터 여론조사 등을 예로 들면서 총선 직전 1주일 동안 여론의 흐름에서 양당 지역구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본인의 출마 강행이 야권 선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한 낙선자가 이야기해 준다. 낙선 인사하러 다니는데 면구스러웠던지 지역 주민이 ‘당신 잘못이 없다’는 말을 “김용민이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정당화할 여론조사 데이터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실측하기 어려운 숨은 정서가 있다’고 믿어도 이는 정설보다는 정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거는 데이터로 말할 수 없는 감성과 감정의 요소도 존재한다고 본다. 지금은 ‘뜻밖의 선거 결과’와 관련해 희생양이 필요한 구조다. 당장 선거에서 진 쪽에서 제기하는 ‘책임론’이야 분한 심경을 보상받으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과학적 진단을 차치하고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여기는 부분이며 이분들에게 내가 보상할 수 있는 길이 없어 고개 숙일 따름이다.

 

그러나 ‘총선 패배 책임론’에는 또 다른 축들이 있다. 알려지기로 나는 나꼼수의 일원이다. 나꼼수에 대해 콘텐츠 내용부터 태도까지 시시콜콜 따져 가며 무상 교육을 시도하는 진보진영의 일부 지식인들의 경우, 이참에 확실하게 나꼼수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사안이 완전히 다름에도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요직 사퇴 거부 움직임과 묶어서 노원갑 완주 입장을 표적 삼고 있는 태도를 보라. 그 의도를 읽기란 어렵지 않다. ‘김용민 책임론’에 부채질하는 또 다른 주체인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조중동은 어떤가. 그들이 대선 국면에서 나꼼수를 ‘현실적 위협’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총선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죽이기, 고립하기에 혈안일 수 있겠나. 양축의 협공을 두고 김어준 총수는 ‘국공 합작’이라고도 표현했는데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총선 결과 책임론에 대한 나의 의견을 구했는데, 답은 이거다.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까지 보고 판단하라.’ 물론 후반전은 대선이고,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될 것이다. 이것이 나로 인해 낭패감을 가진 모든 분들을 위한 위로이자 확실한 보상일 것이다.

    
김용민 교수의 출마 강행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갈래에서 나오고 있다. 예컨대, 원래부터 나꼼수를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수구 진영뿐만 아니라 나꼼수에 열광했던 그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대한 나꼼수의 반응은 시종일관 그것은 이른바 ‘조중동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김용민 교수도 “제가 계속 침묵하고 근신하면 조중동 프레임에 말려들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나꼼수와 이번 막말 파문과 관련한 모든 비판을 조중동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귀담아 들을 만한 비판은 없는가?

 

나의 출마를 두고 ‘나쁜 선택’이라는 표현을 김어준 총수가 썼다. 맞다. 우리는 잡놈의 영역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결심’했는가. 출마는 불가피했다. 우리는 유권자에게 진정성을 보이면 그리 불리하지만은 않은 싸움이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은 ‘출마 강행에 대한 비판’을 순응하지 못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구조에 서 있다.

 

‘나는 왜 출마해야 했는가’ 아니 ‘나는 왜 권력을 가지려 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겠다. 내 관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술했듯 ‘정봉주를 감옥에 보내도 제2의 정봉주가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선하는 것 자체가 노원갑 지역구민의 의지로 ‘왜 우리의 아들을 감옥에 보냈느냐’는 가장 파괴력 있는 항거가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제기한 의혹, 그러나 입법·사법·행정·언론 기관이 장악된 현실에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을 우리가 직접 주체적으로 해체하겠다’는 점이다. 즉 국회의원이 돼서 10·26 부정 선거, BBK, 천안함, 4대강 등 각종 의혹을 책임 있는 위치에서 보다 수월한 정보 접근권을 행사하며 진실에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나꼼수에 대한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했다.

 

나는 연봉 1억, 국유철도 KTX 무료이용권 등이 아쉽지 않다.

 

나꼼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최근의 문화에 저항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쫄지마, 씨바”가 상징하는 말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그런데 최근 정작 나꼼수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나꼼수 멤버들이나 이른바 ‘나꼼빠’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즉 정치를 일반 시민들이 아닌 팬덤이 장악하면 합리적 판단과 전략보다는 신앙의 차원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꼼수 지지자들의 성원은 나꼼수 진행자에 대한 지지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 낡고 부패한 정권을 향한 저항의 다른 표현이다. 때론 그게 특정 진보 지식인이나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언론 또 통합진보당 등 정당을 향한 비판 여론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를 팬덤이니, ‘빠’니 하며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을 향해 일부 논객의 철없는 마니아로 매도하지 않는다. 이 뜻의 존중 방식이 ‘침묵’일 뿐이었다. 그 침묵이 독단으로 보였나. 비판을 허락하지 않았다니. 그 비판에 대해 반대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그릇됐다는 이야기인가. 요컨대 자기 뜻과 다르다고 대중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때론 더디 또는 뒤로 가는 것 같아도 그래서 어리석어 보여도 역사의 큰 길에서 항상 순리를 생각해 왔던 주체들이다. 그들을 못 믿고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나꼼수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꼼수 멤버들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형성된 나꼼수의 영향력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치에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젊은층에게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확대시켰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나꼼수가 크게 기여했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여라고 본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이 여기에 눈치를 보려고 하고, 그 공간을 나꼼수가 활용하려고 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사실 그런 일이 어느 정도 나타났다고 본다. 대선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문제는 반드시 한 번 짚어봐야 할 중요한 문제다. 나꼼수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한다고 보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통제 가능한 것인가?

 

그때도 그렇고 대선 국면에서도 그러하겠으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든 사익 추구 집단의 정권 재창출을 막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정치권이 나꼼수에 줄 댄다느니 하는 말은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사람들의 작문에 불과하다. 손잡았던 정치인들은 우리를 갑으로 본 게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했다. 그 정치인들은 또한 나꼼수가 아닌 국민 일반과도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본다. 정치인이 출연하면 ‘눈치 본다’는 식의 편견을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거꾸로 그들이 나꼼수를 이용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우리는 언제든 이용당할 자세가 돼 있다.

 

나꼼수의 가장 핵심 콘텐츠는 이명박 대통령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가 보여 주듯이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위원장과 이명박 정부를 동일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존의 전략은 계속 유지되는 것인가?

 

2002년 6월 지방 선거, 8월 국회의원 재보선 등에서 ‘DJ 심판론’으로 재미 본 한나라당이 12월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전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서로 권력 분점 과정에서 빈정 상했을지 모르나 이명박근혜는 기본적으로 나라 망친 공범들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박근혜보다 차라리 낫다. 서민도 해 봤고, 저항운동도 해 봤다. 박근혜는 이마저도 무경험이다. 이명박 심판론은 ‘박근혜 시대는 이보다 더 악화된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이걸 대중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키느냐가 우리의 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게릴라에게 고정된 전략 전술은 없다. 지켜보라.

 

서울대학로에 마련한 벙커원(BUNKER1)은 어떤가. 잘 활용하면 재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카페 장사는 잘 되나? 향후 이 공간에 대한 활용방안도 궁금하다.

 

우리는 이 자리를 공감의 장으로 만들려 한다. 반듯한 세상을 가꾸려 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지성과 양심을 함께 고양하는 자리로 가꾸려 하는 것이다. 인문학 강연, 주요 방송 공개방송 등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영업시간 외이긴 한데, 주일 오전 9시에는 교회 장소로 운용하고 있다. 나는 사제나 지도자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 아래 모두가 한 사람이요, 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신급 없는 신앙 공동체, 헌금을 본인 주도 아래 100% 사회에 기부하는 실천 공동체로 가꾸려는 것이다. 철저히 금(禁)하는 게 있다. 수평 이동이다.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곳에서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하고 오라’고 못 박는다. 그러니까 신앙을 갖지 않았거나, 가져도 그 뜻을 펼칠 교회를 정하지 않은 혹은 공동체에서 배제된 사람을 환영한다.

 

이 꿈을 현실화하게 된 계기는, 선거 중 소속 교인인 나를 기도로 격려하려던 목사(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를 향한 비난이 쏟아진 데 있었다. 그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죄인도 품었던 예수의 사랑이 눈곱만치도 없는 자들의 횡포 앞에 기도 처소 없이 고통을 겪는 이를 생각하게 됐다. 벙커교회는 그런 쓰임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을 열었다.

 

첫 예배를 한 날, 모인 분의 90%가 교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요새 매 주일마다 200명이 넘게 모인다. 개척교회치고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교계에서 활동해 온 사람으로서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하다.

 

하나님이 바라는 교회 개혁을 대중적 아젠다로 만들어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요구로 만들겠다. 낡고 부패한 자들이 교인들을 볼모로 자기 권세를 확충하는 데 애쓰는 이런 관행과 움직임을 하나하나 혁파해 나가겠다. 내가 간판이 되는 게 문제가 된다면, ‘배후 세력’으로서라도 그 역할을 하겠다. 나는 나 스스로를 도구로 내놓았다. 조연이건 총알받이 단역이건 나에게 부여되는 일은 피하지 않고 감당할 것이다. 멘붕 상태라서 하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싸움, 아주 집요하고 악랄하게 할 것을 다짐한다. 내가 이기나 저들이 이기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저들을 안다. 이길 자신이 있다.

 

질문 손정욱 편집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sonjungwook@empal.com
 
/ 월간 ‘복음과상황’ 2012년 6월호(260호) 인터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인터뷰] ‘MB 똥꾸 하이킥’ 펴낸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용민 소개/인터뷰 2010.06.07 17:31

“이런 기막힌 시대 다시 올까? 유머도 사료다!”  
 

“어느 날 방송에서 MB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백했다. 제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언이 바로 ‘정직하게 살아라’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채널을 휙 돌리면서 시청자가 남긴 말, ‘어쩐지…. 엄마 말도 안 듣는데 우리 말은 들을 턱이 있나!’”

오랜만에 보는 유머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풍자한 유머가 종종 화제가 됐는데, 요즘에는 대통령 풍자는커녕, 성대모사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이 됐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벼드는 시대, 반가운 유머집 한 편이 의기양양 출간됐다. 제목도 강렬한 <MB 똥꾸 하이킥>.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재기 발랄한 누리꾼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김씨는 “이런 기막힌 시대가 다시 올까 싶다”며 “MB 시대의 보석 같은 유머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 기록의 의미로 모아본 것”이라고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하니TV <김어준의 뉴욕타임즈>에서 ‘김용민의 시사장악퀴즈’를 진행하는 그는 프로그램하면서 단 한 주도 아이템 고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매주 웃기는 얘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5·18 즈음에도 방아타령, 화환, 거리의 정치 발언 등이 국민을 가슴 아프게 웃겼다. MB 시대의 유머집을 내보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그가 흔쾌히 응한 이유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이치열 기자 truth710@

엮은이도 “소장가치보다는 시간 죽이기로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지만 이 책은 홍보도 없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예스24’에서 사회분야 도서 베스트셀러 21위(1일 현재)를 차지했다. 충성도 높은 반MB층이 독자다. 그는 “책을 낸 지 얼마 안 됐는데 웃기는 일이 또 넘치고 있다. 증보판을 내야 할 상황”이라며 “이러다 월간 ‘MB 똥꾸 하이킥’이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한다.

권력에 대한 풍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예외다. 그는 “대통령 성대모사가 없다는 게 단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노무현 때만 해도 김상태, 노정렬, 배칠수 등의 개그맨이 노 대통령 성대모사를 했다. 지금은 할 줄 알아도 못한다. 대통령을 비꼬는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은 웃음의 소재로도 삼지 못한다. 이 대통령이 직접 하지 말라고야 했겠느냐만은 밑에 있는 사람들의 충성경쟁 때문이라면 그것에 대한 책임도 이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는 적당히 둘러대거나 돌려서 비판해봐야 소용이 없다”며 “명백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색이 너무 뚜렷하다”는 이유로 진행하던 CBS 주말 <시사자키>에서 물러났지만, 진행자는 색이 없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편파적이지만, 편파성에 도달하는 과정은 논리적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뚜렷한 색이 시사평론가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그는 유시민씨의 책 내용 일부로 이 같은 비판을 반박한다.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은 가장 편파적이다.”(<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중에서)

과거에는 ‘CBS 시사자키를 진행하는 한양대 겸임교수인 시사평론가 김용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지금은 그냥 김용민씨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이것조차 비판 없는 시대에 ‘할 말’하는 것으로 ‘스펙’을 쌓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의 수익금은 촛불집회 때 탄압받은 20대 젊은이를 위해 쓸 계획이다. 

/ '미디어오늘' 2010년 6월 2일자 12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한겨레] "날것 그대로, 텔레비전이 부럽지 않다”

김용민 소개/인터뷰 2010.05.03 16:40

[한겨레 2010 새해특집] 누리꾼 세상|웹방송
공중파에서 웹방송으로 옮아간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토크 

 


» 김용민씨가 진행하는 시사장악퀴즈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날방송’의 신선함에 통렬한 비판이 더해져 시청자들의 속을 ‘펑’ 뚫는다. 왼쪽은 웹방송 <하니TV>의 인기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한 장면.

  
“폼 잡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것이 웹방송의 매력이죠.”

김용민(35)씨는 자신을 ‘생계형 시사평론가’라고 부른다. 그를 소개할 때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시사평론가’라는 문구도 따라붙는다. 그렇다고 그가 싸구려 시사 비평을 하거나, 밥벌이 때문에 비굴해지는 일은 없다. 웹방송 <하니TV>의 인기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서 ‘독한’ 비평을 날리는 그는 누리꾼들 사이에선 ‘용자’(勇者)로 통한다.

그가 진행하는 ‘시사장악퀴즈’도 시청률이 좋을 땐 100만 클릭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끈다. “공중파와 웹방송을 통틀어 이명박 대통령을 대놓고 깔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사 프로그램이 바로 시사장악퀴즈죠. 마니아층을 상대로 한 웹방송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링크]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김씨는 한때 공중파에서 잘나가는 ‘라디오 스타’였다. <한국방송>은 물론 <에스비에스> <오비에스> <시비에스> <불교방송>까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볐다. 시사평론가로는 드물게 정치인 성대모사가 가능하고, 가끔 노래도 한 소절 부를 정도로 ‘예능끼’를 갖췄기 때문에 부르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공중파에서 ‘퇴출’을 당했다.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한 시사 비평이 화근이었다. 2008년 10월 <한국방송> 라디오 가을 개편 때는 방송 1시간 전에 퇴출을 통보받는 수모를 겪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시비에스> 라디오 <시사자키>를 진행하면서 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오프닝이 연일 화제를 뿌렸다. 이 대통령을 이승만 대통령에 비교한 오프닝은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소신 발언’이란 제목으로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을 떠돈다. 그는 결국 <시사자키>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관련 링크] <시사자키> 2009년 5월31일 오프닝 다시 듣기

그는 스스로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압으로 잘린 해직자”라고 위로한다. 한편으론 이참에 공중파라는 부담스러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주어진 판, 짜인 판에서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고, 밥벌이 때문에 소신마저 꺾이는 것을 보면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잘린 프로그램보다 그만둔 프로그램이 더 많았죠.”

그에게 웹방송은 갓 잡아올린 생선이다. “웹방송을 선택해 클릭한 사람들이 시청자이기 때문에 폼 잡는 순간 망합니다. 다 벗었는데 뭘 더 가리느냐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솔직할 수밖에 없죠.” 실제로 그가 진행하는 시사장악퀴즈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날방송’의 신선함에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는 통렬한 비판이 더해져 시청자들의 막힌 속을 ‘펑’ 뚫는다. “요즘엔 공중파에서도 연출을 최소화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잖아요. 웹방송의 제작논리를 닮아가는 셈이죠.”

시청자가 활발하게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웹방송은 공중파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다. 시사장악퀴즈는 초기에 기업의 협찬이 없자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낸 선물로 협찬을 대신했다. “스마트폰 같은 뉴미디어의 보급이 확산되면 시청자들이 웹방송을 직접 제작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시사와 커뮤니티를 버무린 웹방송을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 '한겨레' 2010년 1월 1일 (금) 59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eekly경향 / 인터뷰] 시사프로 진행자 ‘이대통령을 쏘다’

김용민 소개/인터뷰 2009.08.15 17:46
’CBS 김용민 교수 ‘오프닝 멘트’ 화제… “시사평론가라면 할 말은 해야”

용자(勇者) 탄생. 누리꾼은 그렇게 말했다. 한 라디오방송 오프닝멘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오프닝멘트는 “갑자기 이대통령이 생각 난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대통령은 교회장로이고, 대표적인 친미주의자다. 그는 또 친일파와 손을 잡았고, 정적을 정치적으로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또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정치는 날마다 꼬였고, 그의 주변엔 아첨꾼들로 들끓었다. 반정부 시위엔 경찰을 앞세워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오프닝 멘트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멘트는 지난 5월31일, CBS라디오 시사자키에서 나왔다. 주말 진행자 김용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의 말이다. 누리꾼은 “이 분 과연 무사할지…”라고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목숨을 건 방송진행’이라는 말도 나왔다. 시국에 대한 걱정이다. 김용민 교수에게 물어봤다. 정말 목숨을 걸었느냐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별 지장은 없습니다. 솔직히 비장한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보수단체들은 그럽니다. 대통령을 마음대로 비난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마음대로 비난한 뒤 당할 여지가 문제겠죠. 뒤탈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놓고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이 정도 수위의 비판은 일상적이지 않았나요?”

지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5월 24일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오프닝 멘트와 이 멘트가 ‘화제’를 모으자 CBS 쪽에서 오프닝멘트를 빼고 진행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6월8일 이후 김 교수가 진행한 네 차례의 시사자키는 한달 째 오프닝멘트 없이 바로 그날 방송 내용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방송은 사적인 진행이 아니기 때문에 편성권자의 요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게 물었다.

이전 오프닝 멘트도 편성권자와 상의해 나온 건가요. “원고를 썼고 프로듀서가 감수를 했습니다. 보통 방송 전에 원고를 드리죠. 제작자 허락없는 방송은 당연히 없는 것 아닌가요. 사실 오프닝 멘트를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거 ‘신경민 앵커 사태 2탄’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고민이 드니까 ‘할 말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는 현실에, 여기에서 침묵한다면 시사평론가라는 제 직함의 의미는 사라지게 됩니다.”

시사자키 게시판을 보니 ‘김용민을 잘라야 한다’, ‘북한 방송 보는 것 같다’는 비난 메시지도 많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제 목소리가 나갑니다. 남의 주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건 없습니다. 어떤 형태의 반론이든 반론은 존중하고 받아들여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의미가 없습니다. 게시판 글은 저도 읽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든가, 종교인이 아니다(그는 지금도 집 근처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냥 들어줄 수 있어요.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나가는데 한 꼬맹이가 ‘저기 슈퍼뚱땡이가 지나간다’고 하데요. 마음 상할 일은 아닙니다.” 그는 교수라는 직책보다도 ‘시사평론가 김용민’이라는 직함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말이 시사평론이지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신문이나 TV뉴스는 매일 꼬박꼬박 꿰고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시사평론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정보습득하는 데 투자해야 할텐데요. “즐기는 일이니까요. 신문보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얼마 전에 휴가를 갔는데 신문을 못 보니 미치겠던데요. 지방에 가니 경향·한겨레가 없습니다. 결국 시내로 나가 지국을 물어봤는데 조·중·동 밖에 없어요. 못 보니 숨을 못 쉬겠습디다.” 그의 성장과정은 남달랐다. 신문을 많이 읽었던 아버지를 따라 그도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처음에는 TV 프로그램, 스포츠면을 보다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치면을 읽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정당계보도’까지 그려주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 결과는? 왕따였다. ‘뭐 저런 괴상한 취미를 지닌 애도 다 있어’하는.

시사평론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이전에 종교방송 PD일을 하다가 잘렸습니다. 두 군데서 잘리고 나니까 취업이 안되더군요. 다른데서 최종면접까지 갔는데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봐 경영의 합리화와 건강성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답했지요. 어 그래~하고 바로 아웃되었죠. 놀고 있었는데 당시 SBS 편성부장하시던 분이 1주일에 한번씩 와서 뉴스브리핑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KBS, 교통방송, CBS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심지어 내가 기독교 신자인데 불교방송까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아침에 4시쯤 일어나서 8대 종합일간지를 다 살펴봅니다. 물론 요령은 있습니다. 뉴스가 될 만한 면을 신속하게 봅니다. 주로 한 신문이 단독보도한 것이나 특종·기획보도를 유심히 보죠. 큰 사안인데 신문마다 논조 차이를 보이는 사건기사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연합뉴스에 올라오는 새벽뉴스도 긴급 현안 등을 참고하고…. 집이 경기도 용인인데 새벽 5시 전에 출발해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지요. 취침은 저녁 10시쯤 합니다. 워낙 집안 자체가 아침형 인간 체질이라.”

물론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시사프로그램의 무게를 빼기 위해’ 정치인 성대묘사도 시도했다. 요즘에는 안 하지만 이회창,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등이 그가 성대묘사를 해본 정치인명단이다. 박근혜를 어떻게 했는지 살짝 궁금해지려는 차에 그는 덧붙였다. “아마 김근태 묘사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김근태 톤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를 ‘생계형 시사평론가’라고 불렀다. 그의 수입 대부분은 방송출연료나 기고에서 나온다. 시사프로그램이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시장에서 떡 파는 아줌마’도 정치인에 대해 품평할 수 있어야 하고, 정책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뉴스·사회담론의 연성화가 그가 추구하는 시사평론의 목적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정치과잉이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말도 안 돼요. 덮어놓고 ‘정치는 다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도 저도 다 나쁘다, 그러면 뭐에요? 결국 기득권을 지닌 기존세력에게 한 표를 던지는 흐름과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방송할 때 저는 정치인들이 날마다 싸우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최소한 왜 싸우는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치과잉을 넘어 정치의 생활화가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정당에 많이 가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약국 김씨 아저씨도 출마하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도 내가 나가 세상을 바꿔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정치가, 정치자영업자라는 직업범주가 있다면 거기서 정치과잉이 이야기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사자키 오프닝 멘트 후 20대를 향한 그의 독설이 또다시 화제가 됐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이다. 요컨대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보기 힘들었고, 어학·학점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요즘 20대들은 뭐를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충남대신문의 요청으로 기고한 그 글은, 대학신문에 실린 기고문임에도 불구하고 20~30대 층이 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숱한 논쟁을 낳았다. 그 자신이 20대인 노정태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은 7월 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한예종 사태에서도, 그리고 서강대의 쇼핑몰 입점 반대 시위에서도 20대는 다양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김용민씨는 93학번이다. 최근 실크로드 세대론을 주장하는 변희재씨와 같은 학번이다. 말하자면 386이 아니다.

노정태씨 뿐 아니라 많은 20대가 반론을 폈습니다. 어떻게 답하실 생각입니까. “비판이든 격앙된 반감의 표시이든, 감정을 드러낸 20대는 그래도 ‘희망있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쓸 무렵 서울광장이 털렸습니다. 감정을 지울 수 없는 글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반감이 나온다는 거는 고무적인 일입니다. 내 입장은 이겁니다. ‘기꺼이 20대를 위한 샌드백이 되어주마. 다만 치고 빠지진 말아라. 나뿐 아니라 더 큰 상대를 잡아 하면 더 좋겠다.’”

엄밀히 말한다면 김 교수는 포스트386세대인데요. “나를 386으로 오해하고 그렇다면 ‘너네들은 뭐했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대 너희들이 비교할 대상은 386이 아니라 386의 20대다. 너희들이 지금 386세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운신의 폭이 좁아들더라도 지금의 386보다 더 열정적이고 패기 있고 역동적으로 시대를 고민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다.’ 20대에 ‘투지’가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만약 20대의 투지가 살아난다면 제가 기꺼이 ‘병신인증’을 하겠습니다.”

김 교수의 20대는 어땠나요. “사실 20대 시절 나는 화염병을 던지거나 붙잡혀 간 적이 없습니다. 20대 10년 내내 리포터로 시작해서 방송국에서 살았습니다. 직장에 들어가 노조가입하고, 늦은 운동권이 되었어요. 한국교회가 너무 썩고 타락했고, 복음의 본질과 어긋났다고 주장했는데 잘렸습니다. 대형교회 목사 문제 이야기하다 또 잘렸고. 20대 때의 나는 돌이켜보면 보수청년이었죠. 그런데 노조 만들어 잘리니까 사람이 바뀝디다. 제가 그 부분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가 있고 마누라가 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20대 너네는 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이 나보다 더 현실타협적으로 나간다면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요.”

그는 유명블로거 MP4/14와 ‘블로거, 명박을 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고소영 강부자 S라인’이라는 말을 최초로 거론한 책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연도 궁금하다. “나는 몰랐는데, 이전에 천리안 청와대란에서 그 분과 제가 티격태격 싸운 적 있다는 거에요. 나는 김영삼을 옹호하고, 그 사람은 비판하는 입장이었는데, 당시 저보고 ‘너, 정말 한심한 대학생이다’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고 하더군요. 허허허” 왠지 개그맨 김구라씨와 말투가 비슷하다. 아닌게 아니라 김구라씨가 출연한 인터넷프로그램의 PD를 맡으면서 그 인연으로 두 저자가 책까지 내게 되었다. 연관된 마지막 질문. 그는 현 정부의 ‘운명’을 어떻게 내다볼까. “이 대통령의 결말, 다 저 책에 담겨있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중간에 그만 둘 사람은 아니고…. 과연 국민이 견뎌 낼 수 있을까요. 본인이 바뀌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습니다. 국정변화에 대한 대통령 결단이 필요합니다. 떡볶이도 먹고 재산도 기부하고…근원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 효과가 얼마나 갈까요. 위에서 돈뿌리지 말고 내려와서 국민과 만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제 생각입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경향신문' 발행 시사주간지 'Weekly 경향' 834호 (2009년 7월 21일자)
신고

[한겨레21] 인물파파라치 - 시사평론가 김용민

김용민 소개/인터뷰 2008.11.25 16:33

[김용민] 시사 수다쟁이 전성시대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 김용민 씨.

김용민(33)씨의 직업은 시사평론가. 업계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 시장이 형성돼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업 시사평론가로 밥을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특히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시사평론가들은 흔히 자신을 ‘보따리장수’라고 부른다. 직접 프로그램 진행을 맡지 않는 이상, 일정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프로그램을 부지런히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관계자들 사이에서 ‘라디오 유재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만큼 ‘잘 팔린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만 꼽아봐도 모두 10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활동 영역을 TV로도 옮겼다.

김씨의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은 만만치 않은 그의 ‘내공’이 눈길을 끈다. 1998년 극동방송 프로듀서로 방송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2000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극동방송에서 권고사직당했다.

두 번째 직장인 기독교TV에서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사장의 회계부정 의혹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다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다. 김씨는 이런 문제의식을 ‘눈높이 시사평론’이라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사평론가라고 하면 대개 독자나 청취자를 계몽하는 방식으로 시사를 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시사평론가도 필요하겠지만, 청취자의 눈높이에 맞는 재미있는 시사뉴스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김씨는 방송 도중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유시민 대선 예비후보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한다. 복잡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 그는 농담처럼 가볍게 해법을 제시하는데, 때로는 그 속에 정답이 숨어 있다.

김씨는 “8월21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직후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자기 지역구에서 이 후보가 올린 대선 득표율을 점수화해서 공천에 반영하면 된다고 주장했다”며 “그때는 엉뚱하게 들렸겠지만 9월10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된 이방호 의원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놓기에 방송을 통해 저작권료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 2007년 09월 20일 제678호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