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부자

과거에 존경받는 부자로 경주 최부자가 있었어. 400년 동안 12대에 걸쳐 곡식 만석꾼을 배출한 가문이야. (만석꾼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만 섬 가량을 거두어들일 만한 논밭을 가진 큰 부자’라고 하네.) 최부자 집안의 원칙 중에 하나로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는 게 있어. 사실 흉년에는 땅 사기 좋아. 곡식을, 원하는 양만큼 만들어내지 못하잖아. 그렇게 해서 가난해지면 땅을 팔아서라도 입에 풀칠할 길을 찾겠지. 이렇게 되면 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교적 싼 가격에 농토를 사들일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자기 땅을 잃은 사람은 다음해에는 남의 땅에서 대신 농사해주고 아주 적은 양의 곡식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고. 한마디로 가난해지는 거야.


최부자 이야기 왜 하냐고? 요즘 재벌이라고 불리는 일부 대기업이 동네 서민이 운영하는 제과점업에까지 진출하는 흐름 때문이라고. 제빵 전문 기업으로 출발해 국내 최대 제빵 대기업이 된 '파리바게뜨'와, CJ그룹 계열의 '뚜레쥬르'야. 이렇게 되면 겉과 안의 모양이 더 예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좋은 품질이 유지되는 상품이 많은 대기업 빵집이 고객 대부분을 불러 모으게 되면, 그렇지 못한 동네 빵집은 손님이 없어질 게 분명해. 그래서 10여 년 전 동네 빵집이 10개에서 3개로 줄었다고. 이걸 다시 계산해보니까 큰 회사 빵집이 하나 들어오면 작은 빵집은 두 세 개가 문을 닫았다는 거야.


물론 ‘파리바게뜨’ ‘뚜레주르’쪽도 할 말은 있어. <국민일보> 1월 30일자에 나온 내용인데, “운영하는 가맹점주들은 혼자서는 창업하기 어려운 은퇴자가 상당수인데다, 가맹점이 하나 늘어나면 이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도 적지 않다.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 창업을 도와주고, 지역 상권도 살아나면 서로 윈윈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와중에 삼성 회장의 큰 딸, 현대자동차 회장의 딸, 롯데 회장의 외손녀, 신세계 회장의 딸이 커피 전문점 또는 빵집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어. 물론 이 사람들은 동네 골목에 진출해서 빵집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고급 호텔이나 주요 기업 건물 한 구석에 차리는 거라고 이야기해. 게다가 숫자도 50개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하지만 빵이 주식이 아닌 간식인데 따라서 사는 양이 일정한데 빵집이 어디에 있건 그게 크다면 얼마나 큰 문제겠어. 곧장 동네 빵집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빵집뿐이 아니야. 동네 포장마차에서나 팔 법한 순대를 범LG그룹인 아워홈이라는 대기업이 팔아. 대명그룹은 떡볶이 사업까지 진출했고. 라면, 비빔밥, 청국장, 물티슈 사업에까지 나선 대기업도 있다고. 원조는 사실 롯데슈퍼, GS수퍼마켓,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이마트에브리데이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이지. 이곳은 롯데마트, GS리테일,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모회사로 각각 두고 있어. 마트에 들어가는 돈은 점점 커 가는데 수입은 일정하다보니 그래서 이 대형마트들이 규모를 줄인 슈퍼마켓을 동네 구석구석에 차렸잖아. 기업의 생존을 위해 자기보다 규모가 작고 힘이 없는 상인의 몫까지 차지해가는 것. 아무리 봐도 강자의 횡포 아니겠어?


결국 삼성가에 이어 현대, 롯데까지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고 해. 늦었지만 다행이야. 기업의 존립 목적이 이윤 추구, 즉 남는 장사하는 것이지. 그러나 큰 기업인만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면 거기에 걸 맞는 책임을 져야 옳을 거야.


물론 대기업들의 동네 빵집 진출의 목적은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어. 빵집을 운영하려던 사람들, 보면 재벌 가문의 아들 딸 또는 손녀 손자잖나. 이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는 한, 나중에 대기업 회장 자리를 이어받게 될 거라고. 그러다보니 경영수업을 받으려 하는 거야. 그리고 ‘유능하다’고 인정받으려 하는 거지. 그러다보니 취미에 맞는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어머니가 일군 기업의 도움을 얻어서 운영하는 사업을 하려는 거야. 돈을 쉽게 꾸기도 하고, 그 기업이 마련한 유통망, 판매망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이 사업들, 공통점이 뭔지 알아? 아파트 짓는 건설업, 배 만드는 조선업 같이 망하면 큰 손해를 보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야. 그래서 사업하다 망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 따위는 걱정 안 하는 거지. 이런 걸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하던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가 “재벌 2, 3세는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문제 삼았다고.


이즈음에서 ‘투자의 달인’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생각나. 이 분은 2006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면 누가 싫어할까. 당연히 가만있으면 그 재산을 유산으로 받을 자녀들 아니겠어? 버핏 할아버지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하는데, 이 분들의 심정은 어떨까. 첫째 딸 말은 이래. “낡은 주방을 넓히려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려다가 ‘멀쩡한 주방을 왜 고치느냐’는 타박만 들었다.” 일찌감치 아버지 덕 볼 생각을 접었던 거지.


또 한 명이 있어. 1969년에 나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봤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라고 있는데, 여기 주연으로 나왔던 미국 사람 폴 뉴먼 할아버지가 그래. (지금은 세상을 떠났어.) 이 할아버지는 1982년에 회사를 하나 차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만드는 기업인데. 첫해에만 92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대성공이었지. 하지만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이런 말을 했어.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라고. 실제 미국에는 앞서 이야기한 버핏 할아버지 같은 갑부들이 수시로 재산을 기부하고,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이) 세금을 걷어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빵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빵 이야기로 갈음하자. 유럽에 가보면 우리나라처럼 골목 빵집이 많아. 아침마다 길쭉한 바게트를 사거나 갖가지 빵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규모는 작아도 짧게는 수십 년에서 오랜 곳은 수백 년 된 가게들도 있어. 대를 이어 직접 빵이나 과자를 구워내 파는 ‘가문의 전통’인 경우가 많지. 외국 특히 서양은 우리와 달리 빵이 주식이야. 말하자면 우리의 쌀 즉 밥과 같은 격이지. 우리끼리는 쌀 한 톨 허투루 소모하는 것을 경계하듯, 서양은 빵을 ‘하느님의 힘’으로 추앙해. 흔히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하잖아. 먹을거리가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거야.


‘대기업이 빵집을 안 한들 동네 빵집이 잘 될 거 같은가’ 하는 반론도 없지 않아. ‘대기업 발목잡기는 우리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본래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어. 어느 한쪽이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구조를 낯설어했다고. 나쁜 전통일까. 동네의 사랑방이며 또한 주민의 마실장소가 된 빵집. 그 아름다운 벗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3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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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이야기

친구들, 새봄이 다가올 무렵이야. 곧 새 학년에는 ‘공감’의 능력을 키웠으면 해. 남이 아파하면 그 상처만큼 같이 아플 수는 없겠지만 그 고통을 최대한 이해하라는 거야. 최근 중학교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집단 따돌림 또 폭행이 얼마나 심해. 놀라운 사실은 상당수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야. 단적으로 말해서 맞으면 아플 거 아니야. 그런데 상대에게 생긴 상처에는 관심 따위가 없다는 거지.


그런데 새해 들어서 몇몇 어른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없애자고 주장해.


학생인권조례는?


 대표적으로 이런 거야. ‘사랑의 매’라도 선생님이 학생에 대해 체벌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언니 오빠들에게 야간자율학습 · 보충수업을 강제로 요구할 수 없게 돼 있으며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하든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도록 한다고. 이 인권조례는 경기도에 이어 최근 서울의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시행되고 있어.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는 주장이야. 왜냐고. 예전 같으면 말 안 듣는 학생이 있으면 체벌을 함으로써 다스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인권조례 때문에 안된다는 거야.


실제로 인권조례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의 모임(한국교총)이 조사한 내용을 보니까 답한 교사의 76%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네. 이 선생님들은 교사는 가해자, 학생은 피해자로 못 박아 두고서는 학교 교육이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게다가 이렇게 되면 학생의 본분을 벗어난 행위 즉 왕따 폭력까지 못본 척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학생들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거지.


이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인권조례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경기도의 경우를 보자고. 여기는 제정하고 1년이 지났지? 학교폭력이 2014건으로 2009년보다 54.1% 늘긴 했어. 하지만 인권조례가 공포되면서 폭력이 있는지 없는지 더 면밀하게 조사하게 되면서 나온 통계야. 다시 이야기해서 학교 폭력의 실상을 더 열심히 살피다보니 그 사례가 더 드러나게 된 셈이라는 거지. 반론을 제기하는 쪽, 즉 ‘인권조례로 폭력이 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쪽 입장은 이래. 실제 2년 전부터 체벌 대신 상담을 강화한 시흥 장곡중학교의 경우 학교폭력이 1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거의 사라졌다고. 학교폭력으로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한 대구는 인권조례 제정이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런 질문을 던지고자 해. 자유를 하락했을 경우, 사람들이 모두 제멋대로 행동할까 하는 점이야. ‘그렇다’라고 보는 쪽은 이런 이유로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통제와 억압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지.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사람은 존엄하게 여겨져야 할 대상인데 그렇게 나쁘게 인식해서야 되겠냐며 반기를 들어. 되물어볼게. 지금껏 한 번도 인권조례가 없었던 때에는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이 없었던 것일까.


학교 폭력만 놓고 보자. 왜 가해자가 나왔지? 많은 심리학자, 교육학자는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가해자가 된다”고 진단해. 가해자가 되면 공범이 되는데도 외톨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그렇다면 더 거슬러 올라가서 피해자가 왜 나오는 것일까 따져보자. “공부 잘하는 애, 집이 잘 사는 애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찬밥 더운밥이 나뉘자, 학생들은 그 차별에 익숙해 진 것”이라는 분석이 있어. 어른들부터 사람을 나누고 대접을 달리하니까 어린이들도 ‘그런 게 정당하구나’하는 생각에 누구는 떠받들고 누구는 못살게 군다는 거야.


뉴스맨 생각은 이래.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면 방종한다, 사람은 규율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정말 그러한지 안 그런지 실험부터 제대로 하자는 거야. 물론 시행하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혼란이 있겠지. 1980년대에 독재 정권이 끝나고 나서 노동조합 설립이 활발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혼란한가. 인권조례를 시행하기 이전부터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어.


또 인권조례는 무한정 자유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야. 자치와 참여를 통해 스스로 규율하도록 하는 규범으로 알려져 있어. 이건 무슨 이야기냐고? ‘규칙을 어기면 어떤 책임을 진다’고 학생들끼리 뜻을 모으도록 하는 거지. 예를 들어 ‘학교 안에서 폭력은 안 된다’부터 ‘학교에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말자’는 의견까지 이걸 다같이 머리를 모아 숙의하는 끝에 법으로 만드는 거야. 이렇게 되면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 ‘이거 대로 지키라’고 강요된 법 보다 훨씬 지키기 수월하고 능동적이지 않겠어?


물론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으로서는 ‘사랑의 매’를 허락받지 못하는 현실이 꽤나 답답할 거야.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의 폭력은 분명 문제지만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교사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는 과연 교직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낳게 한다고. 사실 학생은 존엄한 인격이기도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교사의 지도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해.


그러나 교사와 학생 사이에 관계는 통제를 하고 이를 순종을 하는 관계이기에 앞서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 존경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봐야해. 그런 것이 없다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들이 다소 힘들고 고되더라도 폭력과 폭언 없는 교실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아니야. 참고 품어주는 끝에 선생님은, 우리 동화 속에서 만나는 설리번 같은 분으로 대접받게 될 거라고.


설리번 


미국의 작가, 정치 활동가 및 교육자인 헬렌 켈러를 헌신적으로 지도한 스승. 헬렌 켈러는 눈과 귀를 제대로 쓰지못하는 장애인이었어.


사실 체벌은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그 사례를 찾기 힘들어. 유럽과 캐나다,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기타 여러 나라에서는 금지되었다고.


인권조례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체벌만이 아니야. 동성애든 아니든 차별하지 말라는 조항도 있어. 동성애를 그릇된 것, 나아가 범죄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걸 두고 동성애가 늘고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질 거라는 반론도 나와. 그러나 이를 두고 '경찰서 지으면 도둑이 증가할 것이다', '병원을 지으면 병자가 확산될 것이다'라는 주장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 차별을 없앰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내용을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또 하나는 학생들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야. 이걸 허용하면 공부는 안 하고 날이면 날마다 데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그러나 우리 헌법은 집회와 시위를 보장해. 이 아이들이 교내에서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훈련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3·1운동 때 유관순 누나도, 4·19혁명 때 앞장섰던 주인공도 모두 고등학생들 아니었나. 이런 훈련 없이 사회에 나갈 경우 불법 폭력 시위로 곤란에 처한다면 더 큰 문제 아닐까 싶어.


이런 가운데 유엔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환영하는 편지를 서울시의회에 보냈어. "이 조례가 그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의 사생활,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유로 행하여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내용이야.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할아버지도 "문화적 태도와 보편적 인권이 대립할 때는 보편적 인권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어. 이 말은 아무리 우리 사회가 학교와 선생님을 하늘처럼 여겨왔더라도, 개인의 인격을 더 소중히 여기는 보편적 인권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뜻이지.


친구들, 인권은 나라와 법, 문화를 떠나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 권리야. 심지어 전쟁 포로에게도 적용된다고. 공감하는 한해가 돼 달라도 당부했지. 인권에 대한 바른 생각 갖기는 첫 출발점이야. 함께 토론하며 그 문화를 만들어가자. 우리 모두는 존귀한 사람들이니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2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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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이야기

친구들, 2012년 새해에 큰 기쁨과 보람이 넘쳤으면 해. 뉴스맨은 지금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있는 중이야. 미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 나라를 가보기는 처음이야. 미국 사회에는 피부색이 다른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라고는 하는데 남의 나라가 낯선 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사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원조 받았을 때만 해도 백인을 우러러본 면이 있었지. 지금도 어른들 중에는 미국이 우리의 ‘형님 국가’이며, 이 나라와 함께 손잡을 때에 무조건 덕 볼 거라고 믿는 경우가 있어. 이제는 우리도 잘 사는 나라가 된 만큼 다른 나라 사람에게 지나치게 위축될 이유는 없다고 봐. 또한 우리보다 형편이 안 좋은 나라 사람을 우습게 알고 멸시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돼.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잖아.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우리 사회가 한 피부를 가진 단일민족에서 이제는 서서히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거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20만 명에 달해. 실제 매년 수 만 명의 외국인이 자기네 나라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있어. 중국인, 베트남인, 필리핀인이 그래. 또한 외국인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아울러 한국인을 배우자로 만나 결혼하는 외국 출생자도 많아지고 있는 형편 아니야? 15만 가구가 그렇다는 통계도 있어.


한국인이 되고자 한 사람이 요즘에만 나온 것은 아니야. 고려시대에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정책이란 것이 있었거든. 정선 이씨는 베트남계이고, 충주 매씨와 남양 제갈씨는 중국 성이야. 몽골계인 연안 인씨, 여진계인 청해 이씨, 위구르계인 덕수 장씨, 일본계인 우륵 김씨 역시 고려에 생긴 성이라고 해. 또한 이목구비가 확연히 다른 서양인으로 처음 귀화한 경우도 있었는데 조선 인조 때 박연(朴淵)이 그 사례야. 네덜란드 뱃사람이었던 그는 일본으로 가던 중 음료수를 구하러 제주도에 상륙했다 관원에게 붙잡힌 후 귀화한 사정이지. 그런데 교통이 발달해 한국으로 오는 길이 편해졌고, 통신 수단이 나아지고 이로써 한류가 거세게 전파되면서 최근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이러다보니 민족은 곧 국가, 국가는 곧 국민으로 동일하게 여겨지던 관행이 많이 사라지게 됐어. 얼마 전부터 군에서는 선서할 때에 쓰던 ‘민족’이란 말을 ‘국민’으로 바꿨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국가와 민족’을 ‘국가와 국민’으로 고친 것이야. 민족을 강조하다보면 다른 나라 민족에서 온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배려라 하겠지. 2013년까지 징병검사 대상인 16~18세 다문화가정 출신 남성이 4000여명에 이르게 되는 현실을 염두엔 둔 거라고 해. 교과서도 달라지고 있어. 2007년부터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그런데 이런 다문화 정책에 대해 생각 바른 사람들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믿고 있어. 하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찾아와 가족이 된 이들을 멸시하는 시선이 있어. 얼마 전 나온 보도에는 지성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짱개’, 흑인 유학생을 ‘깜둥이’라며 대놓고 깔보고 ‘왕따’시키는 사례가 많다는 소식이 있었어.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밑바닥까지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데 올해 이런 충격적인 일이 있었지. 한 노르웨이 사람이 다문화를 지지하는 정당을 반대한다며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쏴 85명을 죽게 했어. 여태껏 “잔혹했지만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나봐.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야. 해마다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이 성대하게 열리는 나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자랑하는 복지국가 아니겠어. 이런 곳에서 평화를 해치는 일들이 벌어진 거야.


이게 정신 나간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 지금 유럽에서는 ‘외국인들 챙겨주다가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며 극단적인 민족의식이 힘을 얻는다고 해. 이미 역사로부터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정 나버린 나치가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선거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해.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인이라는 정당이 대표적이야. 영국과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로도 그 열기가 점점 번진다고 해.


‘왜 다문화를 거역하느냐’고 비판 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야. 단일민족국가였을 때에는 일자리도 돈벌이도 모자라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이 유입되면서 그 파이를 나눌 수밖에 없어 가난하게 돼 버렸다는 게 외국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주장이야. 보수를 조금만 줘도 일하겠다는 외국인에게 아무래도 밀린다는 것이야. 우리나라 사람 중 일부도 이런 이야기를 똑같이 해. 결국 인종차별은 모두가 두루두루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거야. 이런 현상을 어려운 말로 ‘양극화’(어느 한 쪽은 잘 살고 어느 한 쪽은 못 살게 되면서 두 쪽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현상)라고 해.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는 지혜와 의지를 가졌을 때에 우리 사회에 다문화는 탈 없이 안착될 거라고 믿어.


그렇다면 다문화가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이득이 있냐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4대 0으로 완파했어. 그런데 독일 월드컵팀은 23명 중 11명이 외국계였어. 선수 중에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폴란드, 외칠은 터키, 제롬 보아텡은 가나, 카카우는 브라질, 자미 케디라는 튀니지계야. 물론 모두 독일국적이지. (흥미로운 것은 그 독일이 100년도 안 된 지난 세월, 독재자 히틀러에 의해 자기네 나라 민족이 최고이며, 다른 족속은 경멸해도 된다는 식의 ‘아리안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나라였다는 점이야. 실제 독일 극우파들은 비독일적인 이 팀을 ‘잡탕팀’이라며 빨리 떨어지길 바라는 일도 있었다고 하고.)


월드컵 성적만이 아니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 동등한 혜택이 부여되는 나라가 된다면 구성원 모두 각기 다른 지혜와 재능으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지 않을까.


그래. 다시 말하지만 균등한 기회, 동등한 혜택이 필요해. 외국에서 이곳으로 와 한국 남편을 만난 이주 결혼 여성이 많잖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는 결국 엄마에게 말을 배워야 하는데, 엄마부터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아 애먹는 경우가 많다고 해. 어린이 10명중 4명이 또래보다 6개월 이상 언어발달이 늦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있어. 말도 안 통하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 받지. 이러다보니 열에 일곱은 적응하지 못하고 장기결석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계 엄마를 탓해야 할까. 취학 전에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도 없는 것을 탓해야 할까. 부럽게도 이웃나라 일본은 구역 단위로 초등학교에 외국인이나 이민 자녀를 위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이나 전담 선생님이 있다고 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잖아. 여기에 쓰이는 돈이 아까울리 없을 텐데. 많이 아쉽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를 수준 높다 말할 수 없을 거야.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한류 열풍의 진원지인 나라, 야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은 물론, 양궁, 사격 등 기록 종목 모두를 다 잘하는 스포츠 초강국, 우리나라의 수많은 자랑거리도 소용없을 거야. 혹시 주변에 말 못하고 소외된 다문화 가정 친구가 있으면 먼저 손 내밀고 벗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친구들, 2012년 새해에는 그런 성숙된 모습, 보여줄 수 있겠어? 기대할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1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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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올림픽 이렇게 보자고

#기사1. “‘제2의 김연아’로 불리는 곽민정(16·군포 수리고·사진) 선수가 지난 2일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 때 단상 옆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이 들끓고 있다. 그는 회견 내내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다. 곽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 기록을 경신하며 1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누리꾼들은 3일 “메달을 따야 자리에 앉힌 거냐”라며 항의를 표시했다. “메달 못 땄으니 서서 반성하라는 건가.”(다음, 프리티아노)” (<한겨레> 3월 4일자 “‘민정이 앉혀줘’ 누리꾼 와글”)


#기사2.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각각 은ㆍ동메달을 차지한 스코브레프(러시아)와 봅 데용(네덜란드)가 금메달을 거머 쥔 이승훈을 들어 올리며 축하 세레머니를 벌인 것이다.” (모 언론, '은ㆍ동이 금을 들어올리다')


이 두 기사를 본 뉴스맨은 내내 이랬어. “씁쓸하구만.”


밴쿠버 올림픽. 친구들 어떻게 봤어? 태평양 건너 땅에서 연일 날아오는 낭보(朗報, 기쁜 소식)를 접하면서 반갑기 보다는 왠지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아. 관심을 갖고 지켜본 종목이 그동안 하나 없었는데 올림픽이 개막됐다고 이때부터 TV앞에서 열광하는 게 멋쩍어서 그랬을 거야.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없더라도 우리는 과연 이렇게 열광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니까 동계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싹 사라진 듯 해. ‘이제는 비인기 종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자’며 목청을 높였던 우리가 무관심의 자리로 되돌아왔다는 거지. 


금메달은 1등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다른 메달에 비해 값질 수밖에 없어.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가치마저 금, 은, 동메달로써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말이야. 이런 점에서 뉴스맨처럼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성을 많이 해야 해. 항상 헤드라인에는 금메달을 딴 선수만 배치하잖아. ‘모터범’ 파워, 빙상계의 ‘꿀벅지’ 이런 기사를 접하다보면 사실 읽고 보는 사람 뿐 아니라 전하는 사람까지도 낯이 뜨거워지게 돼. 물론 기자 형 누나들이 언론사에서 활동할 때 “이름이 알려진 순서대로 기사 비중을 키우라”고 배워. 그러다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금메달 선수에게 주로 이목을 모으게 되는 거지.


왜 1, 2, 3등에게 각각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할까?


메달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무엇을 기념하거나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서 유래해. 올림픽에 쓰이는 금, 은, 동메달도 당연히 우승자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겠지? 과학적으로 보면 금, 은, 동은 모두 전이 원소 가운데 같은 계열인 1B족에 속하는 금속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다시 이야기해 녹이 슬거나 화학 약품에 의해 부식될 가능성이 가장 작다는 거야. 그만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똑같은 1B족 금속인 금, 은, 동은 왜 1, 2, 3위로 차등됐을까. 아마도 가격이 높은 순서대로 순서를 매긴 것이 아닌가 판단돼.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금메달에 목을 내놓고 기대할까? 이걸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스포츠 국가주의’를 이야기해.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여당과 야당으로, 또 남과 북, 동과 서로,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나뉘어 참  많은 갈등이 있어. 그런데 말이야. 올림픽이나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제 경기가 벌어져 우리 선수나 팀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벌이면 텔레비전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쳐. 그러다가 이기기라도 하면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안고 기뻐하지. 그런데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거의 없는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겐 발생할까. 여태껏 단일민족 국가로써 이어오면서 생긴 응집력 때문일 거야.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힘 센 다른 나라로부터 지배와 속박을 당했던 우리의 역사적 응어리 때문이 아닐까 해. 다른 것에서는 늘 밀리다가 스포츠에서 잠시나마 1등이 되는 사실에 환호하게 된다는 거지.


스포츠 국가주의란


전쟁을 통해 이긴 국가가 진 국가를 상대로 느끼는 우월감. 이 우월감이 하나의 의식 체계가 된 것을 말해. 많이 어렵지? 다시 이야기해볼 게. 스포츠 국가주의는 스포츠를 통해 국가와 국가 사이에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가려지는 것을 말해. 이 스포츠 국가주의가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부족국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 지배하는 부족이 지배당하는 부족의 조상 무덤을 파서 그 두개골을 꺼내 발로 차고 다니면서 우월성을 과시했다는 데서 축구 스포츠 국가주의가 비롯됐다는 설도 있어. 한 나라의 우월성을, 얼마나 돈이 많은지, 얼마나 무기와 군인이 많은지를 따지는 것도 또 다른 개념의 국가주의야. 어때? 유치하지?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로 가야 하는 시대에 이런 국가주의는 낡은 생각이며 썩은 고집이 아닐 수 없어.


그렇다면 이런 ‘스포츠 국가주의’가 온당할까.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라는 책을 쓰신 정희준 동아대 교수님 이야기는 이래. “우리 국민은 스포츠 종목, 팀, 선수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금메달과 외국에서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스포츠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한국인은 스포츠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스포츠를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는 강대국에게 위협받는 ‘열등생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탈출구는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박치기 왕’ 김일 선생부터 국민남매 박태환과 김연아까지 스포츠는 모든 삶의 시름을 덜어주는 판타지(환상)인 셈입니다.”


하지만 1등을 영웅으로 미화하고, 그 밖의 선수들은 ‘투명인간’ 나아가 ‘잉여인간’ 취급하는 것은 과연 바른 것일까. 이런 게 느껴지지 않아? 1등만 하면 그 선수를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개인적인 어려움도 극복했으며, 운동 말고도 할 수 있는 장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신문 방송이 묘사하는 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야. 그런데 이런 보도는 1등한 사람만이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어.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주목받게 된 선수들이 자칫 ‘앞으로 더 잘해야 하는데...’하는 중압감 때문에 앞으로 기본적인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야.


그런 의미에서 봅슬레이·스키점프·모굴스키·루지 같은 비인기 종목에 도전한 선수들에 관련한 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던 점은 뉴스맨을 더욱 슬프게 만들어. 다른 나라는 큰돈을 들여 팍팍 밀어주는데 우리의 경우는 선수들 스스로 돈을 내서 도전하게 만들고 있잖아. 게다가 성적이 좋지 않다고 관심까지 끊어버리고. 뉴스의 가치 중에는 ‘저명성(널리 알려진 사람의 기사일수록 비중이 있다는 뜻)’ 말고도 ‘이상성(특이한 일일 수록 비중이 있다는 뜻)’도 있어. 아무도 모르는 영역에 도전하겠다며 온몸을 불태우는 선수들의 노력과 의지는 뉴스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겠지? 우리 언론들, 그런데 ‘저명성’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것은 아닐까. 


1등만 기억하는 현실은 올림픽의 정신과도 어긋나. 고대 올림픽 때 대회가 열리기만 하면 모든 전쟁은 중단됐어. 왜냐. 전쟁을 하면 젊은이들이 경기에 참석할 수 없게 되니까. 이 정신은 근대 올림픽에도 이어져 내려와. 올림픽은 인류 평화와 화합을 기치로 내 걸지. 올림픽을 재건한 피에르 쿠베르탱 아저씨는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 그렇다면 1등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겠지만 2등, 3등 아니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불굴의 투지로 경기했다가 뒤쳐친 선수라도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는다면 다음에 더 잘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냐 이거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올림픽이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해야 할 축제여야 한다는 뜻이야.


미국의 심리학자인 빅토리아 메드벡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님이 분석한 재밌는 결과가 있어. 올림픽 시상대에 선 선수들 표정을 일일이 분석해봤는데,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는 거야. 2위는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에 실망하지만 3위는 ‘그래도 메달을 딴 게 어디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을 거야. 몇 년 째 조사하는 세계 행복지수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가난한 나라들이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을. 우리가 1등을 좋아하는 것은 1등을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 아니겠어? 그런데 1등이 되면 항상 행복할까? 언젠가 2등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초조함은 없을까? 1등하지 말자는 게 아니야. 1등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야. 


너무 1등만 강조하면 이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어. 반칙이 난무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사회가 1등만 추앙하면 선수들이 ‘2등 이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편법을 써서라도 우승하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거야. 2004년에 있었던 아테네 올림픽 때, 여자 투포환 금메달리스트를 포함한 26명이 약물 복용으로 메달은 물론 선수 자격까지 박탈됐었지? 그래서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선 아테네 때보다 25%나 늘어난 4500회의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했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1등만 기억하는’ 언론보다 우리 국민이 더욱 성숙한 것 같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산 역사’인 이규혁 아저씨. 메달을 딴 모태범 형 못지않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어. ‘국민영웅’,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영예도 인터넷 게시판을 장식했어. 5번에 걸쳐 20년 동안 올림픽에 도전했던 끈기와 열정. 비록 올림픽만 되면 지독하게도 운이 따르지 않아 성과는 없었지만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열의에 많은 국민이 눈물을 훔쳤어. 또 영화 ‘국가대표’ 때문에 더욱 주목받은 한국 스키점프팀도 박수를 받았어. 40위, 48위에 머물러 최종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국민은 “그래도 고생했다. 자랑스럽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야. 


친구들, 이 영화 봤어? ‘국가대표’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의 국가대표팀이 급히 조직되는데. 워낙 이 종목이 우리에게 생소하다보니 국가대표로 차출된 사람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였던 사람,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다가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 나이트 클럽 웨이터, 고깃집 아들, 소년 가장, 이런 소년 가장인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 4차원 동생이야. 변변한 연습장이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떠돌아 다녀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 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과 공사장 안전모 등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하게 된다는 줄거리야. 흥미롭겠지? 문제는 이 영화가 전부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야. 아직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등록 선수는 다섯 명이 전부. 이 선수들은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봐.


지난 1월 30일에 방송됐던 MBC TV ‘무한도전’ 기억해? 탈북자 출신의 한국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일본의 도전자 텐쿠 쓰바사 선수의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2차 방어전 경기를 소재로 한 내용 말이야. 두 선수 모두 불우한 환경 속에서 복싱을 해왔던 주인공으로 경기 때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정작 중요한’ 누가 이겼는지를 알려주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무한도전’은 말해. “둘 다 최선을 다했기에 모두가 승자였던 경기”였다고. 이 프로그램에서는 승자와 패자도 없었고, 오랜 앙숙인 한국과 일본도 없었어. 오로지 ‘사람’만 있었던 거지. 이 프로그램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알 수 있어. “내내 눈물을 흘렸다.” “경쟁만 알았던 나는 외눈박이였다. 경쟁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런 내용들이야. 


스포츠를 이해하려면 그 경기 결과만 따져서는 안 돼. 그 선수가 살아왔던 과정, 경주했던 노력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거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복싱의 백종섭 아저씨가 라이트급 국가대표로 나가 도전했어. 하지만 이 아저씨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8강의 벽을 넘지 못했어. 마지막 기회였어. 국가대표로서는 정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른 살 나이가 코앞에 다가왔거든. 8강 문턱에 섰어.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던 거야. 목과 가슴을 후비는 통증이 찾아온 거지. 병원에서는 기관지 파열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어. 당연히 경기에 나갈 수 없었어. “링 위에서 죽겠다”며 출전을 호소했지만, 결국 기권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이 아저씨는 패배자일까?


김연아 언니가 왜 항상 1등하는 줄 알아? 1등해야 한다는 집념 때문일까. 아니야. 즐기기 때문이야. 마찬가지야. 공부도 즐기고, 운동도 즐기면 행복은 저절로 오게 돼 있어. 어른들은 그럴 수 있지만, 뭐 하나 꿀릴 것 없이 자라나는 친구들은 이런 칙칙한 일등주의에 대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아? 2등부터 꼴찌까지의 삶에도 1등에게는 없는 진지한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들지 않아? 세상에 100명만 있다면, 2등 이하 99명은 모두 없어져도 되고, 1등하는 한 명만 필요할까. 아니야. 금메달을 따야 기쁘다면 우리는 스스로 열등감에 젖어있다는 증거야. 그러나 금메달 말고도 은메달 동메달 그리고 메달권에 들지 못한 도전자를 기억하며 박수 보낸다면 우리는 승부를 초월한 넓고 깊은 인격의 소유자가 될 거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안 되게 하는 거. 그건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어.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0년 4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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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이야기

애벌레가 세상에 나왔어. 그리고 다함께 어디론가 기어가. 기어가보니 오르막이 나왔어. 오르막에 이르니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어. 놀랐어. 하늘 높은 기둥 그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눈을 돌려보니 꼭대기 그 주변에는 애벌레들이 올라간 그 기둥이 천지에 널려 있었던거야.


우리는 태어나서 영문도 모른 채 다 같이 학교로, 학원으로 가. 더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누구도 여기에 대해 “왜 이래야 하는 거죠?”라고 묻지 않아. 그렇게 해서 남을 따돌리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세상 꼭대기에 이르게 되지. 남에게 우러러 보이는 그 곳, 세상 꼭대기에는 어떤 자리가 있을까. 판사도 그 가운데 하나일거야.

 

법원에서 재판장하는 분들, 이 분들이 판사 아저씨 아줌마들이야.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어디일까? 바로 대원외국어고등학교야. 좀 이상하지 않아?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나오면 외국어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어?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을 우리나라 판사들, 어째서 이렇게 외고 출신이 많을까?


“에이, (외국어) 모르는 것 보다 낫잖아요” "그 학교는 고등학교 중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판사 정도 되려면 그 학교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외고는 애초 외국어 영재를 키운다는 특수 목적을 내걸고 시작했어. 그래서 외고를 특수목적고등학교 즉 특목고로도 부르는 거라고. 지난 4년 동안 외고를 나와서는 당연히 가야할 어문계에 진출한 학생이 불과 30%를 밑돈다고 해. 어학 공부하러 돌아와 놓고는 10명 중에 3명 정도만 어학 공부를 계속한다는 거지. 실제로 외고에 가면 어문계열 뿐 아니라 자연계반, 의대진학반이 있어. 외고에 이런 게 왜 있을까?


또 다른 특목고, 과학고는 어떨까?


또 다른 특목고로는 과학고등학교(과학고)가 있지? 여기는 과학 영재를 키우기 위한 특수 목적을 갖고 있다고. 과학고는 그럼 어떨까. 외고처럼 다른 쪽 그러니까 어문 계열로 가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을까. 아니야. 200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83.6%의 과학고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해 외고와 다른 현실을 보여 줬어.


그래.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는 일반고등학교보다 더 우등한 엘리트 학교가 돼 버렸어. 대학 수학능력 평가 점수 좋기로 1등부터 30등까지인 학교를 보니까 26개가 외고였어. 그러니 학교와 학교 사이에 계급이 생기는 거야. 외고는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명문고란 이야기야.


외고에 보내는 것은 따라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으로 보면 될 거야. 좋은 대학에는 왜 가려고 할까.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인 신분도 매우 높아진다고 보는 거야. 좋은 일자리는 그렇다 치고, 양반 천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웬 신분이냐고? 물론 우리나라 헌법에는 ‘법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돼 있어. 신분은 없는 거야.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의 학력을 따지는 게 우리나라는 참 심해.


그러다보니 수많은 엄마들이 자기 자녀를 신분 때문에 마음 아프게 살지 말라는 뜻으로 외고에 보내려고 해.  1등 학교에 보내면 상류층으로 살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당연히 아이에게 외국어에 취미가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였어. 이러다보니 외고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모두 데려감으로써 1등 학교로 변질된 것이야.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학원 다녀야 외고 보낼 희망이 있다’는 말이 있나봐.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정신없이 학원 다니는 형 누나들도 있어.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 초등학교, 중학교 같은 공교육은 무시하고, 학원 같은 사교육에 좀 더 의존하지 않겠냐고. 학교에서는 쉬고, 학원가서 진짜 공부한다는 학생도 있다고 해.


외고에 가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


2007년에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사교육 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야.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등학생의 94.2%, 중학생의 87.6%가 사교육을 받았다는 거야. 얼마나 돈을 썼냐고? 연간 5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초등학생의 경우 28.6%, 중학생의 39.9%라고 해. 그렇다면 통상 초등학교 고학년인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다닌다면, 총 2500만 원을 쓴다는 얘기 아니겠어?


이 분위기에 대해서 외고는 “이게 다 우리 책임이란 말인가”라며 억울해 해. 또 “어학 능력 갖춘 아이들, 그 실력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지. 경우 없이 무조건 평등한 교육만 한다면, 영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외국어에 취미가 있는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야. 그 아이들이 외고에 들어가려고 하면 한참 뒤에나 줄 서야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정두언 아저씨가 “이럴 거면 외고를 폐지하자”라며 목소리를 높였어.


정두언 아저씨가 주장하는 방법은 이거야. 외고를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로 전환하자는 것이야. 자율형 사립고는 중학교에서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의 상위 50% 내에서 추첨 선발하는 거야. 상위 50%면, 전교생이 500명이면 250등 안에 들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거고, 추첨 선발한다면, 1등이 떨어질 수 있고, 250등이 붙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비싼 사교육을 받더라도 추첨에서 떨어지면 외고를 못 가는 거지. 이러면 누가 사교육을 받으려 하겠어. 따라서 사교육 열풍은 크게 줄어들게 되겠지?


하지만 입시만 고치면 될까? 아니야. 지금도 보면 대부분의 자율형 사립고가 입학한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영어 수학만 가르친다는 거야. 대학 가기 위한 공부에만 열중하는 거지. 뭘 배우고 가르칠 지 보다 어떤 대학에 갈 지에 혈안이 돼 있는 거지. 따라서 입시만 고칠 게 아니라 교육 내용도 외고를 세우게 된 취지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


외고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의 작은 한 부분이야. 외고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 핵심은 경쟁 교육이야. 경쟁의 의미가 빛나려면 잘하는 사람에게 당근을 주고, 못하는 사람은 뒤처지지 않게 뒤에서 밀어줘야 해.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경쟁은 1등부터 몇 등까지는 인정해주고, 몇 등 이하부터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핀란드에선 외고가 필요 없다


핀란드 고등학교에는 학점 제도가 있다고 한다. 필수 과목을 제외하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점을 빨리 이수하면, 이른 시기에 졸업도 가능하다. 학점을 충분히 이수하지 못하면, “잘할 때까지 다시” 이런다는 거야. 이런 방식을 택하면, 굳이 특정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따로 뽑는 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가능하겠지? 교육평론가인 이범 아저씨는 "굳이 외고를 설립하느니, 일반고교에서 외국어 강좌를 다양하게 개설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어.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학업성취도 평가, 친구들, 많이 해 봤지? 원래는 경쟁을 붙여 뒤쳐진 것으로 나온 학교에 대해 지원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도였어. 하지만 일부 학교는 학교대로 평균 점수 높이려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시험 못 보게도 해. 점수가 안 좋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니까. 이런 경쟁,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제는 경쟁의 틀이야. 잘 따져봐. 우리 집이 가난해. 그래서 학원도 못가. 그렇다면 부유한 집에서 학원 열심히 다닌 아이들의 실력은 더 낫겠지? 그 애들만 외고에 가고, 또 좋은 대학 갈 가야.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넉넉한 집의 친구들은 10m 앞에서 출발하는 거야. 가는 길은 평탄하고 고르고. 그러나 나는 늦게 출발한 것도 서럽지만, 자갈, 웅덩이가 있는 길을 달려야 해. 이래서 경쟁이 되겠어?


더 큰 문제는 잘못된 경쟁이 낳는 부작용이야. 좋은 사교육을 토대로 좋은 외고에서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는 친구들. 이 친구들만 훗날 외무고시 행정고시 패스해서 고위 공무원이 되고, 사법고시 통과해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고, 언론고시 합격해 언론사 기자, PD, 아나운서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 부잣집 아이들은 계속 상류층이 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계속 하류층이 되지 않겠냐는 거지. 이렇게 되면 앞에서 이야기한 ‘신분’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어.


이건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니야. 우리보다도 앞서서 경쟁 교육을 시도한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자고. 프랑스에는 국립행정학교가 있어. 여기서는 주로 정치인, 행정가들을 양성해. 그러다보니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까지 이 학교 출신이 많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국가 시스템 자체가 잘 바뀌지 않아. 아울러 선후배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다보니 좋은 인재를 발굴할 수 없는 한계도 있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고 불리는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우리나라 핵심 요직에 진치고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어. 같은 맥락이라고.


교육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이걸 풀려면 제도나 정책 하나로는 불가능하다고 봐. 예를 들어 학업 실력 대신 착한 마음씨를 보고 대학 입학을 결정하겠다고 하면, 아마 착한 마음씨 기르는 학원이 생겨날 걸. 우리 친구들, 왜 배워? 나는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고 답하지 않았으면 해. 누나들이 다니는 한 고등학교에 가면 “1시간 덜 자면, 남편 직업이 달라진다”라고 돼 있어. 1시간 더 공부하면 좋은 대학가고, 그 조건에 맞춰 좋은 남편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야. 슬프지 않아?


나는 ‘왜 공부하니’라고 물었을 때, 친구들이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했으면 좋겠어. 기왕이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했으면 더 좋겠고. 공부하되, 나를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나는 물론, 우리 이웃, 우리 사회에 내가 기여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했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어?

 

아, 애벌레 얘기, 그 끝이 궁금하지 않아? 꼭대기에 오른 애벌래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처럼 내려온 애벌레들을 만나. 그 애벌레들은 함께 어울려 지내다 허물을 벗고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가 돼 하늘로 날아올랐어. 애벌레일 때 기를 쓰고 오르던 기둥 꼭대기도 날개짓 몇 번으로 올랐어. 애벌레는 웃었어. 정상을 향해 오르던 그때의 부질없음을.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야.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09년 12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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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는 왜 하나

십 수 년 전만 해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총리나 장관을 시킬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달라. 총리는 물론, 장관도 국회에 나와서 자신의 모든 과거를 검증받아야 해.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논문 표절, 세금 탈루 이런 식으로 법을 어긴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밝히는 것은 기본이고, 과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다 추궁 받게 돼. 자기 뿐 아니야. 자신의 직계 가족들도 다 현미경 위에 놓인 표본이 돼. 이 과정을 거치면서 큰 문제가 없으면 그 자리에 오르게 되겠지. 하지만 흠결이 너무 커서 논란이 되면 스스로 사퇴하거나 임명권자가 임명을 철회하던지 아니면 국회에서 ‘이 사람 못 쓰겠습니다’라며 인준을 거부하게 돼.


인사청문회에서는 도덕성만 따지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도 될 인물인지도 가려. 사실 자기가 자리에 앉았을 때, 펼칠 정책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가리는 게 청문회의 기본 목적이야. 그렇다고 도덕성이 다음 순위냐 하면 그렇지 않아. 정책은 참모들의 도움으로 충분히 추진할 수 있어. 하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많으면, 무슨 정책을 펴도 추진하는 주체들 즉 공무원이나 관련 종사자들에게 말발이 서기 어려워. 그래서 뒤가 구린 공직자가 임명되면 ‘반쪽짜리’라고도 해. 따라서 도덕성 검증은 첫 단추라 할 수 있겠어. 


최근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운찬 아저씨가 국무총리에 임명됐지? 이 아저씨는 병역 의혹과 위장전입, 논문 중복게재, 기업인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세금 탈루해서 줄잡아 6개에서 8개에 이르는 의혹과 결함이 제기됐어. 구체적으로 나이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군대에 안 갔다 오고, 자기가 썼던 논문의 내용 일부를 ‘예전에 썼던 것입니다’라는 말 한마디 안 붙이고 다른데 또 쓰고, 국립 대학교 총장이면 (교육) 공무원인데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으로 쓰라’며 돈을 받았고, 게다가 수입의 상당부분을 신고하지 않아 소득세를 떼어먹었다는 의혹을 샀던 거야. 그런데 정운찬 아저씨는 이런 변명 저런 변명으로 덮으려 했었어. 야당은 “문제가 많다”면서 “총리 못 시키겠다”고 했지. 하지만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결국 총리가 됐어.


누가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나요?


총리와 장관 모두 청문회에 나온다. 그러나 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이 사람 안 된다’라고 판단할 경우,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와 오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 즉 국회의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대법관, 감사원장이다.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해서 과반이 찬성하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아 그 직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반대해도 대통령이 임명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나는 자리는 국무위원(장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청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원칙은 유명무실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속한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을 훨씬 웃도는 167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반기를 들지 않는 한 한나라당은 혼자의 힘으로도 대통령이 세우고자 하는 사람 모두를 그 자리에 앉힐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엔 이러지 않았어. 2002년 첫 여성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장상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할머니는 위장전입을 했다는 이유로 결국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어. 물론 자리에 오르긴 했어도 도덕성 문제 때문에 얼마 못 가 스스로 물러난 아저씨 아줌마들이 적지 않았어. 그러다보니 청와대에서 “총리하시겠습니까?” “장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 못 합니다. 인사청문회 자신 없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고 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씁쓸한’ 상황인 거지.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높은 자리에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분들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일거야.


혹시 이런 친구는 없을까? ‘차라리 이렇게 망신주고 거짓말하는 식의 청문회라면 안 하면 안 되냐’라고.  실제로 정치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청문회가 쓸모없다’라는 주장도 나와. 아무리 잘못을 들춰내도, 대통령 아저씨가 ‘저 사람 쓰겠다’ 이러면 꼼짝없이 써야 하잖아. 그렇게 돼서 높은 자리에 올라도, ‘문제가 많은 공직자’라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 분들이 제대로 일을 하겠냐 이거야.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없어봐. 최악의 경우, 뇌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 검증도 안 받고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 권력을 이용해 자기 이롭도록 악용하지 않겠냐 이거야. ‘국민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인사청문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 


궁금하지 않아? 언제부터 청문회가 시작됐는지? 1787년 미국에서 비롯됐어. (미국은 정부가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나뉘어져 있지? 우리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부산시, 광주시,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같은 지방자치단체를 말해.) 당시 미국에선 주요 공직자 임명권을 연방정부의 대통령과 주 정부를 대표하는 상원 중 누가 가질지를 놓고 대립했어. 그러다 지명은 대통령이 하고, 인준은 상원이 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어. 결국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인사권 갖고 멋대로 행사하지 않도록 국회(상원)가 견제했고, 또 그러다보니 자리에 오르는 공직자들이 한결 깨끗하졌다고. 이게 청문회의 역사이야.


기껏해야 20년도 안 되는 우리 인사청문회에 비해 200년이 훌쩍 넘은 미국. 지금은 어떨까. 여기 인사청문회는 지금도 여전히 “독해”. 1989년에 있었던 일이야. 교육부 장관에 지명된 글렌 라우리라는 하버드대 교수라는 사람이 청문회 과정에서 20년 전 대학생 시절 등록금 대출을 받고 갚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어. “어려웠던 시절에 그랬다” “수십 년 전에 그랬던 일이다” 이러지 않았겠어? 하지만 결국 물러나게 됐어. 최근의 예도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최고 성과관리 책임자’로 지명된 낸시 킬퍼라는 사람이 있는데, 1995년에 고용했던 가정부와 관련해 납부해야 할 1년6개월가량이 실업보상세 298달러를 미납했다가 10년 뒤인 지난 2005년에서야 이자를 포함한 967달러를 납부했어. ‘그때 깜빡했다’ ‘결국 나중에 납부했다’ 이런 말이 통하지 않았어. 결국 이 사람은 물러났고,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까지 했어. 


미국은 후보자 뒷조사를 어떻게 할까요?


그 이름도 유명한 미국 연방수사국 FBI가 나선다. 그래서 후보자를 2~3개월에 걸쳐 뒤진다. 돈 어떻게 벌었고 썼는지, 인품은 어떤지,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지, 혹시 바람 피웠거나 비리에 공모하는 식의 부적절한 관계는 없는지 샅샅이 훑는다고 한다. 그래도 내정 후에 결격사유가 나오면 자진사퇴하거나 내정을 철회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나라마다 범법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국민이 ‘특히 더 괘씸해하는’ 죄목이 있어. 미국을 볼까. 인사청문회 얘기는 아니지만 들어봐. 현재 힐러리 국무장관의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때에, 한 비서와 연애를 했어. 바람을 피운거지. 그리고 그 사실이 드러났어. 그때 클린턴 대통령은 “그런 적 없다”고 했어. 그러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고. 바람 피워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런 면도 있어. 하지만 더 크게 문제됐던 것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했다는 점이야. 그래. 미국에선 거짓말에 대해 관용하지 않아. 프랑스를 가볼까? 여기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꽤 관대해. 그래서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애를 낳아도 이것 때문에 곤경에 처하지는 않아. 프랑스는 남의 사생활에 대해 꽤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야. 그러다보니 남의 부인과 결혼하려고 본부인을 버린 남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어. 현재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래.


우리는 어떨까. 우리 국민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병역’이야. 군대 갔다 왔느냐 여부야. 정당한 이유로 안 다녀오는 사람은 물론, 방위 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짧게 병역을 대신한 이들도 군대 얘기할 때면 눈치 보기 마련이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배경이 있는 사람은 병역 혜택을 입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26개월 꼬박 다 채워 복무한다”는 인식이 심했기 때문이야. 불평등의 상징이었지.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해. 이런 마당에 병역을 기피하는 의도로 군대에 안 갔다 온 사람이 있다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잘 나가던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 안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아버지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대선에서 낙선했어. 어때? 무섭지?


인사청문회는 그래서, 이걸 보고 자란 어린이 청소년에게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면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세금 꼬박꼬박 내야지. 군대도 꼼수 쓰지 않고 제 때에 잘 다녀와야지” 이런 마음을 갖게 해. 미국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뿌리내리게 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야. 외국 가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도덕적 의무를 지는 문화가 확립돼 있어. 권력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하고, 봉사하려면 그 진심이 있어야 하고, 진심을 가리려면 최소한의 면접이 있어야 해. 인사청문회가 그런 거야. 서양의 유명한 말 하나를 전하면서 글을 갈음할까 해. “명예와 사리사욕은 한꺼번에 쥘 수 없다.”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09년 11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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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에서 놓친 것

친구들, 요즘 자주 나오는 영자 알아? ‘FTA’라고. Free(자유) Trade(무역) Agreements(협정)의 줄임말이지. 특히 미국과의 협정이 초미의 관심사야. 한미FTA. 이게 뭐냐 하면, 우리나라에서 1000원에 파는 과자가 미국에서도 1000원에 팔리는 걸 말해. 뒤집어서 미국에서 5달러하는 크레파스가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가격 5달러로 팔리는 거야.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어. 농산물의 예를 들어볼게. 미국은 땅이 넓은데다 거대한 기업이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아서 농산물이 무척 싸. (생산량이 많으면 공급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가격이 내려가지 않겠어?) 그런데 만약 이것이 무차별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어? 같은 것이지만 무척 싼 미국산만 팔리지 않겠어? 그래서 미국에서 들여올 때에 관세라고 해서 세금을 붙여. 가격을 일정 부분 비싸게 해서 국내에서 나온 것이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말이야. 하지만 FTA가 체결되면 이런 것을 다 없애. 그렇게 되면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야.


좋은 점이 분명히 있어.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세계에 내놓을 값싸고 질 좋은 자동차가 있다고 쳐. 미국에 같은 가격에 내놓으면 훨씬 많이 팔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농업 분야에서 손해 입더라도 자동차 부문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아. 작은 동네시장에서 사고파는데 그쳤던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큰 대형마트에도 물건을 팔 수 있게 되는 셈이지.


하지만 걱정거리가 더 많아. 한미FTA가 대형마트에서 팔던 저렴한 미국제 상품이 우리 동네시장으로 밀려들어오는 의미도 있지 않겠어? 비단 사고 파는 문제만은 아니야.


지금 여야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문제 중에는 ISD가 있어. 한미FTA 안에 이 ISD가 포함돼 있는 건데, 이름 붙이기로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야. 이름을 듣자마자 머리가 지끈 거리지? 그러나 꼭 알아야 할 부분이라고.


예를 들어볼게. 뉴스맨이 미국인이야. 돈이 많아서 한국에다가 투자해. 사교육이 번창하니까 보충학습 학원의 지분을 산다고. 그런데 갑자기 한국 정부가 사교육 시장이 너무 뜨거워져서 식힐 필요가 있다며 이거 안 되고 저 거 안 되는 법을 만들어. 이때 미국인인 뉴스맨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어. ‘너희 나라의 정책 때문에 내가 손해 봤다’며 말이야. 어디다 거냐고? 한국 법원이 아니야.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 즉 국제재판소로 말이야. 지면 어떻게 하냐고? 국제재판소하라는대로 해. 법을 고치라면 고쳐야 하고, 손해 본 거 물어내라면 물어내야 하고 말이야.


이에 대해서 한미FTA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ISD가 전 세계에서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투자협정 2676개 가운데 2100여개에 포함될 정도로 여기저기서 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또한 이미 우리와 FTA를 체결한 칠레 싱가포르 인도 같은 나라도, 심지어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 중국 등과의 투자협정에도 포함돼 있다고. 2010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체결한 85개 투자협정 가운데 81개가 ISD를 채택했다고 하며 말이야.


그러나 반대하는 쪽 이야기는 이래.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은 심각한 상대라고. 미국 기업은 이 소송을 즐겨하는 편이며, 상대 나라를 걸고 넘어져서 진 경우가 불과 20% 정도라는 거야. 108건 제소했는데 22건 졌다는 이야기야. 그 반대로 외국기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건 것이 15건인데 이 가운데 미국 정부가 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그런 이유가 있었어. 국제재판소에서 활동하는 법률가의 국적 현황만 보더라도 우리에겐 극히 불리한 게 사실이야. 여기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8명이지만 미국인은 137명이나 된다는 거고.


물건값이 너무 비싸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가 이 간섭 저 트집 잡을 수 있어. 물가만이 아니지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국가가 마음 놓고 있어서는 안 돼. 2010년 미국 담배회사의 광고를 막으려던 호주 정부의 역할이 그랬어. 호주 정부는 안심했어. 당시 미국과 FTA를 맺었지만 ISD는 체결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마음 놓고 담배광고를 막았지. 그런데 이게 웬일. 호주 정부가 너무 방심했던거야. 그때 호주는 홍콩과는 ISD를 맺었거든. 그 담배회사가 홍콩지사를 통해 호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거야. 이때문인지 그 뒤로 호주 정부는 어떤 나라하고도 ISD를 맺지 않았어.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금연 분위기를 확산하려고 정부가 담뱃값에 ‘순한 맛’이라는 표기를 없애려고 했지. 그러자 미국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어. 결국 그 규제를 안 하기로 했다고. 한 국가의 옳은 정책도 ISD 앞에서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야. 사례는 또 있어. 30년 간 수도 영업권을 획득했으면서도 부실하게 경영한 미국 기업이 있었어. 아르헨티나 정부가 괘씸하게 여겨 그 권리를 박탈했지. 그러자 그 미국 기업은 ISD를 걸었고 결국 아르헨티나가 1억6500만 달러를 배상한 일이 있었어.


정부가 왜 있어. 기본적으로 치안을 담당하고 교육 의료같은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뒤처지고 소외된 사람을 챙겨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업이 이익 즉 돈벌이에만 집착해서 착취하는 식으로 법을 어기면 되겠어? 그런데 한미FTA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ISD가 정부와 법을 능가하는 괴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면서 경제와 관련한 책 중 베스트셀러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쓴 장하준 교수가 이런 표현을 썼더라고. “한미FTA는, 이혼을 못하는 결혼”이라고. 미국과 영원히 안 보고 살 생각이 아니라면 FTA 체결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이야기야.


이미 우리나라 법무부도 ISD가 체결되면 우리가 이기기 힘들다며 걱정한다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대. 경제관료를 지낸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독이 든 만두’라며 ‘일본이 한국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한미FTA가 체결됐을 때 나타날 성과만 강조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감추는데 급급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해.


뉴스맨이 항상 주장하는 게 있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야. 100% 일치하지는 못해도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해. 그래서 말인데, 한미FTA와 관련해, 특히 ISD 문제에 대해 생각의 차이가 극과 극이라면 아무리 서두르고 싶어도 반대하는 상대를 끝까지 설득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날짜를 박아놓고 어느 시점에 통과시킬 테니 그때까지 실컷 떠들어 볼 테면 떠들어봐라는 식의 자세는 대화일 수 없어. 한미FTA. 이 책을 받아볼 시점에 어떻게 돼 있을까. 언쟁과 다툼 속에 난장판이 된 이후일까. 아니면 멋진 타협이 이뤄진 뒤일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1년 12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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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이야기

친구들, 제주도에 가면 서귀포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어. 남해바다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에는 천제연폭포, 용머리해안, 중문단지 등 최고의 관광지가 자리한다고. 외국 사람들도 몰려와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해. 있는 그대로도 멋진 이곳에 강정마을이란 곳이 있어. 이 마을에는 주변 환경처럼 순박한 이웃들이 옹기종이 모여 살아.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뉴스맨이 지난 6월, 이곳에 취재하러 갔을 때 만난 마을 회장 아저씨의 이야기야.


“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강정초등학교, 이 학교에는 요즘 부모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아이들끼리 편 갈라 만날 싸운 데요. 어른도 다르지 않아요. 이 강정마을에는 동창회, 친목회 이런 200여 개 친목회가 있었는데, 대부분 깨졌어요. 가족 공동체도 마찬가지에요. 입장이 다르다고 아버지를 내쫓은 일도 있었다고 해요. 의견이 충돌하는 조카가 백부 보고 ‘당신하고 나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 흉기로 해치겠다’는 막말도 했다고 합디다. 제사나 벌초, 명절을 따로 지내기도 해요. 여기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에요.”


실제로 신문기사를 보면 의견이 서로 맞지 않은 주민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 한 주민의 이야기야. “예전엔 경조사가 있으면 모두 찾아가 어울렸는데, 이제는 집 밖에 나오지 않고, 나와도 서로 째려봐. 나도 사람들 보기 싫고, 말하기 싫고….” “사는 게 지옥 같다”라고. 마을의 일상은 편을 나눠 이뤄져. 사우나도, 슈퍼도 같은 편끼리만 이용한다고 하니까.


이 마을 회장 아저씨는, 그래서 이 갈등이 이번 세대에서는 절대 풀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해.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이곳에 해군기지를 세운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야. 제주 해군기지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48만7000㎡, 코엑스몰 네 개가 들어갈 자리에 9799억원을 들여 1950m 길이 부두와 함정 20척이 머물 수 있는 기지를 만드는 사업이야. 추진된다면 이 마을 주민들은 기지 건설을 위해 땅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해. 당연히 마을 주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하겠지?


해군기지를 만들려 하는 정부는 “주민 투표에서 주민들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해. 그런데 마을 주민들은 “반대표가 절대 다수였다”라고 반박하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7년 4월 당시 강정마을회가 주민 87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어 해군기지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수 주민들은 몰랐던 거야. 그래서 몰래 개최했던 마을회장을 꾸짖고 해임했어. 그리고 4개월 뒤에 다시 투표를 했는데 725명 중 680명의 찬성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하기로 결의했다고. 그리고 이 주민들이 지금까지 4년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그렇다면 정부는 마을 주민 다수가 반대하는 해군기지를 왜 추진하려는 것일까. 처음 이 뜻을 품은 사람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 이 분은 외국 군대 즉 미군의 도움 없이 자주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임기 5년간 국방비를 60%나 늘였다고. 제주 해군기지 구상도 이런 취지 속에서 이뤄진 것이지. 그러나 최북단 휴전선이 아닌 최남단 바닷가 군 기지를 만들려고 할까. 이곳은 중국과 일본과 동시에 맞붙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고 본 거야.


예상하기 싫은 일인데, (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독도처럼 우리 땅인) 이어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지금의 경우 부산에서 출동해야 해. 그러면 속력 12노트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500㎞, 23시간을 가야 해. 중국 동해함대에서는 18시간, 일본 사세보에서는 21시간 걸리고. 그렇다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점령한 뒤가 된다는 이야기지.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8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어. 쓸데없이 주변 나라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거야. 특히 중국의 경우, 이곳에 군항을 짓는다 함은, 실은 동맹관계인 미국이 한국 땅에서 자신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보고 있다는 거고. 중국에서 연간 200만명이 오는데, 이곳에다 중국을 표적으로 삼은 군 기지가 있다면 과연 제주도 발전에 도움이 되겠냐는 이야기도 있어.


사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경제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 또한 북한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도록 중국과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 형편이고. 이런 와중에 중국과의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이야기야. 마을 회장의 이야기도 그래. “여기는 정부가 지정한 평화의 섬이에요. 지금도 전 세계 7대 경관이 되겠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여기다 자연을 엎어 전쟁참호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또 하나 이곳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며 문화재보호구역인 만큼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어. 해군기지 건설 현장 안에서 습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를 비롯한 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됐는데도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아무 언급이 없어 부실하게 점검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야. 해군기지를 세워야 한다는 쪽은 ‘천성산 도롱뇽이 죽을 수 있다’며 KTX 공사를 막았던 지율 스님을 보는 것 같다며 헛된 우려라고 목소리를 높여. 행여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해군이 멸종 위기종을 통째로 포획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하고 있고.


한 치도 좁혀지지 않는 갈등. 결국 정부는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경찰력을 동원해서 반대파들을 쫓아낼 모양이야. 특히 지역주민은 괜찮다고 말하는데 외부세력이 들어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주민 다수의 반대는 여전하고, 아울러 내가 살 곳에 내가 살겠다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는 반응을 보여. 이런 가운데 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서귀포만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거야.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해군기지를 지어야 한다, 지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을까 해. 다만 대화로 해결하는 길이 옳다고 생각해. 그러려면 우선 정부가 힘으로 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꿰차고 사사건건 저지하는 게 맞는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타이를 거야. 그러나 반대로 힘부터 앞세우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정부 편에 서지 않을 거라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지키고 싶다는 사람들의 입장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뜻의 표현 아니겠어?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달라고 요구하는 정부로서는 좀 더 겸허할 필요가 있다고. 게다가 환경, 외교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잖아. 신중하게 해도 상관은 없어. 정부가 무리할수록 일은 더 꼬이게 된다고. 옳은 일이라면 설득이 안 될 수 없어. 정부만 비판하는 것 같지? 정부는 힘이 있잖아. 힘 있는 자의 아량으로부터 합리적인 소통이 이뤄진다고 생각해.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 기대해볼래.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1년 11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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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의 미래

친구들, 혹시 아침에 그리고 낮, 저녁에 무엇을 먹나 걱정한 적 있어?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 문제로 고민하는 어린이가 아주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해. 2009년부터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2000년부터 매년 음식물 쓰레기가 증가했다고 하잖아. 먹을거리가 모자란 나라에서 이런 풍경을 보기란 쉽지 않아.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이 세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치는 거야. 그래서 이 땅에서만 나오는 것으로만 식탁을 차린다고 생각해보자고. 우선 쌀로 만드는 밥 그리고 계란 반찬은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먹을 수 있어. (쌀 90%, 계란 99%) 그런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반찬은 10번 먹을 것을 4번으로 줄여야 해. (육류 43.5%) 그리고 무, 배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류도 열 번 먹을 것을 한 번은 참아야 해. (채소류 85%) 사과, 배, 오렌지 같은 과일은 10번 중 3번은 눈길이 가도 못 본 척해야 해. (과실류 66%)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이거야. 음식에 소금이 안 들어갈 수 없잖아. 열 번 칠 거 한 번 밖에 못 한다고. (소금 14.6%) (괄호 안은 품목과 그 품목의 자급률을 말해.)


다 합쳐서 평균을 내보니까 식량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비율이 26%야. 하지만 평균은 의미가 없어. 90% 자급률인 쌀을 제외한 나머지는 5% 수준이거든. 이렇게 우리나라는 해마다 1400만t 규모의 곡물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처지야.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그러니까 나름 살만한 나라 38개가 회원인 이 모임에서 꼴찌이고. (다른 나라는 어떠냐고. 미국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은 100%야. 어떤 경우에도 먹는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는 형편이야.)


이런 걱정, 한 번도 안 해봤지? 그러나 어쩌면 먹을 식량이 없어 굶게 되는 상황은 현실이 될지 몰라. 왜냐고.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부자 나라라고 말할 수 없었던 중국과 인도. 이 두 나라 국민들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풍족하게 먹기 시작했어. 그러니 식량이 부쩍 소비됐을 거 아니야. 이상기후도 문제야. 러시아를 보자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밀이 많이 나오는 나라지만 작년 여름부터 다른 나라에 못 팔게 했어. 가뭄이 심했거든. 그러면 전 세계적으로 팔려고 내놓는 물량이 크게 줄지 않겠어? 이렇게 되면 필요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가격이 오르게 될 것이고 말이야. 실제로 30개월 만에 값이 최고로 뛰었어. 갈수록 기상이변이 이처럼 갈수록 심해져서 작황(농작물이 자라는 상황)이 안 좋아.


그런데 이 점도 주목되더라고. 1970년대 말까지 멕시코는 식량을 수출만 했을 뿐, 수입을 전혀 안 하던 나라였어. 그런데 2003년이 돼서는 식품의 40%를 외국에서 사올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고. 필리핀도 마찬가지야. 독재자 마르코스가 국민에 의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뒤부터 식량 수입국이 돼. 이유가 있어. 잘라 말하자면 미국 때문이야. 미국은 자기 나라 농민에게는 ‘살림살이 얼마나 어렵겠어’ 이렇게 위로하며 엄청난 보조금을 줘. 그래놓고는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는 ‘정부가 농민 도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태도야’라며 딴죽을 걸었거든. 이러다보니 미국 농민은 지원금을 받다보니 싼 값에 농산물을 팔게 돼 큰돈을 벌고 가난한 나라 농민은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가난해지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지금이야 고의는 아닌 것 같지만 다른 나라에게 골탕 먹이기 위해 혹은 돈을 더 벌기 위해 강대국이 식량을 비싸게 파는 식으로 횡포를 나타내면 어떻게 될까. 마치 석유를 놓고 중동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목에 힘주는 것처럼 말이지. 석유 놓고 수많은 전쟁이 발생했듯, 먹을거리를 갖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거야.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에 먹을거리 갖고 분쟁이 벌어질 때에 말리고 화해하게 해주는 기구가 없지 않아. 대표적으로 세계무역기구 WTO라는 게 있는데. 문제는 이 기구가 힘 센 나라가 힘없는 나라에게 자기 나라 농작물을 팔 때에는 적극적으로 바람을 넣지만, 농작물을 안 팔려고 할 때에는 아무 힘이 없다는 점이야. 앞서 러시아 이야기했지? 러시아가 밀을 안 판다고 하니까 1년 동안 600만t 수입하는 이집트에서 밀 값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그래서 폭동도 일어났다고. 이집트만이 아니야. 무려 37개 나라, 그러니까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아이티 8억의 주민들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그런데 이 일이 석유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 무슨 이야기냐고? 석유가 고갈될 것에 대비해서 요즘 바이오연료라는 것이 급격하게 많이 쓰이고 있어. 바이오연료가 뭐냐고. 옥수수 같은 곡물에서 추출한 에탄올이야. 참고로 에탄올은 술의 주성분이야. 어른들이 술을 마시면 평소와는 달리 흥분되잖아? 그 원리를 이용한 거지. 그렇게 열을 발산케 해서 차가 구를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사실 석유와는 달리 에탄올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 그래서 친환경 대체 에너지로도 그 쓰임새가 대단해.) 이 바이오연료 개발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이야. 당연히 옥수수를 에탄올 원료로 많이 갖다 쓰겠지. 이러다보니 전 세계적으로 옥수수 파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봐. 자동차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옥수수를 쓴다면 좀 많이 들겠어? 이 여파로 인해 세계 식량 재고량은 197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야.


불행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아. 영국 정부에게 정책을 조언해주는 ‘포어사이트’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앞으로 먹을거리를 싸게 사들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40년 간 가격 크게 오름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살벌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를 돌아봐야 해. 1960년대만 해도 총 인구의 대략 64%가 농사를 지었어. 하지만 항공 해운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무역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었어. 이러다보니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기까지 한 국산 작물은 외면당하게 됐어. 결국 농사짓는 분들은 크게 줄었어. 2005년에는 그 비율이 7%도 못 미치게 됐다고. 그럼에도 먹을거리 조달에 아무 문제가 없다보니 상당수 사람들은 농업의 필요성을 망각하게 돼. 4대강 사업 한다고 하천부지 15,000 ha 없앤 것을 포함해 최근 5년 동안 10만 ha가 사라졌어. 이건 강원도의 논과 밭 전부가 사라진 규모야.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이제부터라도 농사지을 땅과 사람을 확보하고 씨 뿌리고 열매 맺고 결실하면 될까. 결국 효율성의 문제야. 지금 전 세계적으로 좁은 땅에서도 많은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생산성 높은 씨앗이 주목받고 있어. 이런 원리야. 15개 종류의 농작물 씨앗만 있으면 세계 식량의 90%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문제가 있어. 이 종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소유라는 거야. 사오려면 비싸게 돈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지. 우리만 해도 수년전부터 매해 씨앗 로열티만 160억 원 이상 다른 나라에게 줬다고 해. 장미, 카네이션은 물론이고, 키위까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딸기 종자 사용료마저 일본에다가 지불하고 있다고 해.

어떻게 이 좋은 종자들은 정말 모두 외국 것일까. 사실 우리 것이 외국 것으로 바뀐 경우가 있었어.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앉은뱅이밀’이 그래.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던 때에 이 종자를 자기네 나라로 가져갔다고 해. 그리고 이것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지금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밀은 거의 전량이 미국산인데, 90% 이상이 이 앉은뱅이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해. 우리의 무관심 속에 토종 종자가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지. 식량도 식량이지만 장래에 종자 즉 씨앗도 어떻게 잘 보존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라 할 수 있어.


친구들 어때? 밥 먹는 기분이 예사롭지 않겠지? 어쩌면 친구들이 어른이 돼서 사회의 중심이 됐을 때에는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나아가 고통당할 수 있다고. 우리 농촌에 대한 관심, 기상이변에 대한 염려 그리고 공정성과 균형감을 잃은 세계질서에 대해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잊지 말자고. 빈곤과 기아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야.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1년 10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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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포비아와 다문화

다른 학교로 옮겨 간 경험을 한 친구가 있나? 또는 다른 학교에서 왔어도 벗으로 삼은 친구도 있어? 혹시 그렇게 전학 왔다는 이유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경우는 없나?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모질게 대할 수 있냐고? 그런 생각이라면 아주 고운 마음씨를 가진 거야.


어른들 세상은 친구들처럼 해맑지 않은 것 같아. 다른 나라에 온 사람이 나의 성공할 기회를 앗아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 7월 어느 날, 노르웨이에서 76명이 정신 나간 어떤 사람의 폭탄과 총탄에 맞아 희생됐어. 테러범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서유럽을 구하고 싶었다”고 말해. 본인을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고 강조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을 미워하는 일, 요즘 들어 많이 볼 수 있어. 이걸 ‘제노포비아’라고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제노’는 그리스말인데, 이방인, 낯선 사람을 뜻하고, ‘포비아’는 공포, 혐오로 풀이돼. 그리스말을 썼던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인지 아닌지를 틈만 나면 가렸어. 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하던 이야기가 성경에 자주 나오잖아.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지? 이 나라에서 그 분들의 위치는 아직 약자에 머물러 있어. 하지만 다른 나라는 달라. 유럽에 여러 나라를 가보면 취업이 잘 되고, 학교를 공짜로 다니고, 몸이 아팠을 때에 비용 들이지 않아도 치료받아. 이러다보니 그 나라 국민들 중에는 외국인들 때문에 내 자식들의 취직 기회가 줄었고, 내가 낸 세금으로 저 사람들이 엉뚱하게 혜택을 입는다고 생각해. 그래서 미워하는 거야. 실제로 요즘 들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 국민에게 돌아갈 이익을 더 보장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아. 노르웨이의 그 테러범이 이런 분위기에 올라 탄 거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야.


사실 경제가 좋을 때에는 누구든 미워하지 않아. 하지만 일단 삶이 팍팍해지면 ‘이게 누구 때문일까’하고 사람들은 따지게 되지.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탓하게 돼. 뚜렷한 이유도 없이.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스킨헤드'로 불리는 인종주의자들이 공연장에서 테러를 저질러 10여 명이 죽거나 다쳤어. 프랑스도 근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박대하고 있어. 대통령은 아예 ‘다문화 정책은 실패했다’고 공개적으로 결론 내렸고. 게다가 터키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후예들, 그러니까 '신나치'가 등장하고 있다고 해.


이미 125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71만 명이나 되는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 다문화 반대 시민단체가 10여개에 이르고, 한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에는 회원이 6500명이나 된다고 해.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서 “테러범이 불쌍하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고. 이런 생각들, 통제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독버섯 같은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


친구들, 노르웨이 국민들을 주목해 보자. 그 테러, 정말 분노할 일 아니야? 뉴스만이 만약 희생자의 가족이라면 그 테러범을 사형에 처하는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을 거야. 실제 비슷한 일(9.11 테러)을 당했던 같은 서양 국가 미국에서도 ‘용서’라는 단어는 나오지 조차 않았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것은 미국만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의, 문명 전체의 싸움이다"라며 강력한 보복을 강조했어. 그러면서 국토안보부를 창설하고 애국법을 제정했는데, 테러리스트 색출을 이유로 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했었다고. 이건 그런대로 참아줄만 해. 그러나 20만에 이르는 사망 군인·민간인을 양산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이어졌어. 그 전쟁으로 어떻게 됐어? 테러가 뿌리 뽑혔나? 평화가 찾아왔나?


이번에 봐서 알겠지만 노르웨이 국민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해. 사고가 나고 얼마 뒤였지. 인구 60만 도시 오슬로에 15만여 명의 시민들이 저마다 장미꽃을 들고 모여들었어. 총리가 말을 꺼냈어. "공포로 인해 지혜로운 생각이 멈춰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북받쳐 오르는 분노가 있더라도 이성을 잃지 말자는 거야. 총리는 그러면서 "나쁜 짓이 사람들을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공동체 전체를 죽일 순 없습니다"고 했어.


여기서 잠시.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지? 남한 땅의 3배가 넘어. 하지만 국민 숫자는 490만이야. 우리의 1/10이지? 대구와 인천 인구를 합한 정도라고 보면 돼. 하지만 기름 많이 나오기로 세계 7위야. 1인당 국내총생산 즉 돈 많이 벌기로는 세계 2위, 사람 살기 좋은 수준은 세계 최고고. 국민과 국민 사이에 서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해. 그러다보니 잘난 체 하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우리에게는 대통령과 같은 위치인 총리를 길을 가다가 만나도 시민들은 존칭 없이 이름만 불러 인사할 정도라고 해. 정말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 같지?


이렇게 되기까지 역사가 있었다. 19세기였을 거야. 그때만 해도 농사짓는 게 최고의 생산 아니었겠어? 당시 유럽에서는 영국, 프랑스에 평야가 많았고 땅이 비옥했어. 많은 먹을거리가 나왔겠지? 이것 때문에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중심으로 신분과 계급이 나뉘어졌어. 지배하는 자, 지배당하는 자 이렇게 말이야. 반면에 노르웨이는 그 반대 상황이었어. 땅이 나쁘니 생산되는 게 없었어. 아주 가난했겠지. 다 같이 못 살다보니 귀족 천민이 따로 없었어. 결국 서로 돕고 살게 됐어. 그래서 공동체주의와 평등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거야.


이런 배경은 노르웨이의 수준 높은 민주주의로 이어졌어. 국민 모두가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노르웨이에서 선거를 치렀다 하면 평균 투표율이 70%에 이른다고 해. 국민들은 사회적 이슈를 놓고 일상적으로 토론하면서 나랏일에 간섭한다고.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지금 민주주의로는 부족해’라며 반성문을 끊임없이 낸다고 해. 잘못하면 공무원, 은행가, 법률가, 언론인이 나라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걱정, 지금 기름을 파느라 막대한 돈이 들어오는데 이렇게 배부르게 되면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배부른 걱정 천지라고 할지 몰라.


노르웨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법을 강화하거나 처벌을 세게 하는 것 보다는 시민들이 보다 정치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해. 무언가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정치 무대에서 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극단적인 행동을 피하는 거지.


이번 사건을 저지른 테러범은 최고형을 받더라도 21년 징역형이야. 교도소로 있는 곳은 초호화판이라고 해. 하지만 노르웨이의 정치인들은 "세계 최고의 교도소에서 교육받게 해 다시 사회로 복귀한 다음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고 말해. 이러다보니 감옥에서 나온 사람 중에 또 나쁜 짓을 저질러 다시 수갑을 차는 경우가 10명 중 2명이라고 해. 문제가 있는 사람 하나를 없애거나 따돌린다고 범죄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나오는 거라고.


다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고. 테러범은 “한국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박대하는 대표적인 국가”라면서 “잘하고 있다”고 말해. 이렇게 비춰지는 것만으로도 부끄럽지. 하지만 이 범인은 뭔가 잘못 알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를 못살게 구는 나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들을 한 형제로 생각하잖아. 그래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어.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어. 이런 가운데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노동자로 일하며 돈을 벌었어. 게다가 우리 동포 680만 명이 외국에서 살고 있어. 우리가 외국인을 무시하고 미워하면서 동포들도 외국에서 그런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 될까?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15만 명이 저마다 장미를 들며 ‘더 많은 관용을’ ‘더 깊은 이해를’을 외치는 모습, 상상이 돼? AFP 통신 기자 아저씨는 이 현장을 보고는 "사람들은 슬픔 속에 하나가 됐지만 범인을 향한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고 타전했다고 해. 친구들, 맞아. 증오는 결코 용서를 이길 수 없어. 물론 범죄에 대한 응징은 철저해야 하겠지만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야. 우리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한 번 큰 나라인 노르웨이를 볼 수 있었어. 우리도 그런 나라로 향해 가야하지 않을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1년 9월호 > '출동! 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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