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




MC: 오늘 마지막 시간, 어떤 노래를 준비했나?


‘꼭 한 번 틀어보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존 레넌의 ‘이매진’이다.


MC: 노래 자체가 레전드 즉 전설 아닌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였을 당시 선거 CF 배경음악이었다. 기억하나. 노무현 후보가 눈물 흘리는 동영상. 물론 그것 때문에 선곡한 것은 아니다. 지금 살림살이 참으로 팍팍한 시대이다. 이 시름을 덜기 위한 방법, 딱히 없으나, 우리 모두가 몽상가가 돼 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MC: 이 노래가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건가?

 

1971년 어느 날, 악상을 짜내느라 머리를 쥐어뜯던 존 레넌에게 아내인 오노 요코는 이렇게 충고했다. “그레이프 프루트를 상상해봐”라고. ‘그레이프 프루트’는 오렌지와 레몬의 잡종교배로 탄생한 과일 자몽이다. 일본인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오노 요코는 자신의 처지를 이 과일에 빗대곤 했다.


MC: 혼합이다, 잡종이다 이렇게 생각한 건가.


그렇다. 아무리 때를 벗기려 해도, 나는 동양인, 나는 일본인, 이런 딱지가 떼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 때ㅑ문이었다. 레넌은 이런 아내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이매진>이다. 노래 가사를 풀어보겠다. “…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 신념을 위해 죽이지도 않고 죽일 일도 없고/ 종교마저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상상해봐. … 그대// …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봐/ 탐욕도 필요없고 굶주림도 없고/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한다고 상상해봐 ….”


MC: 함께 공존하기 위해 종교, 국가, 소유, 체제, 이데올로기, 신념에 집착하지 말자는 이야기이군.


그러나 이 노래를 만든 이후로부터 고충은 레넌에게도 밀려왔다. 리처드 닉슨 미국 행정부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뭐? 종교 없는 세상, 국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라고? 이거 불온하기 짝이 없는 무신론자, 무정부주의자 나아가 공산주의자 아니야?”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레넌은 그 뒤, 비자 연장 신청도 거부 당했다.


MC: 하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명예를 얻지 않았나? 이런 공존공영의 세상을 꿈꾸기까지 레넌이 살아왔던 과정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1940년 10월 9일. 레넌은 영국의 리버풀에서 ‘뱃사람’의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 한량이었다. 레넌이 아주 어렸을 때에 뉴질랜드로 떠나버렸다. 엄마는 또 어떤가. 레넌이 태어나자마자 양육을 이모에게 떠넘겼다. 본인은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안겼다. 여러번 결혼한 것이다. 당연히 존 레넌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한마디로 거리의 소년이었다.


MC: 그런 레넌이 엄마 때문에 음악에 눈을 뜨게 되지?


엄마는 어느 날 지척에 살던 아들을 만난다. 엄마는 끼 많은,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마침 도색잡지를 보다 걸려 정학당했던 레넌은 엄마와 함께 연주하고, 클럽에 다니면서 음악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렇게 아들을 음악이 길로 인도하고는 엄마는 레넌 나이 17살에 돌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레넌은 끊어진 엄마의 사랑을 채우려 하는 듯 로큰롤 열풍에 휩싸인다. 직접 밴드를 결성해 연주한다. 그러다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을 만난다. 이렇게 비틀즈가 결성된다.


MC: 1960년대는 비틀즈의 세상이었지?


1963년 이 리버풀 촌뜨기들은 처음엔 영국을, 이듬해에는 미국을, 이어 전 세계의 대중음악계를 장악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접수했던 세계의 대중음악은 비틀즈가 나타나면서 그 흐름을 미국이 아닌 영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레넌은 이 밴드의 리더였다. 사실 비틀즈란 위대한 밴드의 리더였다는 점만으로도 레넌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MC: 솔로로 전향한 이후의 삶이 사실 더 빛났다는 것 아닌가?

솔로앨범에 실은 'God'에서 "난 비틀즈가 아닌 나를 믿는다"고 말한 정도였다. 독자적인 레넌의 음악세계는 비틀즈 이후에 더욱 본격적으로 발현된다. 그러다가 7살 연상의 여인 오노 요코를 만난다. 


MC: 만난 과정도 참 드라마틱했더라.


레넌이 당시 여류 전위예술가였던 요코의 작품전에 초대됐다. 그곳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의 열린 틈에 있는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봐야 하는 작품이 있었다. 레넌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궁금했다. 돋보기로 글씨를 살펴보니 거기엔 ‘yes(예)’라고 쓰여 있었다. 레넌은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전위예술가 중에 긍정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레넌은 “내 주위에는 예쁜 여자가 많이 있지만 이런 여자는 보지 못했다”며 요코에 구애를 했다.


MC: 요코가 비틀즈 마니아에게 대단한 혹평을 받았다.


“존이 깎은 손톱을 주워 모아 그에게 마술을 씌우는 마녀” “‘영국의 국보’를 훔쳐간 볼품없는 동양 여자” 이런 비난을 퍼부었다. 레넌이 음악을 외면하고 요코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요코는 레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모든 창작의 영감과 의욕은 그녀에게서 나왔다. 레넌은 반전평화운동가, 전위예술가, 사회운동가로 변신을 거듭했다.


MC: 평화운동가로 레넌을 만든 것, 요코의 역할이 컸다는 설명이군.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에 가서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 침묵시위를 했다. 침대 위에서 손 잡고 말이다. 레넌이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이며 한 말이 있다. “폭력은 폭력을 불러올 뿐이다. 이것은 만물의 법칙이다. 물론 폭력을 정당화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타협에 불과하다. 타협을 기반으로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아직도 살아서 레넌의 유산들을 더듬고 있는 요코는 최근 “우리는 세계 평화를 위해 일했다”고 회고했다.


MC: 그런 그의 죽음은 참으로 비극이었다.


1980년 12월8일 밤 11시. 뉴욕 맨해튼의 어느 아파트 빌딩 앞에서 느닷없이 울린 다섯발의 총성. 경찰 순찰차에 옮겨진 레넌은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미 혈액의 80%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한때 정신병자라는 결론이 나기도 했는데 28년 뒤에 “레넌을 죽이면 내가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범행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레넌의 가치마저 죽이지 못했다.


MC: 국가는 물론 종교 사이에도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 레넌을 그리워하게 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기 <만들어진 신>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십자군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없는.” ‘기독교-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슬람교-테러-보복전쟁’으로 이어지는 참상의 고리는 결국 종교 뒤에 숨은 ‘만들어진 신’이란 것이다. 체제가 없는 세상, 종교가 없는 세상은 무질서하고 안식이 없어야 할 텐데, 도리어 그런 세상이 돼야 모두가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MC: 김용민 씨도 레넌의 가사를 개사해왔다고.


“… 원자력이 없다고 상상해봐/ 방사성 물질 누출 때문에 죽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고/ 육식마저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동물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상상해봐. … 그대// …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봐/ 독재도 필요없고 반정부 시위도 없고/ 오직 자연에 대한 사랑만 존재한다고 상상해봐 ….” 요즘 원전 공포, 구제역 대란, 중동 반정부 시위를 떠올리며 생각해봤다. 그래도 레넌 만큼의 깊이는 영 따라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음악과 시사에 대해 떠들었던 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하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3월 28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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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MC: 오늘은 어떤 노래 만나볼까?


김건모 씨의 노래 ‘잘못된 만남’이다.


MC: ‘잘못된 만남’은 디스코풍의 노래인데, 특별한 기록이 있지?


김건모는 '잘못된 만남'이 수록된 3집 단일 앨범만으로 280만장이라는 한국음악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한국기네스북에 '최다 판매앨범'이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다. 1995년 1월말 첫판이 나온이래 한달반도 안돼 200만장이 팔렸으니 하루평균 4만3천장이 팔린 셈이다.


MC: 요즘 김건모 씨가 화제의 인물이 됐는데. 그래서인가보다.


그렇기도 하지만 김건모 씨의 노래만큼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된 경우도 찾기 힘들 거다. 오늘 소개할 노래 ‘잘못된 만남’은 정치인과 정치인 사이에 협력관계가 틀어질 경우에 많이 묘사된다. 또 ‘핑계’라는 노래도 많이 쓰였다. “내게 그런 핑계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해봐”는 가사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숱하게 대변인 성명에서 쓰였다.


MC: 참고로 김건모 씨는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 운동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 1995년 지방선거부터 시작해, 1996년 총선, 1997년 대선, 2002년, 2007년 대선까지 연예인으로서 한나라당 지지선언을 해왔다. 그 숱한 정치인들이 이 당 저 당 옮기는 동안, 김건모 씨만은 절개를 지켰다. 특히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좀 씁쓸할 거다. 1997년 대선 당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김건모 씨”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7년 대권 3수 때에는 김건모 씨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거든.


MC: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레게음악 대중화는 김건모 씨의 역할이 크다.


그 노래가 나올 해인 1995년은 레게음악의 예언자격인 보브 말리의 탄생 50주년이었다. 영국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말리는 흑인들의 전통적리듬과 미국의 솔, 리듬 앤 블루스 등이 결합된 자메이카 특유의 레게음악을 60년대 중반부터 전세계에 유행시켰다.


MC: 보브 말리도 듣기로는 사회 참여에 활발했던 것으로 안다.


말리는 짐바브웨의 독립때는 스스로 밴드를 이끌고 가 “내부싸움을 하지 말고 단결하라”고 콘서트를 열었다. 권리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말라는 ‘일어나라, 서라’는 그의 노래는 앰네스티의 노래로 채택됐다. 미국의 흑인가수 스티비 원더는 말리의 음악적 능력에 탄복해 매스터 블래스터란 노래를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김건모 씨가 선거 때 자원봉사 열심히 한 것 외에는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 ‘그가 꿈꾸고 있는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있었겠지 싶다.


MC: 이 노래가 나오던 시점, ‘잘못된 만남’을 배경음악으로 하면 딱 어울릴 풍경이 참 많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부정한 돈 받았다며 감옥에 보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자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정권 창출의 또 다른 주요주주 김종필 전 총리를 쫓아냈다. 총선을 앞두고는 비자금 사건으로 자신에게 민자당 당권을 넘긴 노태우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당시 야당도 만만치 않았다. 그 해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이를 앞두고 사실상 컴백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기택 당시 민주당 총재가 극심한 갈등관계를 빚더니, 이듬해 갈라섰다.


MC: 그 노래가 나와서 그랬나, 아니면 시대 분위기를 고려해서 노래가 만들어진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든다. / 한편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가수를 불러 노래를 시킨 다음, 순위를 매겨 최하위를 기록한 사람을 탈락시키는 규정이지? 그런데 탈락자 즉 김건모 씨에게 계획에 없던 재도전 기회를 부여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제작진은 ‘이번만 그러겠다’가 아니라 ‘앞으로도 최하위를 기록한 가수에게 모두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MC: 각종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지더라.


한 네티즌은 ‘나는 가수다’ 제작진이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며 했던 말을 그대로 흉내냈다. 김건모의 탈락을 축구 강국 브라질에 빗대 “브라질 이변의 16강 탈락”이라는 제목으로 “어차피 월드컵이란 게 세계 축구팬들에게 더 좋은 축구를 보여드리기 위한 자리이니만큼 브라질 본인이 원한다면 한 번의 재도전 기회를 드립니다”는 글을 게재했다.


MC: 김건모 씨가 상당히 곤혹스럽겠다.


여담이다만, 패러디물인 ‘나는 가수다 40년 후’도 뜨거운 화제다. 이 게시물에는 ‘다음주 박정현 탈락, 박정현 재도전, 그 다음주 김범수 탈락, 김범수 재도전, 그 다음주 윤도현 탈락, 윤도현 재도전…’ 등 출연자들이 탈락했으나 다시 재도전했다고 적혀있다. 이어 마지막에는 ‘2040년 '나는 가수다' 최장수 프로그램에 선정. 김연우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사망’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다음에 출연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연우의 모습까지 묘사해 웃음을 주고 있다.


MC: 김건모 씨의 처신을 두고 논란이 많다.


김건모는 지난 2001년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수 문차일드의 '사랑하니까'와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김건모는 길거리 투표에서 문차일드에 앞섰지만 인터넷과 ARS를 이용한 투표에서 뒤져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후 김건모는 다른 생방송 출연까지 취소하며 "앞으로 MBC TV의 모든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당시 김건모는 가요프로그램 순위가 음반 판매 중심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했던 것. 당시 김건모 앨범은 100만장 이상 팔렸다.


MC: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서도 탈락을 무력화하는 재도전 제도가 도입될 움직임이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석패율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다. 이 제도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어서 여야 양측에서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석패율제는 '석패(惜敗)한 후보를 구제하는 제도'이다. 지역구 출마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이중 등록시켜,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시키자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각각의 취약지인 호남과 영남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MC: 하지만 석패율제 도입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 않나?


그렇다. 현행 비례대표 정원 54석을 유지하고 석패율제를 도입할 경우 전문가 집단과 사회적 약자의 정계 진출을 위해 만든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를 배려하려면 비례대표의 몫은 그만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석패율제가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실 낙선같은 심판도 민의일 수 있거든. 이런 민의가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MC: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나는 정치인이다’ 이래야 하나?


정당하게 정치를 잘해 국민의 합당한 평가를 받을 생각들을 너무 안 한다. 그래서 선거만 되면 명분과 이념, 철학은 차치하고 오로지 승리를 위한 이합집단, 단일화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또한 인물, 지역구도에 의존한다. 뭐 하러 정당정치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정치를 잘해서 박수를 받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도를 걷는 정치가 박수를 받아야 한다. 편법을 좋아하는 이들과 정치는 ‘잘못된 만남’이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3월 22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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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MC: 오늘 어떤 노래를 만나볼까?


박혜경 씨가 부른 ‘뭉게구름’이다. 이 노래, 슬쩍 불러보겠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이런 가사다.


MC: 어떤 공기업 CM송 같은데...


맞다. 한국수력원자력의 CF송이었다. 이 노래에 대한 음원을 소유하고 있고, 이 음원을 판매해서 남긴 돈으로 전액 2000만 원을 2008년 1월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 잠시 후에 노래를 들어보겠지만 박혜경의 깔끔하고 상큼한 목소리가 아주 빛난다. 이 노래는 2006년 11월부터 1년간 총 220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MC: 노래 가사가 환경친화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뜻이 이 노래에 담긴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고. 오늘 박혜경 씨의 이 노래를 왜 골랐을까. 원자력,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다보니 그랬다. 박혜경 씨와 일본은 어떤 관계냐. 좀 지난 일이 됐는데. 2003년 박혜경 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일본 사람이었다.


MC: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는 그 당시 연예매체에서 꽤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스물아홉 때였지? 세살 연하의 일본인과 사귄다고 밝혔다. 언론을 통해 말이다. 당시만해도 언론에 연인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도쿄대 공과대를 졸업한 인재였지? 알콩달콩한 연애사는 그대로 언론에 중계됐다. 한때 결혼에 대한 예측까지 낳게 했던 두 사람, 왜 헤어졌을까. 소속사 분쟁이 이유였다.


MC: 연애와 소속사 분쟁, 뭔 상관인가?


지난 2003년 말 박혜경은 전소속사로부터 8억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으며, 이 분쟁은 2006년 1월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고 박혜경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비로소 매듭지어질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인의 위로가 필요한 때였는데.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전화로만 소통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 박혜경 씨 이야기가 이렇다. “일본이란 나라, 과연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MC: 원자력과 관련해 걱정이 크다. 청정 에너지로 알려졌지만 이게 사고가 나는 순간엔 거대한 흉기가 되지 않나?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25년 만에 똑같은 핵 재앙이 이웃나라에서 벌어지는 양상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약한 방사선이 몇 시간 안에 바람을 타고 도쿄로 날아올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체르노빌 같은 전면적인 노심 용융으로는 진전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그냥 실내에 있어라 이 정도이다.


MC: 일본 원전보다 우리 원전이 더 안전하다는 설명도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첨단시설이라는 홍보에 익숙하다. 그러나 일본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우리가 시간을 벌 수 있다 정도지, 우리 원전이 근원적인 안전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누구도 안 한다. 지금 일본도 수습도 못 하고 먼발치에서 보면서 시간 보내다가 이런 전대미문의 재앙을 만난 것 아닌가?


MC: 지금 정부나 기상청은 걱정 전혀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방사능 기류가 우리나라엔 오지 않는다는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만약 바람의 방향이 서쪽으로 분다면 그때엔 뭐라고 할까? 사고라도 나고 그러면 “아, 천재지변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 될까? 이 모든 걸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겠지만 원전은 애초에 천재지변까지 고려에 넣는 시설이다.


MC: 우리 원전이 과연 안전할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이 나오더라.


일본 본토가 ‘방파제’ 역할을 해준 이번 지진과 달리 일본 서해상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면 우리로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일본 혼슈 시마네 현 북쪽 해역으로부터 약 50㎞ 떨어진 오키제도 부근에서 강진이 일어날 경우를 상정한 건데, 강릉 25분, 삼척 23분, 포항 17분, 울진 22분, 울산 31분, 부산 59분 만에 10m 크기의 쓰나미가 닥친다고 한다.


MC: 그런데 동해 쪽에 원전이 잔뜩 있지 않나?


이게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05년 이전까지 큰 지진 14건 중에 6건이 경주에서 일어났고, 통일신라시대엔 이 지역에 진도 6.2규모의 강진도 있었다고. 실제 이 근방에서 최근까지 단층운동이 활발하다고. 문제는 근처에 고리, 월성 같은 원전이 있는데다 이곳에다 또 새로운 원전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MC: 만약 서해상에서 지진이 난다면 어떻게 되나.


후쿠시마 원전은 반경 20㎞ 안 주민 21만 명을 대피시켰는데. 고리 원전에서 비슷한 사고가 난다면 부산시 일부와 울산시가 이 범위에 포함돼 대피 대상이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란 것이다. 게다가 우리 원전은 바로 밑에서 난다고 가정한 거라고 하지만 6.5까지 안전하다. 9단위까지 가는 사고가 난다면 그때엔 어떤 예측이 가능할까?


MC: 원전 사고는 그렇다 치고, 지금 일본 제한 송전에 들어갔지? 전기 수급 문제도 비상이다.


원전 의존도, 일본은 30%이고 우리도 비슷한 31%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59%로 올린다는 것이다. 원전에서는 노심 용융의 사고 확률이 10만년에 한번꼴이도록 안전설계를 한다. 하지만 지난 30여년 동안 그런 사고는 3번이나 일어났다.


MC: 사실 원자력이 있으니까 풍부한 전기자원을 쓰는 것 아닌가?


사실 요즘 혹한이다 혹서다 할 때 전력예비율이 낮더라도 우리가 버티는 이유는 31%를 책임지는 원자력 덕이다. 당장 없애기도 그렇다. 게다가 클린 에너지도 맞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세계원자력협회는 현재 전 세계 31개국에서 433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와 핵폭탄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MC: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안론’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온다.


“저탄소가 반드시 친환경은 아니다. 원자력은 기후변화 대응에 조금 도움 되는 저탄소 에너지일 수는 있지만 친환경 녹색 에너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이번 사고로 국제적으로도 각국에서 추진 중인 원전 계획이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원전 수출에 몰두하며 원자력 르네상스를 외치는 우리 정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MC: 오늘 노래 대신 원자력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이 노래 가사를 다시 한 번 소개한다. 이 가사와 지금의 일본 상황을 대조해보시라.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 저 푸른 하늘 벗삼아 훨훨 날아 다니리라 /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 이 땅에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빗물이 되어라는 가사가 있다. 비오면 큰일 난다. 방사능 노출이 우려된다. 부디 일본 방사능 사태, 예의주시하자.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3월 15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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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삐걱



MC: 오늘 어떤 노래를 살펴볼까?


1997년에 DJ DOC가 내놓았던 ‘삐걱삐걱’이다. 건달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목사와 역할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 ‘할렐루야’의 노란에 들어간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 중에 이 가사 부분이 특히 주목된다.


MC: 어떤 가사였나?


“삐걱삐걱 대며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을 돌봐주지 않아 / 있는 사람은 항상 있지 없는 사람은 항상 없지 / 어떻게 바꿔볼 수가 없지 도저히 우리 힘으론 안 되지 /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백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 이예요 착하게 살긴 아픔이 너무 많아요.”


MC: 요즘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모습이군.


그렇다. DJ DOC가 사회의식을 담은 노래를 그 이후에도 많이 발표했지? 이 ‘삐걱삐걱’이라는 노래에는 근래에도 발견하기 힘든 통렬한 정치 풍자도 있다. “매일 밤 나는 뉴스를 봐요 코미디도 아닌 것이 진짜 웃겨요 / 정치하는 아저씨들 만날 싸워요 한 명 두 명 싸우다가 결국 개판이 돼요 / 그렇게 싸우고 또 화해를 해요 완전히 우리를 가지고 놀아요”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국민을 갖고 논다.


MC: 그런데 가사를 많이 순화해서 소개하는 것 같다.


그렇다. 강렬한 욕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건만 지금도 단 한 자, 방송에서 인용할 수 없다. 원래 힙합, 랩이라는 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이 약자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하나의 카타르시스적인 요소가 있다. 하지만 이걸 개척한 사람은 고충이 크다. 기존질서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 당시로선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음반수거 대상이 돼 살래야 살 수 없었다.


MC: 지금이야 파일이 돌아다니고 그러니 잡을래야 잡을 수 없을 텐데.


DJ DOC의 노래 중에 이런 것도 있다. ‘포조리’ 그리고 ‘L.I.E'. 이건 그로부터 3년 뒤인 2000년에 나온 노래이다. 이건 DJ DOC가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대상에게 노래로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MC: ‘포조리’는 제목만 봐도 경찰을 비난하는 내용인 것 같다.


가사 들어보자. “이번엔 무슨새 이야기해볼게. 무슨새가 우리 민중의 지팡이? 무시무시한 살벌한 조폭형님들과 형님 동생하며 뒤를 봐준다지? 단속 뜰 때 미리미리 연락해서 그 댓가로 또 돈을 받는다며? 너희들의 비리가 하늘을 찔리서 옥황상제 할아버지의 항문을 겨냥한다.” 이제부터 소개하는 대목은 본인들 체험인 것 같다. “나 어렸을 때 싸움 좀 했을 때 깐죽대는 녀석과 싸웠는데, 그 녀석이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무슨새의 얼굴이 바뀌고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 없고 백 없는 내가 죄~!”


MC: 이 노래를 접하신 경찰 고위직에 계신 분들, 상당히 언짢으셨을 것 같다.


경찰은 고심했다. 괜히 고소했다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는데다 그 음반에 대해 홍보해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DJ DOC 기획사가 강남에 있는 만큼 강남경찰서장과 경찰간부 21명이 앞장서서 음반 배포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노래 만든 이들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MC: 그 뒤로 어떻게 됐나.


DJ DOC 노래는 정말 홍보가 됐다. 방송에 단 1초도 안 나갔는데도, 인터넷이라는 홍보매체가 없었는데도 40만 장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DJ DOC가 사법 처리됐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MC: 그런데 경찰이 노래 만드는 단계부터 이들에게 발매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했다고 들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DJ DOC의 이하늘 김창렬 정재용 씨는 ”경찰이 우리 앨범이 나오기 두 달 전부터 작업실을 수시로 찾아와 괴롭혔다. 아마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가사를 보여달라’, ‘발매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라며 협박했다. 또 경찰들이 도매상에 압력을 넣어서 유통도 이틀이나 늦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체 경찰을 비난한 건 아니고, 일부 경찰에 당한 게 맺혀서 그랬다”라고 했다.


MC: 일부 경찰에게 맺힌 게 뭔가.


잘 알겠지만 이하늘, 김창렬, 정재용 씨, 폭행 시비로 여러 차례 경찰서 신세를 졌다. 그러면서 경찰에 대한 오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우린 가방이 끈 짧아서 잘 모르지만 조사 받을 때는 죄인이 아닌 걸로 안다. 그런데 거기만 들어가면 우린 완전히 '졸(卒)’이 되는 분위기다.”


MC: 경찰의 고압적인 수사 태도에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군.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경찰서에 한 번 가봐라. 경찰들은 ‘내가 너를 못집어 넣으면 옷을 벗겠다’며 이런 저런 상황을 만들어 간다. 그들은 진실보다 자기 생각을 우기는 데 매달린다.”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도 있다. “경찰은 우리들의 노랑머리와 복장을 놓고 걸핏하면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라고 삿대질했다.” “경찰, 뭐 캥기는 거 있나?” 정말 거침없다.


MC: 또 다른 노래 ‘LIE’ 그러니까 ‘거짓말’은 누구를 겨냥한 노래인가?


기자를 상대로 했다. DJ DOC가 한동안 공백기였다. 그때 언론은 수시로 ‘해체설’ 이런 보도로 DJ DOC 멤버들을 자극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언론과 아티스트는 갑과 을의 관계 아니었나? 카더라식 보도를 해도 예술인들은 참아야 한다. DJ DOC는 그런 위압적인 상하구조에 침을 뱉었다. 이 부분의 가사만 이용한다. “우리를 생양아치로 매도한 사이비기자들, 잘 들어. 그래 써라. 씹어라. 날려대라. 그 그러나 나 이제 옛날처럼 홈런 맞은 투수처럼 멍하니 보고 있진 않아. 너희에게 펜, 종이가 있다면 내겐 내 한 맺힌 VOICE와 MIC가 있다.”


MC: 우리 사회의 성역이란 성역은 다 건드렸구만. 통상 이렇게 강렬한 자기 목소리를 내면 ‘저 친구, 우파야, 좌파야’ 이런 편가름을 당하게 되는데 DJ DOC는 그런 건 없었나?


괜히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이런 게 아니다. “우린 저항이나 진보가 뭔지 모른다. 그저 우리를 누르니까 덤비는 거다. 고백하는데 우리는 단순하고 무식하다.” 이런 말을 했다. 또 다른 언론에다가는 “우리는 가방끈이 짧다. 단순, 무식하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MC: 그래도 DJ DOC를 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 사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에 이들이 초청됐다. 그런데 모두 셋인 일행 중 한사람은 목에 깁스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목발을 짚었다. 나머지 한 사람만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하늘은 무대에서 춤 추다 발목을 다쳤고, 김창렬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천하의 악동들 모습이 참 진기했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적잖은 지분이 있다. 바로 DJ DOC 노래가 선거CM송으로 크게 히트했기 때문이다.


MC: ‘DJ DOC와 춤을’ 이 노래가 인기였지?


그렇다. 이 노래는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새정치국민회의 외에도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과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으로부터도CM송으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 세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주저 없이 꼽았다고. 왜냐. 자신들은 DJ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칭도 DJ이니까. 딴 뜻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MC: 오늘 DJ DOC의 파란만장한 사회 비판곡들을 쭉 살펴봤는데, 주인공격인 ‘삐걱삐걱’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뭔가?


‘삐걱삐걱 대며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을 돌봐주지 않아’ ‘백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이 가사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사람이 없나?


MC: 배우 장자연 씨?


그렇다. 지난 2009년 ‘연예계 성 접대 비리’를 폭로하고 자살한 비극의 주인공이지? 장자연 씨가 2005년부터 숨지기 직전까지 한 지인에게 보낸 50여 통 230여 쪽 분량의 편지를 SBS가 확보해 지난 일요일 특종 보도했다. 편지내용이 충격적이다. “새 옷으로 바뀔 때면, 또 다른 악마들을 만나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 술 접대, 성상납 그걸 받게 하고”, “오라면 가라면 벗으라면 그렇게 한 것이 수 십 번도 아닌 100번도 넘는다”, “엄마 아빠 제삿날도 챙기지도 못한 나쁜 X인데”, “미친 변태 날 너무 잔인하게 노리개처럼”, “내가 잘못된다면 이 사람들 모두 꼭 복수해줘. 부탁해” 이런 내용이었다.


MC: 이 편지, 당시 경찰은 존재조차 몰랐나?


아니다. 알았다. 이 지인에게 경찰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인은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뜻이 없는 것으로 보고 편지를 넘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그러나 경찰은 그 지인을 “장자연 씨와 한 번 본 적도 없고 통화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이라고 밝히며 묻어버렸다. 그래서 DJ DOC가 부른 ‘포조리’의 가사, 이 부분이 주목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 없고 백 없는 내가 죄~!”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3월 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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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MC: 삼일절을 맞아 오늘은 특별한 노래를 준비했다고?


바로 '선구자'이다. 같은 노래를 놓고 항일곡이라는 평가와 친일곡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노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노래가 그렇다.


MC: 그런데 3절인가를 보면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그 가사를 생각하면 이게 어떻게 친일 노래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알려진 일화는 이렇다. 1932년 10월의 어느 저녁 무렵, 만주 모란강변에 있는 한 싸구려 여인숙에 묵고 있던 조두남에게 윤해영이라는 청년이 찾아왔다고 한다. 윤해영은 평소 만주의 평원을 무대로 일제와 싸우다가 쓰러져 간 독립투사의 혼을 위로하고 아울러 만주 지역에 사는 동포가 선열을 추모하며 노래 할 수 있는 장엄하고 위대한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MC: 드라마틱하다.


윤해영은 조두남에게 용정에서의 동포들의 고생과 독립 운동의 상황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조두남은 윤해영의 시에 감격하여, "내 민족이 함께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남긴 그 소원에 응하기 위해서 젊은 정열을 기울여 작곡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홀연히 떠났다는 것이다. 독립 투사가 출입하던 일송정의 어느 용정 언덕과 한이 서린 해란강의 물결, 밤이 되면 함께 울던 용주사의 종소리... 다, 두 사람의 감수성이 만들어 낸 노래라는 것이다.


MC: 그래서 조두남 작곡가같은 경우 경남 창원에 기념관도 있는 것으로 안다.


고향이 평양이지만, 한국전쟁 때 마산으로 내려와 마산사람으로 살아온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구마산시가 기념관과 테마공원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역시민단체인 희망연대가 반발했다. 친일 행각을 벌인 사람을 기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일 행각이라. 그 근거는 무엇일까.  평양 출신 연변 작가 류연산 씨가 조사한 것을 보면, 생전 조두남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연변 음악계의 원로 김종화 옹이 "조두남이 "징병제 만세"와 "황국의 어머니"라는 친일노래를 작곡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사료로 확인됐고.


MC: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일제에 부역했던 분들이 많았는데, 그 경우는 아니었을까?


이 김종화 옹은 조두남 작곡가가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패전 한 해 전인 1944년 조선 청진에 다녀오던 길에 남양 골목에 나붙은 악극단의 포스터를 보았는데, 조두남 작곡으로 된 "간첩은 날뛴다"였다고 한다. 공연을 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내용은 "간첩"들이 경찰서를 치는 것을 주의하고 미리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말한 간첩이란 항일세력이었다고 한다.


MC: 윤해영 작사가의 독립의지는 분명하지 않았나? 그런 노랫말을 쓸 정도면.


윤해영도 만주 일대의 대표적인 친일문인이었다. 만주 최대의 친일단체인 ‘오족협화회’의 간부로 활약하면서 ‘만주괴뢰정부’를 찬양하는 낙토만주를 공공연히 외친 유일한 문인이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조두남 작곡가가 윤해영 작사가를 한 번 만난 뒤로 종적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해방 이후 80년 동안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만날 수 없다고 회고록에 남겼다. 그러나 조두남 신곡 발표회에 윤해영이 매번 나타났고,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노래도 여럿 있다는 것이다.  ‘목단강의 노래’ ‘산’ ‘아리랑 만주’ 같은 노래가 그렇다는 것이다. 시 한 수 남기고 떠난 선구자의 작사자, 그 노래를 만들고 그 작사가를 찾아 헤매는 작곡가. 이런 노래 배경도 날조했다는 설명이다.


MC: 평소에는 먹고 살기 위해 친일하다가, 남 몰래 독립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선구자'를 만든 것은 아니었지도 궁금해진다.


'선구자'로 논의를 좁혀보자.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룡정의 노래'였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선구자'로 바뀌었다. 원래 '룡정의 노래'는 만주를 떠도는 유랑민의 애환을 표현한 서정적인 노래였다고 한다. 앞서서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라는 가사도 해방 이후에 고쳐진 부분이다. '흘러온 나의 신세 눈물 젖은 보따리'가 원래였다고 한다. 왜 해방이 되니까 이 노래가 항일 노래로 고쳤을까?


MC: 그러니까 그 노래에 '선구자'라는 말이 전혀 없었다는 건가?


그렇다. '선구자'라는 말, 일제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노래를 들춰보니 '락토만주'라는 노래에 그 단어가 있긴 있다.  '우리는 이 나라에 터를 닦는 선구자 / 한 천년 세월 후에 천야만야 빛나리' 이런 가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구자란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가 아니라 만주국의 건국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선구자라 지칭한 것이다.


MC: 삼일절, 광복절 행사 때 자주 불리고 울려퍼졌던 노래가 바로 '선구자'인데. 참 머쓱해진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윤해영 조두남 모두 포함됐다. 편찬위원회측은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를 선정 기준으로 고려했으며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발표 당시 보수단체가 반발하긴 했지만, 유족이 저항하긴 했지만, 증거가 워낙 뚜렷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당시 용정에서 활동했던 고 문익환 목사같은 사람은 '선구자'를 생전에 애써 외면했다고 한다. 이 노래, 실은 민주화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려졌었다.


MC: '희망의 나라로'같은 가곡도 친일 논란이 있지 않나?


‘희망의 나라로’ 가사에 등장하는 ‘배를 저어’ 찾아가는 희망의 나라는 ‘광복된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간절히 염원하는 희망곡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노래는 친일 청산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연주돼 참석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MC: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에서 이런 원인을 찾아야겠지?


물론 노래까지 단죄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사실 우리 독립군가와 북한의 혁명가요, 중국조선족의 항일혁명가중 상당수가 가사만 한국말로 바꾼 일본노래이다. 이 노래를 친일노래라고 할 수 없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독립지사들의 고충을 생각한다면 친일 인사들이 만든 작품이 홀대되고 소외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왜 민족혼이라는 게 있잖은가. 더 없이 씁쓸한 것은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작곡가 역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2월 28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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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MC: 오늘은 어떤 노래로 준비했나?


신형원 씨의 ‘불씨’ 준비했다. 지금이야 신형원 씨는 ‘유리벽’, ‘개똥벌레’, ‘터’, ‘사람들’, ‘더 좋은날’ 이런 대표곡이 있지? 사회의식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가사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MC: 이 노래를 만들어준 사람은 한돌 씨 아닌가?


한돌 씨의 노래는 구슬픔이 있다. 배제, 단절, 소외 이런 상처가 묻어난다. 부모님 때문이다. 한돌 씨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인데, 전쟁 통에 부모님 두 분만 내려오고, 형 둘과 누나 하나를 북에 두고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북의 자식들이 버려졌다고 생각할까봐 늘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MC: ‘불씨’라는 노래는 오늘 어떤 현실을 짚기 위한 노래인가?


리비아 이야기이다. 오늘 아침 뉴스를 접하면서 귀를 의심했다. 정부가 전투기까지 동원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고,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MC: 20대 청년장교 시절 쿠데타로 집권해 42년째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는 세계 최장기 집권자, 카다피, 큰 고비를 만난 셈이지?


한국의 건설사들은 20~30년 전부터 리비아에 진출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불문율'을 교육시킨단다. 그중 우선된 것은 '카다피'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내지 않을수록 좋다는 것. 설령 좋은 뜻으로 얘기했다 해도 현지에서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다를 수 있고, 혹 '신고'가 될 경우 경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건설사들의 걱정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굳이 카다피를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가선생'이라고 불렀다. 일설에는 '카'도 위험하니 '가'로 바꿨다는 말도 있다.


MC: 우상화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격화를 하는 셈이군.


2009년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한 카다피 이야기는 지금도 화제다. 아프리카 왕 중 왕이라는 거창한 소개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더니 무려 96분에 걸쳐 장광설을 쏟아냈다. 통상 15분 정도 발언기회가 있는데 무시해버린 것이다. 물론 카다피의 기록은 피델 카스트로 다음이다. 카스트로, 4시간29분의 기록이 있다.


MC: 나와서 한 이야기도 엽기였지?


단상에 놓인 유엔헌장을 찢어버리며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나머지 나라들을 2등 국가로 경멸하는 만큼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밖에 “신종플루는 군사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신종생물무기 아니냐.” “‘아프리카의 아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구 집권해야 한다.” “유엔본부를 리비아로 옮기자.” 이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제기했다.


MC: 유엔본부 이전.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안 아닌가?


허경영 씨가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판문점으로 옮기자는 것인데.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와 합의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믿거나 말거나. 암살당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둥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아랍어로 된 카다피의 일장 연설을 통역하던 동시통역사는 기진맥진해져 도중에 교체됐다.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 절반은 졸았고.


MC: 종족 전통에 따라 뉴욕에서도 천막을 깔고 자려고 했었지?


미국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민에게 카다피는 원수나 다름없다. 1988년 270명이 탄 팬암 여객기를 폭파하라고 지시한 배후거든. 결국 리비아 대사관에 급조한 천막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카다피, 불같이 화를 냈다는 후문도 있다. “나를 이렇게 대접해? 핵 원료인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에 반환할 거야”라고 발끈했단다.


MC: 카다피가 종족 전통보다는 공포증 때문에 천막에서 잔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작년 5월에 세계 정상들의 독특한 공포증을 소개했다. 카다피는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꼭 닫힌 곳에 있으면 두려움에 빠지는 강박 신경증이 바로 폐소공포증이지? 한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976년 헬리콥터 사고로 크게 다친 뒤 비행에 대한 심각한 공포를 갖게 됐다고 한다. 전용열차를 타고 9300㎞를 달려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경호를 위해 최대 90개의 객차가 붙었다고.


MC: 동물 무서워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어릴 때 개에 물렸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개 공포증이 있다. 그걸 알고 푸틴 러시아 총리는 정상 간 대화 자리에 사냥개를 회담장에 데려오기도 했다. 심리전을 하려한 거지. 말에 떨어진 경험이 있는 부시, 절대 말에 오르지 않는다고. 미신을 맹신하는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에 이야기가 압권이다. 90이라는 숫자가 더 운이 좋다는 이유로 100차트 지폐 대신 90차트 지폐를 만들었다. 천 원, 만 원이 아니라 천 원, 9천 원 이런 지폐를 만들었다는 것. 또 수도를 정글로 옮겨야한다는 점성술사 의견을 따라 정글로 수도를 옮겼다.


MC: 리비아가 표방하기로는 사회주의 국가인데, 사정을 살펴보니 절대왕정인 것 같다.


이번 집단적인 대규모 봉기는 사상 최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정권의 버팀목이었던 군과 공무원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제2의 도시 벵가지의 군이 시위대 편에 서고, 외교관들에 이어 법무장관도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 결국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서글프다.


MC: 왜 서글픈가?


갑자기 광주가 생각나서 그랬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240명 사망, 409명 행방불명, 5019명 부상을 빚어낸 이 사건. 세금 내는 국민을 향해 세금 받는 국가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학살이었다. 이 학살은 하지만, 북한에서 보낸 불순분자가 선동한 소요로 한동안 낙인찍혔다. 아니, 아예 완전히 은폐됐다. 그러나 감춘다고 감춰지나. 이런 광주의 진실을 은유적인 노랫말로 알렸던 노래가 있었다. 그게 바로 ‘불씨’이다.


MC: 광주의 진실을 불씨처럼 간직한 노래군.


“그 누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젠 사랑의 불꽃 태울 수 없네. 슬~픈 내 사랑 바람에 흩날리더니 뜨거운 눈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네. 텅빈 내 가슴에 재만 남았네. 불씨야 불씨야 다시 피어라. 끝내 불씨는 꺼져 꺼져 버렸네. 이젠 사랑의 불꽃 태울 수 없네. 텅빈 내 가슴에 재만 남았네” 꺼져 버린 불씨는 1980년대 서울의 봄이었다고 한다.


MC: 작사가 한돌 씨가 밝힌 말인가 보다.


소설가 김별아 씨에게 밝힌 것이다. “그게 사실 1980년 광주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잠시 민주주의의 봄이 온 듯했지만 금세 칼바람의 계절이 다시 세상을 장악했다. 그래서 희망의 불씨가 지펴 올랐다 절망의 불씨로 스러질 수밖에…”라고 답한다.


MC: 이렇게 광주를 이야기한 은유적인 노랫말의 가요가 또 있었지?


1984년에 발표된 노래 인순이 씨의 ‘여기가 어디냐’가 그렇다. 원래 ‘광주 광주 다시보자 내 어찌 너를 잊으랴’라는 이 노래 가사는 군부의 눈을 의식해 ‘한강수야 다시보자~’로 개작해 불린 바 있다. 이 밖에도 5·18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가수 김원중 씨의 대표곡 ‘바위섬’이 있다. 이 노래들, TV 라디오에도 여러번 나왔는데 당시 권력층은 눈치채지 못했다.


MC: 광주의 아픔이 리비아에서 재연되고 있는데, 7~8년 숨죽이는 역사마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런 독재가 가면 얼마나 가겠나. 역사와 국민을 거역하는 지도자는 결국 무너진다. 튀니지 이집트로부터 비롯돼 중동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의 흐름, 그것은 대세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MC: 혹시 북한에도 이 바람이 불까?


탈북자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몇 분 뒤 시위대는 한 명도 남김없이 사살될 것이며 하루 만에 6촌 이내의 친척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다. 보안원(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똑같이 처벌된다.” 그러나 동토의 땅, 북한 역시 인권과 자유를 향한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불씨야 불씨야 다시 피어라’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이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2월 22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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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MC: 오늘 어떤 노래 준비했나?

 

IMF로부터 돈을 꾸던 외환위기 시절, 홀연히 나타났던 세 명의 소녀밴드 기억하나? 한스밴드 말이다. 1998년 9월 이들이 발표한 ‘오락실’이라는 노래를 오늘 되짚어본다.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걸 또 최고 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MC: 아버지가 직장에서 나온 뒤로 오락실을 전전하신다는 내용이군.

 

가사를 계속 이어본다.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아빠 조금 있다 또 거기서 만나요. 오늘 누가 이기나 겨뤄봐요.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빨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이 노래는 IMF 이후 아버지 세대들의 명예퇴직 붐이 일던 딩시 명퇴로 인한 실직으로 인해 오갈데 없는 아버지들의 상황을 묘사한 곡이다.

 

MC: 경쾌한 리듬이지만, 결코 경쾌할 수 없던 사회 분위기, 이 노래에 잘 반영된 것 같다.

 

당시 이런 말이 있었다. 명퇴, 조퇴, 황퇴, 동퇴. 물고기 이름같지만 명퇴는 명예퇴직, 조퇴는 조기퇴직, 황퇴는 황당한 퇴직, 동퇴는 해직될까 동태처럼 바짝 얼어있다가 퇴직을 말한다. 당시만해도 사회적 충격이 컸다. 왜냐. 직장이면 평생일터였고 운명이었거든. 일자리는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항상 고정된 것이었고. 그런데 그 모든 개념은 사라졌다.

 

MC: 그때까지만해도 우리네 아버지들은 참 강했다.

 

그런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에 들어온다. 차마 잘렸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체면 때문에. 하루는 만화가게, 하루는 당구장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났다. 오라는 직장은 없다. 몇 달분 월급으로 들어온 퇴직금은 드디어 바닥났다. 어느날 들른 오락실. 그러다가 딸을 만났다. 용돈 몇 천 원 쥐어주며 비밀로 부쳐달라고 멋쩍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내는 알았다. 창피했다.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들 우습게 볼까봐. 그렇게 노숙인 생활이 시작됐다.

 

MC: 아버지는 언제나 해였지. 그런 해가 저물자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됐고.

 

당시 한 건설사의 CF가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카피문구로 썼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은 이땅의 아저씨들이 아버지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시는 노래한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버지, 우리는 외환위기를 통해 아버지를 보게 됐다.

 

MC: 당시 사회상, 상당히 암울했다.

 

노래가 나왔던 해의 통계이다. 실직자 200만 명. 실직 그리고 생활고로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 하루 30명 이랬다. 당시 한 남성 전문상담기관에 20대 여성이 한달전 가출한 아버지를 그리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우리 식구들이 너무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뜻대로 산줄 알았지요. 그동안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이 남성 전문상담기관, 이름이 아버지의 전화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성들의 전화가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통계를 내보니 고민의 47%로 ‘가정에 지키고 있지만 설 자리를 찾지 못한 가장의 고충’이었다고.

 

MC: 한스밴드의 아버지는 어땠나?

 

충북 영동 산골에서 성장한 김한나.한별.한샘. 아버지가 목사였다. 서울에서 작곡가 겸 연주인으로 활동하던 한 남자가 창작을 위해 이들이 사는 마을을 찾았다. 호기심 많은 소녀들에게 색소폰과 드럼을 가르쳐 주었고 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와 장로였던 어머니는 밴드를 만났다. 최고의 후견인이었건만, 아버지는 장애인을 돕다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오락실’에서 ‘아빠 사랑해’를 연신 부를 때에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때는 아버지를 잃은 뒤였다.

 

MC: 그런 한스밴드도 파란만장한 활동을 했지?

 

음반사와 전속금 500만원에 전속기간 5년의 계약을 맺은 뒤 음반판매수익이나 방송출연 수익을 제대로 받지 못한채 관할 동사무소에서 생계보조비를 받으며 생활해왔다고 한다. 음반이 15만장 이상 팔렸고 광고 출연료 에 방송출연료만 3200여만 원에 이르는데도 지금까지 받은 돈은 모두 1800여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음반사는 관행 운운하면 이야기했다만. 소녀 가수들 눈물 짓게 하는 현실, 어째 신기하거나 낯선 이야기 같지 않다.

 

MC: 비슷한 때에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도 나왔었다.

 

노래를 만든 한수성 씨. 본인이 아빠이다. 이 양반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1994년 아파트를 판 돈으로 녹음실을 인수했는데 1년 만에 그만 건물 주인이 부도를 냈다. 집은 단칸방으로 옮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했다. 가족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고달파도 말 한마디 못하니 너무 힘들었다. 부자 아빠건 가난한 아빠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가정에 무한한 책임감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아빠 힘내세요’를 만들었다. 본인이 본인을 격려하기 위한 노래이다. 이 노래, 한 동요제에 출품했지만 상은 못 받았다. 그러나 유치원 발표회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빠르게 전파됐고 국민 동요가 됐다.

 

MC: 가사를 다시 음미해보자.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오늘 있었나요/ 아빠 힘내세요….’ 어떤가?

 

MC: 한 10년 지난 이야기가 됐는데.

 

아버지는 이제 기를 펴셨을까. 실업난이 완화됐다는 소식, 듣지 못했다. 노동유연성은 더욱 강화돼서 더 쉽게 해고당하는 세상이 됐다. 천직? 이런 말은 박물관에 가야 찾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이제는 청년실업난이 더욱 가중돼서 결혼을 못하는 취업 지망생이 크게 늘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 질 나쁜 일자리는 잔뜩 늘어나 병들고 굶주리다 세상을 떠나는 청년도 나온다. 이러다가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할 자녀도, 그 이야기를 들을 아빠도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제발 사람 살만한 세상 좀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2월 16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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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MC: 오늘은 어떤 노래 준비했나?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다. 송창식 씨, 요즘 때아닌 상종가이다. 같이 활동했던 음악동지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과 더불어 ‘세시봉 신드롬’의 주역이다. 최근 한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익숙한 음악과 이야기를 선사했지? 통기타와 40년 묵은 이야기들을 들고 나왔을 뿐인데 왜 세대를 아울러 열광하는 걸까.


MC: 아마도 아이돌 중심의 대중음악에 대한 반발 때문은 아닐까?


지난 설에도 그랬다. 걸그룹 티아라의 효민은 무려 12개의 설 특집에 출연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아이돌 공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는 비평도 있더라. 삼촌도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 세대가 된 이들, 아무래도 가요계를 주름잡던 왕년의 그 노래 실력이 감동의 바탕이 됐겠지만 이야기의 힘도 컸다. 음악으로 새겨진 아름다운 인생의 결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미사여구를 남용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MC: 권력이 문화 전반까지 통제하던 시절, 이들의 우여곡절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조영남 씨 이야기 이거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4월 하순 김시스터즈의 귀국공연이 서울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다. 국내 여성보컬그룹 1호로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김시스터즈 공연엔 당시 정권 고위층도 여럿 참석했다. 사단은 찬조출연한 조영남의 가사 바꿔부르기에서 비롯됐다.


MC: 이른바 ‘노가바’를 한 셈이군. 어떤 노래를 불렀나?


'신고산이이∼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라고 해야 하는 대목을 '신고산이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로 바꿔 불렀다. 무대 분위기가 일순에 험악해졌을 것은 뻔한 이치. 다음날 새벽 형사 두 명이 조영남에게 들이닥친다.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끌고 갔다.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었던 이태영 박사, 현재 민주당 고문인 정대철 전 의원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현역 입대하는 선에서 사태는 마무리된다.


MC: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유를 추구하는 그 분, 군에서 어땠나 궁금하다.


군에서도 튀었다. 군당국이 요청한 ‘ 황성 옛터' 대신 예정에 없던 ‘ 각설이 타령'을 군 행사에서 불렀다. 가사 중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가 있지? 군은 1년에 한 번 육군 행사에 참석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칭한것이 아니냐며 조영남 씨를 닦달했다. 하지만 조영남은 군에 있을 시절에도 ‘이일병과 이쁜이’ 음반을 내놓고 히트를 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MC: 돌이켜보면 트윈폴리오 또 세시봉의 멤버들이 활약하던 1970년대는 청년문화의 봄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등의 낭만적 포크송과 더불어 대학가에서 불리는 김민기의 노래가 불려졌다. 한대수는 히피의 즐거움을 노래했고, 신중현은 한국 록의 신화 창조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행복이었다. 바로 그 해 무려 222곡이 금지곡으로 낙인 찍혔다. 어떻게 222곡을 맞추려고 했었던 것일까. 절묘하다. 게다가 대중음악인을 표적 삼은 연예게 대마초 사건 발표로 가요계는 ‘겨울공화국’을 맞았다.


MC: 이때 송창식 씨의 친구들이 잔뜩 붙잡혀 들어갔지?


1975년이었다. 가수 윤형주·김세환·신중현·김추자·이장희와 영화감독 이장호에 이르기까지 청년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던 대중예술인들을, 대마초를 피웠다고 구속하고 공식 활동을 완전히 금지해버렸다. 대마초 바람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이즘에서 우리나라 청년문화로 스며들었다. 몇몇 인사들은 “대마초 피우는 자리에 있었을 뿐, 손 대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MC: 청년문화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때는 그게 추세 아니었나?


그렇다. 그러나 미국이나 프랑스같이 혁명 또는 운동이 있던 동네의 문화와는 양상이 달랐다. 미국은 터졌다하면 청년들이 동원돼 희생돼야 하는 전쟁에 대한 반항이 깔려 있었다.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까지 이에 맞서는 히피문화가 발호한 것이다. 프랑스 6.8혁명 역시 시쳇말로 ‘꼰대’ 지도자 드골에 대한 반발로 일어선 것 아닌가. 반전, 평화, 환경, 인권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움트면서 자유와 해방의 목소리가 컸다.


MC: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을 보면 우리의 청년문화도 흡사하다.


그것보다는 일제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들의 새로운 대중문화·생활문화 세대교체 바람이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하자면 미국 청년문화에서 대마초나 마약이 프로테스탄티즘이나 월남전 징집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었던 것에 견줘,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회의식을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당시 젊은이들이 대마초에 대해 마약으로서의 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삼베의 재료인 대마는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담배 피우듯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호품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MC: 그러니까 꼬투리를 잡은 셈이었군.


전 사회를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싶어 했던 유신정권, 사회의식이 동반되지 않은 청년문화였지만 일단 때려잡고 봤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대로 외래어로 된 가수 이름을 모두 한글로 바꾸도록 했고,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노래 가사까지 손댔다. “긴 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토요일밤에>)의 가사가 “긴 머리 분홍치마”로 바뀌는 해프닝이 속출했다. 조영남은 방송에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의 “태양은 묘지 위에”를 “대지 위에”로 바꿔 불렀다.


MC: 그래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저항 정신의 불씨를 키우려던 이들도 있지 않았나?


훗날 알려진 내용이다.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이라는 노래 또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병태가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 파괴적인 방황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말끔한 옷을 입은 대학생들이 남녀 한 쌍을 이뤄 포크댄스 추는 장면에서 병태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멸시받고 또래 대학생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더니 "고래 잡으러 간다"며 정처없는 방황을 한다.


MC: 뭔가 많은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


원작은 최인호의 소설 ‘고래사냥’ 아닌가. '고래'는 젊은이들의 이상향이자 '군부독재 타도'였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속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포크댄스가 있었던 그 현장을 말하는 것이고. 청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 갈증은 여성과의 쌍쌍파티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당시 군부정권 권력자들은 이런 해석까지 할 만한 머리가 아니었나 보다. 5공 시절 ‘고래사냥’은 큰 인기를 모았다.


MC: 5공화국에서는 그래도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들이 우대를 받았지?


활동에 제한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감행한 전두환 신군부 그룹은 72명의 별을 부부동반으로 불러 파티를 열었다. 윤형주 씨가 이때 불려가 자신의 히트곡 ‘저 별은 나의 별’을 불렀다. 제목과 분위기가 잘 매치된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면서 진땀을 흘린다.


MC: 왜 그런가?


가사를 들어보라.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단다. 그 가사를 괘념치 않고 들었거나, 혹은 신군부에게 항거했다가 쫓겨난 정승화, 장태완 장군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노래는 십수년 뒤 ‘역사 바로세우기’ 과정에서 온전히 그들의 노래가 됐다. 더 이상 대중예술이 권력과 정치의 잣대로 통제되지 않기를 바란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2월 9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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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MC: 오늘은 어떤 노래인가?


국민가요인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 노래를 왜 골랐느냐. 얼마전 광주지역 한 고교 3학년 여학생 두 명이 이색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노래방에서만 배워야 하나요’ ‘우리 역사 선택과목 지정을 반대합니다’ 이런 팻말을 들고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역사교육, 사실상 선택으로 바뀌면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토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MC: 이 노래를 부른 정광태 씨는 일개 가수가 아니라 대표적 독도 지킴이가 돼 버렸다.


‘명예 독도군수’, ‘명예 독도함장’ 이런 직함을 달고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20번지, 본적을 그쪽으로 옮긴 것은 당연하다. 이 노래는 사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1982년 KBS 2TV '유머일번지‘에서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 그리고 정광태 씨가 포졸복을 입고 이 노래를 코믹하게 부른 것이 이유였다. 작사 작곡가자는 그 프로그램 박문영 PD. 대학시절에 가수 활동을 한 재목이었다.


MC: 함께 부른 노래인데 그게 정광태 씨 곡이 됐네.


TV 방영 직후 레코드 제작자가 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제작자가 너무 늦게 나왔다.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 씨는 바빠서 자리를 먼저 떴다. 나중에 제작자가 왔다. 기다리던 정광태 씨를 보고는 ‘혼자라도 취입하자.’고 제안했다. 얼마 후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담당 PD의 주문으로 큰칼 옆에 차고 이순신장군 복장을 했다.


MC: 그 무렵이면 일본의 역사 왜곡 파문이 한창일 때 아니었나?


그렇다. 1982년 바로 그 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한국과 일본의 감정싸움이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대 히트가 됐다. 그러나 대 히트가 문제였다. 자칫 선동가요, 운동가요가 될 것으로 우려했던 KBS의 모 이사가 금지곡으로 지정해 버렸다. "국민의 정서를 해치는 이상한 노래"라는 것이 금지 이유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이사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MC: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했는데, 국가권력 차원에서 제지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군.


한참 뜨는 노래가 금지되니까 국민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불만으로 이어졌다. 이 민심이 청와대까지 전달됐던 모양이다. 당시 실세였던 허문도 문공부 차관이 하루는 정광태 씨를 부르더니 애로사항이 뭐냐고 물었고, 정광태 씨는 이 기회를 노려 저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기록을 보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아니 좋은 노래를 왜 금지시켜? 왜 그 노래만 갖고 그래?” 이랬다는 내용이 있다. 다음 날, 재밌는 일이 있었다. 정광태 씨에게 KBS로부터 전화 한 통이 온다. “아니, 그렇게 좋은 노래를 누가 금지 시켰어? 어떤 인간이야?”라고.


MC: 하도 금지곡이 많았던 때라서 권력에 의한 것이냐라고 물어본 건데, 아니었군. 권력의 비호를 받은 노래라고 해야 하나?


금지곡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나중에 드러나 금지곡 사유를 살펴보면 웃음을 금하기 힘들다. 우선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김’은 키가 작은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키는 165cm가 못 된다. 그리고 쟈니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는 “아니, 그러면 지금은 해가 저물었다는 이야기야? 내일? 내일은 왜 해가 뜨는데?” 이런 이유였다. ‘내일도 해가 뜬다’였으면 문제가 안 됐을 노래다.


MC: ‘아침이슬’같은 경우 “태양은 묘지위에 불타오르고” 그 부분이 매우 음산하다는 이유 아니었나?


하여간 누군가 나서서 명확하게 이 부분이 어떤 이유로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추자의 노래 ‘거짓말이야’ 이건 “거짓말 거짓말 자꾸 강조하는데 이건 사회 전반에 걸쳐 불신을 조장하는 가사야”라며 금지곡을 만들어 버렸다.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 아는가? 이 노래는 이 강토가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가사이다. 그런데 금지곡이 됐다. 왜 그럴까? 이 노래를 부른 신중현과 엽전들이 문제였다. 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좌우간 무조건 퇴폐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좀 주소’라는 노래가 있다. 한 대수 씨 노래지? 이건 물고문을 하는 권력을 풍자한 것이라며 빨간 줄을 그었다.


MC: 그렇게 해서 풀린 ‘독도는 우리 땅’이 1년 뒤 다시 금지곡이 되지 않았나?


그렇다. 정부의 반일감정 확산 방지 목적에서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 하지만 없앤다고 달라지나? 이 노래는 나온지 30년이 다 돼 가도록 노래방에서 한 해 평균 5만 번 불릴 정도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노래가 일본을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 엔카풍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MC: 이른바 노가바라고 하지 않던가?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암울한 시국 노래로 바꾼 기억도 있다.


“학생 수는 만오천, 짭새 수는 삼천 명/ 스쿨버스 세 대에 짭새 차는 열두 대/ ○○대생이 제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대는 짭새 땅.” 원래 노래는 ‘독도는 우리 땅’이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낄낄댔더랬다. 군경이 대학 캠퍼스를 점령한 비참한 현실에서 그들은 웃음을 쥐어짜냈다.


MC: 정광태 씨는 지금도 일본에 못 들어간다고 들었다.


1986년 모방송에서 정씨에게 독도 특집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맡겨 일본 취재에 동행키로 했다. 그런데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참 쪼잔한 일본이다.


MC: 자, 이야기를 미흡한 역사교육 문제로 돌아와보자.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우리나라 역사 논쟁.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수도권의 지자체들이 내년부터 공립 고등학교에서 일본사를 필수과목으로 한다. 중국 역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작전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의 국사 교육은 점점 국·영·수에 밀려나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국사 과목이 사회과목 11개 선택과목 중 하나가 됐지? 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다, 행정고시·사법고시·외무고시 등 고등고시에서도 한국사 과목이 폐지되면서 외면 받고 있다.


MC: 정치권도 한국사 교육 강화에 나선다고 하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의무교육 과정에서 역사교육을 의무화하고 수능과 공무원 채용시험에도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관한한 여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MC: 결국 정부도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국사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교과부는 또 2013년부터는 한국사 능력 인증 취득자에게만 초·중등 교원 신규임용시험 응시 자격을 주기로 했다. 한국사 필수과목이 추진될 경우 수학능력시험 과목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수능시험 개편안에 따라 국어와 영어의 문항 수가 줄어들고 탐구영역의 선택과목 수가 줄어든다.


MC: 이러면 한국사 과목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겠지?


이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 고루하고 난해한 암기과목을 낙인 박힌 역사교육, 그 틀과 양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토리텔링방식으로 만들어 학생들의 정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이 좋은 모델이다. 쉬운 접근방식, 재미있는 전개과정, 변화해야 하는 역사 교육의 틀을 독도는 우리 땅이 제시하고 있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1월 2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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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따먹기



MC: 오늘은 어떤 노래를 만나볼까?


SBS 러브FM, 토요일, 일요일 DJ,  바로 DJ 철이. 신철 씨이다. 신철 씨가 댄서 출신 가수 김미애 씨와 1993년에 ‘철이와 미애’로 활동했지? 두 사람의 음악 ‘하늘 따먹기’를 준비했다.

MC: 두 사람은 불후의 명곡 ‘너는 왜’를 만들었고.


그때 나이 신철 씨는 26, 미애 씨는 23이었다. 미애 씨는 MBC무용단에서 활동한 댄스의 달인이었다. ‘철이와 미애’의 안무를 도맡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신철 씨는 신인이 아니었다. 21살이던 1988년 가수 나미 씨와 함께 ‘나미와 붐붐’으로 활동했었다. ‘인디안 인형처럼’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뒤에서 밴댄서 겸 래퍼로 활동했다.


MC: DJ 철이 방송을 듣다보면 완전 생방송인데 장시간 방송하는데도 조금의 실수도 없다. 십수년을 넘어 수십년 간의 DJ 경력의 산물이겠지?


철이 씨는 랩의 달인이기도 하다. 사실 DJ와 랩, 이웃 사촌지간이다. 리듬을 해석하고 거기에 몸과 정신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지. 어디서 그런 재기가 쌓였을까. 공군에 있을 때 미군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랩에 더해 댄스까지 구비한 ‘철이와 미애’는 하나의 히트상품이었다. 이러다보니 1993년 방송위원회가 조사한 ‘TV연예오락프로그램출연자 현황조사’에서 2위에 올랐다.


MC: 별로 좋은 의미의 조사같지는 않은데.


당시 방송 3사의 연예오락프로그램 수가 47개로 총204회가 방영돼 365명의 연예인이 778회에 출연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들의 출연빈도. 5회이상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은 50명으로 전체연예인의 13.7%에 불과했으나 이들의 출연횟수는 무려 387회에 달해 전체의 거의 절반(49.7%)이었다. 그 중 공동 4위는 13번 출연한 김종서와 하수빈, 3위는 16번의 현진영, 2위가 18번의 철이와 미애였다.


MC: 1위는 누구인가?


‘모두 잠든 후에 사랑할거야’를 부른 김원준 씨였다. 19번 출연을 했다. 이 분은 워낙 출연을 많이 해서 연애를 모두 잠든 후에 했다는 소문이 있다. 하여튼 철이와 미애는 게다가 당시에 인기가요 차트에서 1,2위 경쟁에 가세하기도 했다.


MC: 당시에는 이른바 ‘루마음반’ 즉 리어커에서 팔던 불법복제음반을 통해 인기가 확인되곤 했는데 당시 ‘너는 왜’는 거리의 노래이기도 했다.


1000여개 안팎의 가요 테이프를 손수레에 가득 싣고 서울 중심가 곳곳에서 인기곡들을 틀어주는 테이프 노점상들이 히트곡 산실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이들은 TV나 라디오보다 수개월내지 반년을 앞서 히트곡을 예측하는 예언의 은사를 발산했다. ‘너는 왜’도 그런 경우였다. 어떻게 히트곡을 알아낼까. 일단 틀어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깃 시선을 주는 빈도수가 높으면 감 잡는단다. 또 하도 히트곡을 여러 차례 ‘배출’하다보니 어떤 게 인기가 있고 없을지를 감별하는 능력이 저절로 발산된다는 것이다.


MC: ‘너는 왜’의 히트는 루마음반의 덕도 있다는 이야기군.


그러던 신철 씨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가수생활을 포기하고 제작자로 돌아선다. ‘나의 시대는 갔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제작자로서의 그의 시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후 신철은 ‘DJ DOC’ ‘구피’ 유승준 탄생의 산파역을 맡아 스타를 만드는 제작자로 자리잡았다.


MC: DJ DOC의 DJ가 신철 씨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DJ DOC와 신철 씨의 인연이 각별하지?


잘 노는 악동으로 이미지를 굳힌 김창렬, 이하늘 씨. 이런 일화를 <중앙일보> 송원섭 기자가 인터넷에 남겼다. “신촌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총각들과 시비가 붙었다. 13대 2의 혈투였다. 이겼다. 의기양양한 가운데 나이트클럽 문을 나서는데, 김창렬, 이하늘에게 맞고 도망친 '형'들이 온 동네 친구들을 모두 모아 왔더라는 겁니다. 줄잡아 50명은 넘어 보이는 무리가 각목이며 쇠파이프를 들고 기다렸다는 것.


MC: 줄행랑치자니 50명을 뿌리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이때 바로 이 분이 나섰다. 신철 씨는 다짜고짜 김창렬과 이하늘을 때렸다. 동네 건달들 보라고 때리는 거니까 짜고 살살 때리는 건 통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중간 중간 사설도 들어갔다. ‘내가 너희들 사고 뒷수습하는데 지겹다.’라고. 그러자 건달을 올 스톱 상태였다. 그러자 두목이 “작작 하시오. 사람이 죽겠네”라고 했다고. 그래서 신철 씨는 둘을 자신의 오픈 스포츠카를 태웠다고.


MC: 50명에게 만신창이가 될 뻔한 DOC를 살렸네.


그러나 사건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운전석에 타고, 뒷자리에 김창렬과 이하늘이 들고 있던 빈 술병과 신발을 동네 건달들에게 던지고 “메롱, 우리 잡아봐” 이랬다고. 그러자 뒤에서 50명이 각자 알고 있는 최고의 욕을 저마다 내뱉으면서 뒤 쫓아오더라는 것. DOC, “형 밟아요. 이번에 잡히면 다 죽어!”라고 했다고.

MC: 그림이 그려진다. 아티스트로서 형으로서 신철 씨의 곡절어린 과거사가 흥미롭다.


다시 ‘철이와 미애’ 때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이들의 음악을 국적불명이라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하지만 ‘우선멈춤’으로 불리는 미애의 안무는 밀양 아리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하고, 철이의 랩은 판소리의 정신과 틀에 맞췄다고 한다. 랩은 판소리의 아니리, 노래는 소리, 댄스는 발림에 해당하는 것. 또 현실 풍자나 비판의 측면에서도 공통점 있다는 것.


MC: 오늘 들을 노래 ‘하늘 따먹기’도 풍자성이 짙은가 보다.


하늘 따먹기는 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월세하늘 전세하늘이 생긴다는 내용으로 집없는 설움을 다룬 것이다. 사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 1992년 통계이다. 1980년 초의 땅값과 물가를 100으로 잡았을 때 1990년 4월의 경우 물가는 206인 데 비해 땅값은 3.4배나 더 높은 706으로 나타났다. 투기심리가 대단해서 없는 사람들은 매우 서러웠다. 1980년 이후의 과소비를 부르고 투자를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물가까지 덩달아 뛰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한 것이다.


MC: 얼마전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전월세 대책, 없다. 기자들이 내놓으라고 하니 우격다짐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오늘이라고 다른 현실이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최근의 전셋값 급등세는 가깝게는 지난해 가을 이후, 길게는 최근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흐름이다. 통계상으로도 지난 한 해 전셋값 상승률이 7.1%에 이르러 8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전셋값 상승률은 정부가 전세안정 대책을 내놨던 2009년 상승률의 2배를 넘는다. 전 월세를 살 수밖에 없는 서민을 위한 터는 없는 모양이다. 철이와 미애의 노래처럼 하늘에다 지어야 할까?


MC: 가사가 궁금하다. 풀어달라.


“여기 좁은 땅 이 세상 사람 모두 나눠 가졌으니 이젠 더 이상 남은 땅이 없어 무엇을 어떻게 나눠 가져갈까 하늘 하늘 저 하늘 나눠 가지려 애를 쓰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저 하늘 우리끼리 나눠 가져볼까 // 저기 넓은 하늘 하늘 이 세상 사람 모두 나눠 가진다면 도대체 어떤 하늘이 가장 비싸고 싼 하늘이 될까 월세 전세 하늘이 있다면 그런 건 진짜 얼마나 될까 그래 그래 저 하늘에도 투기 하겠지“ 이거다. 이 노래 들으며 인사한다.


/ SBS 러브FM '한수진의 오늘' 2011년 1월 20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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