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이 만난 사람]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금 제가 안 나와도 좋습니까?”
 
이 글을 쓸 시점은 박원순 예비후보가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배심원 투표 1위를 한 때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는 야권 단일 후보가 될까. 참 치열한 경쟁이다. 그런데 이를 사실상 본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여론조사 판도가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은 변화를 원하고 있고, 서울은 그 시험대에 선 지경이다.
 
시장은 시민의 꿈 이루는 자리

박원순. 명실 공히 시민운동의 상징이다. 그런 만큼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온갖 형태의 출마 제안에도 난색을 표했다. 시민운동 경력이 정치권 진출에 하나의 ‘스펙’처럼 비춰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냉엄한 감시자가 선수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가게 된 이유는 한마디였다.

  “지금 제가 안 나와도 좋습니까?”

  정치가 잘 되고 있으면 구태여 나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은인자중隱忍自重했지요. 그러나 우리사회에 대한 어마어마한 부채감을 느꼈습니다.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세상을 바꾸기를 요구하는 시대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박원순 후보는 그러면서 “정치가 특정인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하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당장 민주당이라는 거대 조직과의 각축 속에서도 그는 세勢 부족의 한계를 절감한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절대 다수를 이루는 민주당 소속 구청장 또 시·구의회와 (유기적이고 질서 있는) 협력이 중요하다’며 당 소속 후보의 당선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치 초년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걱정되는 것은 박원순 후보의 노선과 철학에 상충되는 ‘토건 공약’의 부재다. 정치는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주류 프레임으로 자리하는 게 ‘욕망체계’다. 내가 부자가 되는 꿈이 이뤄지는 후보에게 좀 더 솔깃해진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지키거나 말거나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식의 공약으로 허풍선을 띄웠다.

 “서울은 아프다”

“서울시장 자리에 대해 전임 시장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로 생각해왔지요. 저는 제 꿈이 아니라 시민의 꿈을, 희망을 실현하는 자리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전시성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라 정말 시민들이 소망하고 느끼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하긴 이명박의 청계천 리모델링,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 모두 시민 개개인이 품고 있는 꿈의 비중은 매우 작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시민을 위할 것인가.

  “경청투어를 통해서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한마디로 ‘서울은 아프다’ ‘삶이 무너져 내린다’라는 표현을 한 분들도 있고요. 수유시장의 어떤 한 분은 ‘희망이라는 말도 함부로 말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아팠어요. 자영업 무너지고 재래시장이 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 나가는 현실, 비정규직이 46.8%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이르는 상황입이다. 청년실업, 물가대란, 주거문제 다 나열하기도…. 질곡 속에서 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아픔에 공감하고 그리고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일이 우선입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지구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인류는 재생 에너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고, 하나뿐인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감과 협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공감’은 남의 아픔이나 기쁨을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지금 서울은 공감의 시장을 원한다. 이른바 ‘안철수 열풍’의 주역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에 대한 폭발적 기대치, 꿈을 잃은 청년들을 보듬는 소프트파워의 진정성 덕 아니겠나. 박원순 후보는 그 안철수 원장의 지지세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 안철수와 박원순이 통하는 일단의 근거다. 그래도 너무 추상적이다. 뉴타운 같은 ‘한 방’ 말하자면 ‘욕망의 랜드마크’는 없는 것일까.

  “시민의 상식과 수준을 믿습니다. 사실 대부분 시민들은 토건보다 창조·혁신적이고 삶의 질이 보장되고 21세기에 맞는 국제적인 수준으로 가야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시민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말하는 시민이 아니다’라는 점이에요. 이렇게 좋은 시민을 두고 어떻게 좋은 시를 못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시민의 수준을 결코 얕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서울시정과 연관된 현안을 세세히 살펴보자. 오세훈 전임 시장의 토건공약에 관한 ‘처리’ 방향이다. 우선 뉴타운 공약에 대한 성찰이다.

  “뉴타운을 하면 집값이 오르고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거기에 의존해 당선이 됐으면서도 그 뒷감당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이란 이런 것이죠. 현재 진행되는 뉴타운 같은 경우 원주민이 다 나가야 됩니다. 커뮤니티가 깨지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요. 시민을 쫓아낸 것도 모자라 자취방마저 삼켜버린 뉴타운 개발로 대학생들은 고시원으로, 쪽방촌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의 뉴타운, 재개발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눈에 띄는 약속은 이렇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패, 비리도 근절하도록 해야겠죠. 용산참사와 같은 폭력행정은 지양하며 동절기, 심야, 악천후 시 퇴거 및 철거를 금지해야 할 것”이라는. 이 역시 공감의 산실이다.

  “예컨대 아라 뱃길사업 이런 것은 현실적 타당성도 없고 경제성도 전혀 없는 사업은 당연히 재검토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한강르네상스 사업에서도 좋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태적 지구를 보존하려는 진정성이 있는 사업, 이런 것들은 수용 여부 또한 논의해봐야 합니다.”
  방점은 이거다. “(한다 만다하는 단언하는 식의) 공약으로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전문가와 시민으로 조직된 기구가 신중하게 검토해서 처리할 계획입니다.”

  굳이 각 개체를 따로 구분해서 말하는 것보다 ‘거버넌스’ 이 한 단어가 적합할 것 같다. 거버넌스는 이미 우리 시대의 대세 아닌가. 현대사회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공무원과 전문가, 주민이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거버넌스’가 중요한 것이다. ‘나를 따르라’식의 리더십에서는 존재할 수 있는 원리다.

 서울과 비서울의 상생 거버넌스

참여정부 당시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며 헌법소원을 냈던 이석연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 입장. 결국 철회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은 보수진영에서는 ‘서울의 기득권’ 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박원순 후보의 입장은 누가 봐도 ‘서울의 기득권’ 옹호 입장에서 멀다.

  “서울과 비서울의 대결을 조장한 측면이 있지요. 그런데 양측이 꼭 대결적 관계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시장이 된다면 양측이 상생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시도해 본 게 있어요. 참여정부 당시 서울 프레스센터 안에 지역홍보센터 개설을 위해 애썼거든요. 지역 투자정보 특산물 여러 가지 향토정보를 한꺼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사라졌어요. 서울과 비서울의 상생이 가능한 의지와 노력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어요.”

  녹록치 않은 과제는 또 있다. 비정규직 문제다. 이건 고용노동부의 걱정이긴 하지만, 서울시의 고민이기도 하다. 지인에게서 서울시 산하의 교통방송tbs도 프로듀서 아나운서 기자가 정규직 신분이 아니라고 들었다. 방송제작자는 언론인이며 이들의 고용상태가 불안하다면, 마땅히 보장돼야 할 자율성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상황이면 서울시가 얼마나 고용 문제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서울의 비정규직은 자치구까지 합쳐서 5,000명이 넘어요. 전체 공무원의 10%가 되거든요. 심각하지요. 예산 활용을 잘하면 정규직 확대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실 비정규직 양산 이유는 비용의 효율화, 경영의 합리화 아닙니까? 아니었습니다. 노원구의 시설관리공단을 보면, 가능하면 신분이 보장되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상당히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예산 효율화를 통해 경영 부담을 줄여나갔습니다. 늘 꿈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꿈에 관해서 고민해보고 길은 찾아보면 늘 있습니다.”

  만약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누가 가장 속 쓰릴까. 나경원 후보? 아니다. 결국 야당에게 허망하게 시정을 넘겼으며, 여당의 내년 중요 선거일정(총선, 대선)에 차질을 빚은 오세훈 전 시장일 것이다. 엉망이 된 서울 재정 현실이 노출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보수의 아이콘’일 수 없다.

  “서울시 재정 부채가 워낙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고건 시장 시절 9조 원 이었던 부채가 이명박 시장 때 13조 원이 됐고요, 작년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25조 5천 억 원까지 불어났어요. 시민들은 이 거대 적자 상황을 잘 모르고 계신데,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전체 부채 60% 이상인 16조 원 정도가 SH공사의 부채인데요, SH공사의 부채는 당장 매각할 수 없는 자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택지개발이나 도시개발에 따른 토지나 건축물 등 보유자산의 매각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서울시의 세입구조와 세출구조를 개혁해야겠죠. 세입확충을 위해서는 현재 8% 수준인 탈루세액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고, 세출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전시성, 홍보성, 토건성 사업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밀한 평가를 거쳐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사회, 박원순을 감시하라”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서울부채 급증의 또 다른 주역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큰 내상을 안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원순 후보. 이 정권 들어 적대관계가 심화됐다. 사실 박원순 후보는 촛불집회나 무상급식 등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사회적 쟁점에 대해 적극적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았다.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 자제가 실은, 몸담고 있는 희망제작소의 사회통합적 사업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만, 이는 민주당 공세의 소재였다.

  “무상급식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일이며, 2011년 대한민국 최고의 ‘행복브랜드’였죠. 무상급식 실현을 위해 일선에서 노력한 많은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비판과 대안의 영역에서 서로 역할은 달랐지만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습니다.”

  박원순 후보의 정치 진출에 대해 시민사회는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박원순 후보의 딜레마 또한 그러하다.

  “기억나네요. 고건 시장 때 비리 즉 뇌물을 주거나 담합행위를 한 업체가 있으면 그 업체에 서울시 주관공사 입찰자격을 주지 말자고 했지요. 제한적이지만 서울시는 수용했어요. 그리고 그 제도가 전국 모든 공공기관에 확대됐습니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좋은 제도를 끊임없이 제안하고 서울시는 이를 수용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견제적 합작관계를 이뤄야 합니다.”

  ‘애매한 것을 정하는 남자’라며 자신을 ‘애정남’으로 부르는 박원순 후보. 그는 10·26 서울시 리모델링의 주역이 될 것인가. 시대는 이를 주목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10문 10답
 
1. 50자로 소개하는 박원순
Wonderful Seoul WS, 원칙과 순리의 원순. 더 나은 사회와 변화를 꿈꿔온 현장주의자.

2. 가족 관계
디자인업을 하는 아내, 해외 유학 중인 딸, 입대 준비 중인 아들.

3. 좋아하는 것
일을 좋아한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데, 거리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사진과 메모를 남기는 습관이 있다.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일의 아이디어가 된다.
 
4.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시민사회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좋은 변화에 기여한 매 순간, 매 고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을 때도 기억 나는데, ‘더 열심히 이 길을 달려가라’는 뜻의 채찍이라고 생각했다.

5.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있는가?
어떻게 극복했나? 유신독재 시절 시위에 참여했다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또 그 쓴 경험이 검사의 길을 포기하고 시민운동의 길로 접어든 배경이 되었다.

6. 박원순의 강점과 약점은?
강점 :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정신, 오픈마인드.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약점 : 보헤미안.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대신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다.

7. 전 서울시장, 행정가, 정치인 중 롤 모델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김구 선생, 나라 밖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기존의 시장이나 행정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될 뻔했던’ 안철수 교수, 돌아가신 조영래 변호사님,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사장님,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님 등을 존경한다.

8. 박원순이 방문한 최고의 도시와 최악의 도시는?
어느 도시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좋은 점을 살리고 나쁜 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9. 시장 후보가 안 된다면?
일단은 선대본부장. 야권 통합을 돕겠다.

10. 잠은 하루에 몇 시간?
3~4시간.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10월호
/ 사진 김은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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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

상처입은 마음 보듬는 치유의 한마디 ‘와락’

혈액형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01년이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에 A, B, O형이 있다는 것과 서로 맞지 않는 혈액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반세기 뒤인 1927년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라는 철학 강사가 혈액형 성격학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자나 의학자들은 혈액형 성격학이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찌 4가지 혈액형으로 구분될 수 있겠나.

  “사람들이 혈액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해요. 그야말로 단순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한 건 예측할 수 있으니까. 영화 대사처럼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적대적 행동을 보이면 B형의 저런 특성 때문에 그럴 거라고 해석하잖아요. 이렇게 답을 내리면 편하지요. 사람을 상대할 때 에너지 소모가 줄어요. 사람은 이렇게 분류를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 그런 ‘심리’가 있다. 이번 호에서 만날 사람은 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다. 조선반도를 다 돌아 다녀봤다는 나로서도 심리기획자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하긴 내 ‘직업’ 시사평론가도 조어造語 초기에는 그랬을 것이다. 시사평론가는 면허도 자격증시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심리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할까?
 
“실험실 학문 아닌 실제 사는 데 필요한 도움 주고 싶다”

“마인드프리즘은 심리 치유 콘텐츠를 가공·유통하는 회사예요. 심층 심리분석도 합니다. 하지만 전 심리분석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실험실 학문으로 보여요. 심리학이란 사람들에게 도움과 유익을 주는 학문이지 누굴 설득하기 위한 게 아니죠.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다가 결국 의사나 학자들이 업적 쌓기에 이르게 되지요.”

  ‘실험실 학문’이 아닌 ‘실용 심리’를 하는 전문가를 심리기획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이명수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쩌면 그의 전공이 심리학과 만나 새로운 직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적으로 사람이 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심리 교육이란 것은 실용 심리의 한 분야로 해왔던 거지요.

  심리라는 학문이나 정신 분석 내용 자체를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적용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심리기획자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집 짓기도 심리 건축이 마지막입니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것들. 화려하진 않지만 황토집 같은 것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느끼잖아요. 재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지요.”
 
피해자끼리 가해자 찾는 모멸스러운 싸움

마인드프리즘의 최근 두드러진 ‘활동 실적’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 2000여 명과 그 4000여 명의 가족이다. 2년 동안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8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머지는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부모의 고통은 곧 아이들에게로까지 전이되었다.

  “98명 가운데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 26명이나 됐습니다. 보통은 100명 가운데 2~3명만 이런 징후를 보이는 것이지요.”

  당사자는 아니지만, 쌍용자동차 사건을 접한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옥쇄 투쟁 당시 같은 계층이면서도 공장 안에서 목숨 걸고 싸우던 동료를 대적했고, 투쟁 종료 후에는 린치를 가하기까지 했던 일부 ‘사측 노동자’의 행각에 말이다. 사실 해고자 자신과 가족의 심리적 상흔은 이들 때문에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역사에서 간첩으로 몰렸고 그로 인해 고문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어요. 아내(정혜신 박사)와 제가 본 중에서는 그분들의 경우가 가장 끔찍한 사례인 것 같아요. 과거 간첩으로 몰린다는 것은 일가족 전체가 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자퇴하라며 교사로부터 하루에 몽둥이 50대씩 한 달을 맞았다더군요. 이걸로 끝이면 다행이죠. 어렵게 졸업해도 취업을 못했습니다. 짐승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상처를 받고 30년 넘게 살아온 경우지요. 여기서 근본적인 범죄자는 누구입니까. 정부 아닙니까.”

  맞다. 분노하고 배상을 요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정부다.

  “국가를 상대로 뭘 해야 하는데, 국가란 아주 거대해요. 실체도 불분명하고요. 이러다 보니 본질보다는 곁가지로 분노의 대상을 전이轉移하지요. 내가 국가가 조작한 간첩 혐의로 잡혀 들어갔어요. 내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내가 잡혀간 사이에 돌아가셨어요. 마땅히 장례를 맡아줄 거라고 기대했던 사촌형제는 시신을 거적에 싸서 대충 묻어버렸어요. 이 소식을 감옥에서 들어요. 나는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내가 나가게 되면 사촌을 응징하리라’며 살의殺意를 품습니다.”

  차분히 생각하면 사촌 간에 힘을 합쳐 국가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게 원칙 아닌가. 쌍용차도 마찬가지다. 사측이든 노측이든 그들은 성실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성 말살의 궁극窮極을 보여준 2009년 투쟁의 먹구름이 지나고 나니 먹튀 자본의 농간, 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근원根源은 사라졌다.

내상을 ‘와락’ 안아줄 친구가 되다

“얼마 전에 심리치료 보고서를 냈어요. 거기서도 가장 많이 발견된 유형이 이런 거였어요. ‘옆자리에 근무하는 친구가 쇠파이프 들고 와서 밤에 나를 팼다. 경찰, 국가는 용서할수 있다. 그러나 저놈만은 그냥 둘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직해서 짓밟아버리고 그다음 날 그만두겠다.’ 심리치료의 출발은 ‘저놈이 저럴 줄 몰랐다’는 원망을 지우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가해자는 싹 빠지고 피해자끼리 가해자를 찾는 비극이 벌어진다. 지난 7월호 인터뷰 차 만났던 제주 강정마을이 그렇다. 해군기지 유치 문제를 놓고 지지자와 반대자로 갈리고 이웃사촌, 친인척끼리도 찢겨져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며 고성이 오간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마을 주민끼리 원수가 되는 현실도 한 맥락이다. 이명수 대표의 발길이 닿는 또 다른 치유의 현장, 부산의 한진중공업, 아산의 유성기업,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명동 ‘카페 마리’도 그 경우라 하겠다. (특히 이들 사례 중 용역을 붙이는 기업 혹은 자치단체의 횡포는 숫제 범죄 수준이다. 분노를 용역에게로 돌리려는 지능적인 책임 회피 유형이리라.)

  “‘심리적 외상’, 이걸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최근 ‘애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어버이연합 회원들을 보면, 우리 시각에서는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한국전쟁을 겪은 60~80대 어르신들이 집단적으로 스트레스 환자, 즉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고 봅니다. 이웃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내 부모형제를 이적행위자로 고발해 죽게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 기반 자체가 무너진 거죠. 스트레스가 기본적으로 그렇거든요. 1950년 한국전쟁의 경우 온 국민이 모든 사람이 위정자 몇 사람을 빼놓고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우리 역사는 이를 치유하지 못하고 넘어왔죠.”

  남침을 획책한 북한, 이런 분단의 위기 상황을 관리하지 못했던 남한. 체제 또는 정부에 대한 책임론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오늘도 미력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을 ‘토벌’하려고 저리도 애쓰고 계신 것이다. 집단적 치료가 없고 내상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난폭해진다는 것이다. ‘각개약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급격한 공동체 붕괴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의 경우를 볼까요?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뒤, 뉴욕 거리에서 축제가 벌어졌어요. 사람을 죽였는데 잔치판이라니. 그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 9·11 테러 때 사람들이 PTSD를 겪었습니다. 고층빌딩에서 사람들이 몸을 던져 땅에 퍽퍽 소리가 나고, 여자 한 명이 (눈 뜬 채로는 차마 뛰어내리지 못할 것 같아) 치마를 뒤집어쓰고 빌딩에서 떨어집니다. 미국민은 이런 것을 현장에서 또는 TV를 통해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트라우마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심리치유사를 붙여주었지요.”

  그렇다면 쌍용은, 77일 동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됐다. 고압볼트 총에도 맞았고, 밑에서 천장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아버지가 토끼몰이 당하듯 전투경찰한테 몰리는 장면을 지켜봤다. 개같이 처참하게 맞았다. 그래서 이명수, 정혜신 두 심리전문가는 PTSD를 겪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와 가족을 직접 찾아갔다.

  이 같은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바로 ‘와락’이다. 두 사람은 지난 3월부터 평택에서 해고노동자와 배우자를 위한 심리상담 세션을 진행하면서 대상자인 노동자 8명과 그 배우자 6명에게서 의미 있는 치유 효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난 7월 말 207명, 1,825만 원의 모금 그리고 다양한 비금전적 기부를 통해 후원자와 손을 잡게 됐다.
 
경쟁 벗어나 ‘나 좋은 대로’ 살기

문득 우리 시대 청춘이 염려됐다. 오늘날 20대는 온순해 보인다. 혹자는 ‘비겁하다’고는 하나 상대에 대한 얕지 않은 판단과 충분한 배려를 표하는 이들이 바로 20대다. 그래서 요즘도 진정성이라고는 밑바닥뿐인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좋은 말’로 등록금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도로로 진출해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정도일 뿐, 짱돌을 던지거나 하는 일도 없다. 이런 순둥이들에게도 그런데, 스트레스가 감지된다. 나는 그들의 폭발이 걱정된다.

  “젊은 친구들한테 억울한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물인 원숭이도 그래요. 두 마리를 놓고 한 녀석에게는 먹이를 3개, 또 다른 녀석에게는 2개를 줘보세요. 분노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리해고, 명예퇴직을 당한 분들의 상처가 큰 점에 공감하지요? 그래도 이 경우는 직장을 가졌고 또 다녀본 경우입니다. 지금 청년들은 출발조차 하지 못해요. 억울함이 생깁니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는 발조차 딛지 못할까’라고 생각해요.”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대정신 포착 내지 어젠다 세팅은 프로급이다. 친환경 녹색혁명, 친서민, 공정사회. 그러나 실천이 없다. 염장만 지른 꼴이다. 나는 적자생존, 경쟁구조를 바꾸는 데서 모든 구조 개혁이 시작된다고 피력해왔다. 논의할 부분은 바로 ‘경쟁’이다. 경쟁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핵심 요인이다.

  “우사인 볼트(육상)와 박태환(수영)을 경쟁하게 해선 안 됩니다. 우사인 볼트와 박태환을 놓고 땅에서 경기를 치르면 우사인 볼트가 무조건 이기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우사인 볼트는 바보예요. 박태환 못 이기죠. 우리 경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맹목적인 ‘줄 세우기’에 있습니다. 속도가 빠르다고, 같은 트랙이 아닌데 우겨 넣습니다. 전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나는 박태환인데 그라운드에서 박지성처럼 축구 하느라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자신을 비난할 이유가 별로 없는 거죠. 그렇다면 내가 물로 들어가면 될 일이지, 그라운드에 끌려 나와서 허덕일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로 일을 가져와서 하면 되잖아요. 흔히 ‘네 좋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만, 좋은 대로 하고 살아야죠.”
 
“당신이 늘 옳습니다”

마인드프리즘은 기업 단위의 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낸다. 이 수익으로 음지라 불리는 현장에 찾아가 고통받는 이웃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심리카페 ‘홀가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이명수 대표는 참여연대를 주목했다.

  “제가 심리기획을 10년간 했는데 각종 진단 결과, 가장 스트레스 높았던 집단은 바로 참여연대 활동가들이었어요. 왜 그럴까요? 많이 알아서 그래요. 김진숙?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데 활동가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강정마을, 재건마을 그리고 신자유주의, 양극화, 철거민.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서 다들 괴로운 거예요. 맛있는 밥을 먹으면 ‘그분들은 이런 호사를 못 누리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하며 분열적인 상황에 직면하지요. 따라서 참여연대 회원이나 활동가들은 자기 보호를 잘 해야 해요. 그러려면 ‘당신이 옳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해요.”

  “비행기 이륙 전에 스튜어디스가 비상상황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고 일러주지요. 얼핏 생각하면 그런 경우가 닥치면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먼저 씌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그러나 성인이 먼저 착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안정이 돼야 남에게 차분히 산소마스크를 씌워줄 수 있다는 논리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세요.”

  ‘나는 옳다.’ 이렇게 인정하고 격려하는 사회 기풍, 이 안에 ‘홀가분’의 답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나만 옳다’는 착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 돌아가는 모습이나 주변의 권력자들을 보아도 그렇듯이 ‘나만 옳다’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우리 사회는 좀더 담백하고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9월호
/ 사진 김은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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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

상처입은 마음 보듬는 치유의 한마디 ‘와락’

혈액형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01년이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에 A, B, O형이 있다는 것과 서로 맞지 않는 혈액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반세기 뒤인 1927년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라는 철학 강사가 혈액형 성격학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자나 의학자들은 혈액형 성격학이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찌 4가지 혈액형으로 구분될 수 있겠나.

  “사람들이 혈액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해요. 그야말로 단순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한 건 예측할 수 있으니까. 영화 대사처럼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적대적 행동을 보이면 B형의 저런 특성 때문에 그럴 거라고 해석하잖아요. 이렇게 답을 내리면 편하지요. 사람을 상대할 때 에너지 소모가 줄어요. 사람은 이렇게 분류를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 그런 ‘심리’가 있다. 이번 호에서 만날 사람은 심리기획자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다. 조선반도를 다 돌아 다녀봤다는 나로서도 심리기획자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하긴 내 ‘직업’ 시사평론가도 조어造語 초기에는 그랬을 것이다. 시사평론가는 면허도 자격증시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심리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할까?
 
“실험실 학문 아닌 실제 사는 데 필요한 도움 주고 싶다”

“마인드프리즘은 심리 치유 콘텐츠를 가공·유통하는 회사예요. 심층 심리분석도 합니다. 하지만 전 심리분석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실험실 학문으로 보여요. 심리학이란 사람들에게 도움과 유익을 주는 학문이지 누굴 설득하기 위한 게 아니죠.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다가 결국 의사나 학자들이 업적 쌓기에 이르게 되지요.”

  ‘실험실 학문’이 아닌 ‘실용 심리’를 하는 전문가를 심리기획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이명수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쩌면 그의 전공이 심리학과 만나 새로운 직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적으로 사람이 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심리 교육이란 것은 실용 심리의 한 분야로 해왔던 거지요.

  심리라는 학문이나 정신 분석 내용 자체를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적용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심리기획자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집 짓기도 심리 건축이 마지막입니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것들. 화려하진 않지만 황토집 같은 것에서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느끼잖아요. 재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지요.”
 
피해자끼리 가해자 찾는 모멸스러운 싸움

마인드프리즘의 최근 두드러진 ‘활동 실적’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 2000여 명과 그 4000여 명의 가족이다. 2년 동안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8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머지는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부모의 고통은 곧 아이들에게로까지 전이되었다.

  “98명 가운데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 26명이나 됐습니다. 보통은 100명 가운데 2~3명만 이런 징후를 보이는 것이지요.”

  당사자는 아니지만, 쌍용자동차 사건을 접한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옥쇄 투쟁 당시 같은 계층이면서도 공장 안에서 목숨 걸고 싸우던 동료를 대적했고, 투쟁 종료 후에는 린치를 가하기까지 했던 일부 ‘사측 노동자’의 행각에 말이다. 사실 해고자 자신과 가족의 심리적 상흔은 이들 때문에 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역사에서 간첩으로 몰렸고 그로 인해 고문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어요. 아내(정혜신 박사)와 제가 본 중에서는 그분들의 경우가 가장 끔찍한 사례인 것 같아요. 과거 간첩으로 몰린다는 것은 일가족 전체가 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자퇴하라며 교사로부터 하루에 몽둥이 50대씩 한 달을 맞았다더군요. 이걸로 끝이면 다행이죠. 어렵게 졸업해도 취업을 못했습니다. 짐승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상처를 받고 30년 넘게 살아온 경우지요. 여기서 근본적인 범죄자는 누구입니까. 정부 아닙니까.”

  맞다. 분노하고 배상을 요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정부다.

  “국가를 상대로 뭘 해야 하는데, 국가란 아주 거대해요. 실체도 불분명하고요. 이러다 보니 본질보다는 곁가지로 분노의 대상을 전이轉移하지요. 내가 국가가 조작한 간첩 혐의로 잡혀 들어갔어요. 내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내가 잡혀간 사이에 돌아가셨어요. 마땅히 장례를 맡아줄 거라고 기대했던 사촌형제는 시신을 거적에 싸서 대충 묻어버렸어요. 이 소식을 감옥에서 들어요. 나는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내가 나가게 되면 사촌을 응징하리라’며 살의殺意를 품습니다.”

  차분히 생각하면 사촌 간에 힘을 합쳐 국가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게 원칙 아닌가. 쌍용차도 마찬가지다. 사측이든 노측이든 그들은 성실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성 말살의 궁극窮極을 보여준 2009년 투쟁의 먹구름이 지나고 나니 먹튀 자본의 농간, 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근원根源은 사라졌다.

내상을 ‘와락’ 안아줄 친구가 되다

“얼마 전에 심리치료 보고서를 냈어요. 거기서도 가장 많이 발견된 유형이 이런 거였어요. ‘옆자리에 근무하는 친구가 쇠파이프 들고 와서 밤에 나를 팼다. 경찰, 국가는 용서할수 있다. 그러나 저놈만은 그냥 둘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직해서 짓밟아버리고 그다음 날 그만두겠다.’ 심리치료의 출발은 ‘저놈이 저럴 줄 몰랐다’는 원망을 지우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가해자는 싹 빠지고 피해자끼리 가해자를 찾는 비극이 벌어진다. 지난 7월호 인터뷰 차 만났던 제주 강정마을이 그렇다. 해군기지 유치 문제를 놓고 지지자와 반대자로 갈리고 이웃사촌, 친인척끼리도 찢겨져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며 고성이 오간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마을 주민끼리 원수가 되는 현실도 한 맥락이다. 이명수 대표의 발길이 닿는 또 다른 치유의 현장, 부산의 한진중공업, 아산의 유성기업,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명동 ‘카페 마리’도 그 경우라 하겠다. (특히 이들 사례 중 용역을 붙이는 기업 혹은 자치단체의 횡포는 숫제 범죄 수준이다. 분노를 용역에게로 돌리려는 지능적인 책임 회피 유형이리라.)

  “‘심리적 외상’, 이걸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최근 ‘애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어버이연합 회원들을 보면, 우리 시각에서는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한국전쟁을 겪은 60~80대 어르신들이 집단적으로 스트레스 환자, 즉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고 봅니다. 이웃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내 부모형제를 이적행위자로 고발해 죽게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 기반 자체가 무너진 거죠. 스트레스가 기본적으로 그렇거든요. 1950년 한국전쟁의 경우 온 국민이 모든 사람이 위정자 몇 사람을 빼놓고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우리 역사는 이를 치유하지 못하고 넘어왔죠.”

  남침을 획책한 북한, 이런 분단의 위기 상황을 관리하지 못했던 남한. 체제 또는 정부에 대한 책임론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오늘도 미력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을 ‘토벌’하려고 저리도 애쓰고 계신 것이다. 집단적 치료가 없고 내상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난폭해진다는 것이다. ‘각개약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급격한 공동체 붕괴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의 경우를 볼까요?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뒤, 뉴욕 거리에서 축제가 벌어졌어요. 사람을 죽였는데 잔치판이라니. 그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 9·11 테러 때 사람들이 PTSD를 겪었습니다. 고층빌딩에서 사람들이 몸을 던져 땅에 퍽퍽 소리가 나고, 여자 한 명이 (눈 뜬 채로는 차마 뛰어내리지 못할 것 같아) 치마를 뒤집어쓰고 빌딩에서 떨어집니다. 미국민은 이런 것을 현장에서 또는 TV를 통해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트라우마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심리치유사를 붙여주었지요.”

  그렇다면 쌍용은, 77일 동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됐다. 고압볼트 총에도 맞았고, 밑에서 천장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아버지가 토끼몰이 당하듯 전투경찰한테 몰리는 장면을 지켜봤다. 개같이 처참하게 맞았다. 그래서 이명수, 정혜신 두 심리전문가는 PTSD를 겪은 쌍용자동차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 노동자와 가족을 직접 찾아갔다.

  이 같은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바로 ‘와락’이다. 두 사람은 지난 3월부터 평택에서 해고노동자와 배우자를 위한 심리상담 세션을 진행하면서 대상자인 노동자 8명과 그 배우자 6명에게서 의미 있는 치유 효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난 7월 말 207명, 1,825만 원의 모금 그리고 다양한 비금전적 기부를 통해 후원자와 손을 잡게 됐다.
 
경쟁 벗어나 ‘나 좋은 대로’ 살기

문득 우리 시대 청춘이 염려됐다. 오늘날 20대는 온순해 보인다. 혹자는 ‘비겁하다’고는 하나 상대에 대한 얕지 않은 판단과 충분한 배려를 표하는 이들이 바로 20대다. 그래서 요즘도 진정성이라고는 밑바닥뿐인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좋은 말’로 등록금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도로로 진출해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정도일 뿐, 짱돌을 던지거나 하는 일도 없다. 이런 순둥이들에게도 그런데, 스트레스가 감지된다. 나는 그들의 폭발이 걱정된다.

  “젊은 친구들한테 억울한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물인 원숭이도 그래요. 두 마리를 놓고 한 녀석에게는 먹이를 3개, 또 다른 녀석에게는 2개를 줘보세요. 분노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리해고, 명예퇴직을 당한 분들의 상처가 큰 점에 공감하지요? 그래도 이 경우는 직장을 가졌고 또 다녀본 경우입니다. 지금 청년들은 출발조차 하지 못해요. 억울함이 생깁니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는 발조차 딛지 못할까’라고 생각해요.”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대정신 포착 내지 어젠다 세팅은 프로급이다. 친환경 녹색혁명, 친서민, 공정사회. 그러나 실천이 없다. 염장만 지른 꼴이다. 나는 적자생존, 경쟁구조를 바꾸는 데서 모든 구조 개혁이 시작된다고 피력해왔다. 논의할 부분은 바로 ‘경쟁’이다. 경쟁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핵심 요인이다.

  “우사인 볼트(육상)와 박태환(수영)을 경쟁하게 해선 안 됩니다. 우사인 볼트와 박태환을 놓고 땅에서 경기를 치르면 우사인 볼트가 무조건 이기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우사인 볼트는 바보예요. 박태환 못 이기죠. 우리 경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맹목적인 ‘줄 세우기’에 있습니다. 속도가 빠르다고, 같은 트랙이 아닌데 우겨 넣습니다. 전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나는 박태환인데 그라운드에서 박지성처럼 축구 하느라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자신을 비난할 이유가 별로 없는 거죠. 그렇다면 내가 물로 들어가면 될 일이지, 그라운드에 끌려 나와서 허덕일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로 일을 가져와서 하면 되잖아요. 흔히 ‘네 좋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만, 좋은 대로 하고 살아야죠.”
 
“당신이 늘 옳습니다”

마인드프리즘은 기업 단위의 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낸다. 이 수익으로 음지라 불리는 현장에 찾아가 고통받는 이웃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심리카페 ‘홀가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이명수 대표는 참여연대를 주목했다.

  “제가 심리기획을 10년간 했는데 각종 진단 결과, 가장 스트레스 높았던 집단은 바로 참여연대 활동가들이었어요. 왜 그럴까요? 많이 알아서 그래요. 김진숙?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데 활동가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강정마을, 재건마을 그리고 신자유주의, 양극화, 철거민.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서 다들 괴로운 거예요. 맛있는 밥을 먹으면 ‘그분들은 이런 호사를 못 누리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하며 분열적인 상황에 직면하지요. 따라서 참여연대 회원이나 활동가들은 자기 보호를 잘 해야 해요. 그러려면 ‘당신이 옳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해요.”

  “비행기 이륙 전에 스튜어디스가 비상상황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고 일러주지요. 얼핏 생각하면 그런 경우가 닥치면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먼저 씌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요. 그러나 성인이 먼저 착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안정이 돼야 남에게 차분히 산소마스크를 씌워줄 수 있다는 논리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세요.”

  ‘나는 옳다.’ 이렇게 인정하고 격려하는 사회 기풍, 이 안에 ‘홀가분’의 답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나만 옳다’는 착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 돌아가는 모습이나 주변의 권력자들을 보아도 그렇듯이 ‘나만 옳다’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우리 사회는 좀더 담백하고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9월호
/ 사진 김은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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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프로레슬러 김남훈 씨

헤드락으로 부정·부패·부당 날려버리는 ‘웃음 혁명가’

 
프로레슬러, 악마 그리고 심리치료사
  프로레슬러, 일본어 강사, 사업체 대표, 방송인. 누구에게는 무료하고, 누구에게는 비전이 없어 막막한 인생을 그는 여러 버전으로 영위하고 있다. ‘열정’이라는 열쇳말 외 단초는 없다. ‘종합 전문가’ 김남훈 씨. 근황을 물으니 요즘엔 ‘민간 탐정’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KBS 2TV <호루라기 - 김남훈의 원터치> 프로그램에서 경찰과 함께 상습체납자, 탈세, 밀수자, 성추행범 등을 색출하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 대한민국의 상식을 지키자’는 취지입니다.”

  방송을 해본 사람은 안다. 스튜디오에 나가 너스레 떠는 정도가 아니라, 등 뒤로 ENG카메라를 두고 현행범을 잡는 것이다. 몸무게 세 자리, 프로 선수의 풍모를 발산하는 김남훈 씨에게 잡혔으니 꼼수 부리기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어떻게 프로레슬러가 됐을까.

  “2001년 입문했어요.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은 품었지요. 어려도 수컷으로서의 자각은 있잖아요. 강해지고 싶은데 아직은 미약해서 로봇 태권브이, 슈퍼맨 같은 초인적인 존재에 감정이입하고요. 그런데 제가 흠모한 대상은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 헐크맨, 마초맨, 워리어warrior였어요.”

  프로레슬링은 ‘연기’도 가능해야 한다. 선과 악이 명확하다 보니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각자의 캐릭터를 가져야 한다.

  “악역을 하려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야 합니다. 나아가 즐겨야 하죠. 흉기를 동원하거나 의자로 또 야구 배트로 상대를 타격하는 건 기본입니다.”

  짐작했겠지만 김남훈 씨는 링 위에서 악역을 주로 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나의 첫 직장에서 만났던 순둥이 간부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분은 상사에게서는 물론 심지어 후배에게까지 ‘갈굼’을 당했다. 늙었다고, 생각이 구식이라고, 행동이 굼떴다고. 이 분이 나의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늦은 밤까지 미국 프로레슬링이 나오는 TV를 켜놓고 혼자 ‘때려’ ‘밟아’ 이러며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링 위의 ‘악마’ 김남훈 씨는 억눌린 이들의 내재된 분노를 녹여주는 심리치료사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프로레슬러와 악마, 심리치료사, 이런 캐릭터가 한 맥락일 수 있다.

욕망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청춘의 카운슬러

프로레슬링과는 교차하기 힘든 ‘일본어 강사’의 길도 이 ‘남성성’에 뿌리를 둔 듯하다.

  “제가 오토바이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때는 한국에 관련 전문지가 없어 일본 잡지를 사다가 봤어요. 하지만 그림만 보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됐지요.”

  강요와 압박으로는 결코 흥미와 열정에 기반을 둔 공부의 성과를 따라잡을 수 없는 법이다. 노력의 결실을 설명하는데 웃음이 났다.

  “2개월 되니까 일본어를 조금 읽게 되고 4개월 되니까 일본어를 쓰게 되고 6개월 되니까 일본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되고 8개월 되니까 일본말로 술주정을 하게 됐어요.”

  물론 하루 열 몇 시간 투자가 필요했다. 무한질주 본능을 부추기는 오토바이, 다행히 그는 폭주족이 아닌 일본어 교육 강사로서 내면의 욕구에 응답했다.

  갑자기 가르치던 학생들 생각이 났다. 2010년 1학기에 만났던 이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편지 형식으로 내라고 했고, 나는 그 답신을 서적 (‘고민하는 청춘 니들이 희망이다’)에 담았다. 편지는 여러 사람이 썼지만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해도 무리가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 넘쳐나는 김남훈 씨. 이런 고민의 낱말들 앞에 뭐라고 답할까. 기실 그는 지난 해 20대를 위한 카운슬링 서적 (‘청춘 매뉴얼 제작소’)을 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직업, 즉 의사 또는 아나운서로 답해요. ‘훌륭한’ 의사, ‘멋진’ 아나운서 같이 형용사나 부사는 빼놓고요. 그런데 요즘은 직업도 아니고 ‘정규직’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경우도 많더군요. 직업이 꿈이고 직종이 꿈이 된 세상인 셈이지요.”

  “20대에 제가 만든 말을 소개하고 싶어요. ‘사냥감 증후군’이라고. 어떤 사냥감을 물어왔어요. 그리고 먹어요.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면 그 다음 사냥감 잡는 것은 굉장히 쉬워요. 일본어가 그 첫 번째 사냥감이었어요.”

  이른바 ‘스펙’ 쌓기 열풍을 보면 남에게 보이기가 목적일 뿐인 우리네 청춘 스스로가 사냥감이 되는 형국이다. 자기 꿈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 혹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패배하지 않는 삶이라 믿고 있는 모양새다. 많은 이들은 이 점을 문제 삼아 ‘허영을 좇는 20대’라고 비판한다.
 
‘패기 없는 20대’?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나

“우리나라 20대가 보낸 10년 그대로를 지금 일본의 30대가 살아왔거든요. 이들은 돈을 안 씁니다. 연애를 안 합니다. 전후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같은 영웅들과 그 영웅들로부터 철저한 교련을 받았던 사람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회사를 키워놓았고, 그 기업을 넘겨받을 지금의 일본 30대는 (나약하다기 보다는) 전혀 다른 인종이 돼 버린 상황이지요.”

  김남훈 씨는 그러면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거론한다. ‘환경에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민감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사방을 둘러싼 환경을 불굴의 의지로 뚫고 나가는 자가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결국에는 생존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20대를 두고 패기 없고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사회가 그런 사람만 나오도록 세팅해버렸지요. 그러니까 지금의 20대는 똑똑하고 적응을 잘 한다고 봐야 합니다.”

  반어법인지 진심인지 알쏭달쏭하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반반인 것 같다.

  "‘패기 있고 당당한 젊은이가 없다’고 30~40대는 남 말하듯 하지요. 이런 사회구조 형성에 별 책임이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패기 있는 남자 후배가 들어오면 일단 옥상으로 부르잖아요. ‘이 새끼, 너 까불어?’라며 기를 죽이지요. 이래놓고는 또 다른 자리에서 군사문화의 잔재에 대해 분노합니다.”

  원대로 지금의 20대가 똑똑하고 자기 의견이 강하면, 앞서간 세대가 이를 수용할 태세일지. 이런 와중에 터진 20대의 반값 등록금 요구 봉기는 많은 시사점이 있다.

  “남 탓 한다? 이것은 정답이 아니에요. 문제에 대한 회피일 뿐이지요. 개개인의 실력 증진에 노력을 기울어야겠지만 자기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봐요. 교양이란 다른 게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보다 가치 있게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말해요. 그 일환이 바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고요. 명동 철거촌 저항, 한진중공업 투쟁에 20대가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 방편이라고 봐요. 왜냐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의 유효 시기는 20대 정도까지거든요.”

헌법 보다 상위법, ‘보수언론’에 ‘욕’먹는 한국의 소셜테이너

반값 등록금 공약의 사실상 제안자인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내가 한 때 아무개를 해봤는데’로 시작하는 무수한 경험칙의 나열 앞에 위축되지 않을 김남훈 씨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장관들과 회의하는 걸 봤는데. 대통령이 모든 아이디어를 내놓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어때?’라면서. 리더십이라든가 마케팅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가장 나쁜 회의 방식은 최고책임자가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러면 논의는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행할까에 맞춰지지요.”

  전제가 잘못된 정책을 차단할 길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국정은 산으로 갈 수 있다. 4대강이 그렇고, 부자감세가 그렇다. 몇 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바로 형 이상득 의원”이라고 밝혔다. 완전한 제왕주의다. 이러면 소통은 실종된다.

  “얼마 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때에는 ‘나약한 젊은 사병들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사고를 저질렀다’고 전제하고는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언급했어요. 모순 아닙니까? 자기가 원인 진단을 해 놓고 또 원인을 살피래요. 논란이 되니까 나중에 청와대에서 ‘진의가 잘못됐다’며 마사지(?)를 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청와대 홍보 담당자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 보다는 권력자의 안위가 우선된다. 사회는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고. 이런 와중에 ‘소셜테이너’라는 일군一群이 나타난다. 대선 때만 되면 줄줄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폴리테이너’와는 다르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단어. 김남훈 씨가 이들의 시조격은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어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요. 어떻게 본인이 본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문제 삼을 수 있을까요.”

  김제동, 김여진, 박혜경 씨 등이 현 정부에 비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인용하기조차 힘든 막말에 시달리고, 방송 출연 정지 등의 우회적 보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여론을 장악하고 끊임없이 이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주입하려는 이른바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공격 도구다.

  “조중동을 보면 종종 할리우드 배우들의 소셜테이너 활동들이 미담으로 많이 나와요. ‘할리우드 배우 누구는 공화당 행사에 참가해서 얼마를 모았네’, ‘누구는 민주당에서 얼마를 모았네’, ‘조지 클루니가 사비로 인공위성을 띄워서 아프리카 난민 학살을 방지하는 데 일조를 하네’ 이렇게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연예인은 ‘이 사안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정도의 말을 한 건데 욕먹고 있어요.”
 
선거법 독소조항, 뺄 것은 빼고 가야지요
최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네티즌이 추진하는 선거법 독소조항 개정을 요구하는 캠페인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유자넷) 준비모임(준)’에 김남훈 씨는 광고 모델로 ‘재능기부’했다(위 광고). 현행 선거법이 부정선거를 막는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유권자들의 입만 묶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각종 독소조항이 유권자의 선거참여를 제한하면서 전혀 공정하지 않은 선거, 정책 경쟁이 조장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를 위해 유자넷은 ‘유권자 3대 권리를 위한 국민 선언운동’을 비롯하여, 내년 총선 6개월 전인 10월, 선거법 규제가 시작되는 시점에 ‘유권자총회’를 개최하여 본격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했다.

  유권자 수호천사로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김남훈 씨는 지난 6월 1일 유권자 선거 자유 캠페인 선포식에서 '선거법 사슬 끊기 퍼포먼스'를 펼쳐 선거법 개정에 대한 유권자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데, 도대체 유권자는 선거 때 투표 말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단 13일(총선), 22일(대선)의 짧은 선거 기간을 제외하고, 유권자는 ‘그 입 다물라’는 것이죠. 인터넷, 트위터 규제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기를 가져오고 있어요. 표현의 자유, 이것은 소셜테이너에게 공기와도 같은 것이지요. 부디 유쾌하게 해주세요.”

  엄숙하다 못해 삼엄한 철거현장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열어 좌중을 즐겁게 해 준 김남훈 씨, ‘웃음의 혁명성’을 설파한 것이다. 그의 헤드락으로 부당하고 부정한 절망의 시대상이 즐겁게 압도되는 그림, 생각만 해도 발랄해진다. 

■ 유권자 태클거는 선거법에 헤드락을!

유권자도 말 좀 하자! 10만 입법청원 서명 동참해주세요!
이번호 참여사회 지면에 첨부한 서명용지를 잘라 서명 후 참여연대로 보내주세요.

온라인 서명 http://youja.net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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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강동균 제주 강정마을회장

평화의 섬 제주에는 더 이상 평화가 없다

2011년 초여름, 이곳은 잿빛이다. 바닷물만 푸르고 맑았을 뿐 마을과 마을주민의 표정은 그늘에 가려진 듯 어둡다.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예기치 못한 분란의 쓰나미가 덮친 터이다. 6월 10일 강정마을 회관에 도달했을 때에는 때마침 잔뜩 구름이 낀 채 부슬비가 내렸다. 우중雨中인 터라 공사는 쉬었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도 한 시름 놓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해가 뜨면 강정마을엔 전쟁이 시작된다 

강정마을은 수년 전부터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이다. 왜냐, 비오면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오늘이야 그렇다 치고, 평소에는 일상이 어떤가 물었다.

“공사 현장에 주민 외에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가 함께 지킵니다. 그런데 그 인원으로 막을 수 없을 때에는 사이렌을 울려요. 그러면 주민 모두, 자기 일을 내팽겨 치고 현장으로 달려오지요.”
 
비가 안 내리고 건설 기자재의 시동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마을 곳곳은 이내 준 전쟁터가 된다는 이야기다.

무려 4년 2개월 동안 그런 일상이 반복됐다면 믿겠는가. 이는 보통 저항이 아니다. 주민 다수는 감귤 같은 시설 재배 작물을 기르고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고 한다. 해본 사람은 안다. 비닐하우스에서 과실 키우는 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공기 순환, 온도 조절 관리, 정말 낮밤이 따로 없다. 그런데 지난 쉰 달 동안 주민 다수는 시위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항의수단을 다 동원해 반대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밀감나무가 마르거나 타 죽는 일이 다반사여도 개의치 않았다.
 
생각이 바뀐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눈을 부릅뜬다.

“많이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적당히 타협하자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아직 극소수입니다. 여전히 75~80%는 ‘반대 대오’에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결연한 격문을 보면 과장은 아닌 듯 하다.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쪽에서 마을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흉계는 없었을까 몇몇 주민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약속하며 포섭해 해군기지 건설을 지지하게 한 일도 있었다. 이는 ‘아무리 못해도 전부해서 1억 이상 돌아 간다’는 꼬임에 넘어간 경우라고 한다. 상상 이상의 보상을 한다면 응하겠냐고 물었다. 즉자적 반응이었다. “자꾸 사회가 재화만능, 물질만능으로 흐르는데 물질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투쟁은 이렇게 이미 철학 정립까지 완결된 상태다.
 
강동균 회장의 직업은 본래 보태고 덜어낼 것 없는 완전 농사꾼이다. 그러다 팔자에도 없는 삭발, 단식 등 고행의 나날을 지낸다. 지금도 마찬가지. 누구로부터 잘한다며 반대급부를 얻는 것도 아니다.
 
지역 주민을 외면한 거짓 발전과 개발, 제주해군기지
 
궁금해졌다. 왜 해군기지를 세워야 하나. 마을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야 할 뭔가 절체절명의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해를 돕기 위해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4대강 사업과 견주어 세 가지로 짚어본다.
 
우선 첫 번째, 지역 발전 주장이다. “해군기지를 세우면 우리 지역에 돈이 쏟아진답니다. 하지만 근거가 없어요. 그냥 믿으래요.” 4대강 사업도 실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묘책인 것처럼 주장했다. 해군기지마냥 억지 논리는 아니었다. 지역 건설업체가 엄청난 국고 지원을 받는데다, 지역 인재들이 대거 고용돼 산업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예산은 서울에 기반 하거나 대통령과 친분 있는 건설사에 집중되고 있다. 논리적인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또 이런 지적도 일리가 있다.

“외국 군함이 접안하는 캠프가 된다면 강정마을은 거대한 기지촌이 될 것입니다. 유흥과 향락이 넘쳐나는 공간으로 말이지요. 그런 식으로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할까요?”

두 번째 관광 개발이다. “해군기지를 지으면 멋진 미항美港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운 해변을 갈아엎고 만든 군사기지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절세의 미인을 성형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논리다. 게다가 제주도지사는 한 술 더 떠 이곳에 날마다 크루즈 선박이 접안하도록 하겠다는 경제성은 물론, 실현성도 모호한 헛공약을 쏟아냈다고 한다. 유기농토 위에 아스팔트를 덮어 자전거 도로로 만들고는 이를 친환경 사업이라고 우기는 4대강 사업의 논리와 자연스럽게 반추된다. 믿는 사람만 바보인 논리다.
 
세 번째 불분명한 용도다. 이는 ‘왜 정부는 해군기지를 제주에 세우려 할까’의 답이기도 하다. 도대체 쓰임새가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게 (앞서 언급한) ‘미항 짓기’ 정도입니다. 강정마을 주민은 필리핀, 오키나와에 이어 제주도까지 해군기지를 지으면 중국을 해상으로 에워싸는 것이 되기에 이는 미국의 필요와 맞아 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는 ‘그럴 리가’라며 공식 부인하고 있다. “또 다른 숨은 의도로는 ‘해군의 밥그릇 챙기기’입니다. 평택, 창원(진해), 부산 외에 해군기지가 또 생기면 그만큼 ‘자리’가 많아지는 셈이기에 장성들의 이익과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역시 해군은 부인한다. 없어도 될 기지를 또 짓는다는 주장, 억지라면 마땅한 반박이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설득력 있는 옹호논리를 만나기 힘들다.

네 번째 반대세력 겁박하기 방식이다. 우선 재판으로 옥죄고 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받아 놨어요.” 벌금도 유효한 수단이다. “저희 주민 40여 명이 사법 처리가 됐어요. 벌금은 적게는 50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500만 원까지 부과됐지요. 마을 사람들끼리 모은 돈으로 어떻게든 메우고 있는데 따져보니까 4억 5천만 원 정도 썼거든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투쟁했던 환경단체 구성원 상당수도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있다. 이건 강정마을, 4대강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겁박의 양태다.
 
개발과 안보논리가 찢어버린 마을
 
“사실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정부에 시행하기로 결정한 사업이지요.”

강정마을이 최초로 거론된 입지는 아니었다. 서귀포시 대정읍 화순마을이 그랬다. 그러나 화순리 주민이 반발했다. 그러자 정부는 또 다른 지점인 남원읍 위미리로 새로 정하려했다. 그마저도 난항에 부딪혔다. 이런 와중에 강정으로 변경됐다.

“이 무렵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어요. 기항지로 세우려 했던 애초 목표 계획은 모항(母港)으로 확대되고, 지역주민의 반대정서는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식으로 밀고 가고 있어요. 정권의 차이가 확연하지요.”
 
모든 논리를 누르는 게 안보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보가 보다 확고해지지 않을까. ‘그 반대’라고 말한다. “적敵이 군사시설이 전혀 없는 데다 포를 들이댈까요? 이곳에 기지를 짓겠다고 함은 군사적 표적을 자초함 아니겠습니까? 물론 안보상의 희생을 거역한다며 지역 이기주의라고 욕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정부가 지정한 평화의 섬이에요. 지금도 전 세계 7대 경관이 되겠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여기다 자연을 엎어 전쟁참호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평화의 섬, 제주는 이렇게 평화가 깨지고 있다. 당장 강정마을은 갈기갈기 찢겼다.
 
“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강정초등학교, 이 학교에는 부모의 견해를 따라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또 반대하는 자녀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끼리 편 갈라 만날 싸운 데요. 어른도 다르지 않아요. 이 강정마을에는 동창회, 친목회 이런 200여 개 친목회가 있었는데, 대부분 깨졌어요. 가족 공동체도 마찬가지에요. 찬성하는 자식이 반대하는 아버지를 내쫓은 일도 있었다고 해요. 조카는 찬성하고 백부가 반대하자, 조카가 백부 보고 ‘당신하고 나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 낫으로 쳐 버린다’는 극언도 했다고 합디다. 제사나 벌초, 명절을 따로 지내기도 해요. 여기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에요.”

이 갈등은 이번 세대에서는 절대 풀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해군기지 건설 논의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었다.
 
작은 평화 지킬 때 세계 평화 온다
 
강정마을은 어떻게 돼야 하나.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포기하고, 이곳은 절대보존지역을 지켜야지요.”
 
아주 간명하다. 절대보전지역 문제로 논의를 좁혀보자. 정부는 지난 2009년 필요에 따라 제주의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법을 만들었다. 제주도의회는 한나라당 도의원들이 날치기로 추인하다시피 했다. 지난 1990년 초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당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발생을 우려해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선별하여 지정하는’ 제도로 신설된 절대보전지역. 이것이 풀리면 제주지역에서 개발이 불가능한 곳은 없을 것이다.

결국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 해군기지 시공업체인 삼성물산 측이 아직 풀리지 않은 절대보전지역까지 침범했다고 한다. 그때 공사 인부가 이를 항의하는 주민에게 린치를 가했다고 한다. 경찰은 뒤에서 관망만 했던 터였고. 4대강과 판박이가 아닌 게 없다.
 
강동균 회장을 6월 10일에 만났다고 했다. 당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3만 여 개의 촛불이 켜졌다. ‘등록금 투쟁하는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내 후배, 내 후손을 위해 힘 써주길 바랍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나도 그러하겠습니다.”
강동균 회장, 그의 맞상대는 현재 미합중국 정부, 삼성, 제주도지사, 해군, 대한민국 정부로, 이 땅 이 시대 최강자들이다. 그의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말, 참으로 서글프게 다가온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강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 제주도, 대한민국, 세계의 평화를 지킨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에 걸맞은 저, 저 자리 해군 기지가 들어오려는 자리에 거대한 평화 기념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희들 한 사람 한 사람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저희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 반드시 이겨내겠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올 여름은 강정마을로 갑시다

강정은 물이 맑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이렇게 3관왕에 등극한 제주. 이 안에서 가장 빛나는 관광지가 바로 강정마을입니다. 이곳에는 올레 코스 가운데 최상의 구간으로 꼽히는 7번 길이 있습니다.

제주 중의 제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군기지가 아무리 미항으로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을 이길 수 없겠지요. 우리 함께, 강정마을의 벗이 됩시다. 그러려면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방문하세요. ‘특전’이 있습니다.

강정마을에 관광객이 북적여야 음험한 이들이 해군기지 세울 생각을 안 할 것입니다. 또 돈을 팍팍 써야 투쟁을 벌이는 주민의 주머니 사정도 나아질 것입니다. 강정마을을 누리면서 또 지키는 당신의 개념, 기대하겠습니다.
 
문의 강정마을카페 http://cafe.daum.net/peacekj       

/ 사진 = 김은진 작가
/ 참여연대 발행 <참여사회> 2011년 7월호 '김용민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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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6월항쟁 주역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운동권 전설’은 계속된다

교수가 떼지어 줄지어 막아섰다. 짐작건대 ‘데모는 안 된다’, ‘너희가 다친다’ 이런 명목이었으리라. 분기탱천한 학생들은 ‘스승님, 비켜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요청한다. 절체절명의 상황, 한 교수가 ‘그러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바닥에 눕는다. 그러자 또 다른 여러 교수도 엉겁결에 눕는다. 필경 ‘오버’였다. 그러자 예리한 눈매의 한 선배급 학생이 외친다. “지나가!”

  상기 사건은 6·3 한일회담 반대투쟁 당시의 전설적 일화이다. 그 선배급 학생은 숱한 60년대 학번 후배들의 선망과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개념에 더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1960~1970년대 학생운동했다며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이다.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야기다. 달인 김병만은 매번 16년 경력을 자랑한다. 또 다른 달인 정성헌 이사장은 그보다 7년 더 많은 23년의 손때를 운동권에 묻혔다. (1987년 기준) 23년 전인 1964년으로 돌아가 본다.

DMZ 인근 농촌 마을서 ‘평화 일구는 농군’으로

“내가 대단한 소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1964년 19세에 고려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한일회담 반대운동 즉 6·3항쟁이 한창이었어. 이론과 소신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었어. 그저 상식적인 판단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 지금도 그때 생각과 다르지 않아. 민족 주체적인 입장에서 식민지 체제를 청산 극복하지 못하다보니 한반도나 민족, 또 동아시아 역사가 지체된 것 아니겠어? 정상적으로 또 엄정하게 과거사 청산을 했다면, 이것이 더 이상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아 남과 북이 통일로 가는데 수월했을 것이고 동아시아의 공존공영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봐. 당시 한일회담은 그런 시대적 과제에 역행했다고.”

  20줄 넘기도 전부터 시작된 정성헌 이사장의 파란만장한 역정은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 밀입북 사건 문제로 1989년 구속되고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계속됐다. 6·3항쟁 이후 박정희 유신독재, 전두환 신군부독재 정권 들어서 벌인 6월 항쟁까지 그를 빗겨간 현대사 사건은 없다시피 했다. 만약 그가 회고록을 출간한다면 명실 공히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사 그 자체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인 2011년 5월 23일. 5·18이 시원始原이었던 6월 항쟁의 정신을 터득하기 위해 정성헌 이사장을 만났다. 5월과 6월은 그렇게 엇물려 있었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에 있는 (사)한국 DMZ평화생명동산, DMZ를 평화와 생명의 가교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사장으로서 힘을 쏟고 있다. 이곳은 청정한 공기 속에, 화학적 작용 없는 100% 천연 신선풍이 부는 DMZ 인근 농촌 마을이다. 동산 일대에 재배하는 식물을 일일이 소개하던 정성헌 이사장은 영락없는 농군의 풍모 그대로였다. 착석하자마자 ‘6월의 기억’을 떠올려달라고 했다.

“전부 돈으로 가고 있어, 모든 것의 구심에 자본이 있어”

“6월 항쟁, 나는 성공을 확신했어.”
과반은커녕 소수당에 불과한 야당, 비우호적인 언론환경, 4·19 이후 25년 넘도록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민주혁명,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안정희구 정서’.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 직함으로 1987년 6월 전국을 누비던 재야운동가 정성헌에게 이런 만용 비슷한 승리의 기대감을 준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모금함, 모금함이었어. 1만 원짜리도 많았고 10만 원짜리 수표도 꽤 있었거든. 소액이 다수였던 거지. 시민의 마음이 우리에게로 온다는 느낌이 확 오는 거야. 그 언제더라, 날짜를 잊어버렸는데, 한 2천만 원 넘게 나온 날이 있어. 그때 무릎을 쳤지. 전두환이 저거 쫓겨난다고.”

  ‘고수’는 안다. 공기 냄새만 맡고도 대세가 어느 쪽에 기울었는지. 6월 15일이 지나고 정성헌은 당시 전남 광주에 내려간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의 1987년 6월 풍경은 어땠을까. 가장 뜨겁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아니야. 대학생만 몇 백 명씩, 이를 테면 히트 앤드 런 식이었어. 트라우마가 있었던 거야. 7년 전에 무차별 학살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대세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니까 달라졌어. 광주가 부활한 거야. 학생은 물론 넥타이부대도 거리로 나오더라고. 금남로 꽉 메우고 그랬지. 사실 광주 시민들은 용감한 거야. 7년 전, 내가 만약 트라우마를 겪었다면 대세가 어떻게 돌아가건 간에 집 밖으로 못 나갔을지 몰라. 게다가 그때는 한참 계엄령을 내리니 안 내리니 뜬소문 돌때였거든.”

  6월 항쟁은 결국 ‘전두환의 백기’로 종결됐다. 직선제 개헌, 김대중 전 대통령 사면 복권, 시국 관련 구속자 전원 석방, 언론기본법 폐지 및 언론자유 보장 등의 야당 시민사회단체 및 학생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잘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후에 돌아보니 반성할 것이 적지 않았던 거야. 전체적으로 보면 정치적 민주화는 진전시켰다지만 사회 또 경제 분야의 민주주의 신장에는 소홀했던 거야.”

  하긴 ‘부자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대통령 후보에 표를 몰아줘 당선시키고, 그것이 무위로 돌아갈 것 같으니까 아류의 허풍선을 타는 지도자에게 기대와 지지를 보내는 현실 아닌가.

  “전부 돈으로 가고 있어. 그 옛날에는 징역살고 나오면 그만이었어. 요새는 벌금을 때린단 말이야. 꼭 돈으로 한다고. 독재 권력은 이겼는데 그 자리에 앉은 돈을 못 이기고 있는 게야. 돈에게 노예가 된 것은 언론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중동 대 비조중동 이런 분류로 보지 말고 전체로 살피라고. 신문이나 방송 모두 자기 수입의 50% 미만이 광고가 아니면 자기 말을 할 수 있어. 그런데 그걸 넘으면 광고 자본주 말씀을 주로 참작하게 되지. 어디 자기 말하는 언론이 몇이나 있을까? 교육도 똑같아. 종교는 또 어때? 모든 것의 구심에 자본이 있어.”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6월 항쟁의 어젠다 세팅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라는 물음을 던졌다.

  “내가 그때 국민운동본부 내부의 헌법 기초소위원이었거든. 토지 국유화 내지 공유화를 주장했어. 나는 지금도 물이나 땅 모두 그 누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돼야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시는 박정희 18년, 신군부 7년 그러니까 25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직선제를 관철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감격할 때였어.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면 급진적이라는 비난 역풍이 일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야. 그래서 그때 치열하게 고집하지 않았어. 그게 참 아쉬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정부도, 민주화운동 세력도 아닌 국민의 것”

정성헌 이사장은 이런 배경과 경과를 들어 ‘우리 민주주의 토대가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부분적인 성과이긴 하나, 이런 민주주의는 그래도, 정치개혁, 인권신장, 환경의식 고양, 남북화해협력 강화 등을 불러왔다. 6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이 사업회는 김대중 정부부터 생긴 공기관이다. 따라서 이사장 임명장은 이명박 정부가 수여한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있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정부 소유물이 아니다. 법으로는 그러할지 몰라도. 그렇다면 민주화운동 진영의 전리품일까. 그렇지도 않아. 나는 별 능력은 없는 사람이지만 임기 3년 동안에 국민의 것으로 되돌리도록 노력할 거야. 이 사업회는 정부 것도 아니고 운동권 것도 아니고 민주화 위해서 애썼던 국민 것이거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사실 민주주의는 달성하기보다 유지, 확대하는 가치이지 않겠나. 이런 문제의식에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크게 퇴보하는 현실을 전제로, 이명박 정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민주화운동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모순성을 짚은 것이다. 좀 더 노골적이고 거칠게 말하자면 ‘이런 난조에 이사장직을 왜 수락했는가’하는 물음이다.

  “건전한 보수 또한 합리적인 진보, 나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 한국사회는 독재 반독재의 대결구도였어. 이러다보니 이분법에 익숙해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양측이 서로의 역할과 존재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해. 지난 4·27 선거 당시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한 목사가 민주당 후보인 손학규 씨를 찍어줘야 한다고 말하더라고. 내가 전화를 했어. ‘목사님, 그 말씀에 놀랐습니다’라고 했더니 ‘놀랄 것 없습니다. 민주당이 잘돼야 한나라당이 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더라고. 상당한 식견과 이해가 있는 것이지.”

  여당의 독주가 가능했던 것은 뒤집어 이야기해 야당의 무력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을 키워줘야 국민 무서운 줄 알게 되고 나아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뿌리내린다는 것이다. 정성헌 이사장은 어쩌면 극과 극의 이념대결 구도의 완화에서 본인의 역할을 찾은 것 같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이슈에서 생활중심으로”

6월 정신의 핵심적 성과는 모든 국민이 동등한 효력의 한 표를 부여받은 것이라 하겠다. 6월 정신의 현재적 계승은 자본 앞에서도 모든 국민이 평등한 기본권자가 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세상을 가꾸는데 있어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은 시민단체다. 시민운동은 6월 항쟁의 성과를 발전 계승하기 위한 동력으로 출발한 것 아니겠나. 정성헌 이사장은 따끔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독재 반독재의 싸움 당시, 권력은 강고한 군사독재세력 아니었던가. 싸우려면 강한 기동력과 고밀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고. 중앙, 사무실 중심적이고 청년, 학생 중심적이었잖아.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중앙에서 지역중심으로, 사무실에서 현장중심으로, 이슈에서 생활중심으로 가야해. 예컨대 갯벌문제는 환경단체 중앙본부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 가서 할 일이야. 조직의 비대화 백화점화도 경계해야 해. 조직이라는 건 평소에 일 잘하고 위기 때 싸움 잘하려고 하는 건데 규모가 커져 가지고는 일을 잘 못하고 싸움도 잘 못한다고. 법치주의를 따른다며 고소·고발운동을 참 많이 하지. 그러면 운동의 주력이 법조인과 교수 중심으로 흐른다고.”

  ‘이쪽’ 진영에 너무 신랄하다 보면 오해를 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맺어진다.

  “운동이라는 게 최고로 잘하는 운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는 거라고.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소금 역할은 하지. 사회를 안 썩게 한다는 것이야. 그런데 소금은 치면 좀 아리단말이야. 그렇다고 정권이 나서서 때려잡으면 안 될 일이지. 그러면 손해거든. 시민운동의 견제 없이 독주하다보면 자기가 먼저 썩게 된다고. 김대중 정부 당시 우리는 공익자금 선정 시 새마을운동이나 자유총연맹에도 보조금을 주도록 했어. ‘빵간(감옥)’에 다녀온 사람도 그렇게 마음을 쓰는데, 솔직히 말해 여기는 양지만 있던 사람들이 뭘 그렇게 원수졌다고 욕보이고 돈 줄 끊고. 물론 그렇게 한다고 시민운동이 죽지 않아. 진짜배기로 재탄생 할 테니까.”

“총포성… “평화생명동산 존재감 키우는 배경음악”

운동권의 ‘전설’이기도 했으나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개혁, 지방자치, 농민운동,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시대의 사람. 지금은 잠시 경색된 남북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날에 대비해 생태적 공동체 회복을 위한 운동을 벌인다. 그런데 인터뷰 내내 총포성이 울렸다. 인근 군부대 사격 훈련장으로부터 울리는 소리다. 우리 세대야 군대 향수에 젖게 하지만, 한국전쟁을 체험한 어른들도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배경음악쯤으로 여긴다는 정성헌 이사장, 지금도 남과 북의 DMZ를 뚫는 생명과 평화가 숨 쉬는 동산을 가꾸는 꿈을 키우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호응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양극단의 대결 구도를 끝내고 평화와 공존의 세상을 꿈꾼다고 하자, 모두冒頭에 정성헌 이사장의 ‘지나가!’ 발언 역사를 증언한 1960년대 당시 여대생(현 모 교회 원로목사 사모) 최 모 씨는 놀란다. 그러면서 의지대로 해낼 것이라고 지지했다.

  “내가 한 번은 그 분을 전도하려고 했어. 그랬더니 ‘최 양은 나를 전도하지 말고, 썩어빠진 교회를 개혁하시오!’ 이렇게 호통 치는 거야. 훗날 시골교회에서 남편 따라 살 때에 수배 상태였던 이 양반이 우리 집에 왔더라고. 이튿날, 공짜 숙식에 미안해서인지 연탄을 다 날라주고, 그날로 다른 곳으로 떠났었어. 우리도 가난했으니 노잣돈 줄 여력도 없어 미안했지. 그래도 가장 치열하게 살아오며 시대를 봉사한 사람이 아닌가 해. 청년예수가 그러지 않았나.”

  이 최 모 씨는 나의 어머니다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6월호
/ 사진=김은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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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방전식 고려대 청소노동자

“배운 것 없이 살았지만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안다”
고려대 청소노동자 방전식 씨의 노조 이야기

사진 / 김은진 작가

올 초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50여 일 간 벌인 파업. 집단 해고가 발단이었다. 이들은 고용승계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결국 전원 해고는 전원 고용승계로 바뀌었고, 근무, 급여 체계도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나 개선됐다. 그 힘은 연대에서 비롯됐고, 그 연대를 가능케 한 힘은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노조를 만들고 힘들여 파업을 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었다. 노조는 설립이 어렵지만 일단 고비를 넘으면 최소한이나마 기본권 보장이란 결실을 얻게 된다. 이 말을 실증할 증인을 4월 20일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월급이 올랐지요. 휴식공간이 생기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회사가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았는데. (노조가 설립되고) 지금 너무 좋게 됐어요.”

돈 없고, 배운 거 없는 나는 청소노동자다

올해 70세. 방전식 씨.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자연계 지역에서 14년째 일한다. 연륜이 쌓일 만큼 쌓였건만, 차별과 억압, 착취를 떨쳐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노동자성 또한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인식 없이 지내왔던 것이다. 부조리는 이 지점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감독자가 두 명의 노동자 아주머니에게 교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지요. 아주머니들, 못하겠다고 하겠어요? 그렇게 갔지요. 이런 와중에 이쪽에 비게 된 두 자리는 다른 사람들로 채우게 돼요. 그런데 두 아주머니는 가자마자 ‘할 일이 없으니 그냥 가세요’라는 말을 들어요. 졸지에 갈 곳을 잃었지요. 감독자가 속인 거예요. 아주머니들은 감독자를 찾아와서 울면서 욕설을 퍼부어요. ‘부당 해고에 대해 문제 삼겠다’고요. 그러자 이 감독자는 이 아주머니 둘이 불성실하게 일했다며 소소한 문책거리를 찾아요. ‘두 사람, 문제 많았다’는 다른 청소 노동자의 진정서까지 받아내고요. 그리고는 ‘고발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요. 결국 이 아주머니들은 싹싹 빌며 나가요.”

  감독자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문제제기는 시도조차 못하게 하겠다는 ‘예방적 공세’였다. 방식은 혹독한 근태관리. ‘손으로 닦으니 먼지가 나온다’, ‘여기 거미줄이 보인다’며 쥐어틀었다. 그러자 일부 청소노동자는 그 얇은 월급봉투에서 몇 장을 꺼내 ‘상납’했다. 배춧잎 앞에 감독자의 ‘노기’는 ‘취기’로 바뀌었다. 권력에 취해버린 것이다. 학교 이면은 이렇게 강자의 문란(紊亂)으로 가득했다. 또 다른 감독자의 횡포는 정도가 더 심하다.

  “청소 노동자를 치근거리기도 했죠. 젊은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겁나해요. 여자 화장실에 쫓아가서 부둥켜안기도 했었어요. 그러면 반항할 수 있겠어요? 이걸 뿌리치면 애로사항이 많아요. 감독자가 지급하는 청소용품을 안 줘요. 대신 예쁜 사람은 주고. 결국 그렇게 마음대로 하다가 잘리고 말았지만요.”

  여기에 방전식 씨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노조라는 돌파구를 알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감독자가 와서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응하지 않았어요. 다른 청소노동자를 비방하거나 하면 ‘그런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직접 가서 하세요’라고 했어요. 하여간 자주 싸웠어요.”

  비록 사회적으로 하대 받는 청소 노동자 일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존엄성을 잃지 않았다. 직언직설은 그 의지의 표현이었다. 스트레스가 컸으리라. 투쟁이란 모름지기 공격 못지않게 수비에도 꽤나 정력이 들어간다. 일말의 틈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피곤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당연히 받았지요. 돈 벌려고 나와서 하는 건데. 그러나 자기 눈에 우습게 보인다고 말을 함부로 해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요. 내가 좀 손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응대했어요. 이기적으로 하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당하게 되어있으니까.”

삶의 뜨거움은 나를 무쇠로 담금질했다

그저 참는 게 길은 아니다. 방전식 씨에게 이런 분명한 자의식 또한 무공無恐한 돌파력이 어디서 비롯됐을까. 본인의 삶을 언급해야 한단다. 6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본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참 잘했어요. 구구단을 혼자만 외워서, 친구는 물론, 저보다 나이 많은 친척 오빠한테까지 따돌림 당할 정도였다니까요. 요새 자주 쓰는 말 ‘왕따’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 호사도 2학년까지이었어요. 부모님이 ‘돈이 없으니, 학교 그만 다니고 일이나 해라’고 한 거예요.”

  즐거운 공부는 그쳤다. 대신 장작 캐고, 농사일 돕기가 강요됐다. 하지만 운명으로 여기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의지를 펼칠 공간은 또 있었으니까.

  “하다못해 시장가서 물품명 가격을 알아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야학에 가서 청년에게서 3년 배웠지요. 맞춤법이 틀려도 편지도 쓸 수 있는 실력은 있어요. 그렇게 답답한 걸 조금 면해서 살게 됐지요. 제가 젊어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 정년을 몇 달 앞둔 ‘할머니’라는 인상은 전혀 아니었다.

  “성격이 활달하니까 그런 거예요. 당하는 사람이 꿍하면 병을 얻어 화병으로 죽어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매 상황마다 회포를 풀지요.”

  ‘왕따’라는 말이 없던 시대였다고 했다. 그런데 ‘쿨 하다’는 말도 없던 시대였다. 누구는 구슬프게 풀어낼 삶의 단락이건만, 씩씩한 어조에 흔들림이 없었다. 20살 시집 와서 얼마 후 일을 언급했다.

  “우리 아저씨가 주태백이에요. 아버지 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난다며 저를 데리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지요. 빠듯했어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았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양반은 노동하러 나가고, 또 돈 받으러 간다며 나가서는 술 마시는데 다 써버려요. 그나마 몇 푼 아닌 돈 가져와서는 주지도 않고요. 어떻게 먹고 살았냐고요? 그러니까 우거지 사다가 삶아 먹었지요. 가을녘 김장할 때에는 배추 실은 차가 들어왔을 때 팔다 남은 배춧잎 주워 다 삶아 먹었어요. 등에 애를 업고, 뱃속 아이를 안고 그렇게 살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살았어도 애들도 저도, 바깥양반도 건강하답니다. 이게 복이에요.”

  2005년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혔던 고생담을 추가한다.

  “산동네에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했어요. 배운 게 없어서 그런지 할 수 있는 일도 없더군요. 연탄지고, 모래를 나르고, 노점일도 했어요. 오징어다리 10원, 20원에 팔고, 나중에는 떡볶이, 어묵도 팔았고요. 그래도 젊었을 때는 건강했으니까, 버틸 수 있었습니다”

  3남 1녀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인터뷰 절반은 자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표시이었다. 그러나 옮길 마음이 선뜻 서지 않는다. 한마디로 애사(哀史)였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에 입사했던 큰 아들은 외환위기와 함께 퇴직해 퇴직금 1200만 원으로 사업을 벌이다 실패한 뒤, 지금은 퀵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형보다 앞서 퀵 서비스업을 하던 둘째 아들, 불의의 사고로 2004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 명의 아들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어 상면하기 쉽지 않다. 모두 여의치 않은 생계이다.

  “여유 있는 부모는 자녀를 도와주는데 그렇지도 못 해요. 이렇게 사는 인생을 다 이야기하려면 책 한 권으로 모자랄 것이에요. 덕이 없고 고생만 하니…. 그러나 건강 하나는 끝내줘요.”

  ‘이제 자녀 덕에 호강하셔야 한다’는 말을 차마 못했다. 자녀라고 그런 마음에 없겠나. 그들도 아련하기는 마찬가지이리라. 눈치를 챘을까. 방전식 씨는 먼저 이런 말을 한다.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사람 대접 받고 싶어서 노조원이 되다

참으로 팍팍한 일상이다. 이런 고단한 삶 가운데서 노조는 방전식 씨를 전인격적인 인간으로 예우했다. 노조 이야기를 해 보련다. ‘미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학생대책위원회’라는 ‘임의단체’ 이름으로 나타난 몇몇 학생들이 먼저 그 손을 내밀었다.

“와서 조사하더라고요. 청소노동자들이 덜컥 겁먹었지요. 이러다가 문제가 될까 싶어서.”

2002년 고려대 노동절 행사 당시. 이들은 학내 용역형태의 청소노동자 실태를 파악하는 작업을 벌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노동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짚어보려 했던 것이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퀴벌레로 바글바글한 비위생적 휴게실. 식대는커녕 한 달 임금이 40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조직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핵심 노동자 몇 명의 해고였다.

“제가 나섰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다 노조원이 됐더라고요.”

‘노조’하면 겁부터 났던 이들이 2004년 청소노동자 노조를 최초로 결성했다.

“우리 밑바닥에서 통하는 정서가 있었어요. ‘사람대접 받고 싶다’는.”

연대의 손에 벼리어진 무쇠, 거대한 권력덩어리에 맞서다

할머니가 다수인 청소노동자들은 그렇게 민주노총 공공노조 산하 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 조합원의 신분이 됐다. ‘투쟁’이라는 말을 태어나서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음직한 이 청소노동자들. 자신들에게 ‘노동인권’이라는 가치를 보여준 학생들에게 보은報恩을 했다. 총학생회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 응원했고, 고려대 출교생들이 천막농성을 할 때는 명절에 배 따뜻이 해야 한다며 떡국을 끓여다 먹이기도 했다.

연대의 보은報恩은 한 편의 릴레이였다. 2009년 12월. 학교가 청소 용역업체를 교체하면서 환경미화 할머니들과 그전에 맺은 임금단체협약을 승계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또 붙이며 반발했다. 점거농성에도 동참했다. 보잘 것 없지만 박봉인 청소노동자의 ‘100년 이권’이던 폐지 판매 대금을 용역업체가 앗아가려 할 때에도 10,048명의 서명으로 저지했다. 할머니뻘 청소노동자와 손주뻘 학생의 감동적인 연대에 교수노조, 교수회, 정규직 대학노조도 뜻을 모았다.

학교와 용역회사는 이 ‘연합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청소노동자들은 60세까지 낮춰질 뻔했던 정년을 70세로 굳혔다. 폐지 판매이권을 얻는 대신 월 식대보조금 25,000원을 지급받기로 했다. 노조전임자도 유지하고 1년에 두 차례 노조 단합대회도 보장받기로 했다. 당연히 단체협약도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보장받은 권익이라야 손톱만하다. 민주주의도 그렇지만 노동정의는 달성하기보다 유지해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성과는 희망을 배태한다.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아직 많아요. 빨리 머리를 써서 힘을 모아 노조를 설립해야 해요. 뒤에 뭔 일을 당하더라도 덜 당하게 해주는 게 노조라고요.”

방전식 씨는 “내가 배운 것 없이 살았지만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는 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한결 낫다.”고 한다. ‘작고 미약한 사회밑바닥 층도 거대한 권력 덩어리에 대항하며 뭉칠 수 있다’고, ‘그 힘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의미에서 명징하다.

“서로 믿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불안을 덜고 그 자리에 신뢰를 채울 수 있도록 말이에요. 우리도 존중받고 싶어요.”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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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이철수 화백

인간 본성 일깨우는 정갈한 판화, 나뭇잎편지

사진 / 김은진 작가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로 이철수 화백을 만나러 간 3월 16일, 인터뷰에 앞서 일행과 먹은 점심은 솔직히 불편했다. 우선 음식점이 쓰는 쇠고기의 원산지가 ‘미국’으로 돼 있다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판정 결과 “장자연의 편지는 허위”라는 스마트폰으로 날아든 소식 때문인 듯하다. 혹자는 ‘진실은 불편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진실은 부당한가’라고 자문케 한다.

이철수 화백도 자신이 발행하는 메일링 서비스 ‘나뭇잎편지’를 통해 “제 직위와 권력을 흔들면서 어린 여성들을 농락한 언론사 사장놈·방송사 PD놈·기업 회장놈에 간부놈에, 기획사 사장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라고 질타했다.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전도유망한 여배우의 미래를 산산이 조각낸 놈 하나 못 잡아내나 하는 속 끓는 마음이다. 관련한 언급을 하자 이철수 화백은 담배를 물며 곰곰이 생각한다. 짐작컨대 같은 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내용과 성격이 달랐다.

“내가 그 편지 앞부분에서 했던 이야기는, 현장에서 유독물질에 중독돼 죽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죽음보다 안쓰러울 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언론은 장자연에게 권력과 직위를 흔들면서 성적인 가해를 한 무슨 놈, 무슨 놈, 무슨 놈 이렇게 비속어를 쓰면서 지목한 점 또 ‘요절해야 한다’는 주장만 옮기더군요. 아마 그 대목에만 통쾌함이 있다고 느꼈겠지요. 글을 그런 식으로 읽는 난독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어요. 왜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읽고 싶은 얘기만 읽으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철수 화백이 강조한 원문 내용을 본다.

“땀 흘려 일하다 직업병으로 숨져간 젊은 여성의 죽음보다 더 안타까울 것은 없습니다. 배부른 자들, 식욕은 미식으로 채우고 색욕은 미색으로 채웁니다. 그 접시에 올리면 제 허황된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꿈을 버리지 못하다 죽은, 미색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가 만드는 포르노가 생산되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몸매 좋고 인물 고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인의 꿈을 버리라고 할 건 아니지만, 그쯤 눈치 챘으면 떠날 줄은 알아야지요.”

이다음 바로 ‘무슨 놈’ 부분이 나오는 것이다. 주장하는 바의 주와 부는 명백하게 달랐다. 그렇다. 미모가 출중하지 않고 어리지 않은 ‘장자연’이 도처에 있다면, ‘놈들’ 즉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장자연 가해자’도 넓게 산재해 있으리라. 이철수 화백은 바로 그 지점으로 논의를 옮겨갔다.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는 몇몇 파렴치한 권력자들만이 아니고, 밤마다 룸살롱을 드나들며 호주머니 끄르는 평범하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다들 한통속이잖아요. 그리고 그게 우리 사회의 엄연한 문화이고. 그 잘못된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성하고 뿌리 뽑겠다는 태도가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민사회의 건강한 눈초리가 그걸 지켜보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만하라는 사인을 분명하게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 사는 것 자체가 죄이자 고통”

올해는 이철수 화백에게 특별한 해이다. 등단 30년이면서 귀농 25년이다. 25년 전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가 있었다. ‘나뭇잎편지’의 요즘 단골 소재는 일본 지진 또 이에 따른 원전 이야기이다.

“그 얘기는 어제 저녁에 썼어요. 우리가 평소에 원전에서 보내온 전기로 저녁 식탁을 비추고, 소비도시의 쇼윈도에 조명도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기를 누리고 사는 것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에 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온 겁니다. 그러다가 그날 그 순간이 되고 보니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사나운 재앙이 숨어있던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가 누릴 만한 것들을 누리고 살 때에도 그 뒤에 뭔가 비극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는, 때로는 범죄적인 것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걸 같이 생각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했던 것이지요.”

어느 고해성사 자리에서 신부가 ‘뭐 잘못 하신 게 있냐’고 묻자, 찾아온 할머니가 “아이고, 그냥 사는 게 다 죄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철수 화백은 이 해학을 인용하며,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죄고 고통이라고 이야기를 강조했다.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이대로 누리고 살겠다고 사는 한, 우리가 또 어디서 이런 재앙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단계까지 가기 이전에 남의 고통스런 재난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성찰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웃의 문제거나,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고, 우리 문제로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범凡생명체에까지 눈을 돌린다면 ‘남의 고통스런 재난’은 굳이 대한해협을 건너지 않아도 여기게 되는 인근의 문제이다. 구제역 파동을 반추해 물었다. 이철수 화백의 답.

“구제역 걸리거나 걸릴 우려가 있는 소 돼지를 각각 살 처분 뒤 매몰하거나 더러는 생매장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봤어요. 그야말로 지옥이었지요. 그걸 보면서 다들 가슴 아파 했는데. 거기에 제가 한 마디 보탤 때에는, 소 돼지들 저렇게 잔혹하게 죽이기 전에도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고요. 수태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절한 무게가 나가면 도살 처분해 우리 입으로 들어오게 되지 않던가요.”

전기로 충격을 줘서 소를 쓰러뜨리고 이를 기계적인 공정을 통해 정육으로 만드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혹해지고 연민을 가지지 않는 이중성을 짚은 것이다. 지나친 냉소일까. 아니다. 앞선 ‘행복과 재앙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논리의 연장이다. 사실 쉽게 고기를 접하는 편리함은 재앙의 근간이다. 공장식 축산을 위해 곡물이 집중되는 것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아사餓死의 이유가 되고 있지 않은가. 부요한 나라에게는 광우병 및 구제역 창궐이라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고.

본질을 바라보며 삶의 실감 키운다

이철수 화백은 초면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 올라, 면류관을 쓴 채 넋을 잃고 달려있는 예수를 끌어안고 울던 한 사람의 장면이 담긴 판화, 대학 1학년에 접한 이후로 ‘판화가 이철수’를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신학과 학생이었다.

“내가 그런 그림을 그렸나요? 아마 아닐 걸요.”

그 그림을 찾아 ‘필적감정’을 시도하려 했지만 종적을 쫓기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그런 그림과 이철수 화백을 엮었던 것일까. 잠시 귀신이 씌웠나. 가만, 지금 내 입에서 귀신을 운위했나. 큰일날 소리다. 귀신을 믿는 탓에 지축이 흔들려 일본에 재앙이 임했다는 한 대형교회 목사의 ‘말씀’이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종교집단의 권력화에 대한 단상’으로 화제를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교회가 곧 기독교로 이야기 될 필요가 없다, 또한 절이 곧 불교라고 이야기 될 필요가 없다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일종의 면허가 있으면 다 진실한 신앙인이라고 믿어야 할 근거가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따라서 예수한테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면 기독교에 실망할 이유가 없겠죠. 석가의 삶의 궤적에 실망한 이유가 없으면 불교를 부정할 이유가 없을 거고요.”

최근 목사님들이 사회면 사건 사고 란에 자주 등장하는 사안은, 종교가 세속의 틀 거리 즉 체계 확립, 재정 운용, 세력 확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원리를 훼손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하긴 신앙인인 나로서도 교리상 맹점이 있다면 온전치 못한 인간에 의해 정립된 탓이지 신의 섭리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이 현세에서 의미를 발하려면 그의 이름을 오용해 세도를 누리기보다 제자로서의 실천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이철수 화백은 개신교계의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예수로까지 그 원성이 번지는 양상에 회의적이다. 실컷 아무개 목사는 저렇고 모 종교는 그렇고 하는 답을 기대했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런 깊은 통찰을 이철수 화백은 참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풀어낸다. 그의 그리기 못지않은 ‘쓰기’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조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면 삶의 실감은 키우고, 뜬구름 잡는 소리는 버리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 개념어, 전문용어, 난해한 표현도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여야 할 거란 생각도 하고. 그러면서 독선적으로 흘러가게 될 것도 늘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

본성을 잃지 않기를, 울타리를 치지 않기를

나의 독서량은 걸출한 지성에 비해 박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독서량이 많고 적은지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은 점쟁이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철수 화백의 서가에 생각보다 책이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부인 이여경 씨가 답해줬다. “때마다 다 나눠줘요”라고. 기천 권 넘는 책을 1년에 한 번꼴로 후학 제자에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걸 모두 소장했다면 아마 도서관 수준의 장서가 됐을 것이다. 그 엄청난 독서의 산물이 짧은 ‘나뭇잎편지’에 녹아있다. 이 메일링 서비스 신청자들, 지성의 엑기스를 아침마다 무료로 받는 셈이다.

“어떤 책에 ‘산하대지가 일권경’이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자주 인용하지요. 산과 물, 큰 땅이,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계가 한 권의 경전이라는 표현이에요. 사실 세상을 아는데 그렇게 난해한 책들을 수없이 읽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가 많거든요. (중략) 쓸데없이 복잡한 책을 읽으면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책일까, 같은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는지도 생각하고요.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특히 전문용어들 많이 동원하지요. 권력입니다. 자기들 울타리를 치는 것이에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예술인인 내가 하는 것들이 어떻게 못 알아들을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울타리를 없앤 책’을 물어봤다. 주저 않고 장일순 선생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나님』을 추천했다. 그 두 권이 쉬운 말로 감동을 주는 길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철수 화백과 부인 이여경 씨.

시민사회에 대한 바람 또한 아주 간결하고 선명했다.

“시민사회조직의 현실적 활동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본질적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저에게는 농사가 바로 그러했어요. 20년 넘게 텃밭농사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자급자족하고 있거든요.”

“초월적인 관심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 속 다양한 고통들에 외면하게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버려야 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런 통찰들이 깊으면 깊을수록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연민이나 애정 때문에라도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 내밀기 마련입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견제한다면서 현실에 몰두하다보니 무엇을 위한 운동인지 ‘본연’을 실종하는 우愚를 범해왔던 것이다. 이타적이며 초월적인 관심, 큰 화두를 안고 인터뷰를 마쳤다. 이 와중에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봤다. 정원이 참 넓었다.

“정원만은 이건희 회장급이지요.”

아무렴. 정원뿐이겠나. 이철수 화백 부부의 아름다운 삶 그 안에서 나오는 진실한 웃음은 백만 불 이상이다. 아니 그 100배이다. 그렇다면 1100억 원 정도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로 선고받았다가 면한 벌금 규모이다. 이를 훨씬 초과하는 넉넉함이 평동마을에 있다.

이철수 화백 등단 30주년 전시회

지역            전시장                       일정

서울        관훈갤러리               6.22(수)~7.5(화)
광주        광주신세계갤러리      7.12(화)~7.21(목)
원주        원주한지테마파크      7.26(화)~8.7(일)
전주        전주한옥마을            9.9(금)~9.18(일)
제주        제주저지현대미술관   10.1(토)~10.25(화)
부산        민주화공원전시관      10.28(금)~11.10(목)(변동 가능)
청주        청주예술의전당         11월 3, 4주
고양        어울림누리               12.02(금)~12.15(목)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4월호 '김용민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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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만난 사람]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길을 걸어온 사람

사람들은 참여연대 대표 쯤 되면 기본적으로 대단한 ‘화력’이 있어야 하는 줄 안다. 하긴 지난 여름 유엔에 대한 천안함 진상조사 청원 건으로 촉발된 ‘어버이의 난’을 지켜본 이들은 참여연대 활동가가 보통 배짱과 투지로는 감내하기 힘든 일이라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요건은 ‘절망하지 않는 자세’라고 본다. 옳고 바른 세상 외에 다른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일전에 “변절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절망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돈 잘버는’ 변호사에서 ‘돈 안되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석태 신임 공동대표를 만난 것은 2월 25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입구에 걸린 소속 변호사 명단에 ‘이돈명’ 세 글자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고인이 된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더 지났는데 고칠 생각이 없는 것일까. 방도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란다.

“조선대 총장 마쳤을 때 저희가 모셔왔죠.”

이돈명 밑에 이석태, 김형태 등 한국 인권변호의 대표 인사들의 명패가 보인다. 나름 ‘짬밥’이 있는데 선배 변호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여의(如意)했을까. 고인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사실 고인은 원래 민사사건 전문 변호사였다. 1963년 사무실을 개업한 뒤 ‘돈이 정신없이 들어오던(고인의 표현)’ 때를 겪었다고 한다. 젊을 때는 정의를 외치다가도 나이 들면 안정된 삶 속에 안주하게 마련인데, 고인, 지천명의 나이에 평탄한 삶을 버리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런 어른을 막연히 존경해서 모신 것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이력과 가치관을 가진 터라 격의(隔意)를 상실한 이유도 컸을 것이다. 이석태 대표의 삶이 그런 의미에서 꽤 상통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말이다. 그 역시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로펌에 들어갔어요. 꽤 컸지요. 큰 기업을 상대로 했으니 그랬겠지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건기록을 이렇게 또 저렇게 따져 봐도 기업 주장보다는 노동자 주장이 더 합리적인 것이에요. 법률가 시각에서 봤을 때에 부당한 것은 못 참겠더라고요.”

시대가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고 가면서 변호사 이석태의 생각 역시 그만큼 노동자 쪽에 기울게 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약자 편에 서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초심을 잃고 권력자 주변을 배회하는 속물들만 봐 와서인지 그의 그 ‘자연스러움’이 낯설게 느껴진다.

“제가 하기 편하고 보람 있고 즐거운 분야에서 일해 온 것입니다. 물론 ‘돈이 되는 분야’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좋은 동료 및 선배와 지내는 게 행복하거든요. 참 럭키한 인생입니다.”

사실 이 언급은 ‘요즘 약자의 대변자보다는 영리 추구 법조인이 되려는 이들이 적잖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인권 옹호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라는 물음 속에서 나왔다. 이석태 대표는 처음에 말하기를 꺼려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길이었습니다.”라는 답에 이렇게 평했다. ‘럭셔리하지는 않지만 럭키한 삶이셨군요.’라고.

“사법개혁 본질은 특권 지위 해체에 있다”

그런 이석태 대표가 ‘뒷조사’ 업무를 하던 때도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잠깐 일하던 시기였다. 대단히 합법적이고 긴요한 일이기에 심부름센터를 연상케 하는 ‘뒷조사’로 묘사하는 게 경망스럽긴 하다만, 요즘은 ‘성격 불문한 모든 뒷조사=경망스러움’ 도식이 가능하다. ‘다 이명박 정부 탓’이다. 때마침 대통령 취임 3주년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 사전에 레임덕이 없다고 말했지만 국가정보원의 스파이 미수 대망신과 민간인 사찰은 정권의 기반을 흔들고도 남는다.

“‘국민을 모신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특정시대 특정지도자를 모시느냐’ 이 차이는 큽니다. 설령 대통령이 데려온 인물이라도 임명되고 나서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합목적인 인재를 선발해도 추천, 인선, 임명자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렇게 심한 전례가 있었나 싶습니다.”

국가정보원 스파이 행동과 관련해 2월 23일자 <한겨레>는 ‘이 사건의 흐름을 잘 아는 관계자’가 “과거에도 여러 곳에서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있었는데 드러난 적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상습적이다 못해 일상화된 행태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의 그림자가 밟혔을까. 지난해 총리실 공직윤리 지원관실의 전 방위 민간인 사찰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또 정권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행태에서 검찰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파행 또한 반추反芻하게 된다. 이석태 대표의 진단이다.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듣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거꾸로 구 권력을 심판하는 신 권력의 첨병이 돼 있고요. 과거와 비교해서 질적으로 나아졌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기소권 독점 폐지 방안을 주목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싫어하겠으나 그 기소권을 경찰에 나눠주거나, 검사 등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공직비리) 수사처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물론 그 이야기, 십 수 년 전부터 나온 것이다.) 이석태 대표는 요컨대 사법개혁의 본질이 특권 지위의 해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판사들이 파업을 벌였지요. 정말 소프트한 사회가 되면 폭력만 피한다면 판검사가 시위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30을 넘기도 전에 머리 희끗한 어른들로부터 ‘영감님’ 소리 안 듣는 세상이 온다면 충분히 예상해봄직 하겠다.

“양심적 병역거부, 병역 기피 아닌 총 안 들겠다는 것”

이석태 대표의 족적 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옹호가 선연하다. 최근엔 사법연수원 수료생 백종건 씨가 병역을 거부해 감옥 가게 생겼다. 사람 죽이는 훈련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소신을 지닌 이들을 반드시 징벌해야 하는가. 이들에 대한 변호에 나선지 10년,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병역의 의미를 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총을 안 들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모병제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독일의 예를 듭시다. 그곳도 절반이 병역거부를 합니다. 이들은 감옥 대신 국내외에 가서 양질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국위선양은 기본이요,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회 기풍이 조성되며, 평화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지요. 대체복무자의 성실도가 높아요. 그런데 이를 접고 모병제로 간다면 돈 벌러 군에 가자는 것인데 충성도가 대체복무와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대체복무제도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구체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없던 일이 됐다. 이 뿐인가. 현역은 물론 저격수 3만 양성설을 들먹이며 예비군 훈련도 강도 높게 하겠다고 천명한다. 북한 체제 흔들기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하긴 전쟁 나면 자기들이 총 들 일이 있겠는가. 그보다 대통령-총리-여당 대표 공히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고도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관련한 피의자가 줄지 않는 현실도 이런 사회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의 영역에까지 그물을 놓는 야만적인 법, 이 법의 피해자도 변호사 이석태의 벗이었다. 
 
“뉴라이트가 2004년에 낸 성명에는 ‘북한 체제에 대해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돼 있더라고요.”

좌든 우든 하나의 상식체계가 된 표현의 자유를 비판세력 압살의 구실로 오용되는 현실, 퇴행하는 시대의 단면이다. 하긴 김형근 교사의 예에서 그랬듯 ‘남북대화에 응해주신 남북 정부에 감사하다’는 말로도 시비를 거는 정부 아닌가.

“많이 걷기, 덜 격식차려 입기, 과식 안하기…채식까지”

자연스럽게 남북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 기준은 분명합니다. 남북관계를 움직이는 주도권 이걸 갖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지요. 이것인 우리 사회의 평화 관리가 얼마나 가능하냐 하는 점과도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세계 10위권 국가가 다투다가 갑자기 꼴등인 국가와 경쟁하겠다며 치졸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격이다. 그 졸렬함은 최근 정부 여당의 복지 논쟁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가난과 질병을 공적 안전망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통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빚어졌다. 그러나 여당 수뇌부 회의에서 고작 나온 이야기는 ‘그 사람 누구야’ 뿐이다. 이런 와중에 무상복지는 나라를 망조 들게 한다는 선동 아닌 선동만 메아리 칠 뿐이다. 뭐하라 집권했는가 하는 의문, 나만 드는 것일까.

“경제논리를 끌어와 복지를 풀어가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정치논리로 풀어내야지요. 그렇다면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집권세력의 무관심 무지로 비명에 가는 경우가 어디 사람뿐이랴. 동물도 그러하다. 각종 역병으로 인해 가축 800만 마리 이상이 집단 매몰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세인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오래 전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이 경고했듯 공장식 축산업의 한계에서 비롯된 재앙 아니겠나. 이석태 대표는 오래된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사실 발단이 된 것은 환경운동에 관여하면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많이 걷기, 옷을 덜 격식차려 입기, 먹는 거 있어서도 과식 안 하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러다 채식까지 생각하게 된 거고요.”

이석태 대표가 채식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세계적 환경단체가 “인구대국 중국의 GNP가 성장해 미국을 상당부분 쫓아오면 초지草地가 없어지고 지구는 망하게 된다.”라고 경고하면서부터였다. 기실 예측대로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곡물파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공룡 사라지듯 인간도 멸종될 수 있습니다. 공존하는 생명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대책 없는 살처분이 계속된다면 자연은 반드시 환경재앙으로 응징할 것입니다.”

‘대표’라는 자연스러운 이름표

채식을 일상화한 이석태 대표에게 한 마디 했다. ‘육식하는 동물이 공격력이 있다고 한다. 과하면 안 되겠으나 육식 좀 하시라. 환경 의식이 전무한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들과 참여연대 대표로서 맞서려면 불가피하지 않겠는가?’라고. 인터뷰 내내 유순한 어조가 내심 ‘불만’(?)이었다. 이렇게 인격이 돋보이기로 소문난 이석태 대표, 참여연대 대표로서의 포부를 말하는 가운데서도 그 기조를 조금도 흐리지 않았다.

“다른 대표님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해야겠고요, 제가 법률가인 만큼 법에 얽힌 문제에 대해서 해야 할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현재 많은 일을 담당하는 활동가에게 배우고 또 도우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자기의 존재감을 낮추며 약자와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진력해온 삶이 묻어난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자신의 삶 그대로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참여연대의 대표가 된 것은 아닐까.

이석태 신임 대표는 85년 변호사 개업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국장,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민변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법무법인 덕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석태 신임 대표는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동성동본 불혼 헌법소원 사건, 호주제 위헌소송, 매향리 소음피해 주민 손배소, 사형제 폐지운동 등의 변호인이나 주요직을 맡아 인권 신장, 사회약자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 사진 김은진 작가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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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이지 않은 세상에 말걸다

2005년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만난 윤덕원과 잔디가 대학가요제에 응모하는 것이 발단이었다. 녹음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줄 알고 악기 없이 예선에 나갔다가 뒤늦은 상황 파악 끝에 기타를 허공에 흔들고 빈 페트병으로 드럼을 치는 곡예를 펼쳤다. 세상은 그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8년 1집 발매 이후 보컬 계피와 결별하게 된다. 활동 중단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곡 판정을 받는 비운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양분이었다. 음악성을 최우선적 변수로 삼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올해 최종 후보자 명단에 이들은 올해의 음반·노래·음악인 등 최다 분야 후보에 자기 이름을 올렸다. 장르분야에서는 최우수 모던록 음반·노래 후보로 선정됐다.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6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국민밴드로 우뚝 섰다. 패배를 스펙 삼아온 이들의 여정,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없이 우뚝 선 인디계의 국민밴드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원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主義이다. 그러나 ‘브로콜리 너마저’마저 모른다고 했을 때에 받은 눈총은 대단했다. 인터뷰이를 ‘공부’하고 질문안을 만들었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는 리더 윤덕원 씨에게 퍽 미안한 마음을 안고 1월 1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지하 음악연주실에서 마주했다.

뻔한 질문부터 나간다. “왜 이름이 ‘브로콜리 너마저’인가?”로. 왜냐. 솔직히 궁금하니까.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습니다. 이름 지을 때엔 몰랐습니다. 그래서 좀 그럴 듯한 해석도 준비해둘 걸 그랬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문현답이다. “식상한 이름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성과가 있었네요.” 너스레에 긴장이 풀어진다. 사연을 듣고 보니 매력이 용출되듯 터져 나온다. ‘구파발 물미역’, ‘덩기덕 쿵덕’, ‘엄마 쟤 흙먹어’, ‘저 여자 눈 좀 봐’를 팀 이름으로 정할 생각을 했었다니까. 이 사람들 정말 멋지다.

이러한 창의력을 가능케 한 감성의 원천을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생기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걸 작품으로 만든 거고. 사실 음악도 공교육의 도움으로 익혔지요. 책이나 학원에서 살짝 배운 정도의 기타실력 정도가 예외였지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기타를 제대로 손에 익혔습니다.” 사는 대로 살았다? 이게 답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생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라는 ‘조선 3대 구라’가 떠오른다. 하지만 ‘당신은 천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꽤 나은 학벌의 소유자니까. 윤덕원 씨를 비롯해 멤버 구성원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다. ‘학벌 타파’를 외치는 입장에 섰지만 솔직히 말해 위축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좌절의 구름은 빗겨가지 않았다.

“원래 하나의 과정이 끝난 다음에 다른 한 장을 여는 부분은 누구나 쉽지 않잖아요. 적응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정작 힘들게 했던 것은 ‘강요’였어요. 모두들 뭔가에 쫓기듯 시궁창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 저나 주변을 보면서 그런 것들을 느꼈고 그걸 곡으로 만들고 싶어졌죠.”

이십대의 좌절과 불안 그리고 노래로 소통하기

그는 실제 방송사 취업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래 <졸업>과 이 과정은 잘 연결된다. 가사를 살펴보자.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

한 오디션 TV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사랑’을 주제로 노래 부른 응시자에게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사랑해봤어요?”라고. ‘아닌데요’라는 답에 곧 “그럴 줄 알았어. 깊이가 없어!”라고 일침을 가했다. 만약 덕원 씨 일생이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면 이 노래에 ‘맛’이 실렸을까. 이 음악에 직면한 20대 팬들은 “마음이 거시기 했다” 또는 “묘했다”라고 반응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네들 정서 그대로의 반응이다. 노래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반응들을 접하며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고까웠던지 KBS는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방송에서 많이 틀어주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은 없지만 부당한 재단裁斷에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전혀 손 안 댄 채 재심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현재 상태 그대로이다. 그러나 KBS의 결정은 <졸업>을 더욱 부각시켰다.)

 ‘20대를 위로하는 음악’으로 들린다고 물으니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연령대를 나눠 각기 다른 성격이 있다는 식의 분리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로를 주고받는 세대’라, 이건 20대에게 뭔가 결핍됐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이 때 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금의 20대는 다른 시대의 그 세대와는 다른 면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연스럽게 ‘20대 보수화’ 논란으로 화두가 이어졌다.

“20대가 보수의 길이 아닌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시 이야기해 의식적인 보수의 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처한 상황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지 않는 전략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취직이 안 되고 나이는 먹어가고 이 와중에 나를 지탱할 경제적 토대는 사라지고. 그래서 지지 않는 방법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브로콜리 너마저’ 우리도 2005년 생긴 이래 안심한 적이 없습니다.”

‘보수화’보다는 ‘패배기피 경향’이라고 해야 할까. 20대 관련 논란을 그는 이렇게 ‘종결’했다. 온당한 합리화일까.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홍익대학교 총학생회 이야기로 이어갔다. 연초, 학교는 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를 대거 해고했다. 이들 사전辭典에 없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고, 학교 공간 일부를 점해 해고 무효를 목청껏 외치는 양태로 번져갔다. 동조할 것으로 기대했던 총학은 뜻밖에 “외부세력은 나가고, 학습권 침해를 피해달라”며 외면했다. 퍽 간명한 명분이었다. ‘우리는 비운동권이니까.’

“안 좋습니다. 지지 않는 전략의 일환이겠으나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패배를 피하는 정도를 넘어 그건 보신주의에 가깝다고 봅니다. 비겁합니다.” 60여 분 진행된 인터뷰 중 가장 표현이 격했던 부분이었다. “학습권 침해라고 했나요? ‘현장에서 삶의 모습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마다했네요. 학습권 포기입니다.” 홍대 청소노동자를 위한 지지방문 또는 위문 공연, 후원 콘서트에 대한 의향도 물었다. “물론”이라는 흔쾌한 답도 얻었다.

논의의 무대가 어느새 홍대 쪽으로 옮겨졌다. 홍대는 인디밴드의 ‘서식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디밴드에게 아직 어울리는 이미지는 ‘배고픔’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고 이진원 씨)’의 요절을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0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는 “동시대에 그 분의 음악을 듣고 또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으로서 나는 너무 행운아고, 이걸 관객들과 함께 듣고 기억하면서 당신을 행운아로 만들어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언급을 만났다. “그 분이 앨범 냈을 때 구입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음원수익배분의 부조리를 이야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음반을 안 사고 음악을 안 듣는다는 건데 이건 여러 가지 상황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이는 음원수입이나 유통의 문제가 더 부각이 되는 것 같은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 더 진중한 진전된 메시지였다.

모던한 인디밴드의 할말하기

‘일각에서는 ‘브로콜리 너마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보다는 좀 더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음악을 한다는 평가가 있다’라고 물었다. “용돈 받아 음반 만든 것 아닙니다. 유복한 환경, 아닙니다.”라며 잘라 말한다. 이런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런 풍문은 혹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에 비해 세상을 향한 외침이 자제된 듯한 느낌의 일단은 아닐까. 사회적 발언과 역할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러나 덕원 씨는 비교적 소상하게 정치적 스탠스를 밝힌다.

“제 정치성향이요? 대체로 진보 성향을 선택하는 편이지만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데 주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정당의 문제라기보다 저 자신의 지향이나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소신을 함께 하기엔 온전한 만족감을 주는 정당을 찾기 어려웠고. 그러나 정당 활동에 대한 의지는 있습니다.”

“이 사회 구조가 상당히 권위적입니다. 특히 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됐습니다. 그러나 특정 정권의 문제만일까요. 사회 체질 문제입니다. 권력이 바뀐 뒤에 이 억압의 구조가 끝날 것으로 여긴다? 글쎄요. 참 나이브한 발상 아닐까요?”

시국 인식이 다소 관조적인 듯하다. 물론 선명성은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성과 실천은 공존할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은 잔존한다. 실천에 대한 의지를 물었다. 시민운동 참여 여부로 말이다.

“어떤 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가게가 주최한 공정무역을 위한 후원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를 통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시민운동의 지평이 더욱 넓어졌으면 해요.”

아티스트에게 사회 현안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하지만 덕원 씨는 내내 ‘부담스럽다’라고 하면서도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할 말을 다 했다. 누가 평한 ‘개념 아티스트’! 나도 인증이다. 인터뷰를 갈음하려 하자 『참여사회』 팀장이 음악가에게 음악에 대해 묻지 않았다며 타박이다. ‘안 물어봐도 이 정도 세계관이 있는 아티스트라면 음악을 통해 스스로 느껴야 옳다’고 말하고 싶었다만 다시 판을 펼쳤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세계를 물었다. 사회 현안에 관한 답보다 더 간략했다. “밴드 형태로 만들어지는 노래정도라고 할까요.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직 저희 음악의 특징을 충분히 납득할만하게 (귀납적으로) 요약하기에는 해 온 작업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방향으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가고자 하는 부분도 아직은 없습니다.” 앞으로 앨범 발표할 때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것이다.

‘음악은 소통의 도구인가’라고 물었다. 대화식의 노래가 많아서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은 항상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음악이 소통의 매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방적 화법으로도 소통이라고 우기는 파란 집 어떤 분과는 참 차별된다. 겸양의 미덕일까. 아니다. ‘소통’에 대한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가사와 제목 짓기를 통해 그 내용을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도 일종의 소통으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은 읽는 이의 생각과 느낌에 많이 좌우 되지 않을까요. 노랫말은 하나의 촉매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그도 팬들의 반향이 싫지 않다. 이들의 노래가 ‘소통’이 되려면 향유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10년 후 하고 싶은 음악, 해야 할 음악’을 묻는 건 과할까. 꽤 긴 문장의 답이 돌아왔다. “장르나 스타일의 경우, 바뀔 수 있고, 활동방식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트로트를 해 볼 생각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장기적으로 성인 취향의 음악을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운도 씨가 좋은 모델입니다. 그 분의 음악은 싸지 않습니다.” 아, 무한한 상상력의 힘이여! 이에 강림하시다니. 반짝이 옷을 입고 ‘삼바의 여인’을 힘차게 ‘터는’ 덕원 씨의 모습을 차제에 상상해 본다. “팀이 될지 개인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팀을 오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노래가 우선시되는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 인생은 백지이다. 미리부터 프레임 워크를 해서 이 틀 저 구도에 맞게 살겠다는 각박함을 버리는데서 ‘브로콜리 너마저’식의 창의적 감성이 발현된다. 앨범마다 넓어질 네 사람의 꿈이여, 부디 영원하라.

/ 사진 김은진 작가
/ 참여연대 발행 '월간 참여사회'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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