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멋진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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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할아버지가 신동아 1970년 2월호에 나온 사연]



목고장에 얼룩진 각고 | 사진 글 전용종


전용종 님은 1962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출판부 사진 기자로 재직하던 와중 저의 할아버지 고 김죽선 장로를 촬영했습니다. 198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조선일보> 미주지사 편집장을 역임하고 한국 여권 소지자로는 처음으로 취재 목적으로 비자를 발급받아 평양을 취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은 사진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인생을 도장에 새긴다. 자신의 굵지 않고 단조로운 생활을 그나마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생소하고 낯선 이름자들을 감동없이 새긴다. 결코 섬세하지 않은 손끝에서 칼날이 돈다. 35년을 그렇게 살았다. 춘천시 중앙로 허술한 대폿집, 한쪽 귀퉁이 반평 정도의 도장포 신인당에서 그리 큰 꿈도 없는 '서민' 김죽선(53) 씨는 오늘도 도장을 새긴다. 고급도정은 모른다. 목도장이다.



도장방에 비친 세태도 여러가지다. 여자들과 공무원은 까다롭다. 은행원은 날쌍한 것을 좋아한다. 군인들은 뒷말이 없다. 그 각양각색의 손님들을 대하면서도 그들의 주문대로 새겨졌을 때가 그래도 조금은 즐겁다.



천성이 부지런한 탓인지 새벽 5시면 벌써 마당을 쓸고 있다. 아침 8시반에 점포로 나가면 해 떨어지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비좁은 도장방에서 대폿집의 소란을 외면한 채 일한다. 귀가하면 곧장 잠에 떨어진다. 


(사진 설명 : 할아버지 할머니의 춘천시 온의동 집. 교복차림에 소년은 지금은 경기도 한 중학교 교장선생님인 작은 아버지, 우측은 강원도립병원 간호과장을 지내고 지금은 춘천중앙장로교회 목사 사모로 섬기는 고모. 펌프 옆에서 빨래하는 분은 작년초에 할아버지 곁으로 가신 고 조춘자 권사)



전 가족이 기독교 신자다. 6남매의 자녀 중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자녀는 막내딸 막내아들. 일요일과 수요일이면 전 가족이 교회에 나간다. 그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한다. 


(사진 설명 : 아무래도 설정 사진같다. 저 교회는 춘남교회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집 뒤편에 있는 교회다. 그런데 두 분은 원래는 춘천시내 중심부에 있는 죽림동 춘천중앙성결교회를 나가셨다. 아마도 사진기자 부탁으로 저기서 찍은 듯 하다. 사진에 나오는 분은 고모.)



오늘을 사는 한국의 서민 (38) 도장포주인 김죽선 씨


김종심 (동아일보사 신동아부 기자) 김종심 기자는 1961년 전주고를 나와, 67년 서울대 사학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69년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해, 신동아부장, 출판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74년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 당시에 무기정직을 당하기도 했다.






상기 내용 중 한자로 된 부분 : 韓國(한국), 庶民(서민), 도장鋪主人(포주인), 宿命(숙명), 諦念(체념), 生活(생활), 意識(의식), 憂愁(우수), 凡常(범상)美德(미덕), 惡德(악덕), 春川(춘천), 荒凉(황량), 江原道(강원도), 春川(춘천), 中央路(중앙로), 童顔(동안), 老年(노년), 新印堂(신인당), 印章鋪(인장포), 木棒(목봉), 雲毛棒(운모봉), 印刻帶(인각대), 刻印(각인), 印版見本(인판견본, 無形(무형), 有形(유형), 歲暮(세모), 酒母(주모), 刻刀(각도), 春城郡(춘성군), 德豆院(덕두원), 儀贊(의찬), 先代(선대), 平北(평북), 宣川(선천), 甲午(갑오), 淸日戰爭(청일전쟁), 一家(일가), 祖父(조부), 麟蹄(인제), 鑛山(광산), 雅號(아호), 竹林七賢(죽림칠현), 大昌印鋪(대창인포), 見習工(견습공), 趙春子(조춘자), 創氏(창씨), 斗(두), 三千浦敎育隊(삼천포교육대), 太極堂(태극당), 軍(군), 印版業組合(인판업조합), 自由業(자유업), 代書(대서), 石版印刷(석판인쇄), 溫衣洞(온의동), 淑子(숙자), 春川看護大(춘천간호대), 泰善(태선), 春川聖修商高(춘천성수상고), 泰淳(태순), 師範(사범), 堂中(당중), 遺稿集(유고집), 文化放送(문화방송), 泰福(태복), 長老敎神學大(장로교신학대), 大學院(대학원), 泰榮(태영), 春川敎大(춘천교대), 原州(원주), 基督敎人(기독교인), 沈澱(침전), 天職(천직), 自畵像(자화상), 與野(여야), 印章業(인장업), 肺(폐), 漢子文化圈(한자문화권), 象徵(상징), 玉碎(옥쇄), 字體(자체), 印象學(인상학), 型(형), 象牙材(상아재), 八分體(팔분체), 世態(세태), 材料(재료), 古書體(고서체), 外華(외화), 非正常(비정상), 典據(전거), 無色(무색), 無臭(무취), 無味(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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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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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1 스튜디오 오픈 당시




4월 30일로 기록됐다. 아, 잔인한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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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입당 및 출마 기자회견문]

4월에는 국민이, 야권이, 노원구가 웃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을 점령하겠습니다.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2012. 3. 14
민주통합당 서울 노원갑 예비후보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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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 입장]

안녕하세요. 저 김용민 입니다. 처음으로 이렇게 혼자서 녹음을 시작합니다.

오늘 안경을 새로 샀습니다. 제가 쓰고 있던 10년 된 낡은 안경. 안경집에 접어 넣었습니다. 아직 그럭저럭 쓸만한건데…

“안경아 미안해!”

제 안경처럼 그럭저럭 살만했던, 앞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가려했던 제 소박한 바람도 이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노원(갑)에 출마합니다. 감춰졌던 진실을 알린 정봉주를 교도소로 보내야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권력의 부조리를 가열차게 고발하는 주진우. 시민이 쫄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외치는 김어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골방에 둘러 앉은 하찮은 네 남자의 수다가 이렇게도 큰 죄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두고자 하는 자,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 그리고 저 김용민. 아닙니다. 그들의 비리와 부패와 무능에 분노한 시민들. 저들이 막으려는 것은 바로 그겁니다.

그 시민들의 각성, 그리고 심판과 의지. 시덥잖은 우리 네 사람에게 가해지는 이런 압박들이 결국은 시민에게 가해질 폭력임을 저는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게 화가 납니다. 저는 이 나쁜 정권에 너무나 화가 납니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 청사를 나서며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어떤 싸움이라도 하겠다. 그리고 이기겠다.”

세 남자의 막내로 여러분의 시사돼지로 애정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제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세 남자의 앞에 여러분의 앞에 이 커다란 몸, 방패 되겠습니다.

지역구의 사유화, 정치의 희화화, 이런 비판들 그대로 어깨에 짊어지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비판에 대한 두려움보다 공포 속에 가두어질 우리의 권리를 지켜내는 일이 더 절박합니다.

정봉주 의원의 빈자리에서 시작하는 저의 싸움을 고작 지역구하나 지키는 일로 여기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런 작은 이익,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 네 사람 그 정도로 천박하지 않습니다.

큰 싸움하러 갑니다. 어떤 선거를 치루는지 그 과정 지켜봐주십시오. 시민들의 승리를 위해 무엇을 하려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주십시오.

깊었던 고민만큼 제 의지도 강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 정권과 맞장 뜨고 끝장 보겠다.”

다음주부터는 이젠 너무나 유명한 동네가 되어버린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걷게 될 것 같습니다.

“정봉주… 그립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출두라는 가슴 떨리는 선물을 준 나경원 전 의원과 정당지지율 40%를 1년 만에 회복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새누리당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

/ '나는 꼼수다' 호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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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사] '정봉주 판결'과 표현의 자유 토론회

1. 정봉주법을 만들자고 하니 나경원법을 만들자고 한다,
 
2. 나경원 1억 피부클리닉설에 대해 경찰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 허위다...따라서 이런 허위를 막을 제동장치를 법제화하자는 이야기다.
 
3. 그런데 어제 1억 피부클리닉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육성 증거가 공개됐다. 잘못된 전제에 의한 나경원법 주장, 정봉주법과는 격이 다르다.
 
4. 정봉주법은 모든 양태의 모욕 인권침해를 정당화하자는 무식한 법이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탄압받지 않도록 그 요건을 명확히 하자는 인권법이다.

5. 말을 했다고 감옥에 보내고 참정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 이건 특정정파를 위한 것도, 또 위해하는 것도 아니다.
 
7. 돈은 묶고 말은 푸는 선거문화의 시작이다.
 
8. 정봉주 의원 수감 가능이 제기됐을 때에 한 외신기자가 "내가 지금 당장 근거없이 '오바마는 마약쟁이'라고 기사를 써도 아무도 문제 안 삼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똑똑한 국민이 그런 거짓말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9. 정봉주법은 시시비비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부합하는 법이다. 

10. 허위사실도 아닌  진실에 입각한 BBK 의혹제기의 대가가 수감 그리고 정치생명 종식이라면 어느 누가 바른 말을 하겠나.

11. 나꼼수 녹음편집하며 정봉주의 웃음소리를 일부러 집어넣는다. 그럴수록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12. 정봉주법은 정봉주의 살아있는 웃음소리를 들려줄, 토론과 상식이 살아있는 세상을 열어줄 민주입법이다.

 
13. 반드시 제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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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김용민이 인사드립니다.

뉴욕, 새벽 4시대입니다.

방금 이동원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지난 주일 못 했던 예배를 대신했습니다. 설교 중 본회퍼 목사 관련 언급이 주목됐습니다. 나치 체제를 깨기 위해 온 몸을 던진, 심지어 히틀러 암살 계획까지 세우다 사형을 당한 인물이 바로 본회퍼 아닙니까. 개인적으로는 이 분을 사표로 삼습니다. 이 목사는 본회퍼에게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감방 동료는 물론 간수, 독일민족 심지어 원수 히틀러를 위해서도 기도한 과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꼼수다'를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의 건강과 행복, 나아가 조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IN 기자와 함께 아메리카합중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SBS '이숙영의 파워FM' 등 방송 출연을 쉬고 있습니다. 조간브리핑을 매일 아침, 독자 여러분에게 진상해야 할 텐데 해당 기간 동안 그렇게 못하는 점, 깊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난생 처음 미국땅을 밟았는데요. 첫 일정은 '월가를 점령하라' 베이스 캠프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사진은 그곳에 붙은 선전문입니다.) 그 김에 대변인격인 한 여성 변호사에게서 32회 '나꼼수' 영어 오프닝 멘트를 따냈습니다. '한국 상황도 녹록치 않은 것 잘 안다만, 우리 희망 잃지 말고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자'는 메시지로 기억됩니다.

한편 오늘 입국 직후 식당으로 찾아와 격려해주신 열혈 여성 청취자 분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월스트리트를 찾아주셔서 적극 지지를 표해주신 여러 교민, 유학생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전압이 110V인 줄 모르던 터라 '돼지코' 찾는 어수선을 피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평탄하고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강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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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기] 오늘 이동원 목사 설교 "집 가진 자들, 전월세가격 올리지 말라"


[설교 전체 동영상 시청하기]

 날짜: 2011-08-28 (주일)
 제목: 인간관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설교: 이동원 원로목사
 본문: 약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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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 하늘이 돌을 맞게 됐어요]

많은 분들의 격려 속에 저의 딸 하늘이 오는 21일로 돌을 맞게 됐습니다. 기념행사가 없는지 묻는 분도 아주 없지 않고, 그때 받은 사랑 대해 뭔가 기별해드리는 것이 온당한 듯해서 이렇게 인터넷 공간을 통해 알리게 됐습니다. [하늘 출산 때에 올린 글]

1년이 다가오면서 하늘에게 뭔가 특별한 행사를 열어줄까 궁리했습니다. 부유층처럼 고급호텔 뷔페에서 뻑적지근한 잔치를 열 생각까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직계가족만 집에 초대해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나누는 것으로 끝냈던 오빠(산) 보다는 기억에 남을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아내는 ‘기억에 남을 일’이라면 잔치 비용으로 들일 돈을 모두 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진지한 제안이었습니다. 여러 날 생각했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주저했습니다. 출산 과정까지 헌신적으로 도움주신 집안 어른들을 위한 의미도 있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결단했습니다.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요.

그래서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 둔 비용 200만 원을 모두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데 쓰기 위해 3월 14일 유니세프를 통해 기부했습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 상황도 심각하나 보다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기아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가 하늘의 기부를 더욱 빛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웃 여러분, 하늘이 (본의 아니었으나) 돌 때부터 베푼 이웃 사랑의 마음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품을 수 있도록 기원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아래 댓글을 통해 하늘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겨주시겠습니까? 잘 보관해둬서 훗날 하늘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날에 기부금 영수증과 함께 전달하겠습니다.

자랑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 밉살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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