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송]

크게 보시려면 사진을 클릭하세요.

PDF파일 

[멜로디악보]투표가 좋아요.pdf


정의로운 맘으로

맑고 선한 맘으로

비젼있는 공약 가지고서 빛을 전해줄

후보가 있어 좋아요

아름다운 손으로

냉철한 두 눈으로

미래 지도자를 가려뽑아 빛을 발하는

국민이 좋아요

이렇게 투표한 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죠

투표가 너무 좋아요

투표가 너무 신나요

흥겨운 마음 가지고

축제로 만들어 봐요

우리의 소중한 권리

우리의 정당한 권리

모두 다 참여해 봐요

책임 있는 나의 한 표  Love  it, We  love it!

늦지 않게 깨달아

자랑스러운 나라로  Change it, Must  change it!

투표한 내가 세상을 바꾸죠



[노래 다운받기]

투표가_좋아요_Master (1).zip




이 노래는 조용천 님이 딴지라디오에 재능기부한 곡으로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노래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 노래를 들려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뉴욕타임스' '나꼼수'에 고성국 박사 출연케 한 사람은...

'뉴욕타임스' '나꼼수'에 고성국 박사 출연케 한 사람은...바로 접니다.


요즘 고성국 박사가 도마 위에 올랐네요. 착잡합니다. 4.11총선 이전까지는 정치평론계의 선배로서 존경하던 분이지요. 그 분은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세력의 일원으로 옥고도 치렀습니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는 바른 말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때는 6.2지방선거에서의 야당 대승을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출연하고 또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빠짐없이 고성국 박사를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도 나왔고 심지어 고박사 책 출간에 즈음해서는 ‘나는 꼼수다’에도 모시고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마다 김어준 총수는 고성국 박사의 시사평론이 일견 논리적이나 정치 공학적이라며 그 출연을 반대했습니다. 그런 논평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 바뀔 수 있다고. 지면에 함께 등장하는 건 상관없지만 방송에 함께 등장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고. 그러면서 개인적인 친소 관계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저에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을 신뢰했습니다. 김어준 총수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해 마침내 그 분의 출연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4.11총선 때였습니다. 저는 노원갑 출마 문제를 놓고 고민했고 매일 아침 출연하는 SBS에서 마주친 고성국 박사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고성국 박사는 적극 지지했습니다. 당선 가능성도 높게 쳤습니다. 그리고 “내 동생이 정치기획사를 하는데 함께 하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분에게 ‘그 기획사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요 고객이 한나라당 쪽이라 어렵겠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이후론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뒤 벌어진 일입니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한 고성국 박사는 저의 출마 자체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논평합니다. 김용민이 무슨 국회의원이냐는, 출마의 자격까지 운운했단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사석에선 적극 지지했던 분인데. 그리고는 ‘막말 파문’이 터지자 출연하는 모든 매체에서 김용민 때문에 야권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고 논평합니다. 특별한 두둔까지 바란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로서, 사안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리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고성국 박사를 신뢰했습니다.  


이후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평론하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박근혜 승리를 만들어 내야하는 역사적 사명이라도 있는 것인양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총선에서 야당이 진 것은 박근혜 같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박근혜의 행보는 선의로만 해석하고 야권에 대해선 억측과 폄하 일변도로 논평합니다. 


‘김두관만이 박근혜의 적수다’, ‘손학규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다’, ‘결국 결선투표 할 것이다’ ‘안철수의 파괴력이 김문수, 김태호, 안상수, 임태희만 못할 것이다.’ 객관적 현상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주관적 바람에 대한 주술을 읊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YTN, 연합뉴스, OBS 노동조합으로부터 박근혜의 사람 취급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본인은 억울해 합니다. 하지만 본인만 억울해 합니다. 


반성합니다. 제 안목을 반성합니다. 김총수 이야기를 들을 걸. 많이 반성합니다. 또 성찰합니다. 어제 김어준 총수로부터 “고성국 박사에 대해 한 번은 네 입장을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듣고 곰곰이 되돌아보며 인간이 욕망과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합니다. 


부디 고성국 박사가 과거처럼 영민하고 건강한 평론으로 역사와 사회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한 시즌에만 몰두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장구하고 시대는 변화무쌍합니다. 


[참고 동영상] 뉴스타파 (13분 6초부터 고성국 박사건이 나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뉴욕 하이라인 방문기

 

ⓒ Highline

 

뉴욕 '하이라인'은 1930년부터 운행된 맨해튼 거리를 관통하는 높이 9m 넘는 화물철교를 개조한 공원입니다.

 

ⓒ Highline

 

원래 1847년부터 1929년까지는 지상철도였는데 열차에 사람이 치이는 사고가 많아 붉은 깃발을 든 카우보이가 앞서서 길을 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30년 기차만 다니는 13마일 길이의 철교 각을 세우기로 했고,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Highline

 

그러다가 철도를 이용한 화물 운송 량이 크게 줄면서 1980년 노선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철로 소유자는 철교 및 부지를 매각하려 했는데 이를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반대로 결국 공원화합니다. 지금의 공원 설립 계획은 1999년에 본격화됐고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완공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보면 거리 곳곳에는 운치 있는 자연환경과 감성 가득한 문화예술 공연, 풍류를 더하는 소상공인이 함께 공원의 가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공릉동 월계동에 펼치려 했던 경춘선 폐선로 재활용 구상도 이와 유사합니다. 물론 그 폐선 구간을 단순 공원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주변 대학가와 연계해 문화 예술 콘텐츠를 생성하고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그렇게 해서 지역의 상권을 살리는 총체적 번영의 구상이었다는 점에서 차별됩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 뿐 아니라, 그 기틀을 화석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 가득한 일상의 공간으로 구현하는 노력, 뉴욕에서 만나 행복했습니다.

 

2012년 9월 21일 촬영했습니다.

 

 

 

나무 가지와 풀 사이로 선로의 흔적이 보입니다.

 

 

화물 선로는 복선이었습니다. 그 중 한 개 선로 자리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로 조성했습니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입니다. 터 잡은 행상의 모습입니다.

 

 

선로가 바닥과 일체됐네요.

 

 

행인이 잠시 쉴 수 있는 자리네요.

 

 

 

중간 중간에 출구가 있습니다.

 

 

광고가 재밌습니다.

 

 

뉴욕 중심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입구입니다. 장애인 노역자를 위한 승강기도 설치돼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정형화된 청춘은 없다


청년. 몇 살부터 몇 살까지라는 정의는 없다. 나이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관용적으로는 20대를 떠올린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20대의 실체를 언급하라면 네 명의 여성을 들게 된다. 꽤 상징적이라 그렇다. 장자연, 박지연 이렇게 고인 두 명 그리고 김예슬과 일명 ‘루저녀’다. 서문은 일전에 발간한 ‘고민하는 청춘, 니들이 희망이다’(미래를소유한사람들 간)에 남긴 이들에 대한 소회를 재구성한다.

 

장자연의 비극은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유명세’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후에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인기를 원했을까. 아닐 것이다. 경찰은 “그녀가 유서에다 허위 진술을 했다”고 정리했다. 성 접대까지 했다며 부당한 처우를 유서에 남기고 목숨을 던져 고발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던 것이다. 생명 ‘따위’로 감히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아성을 흔들 수 없다는 현실의 벽만 확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자연이 선택한 죽음과 관련해 일부 보도는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이유는 이렇다. 장자연은 어머니 제삿날에까지 향응을 요구한 기획사 대표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해 매니저의 요구대로 피해 사례를 편지에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의와는 반대되는 방향 즉 편지 내용이 일반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흐름이 이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실제 장자연은 자존감이 짓밟히는 현실 속에서도 나름 돌파구를 모색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대중적 인지도가 보장되면 향응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할 무렵, “나도 이제 인기가 있는데 그런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라고 술자리 동석을 요구한 기획사 대표에게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정면대응이 자살보다는 덜하면 덜했을 대응 아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런 오기로 맞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다. 기왕 피해 사례를 편지에 적을 용기가 있었다면, 좀 더 기운을 차려 얼굴을 내놓고 자기 입으로 세상을 향해 폭로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명예훼손 운운하는 지난한 보복성 소송에 휘말리겠지만, ‘잘못된 관행을 깨려 한 용기 있는 여배우’로서 저급한 타협 속에서 얻는 ‘반짝 인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중의 넓고 탄탄한 신망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고인은 ‘그랬다가는 영원히 이 바닥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상대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배우 인생 하나 쯤 끝장내는 게 식은 죽 먹기보다 어렵지 않은 권력자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장자연에게 새롭고 건강한 비상구를 제시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무력함이 서글프다.

 

관련해서 한 대학생 강연에서 받은 충격적인 경험이다. “당신에게 스폰서가 돼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신에게 하룻밤을 요구한다. 이 한차례의 고통을 겪으면 돈과 명예가 보장된다. 그때엔 거부할 텐가?” ‘솔직하게 답하라’고 몇 차례 당부했다. 그랬더니 조용했다. ‘아니다’가 없었다.

 

다음 주인공도 고인이다. 스물 셋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둔 박지연이라는 무명의 노동자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은 다름 아닌 삼성이다. 박지연은 19살에 그 꿈을 이뤘다. 일은 힘들어도 가족들의 기대는 컸다. 마음씨도 고왔다. 인터넷에서의 닉네임은 '내가니별이다'. 누군가의 별이 되겠다는 따뜻한 포부를 가로챈 것은, 그런데 공교롭게도 또 다른 별, 셋을 뜻하는 ‘삼성’이었다. 꿈의 직장이 꿈을 박탈한 셈이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을 얻었던 노동자는 박지연만이 아니다. 이런 비슷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삼성 안에만 여러 명이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물론 공식적으로 삼성은 부인하지만.

 

박지연에 비하면 장자연은 차라리 행복했다. 세상 사람들이 믿어주건 믿지 않건 응어리진 마음을 편지 속에 다 토해냈으니 말이다. 반면 박지연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그렇게 죽어갔다. 그 억울함은 유족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돈으로 타협하자”는 삼성의 제안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은 아니었다. 인권 단체와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딸의 시신을 갖고 거래하도록 내몰린 유족의 비감(悲感)은 오죽했을까. 통절한 반성과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마땅한 사회적 책임을 끝내 회피하는 기업. 구조적이며 처참한 비극을 그저 한 사람의 ‘우연한 불행’으로 둔갑시켜 버린 행태.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출강하는 대학의 인문학 관련 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 아니 동기의 이야기다. 공감이 되는가. 마음에 새겨두라. 남의 아픔에, 또 호소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대기업 회장들이 그토록 찾고 찾는다는 인문학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울먹였는데. 나만 그러했다. 대부분의 표정은 무덤덤함 그 자체였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침묵 기조’는 이 20대 여성의 이야기에 이르러 깨진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중략)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중략)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고려대 게시판에 붙은 ‘김예슬 선언’의 주요 내용이다. 그 주인공 김예슬 이야기에서였다.

 

‘다른 20대의 강한 동조가 뒤 따르겠다’라고 가늠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김예슬이 켠 심정적 촛불은 그 혼자 타오르다 촛농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김예슬은 지탄받았다. 물론, 지지가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냉소적 다수 앞에서 미력에 불과했다. ‘책을 내야 하는데, 뭔가 홍보수단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이 자퇴였다’, ‘취업을 위한 승부수 비슷한 거다. 일종의 편법이다’ 이런 반응마저 있었다.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가치를 좇아 자아를 찾겠다고 나선 이에게 이토록 야박할 수 있다니 혀를 내두르게 된다. 김예슬에게 지지는커녕 동정조차 보내기 버거워 할 만큼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극한 경계심을 품고 있다. 김예슬과, 김예슬에게 돌 던지는 이들의 차이는 이점에서 미세하다. 불신. 본질은 이것이다.  대학생 활동가로서 쟁점이 되는 현장을 찾아가 자기 목소리를 내왔던 김예슬은 이미 이를 간파한 듯하다. 개인의 자퇴로 종지부를 찍었으니 말이다. 연대도, 투쟁도 없었다.

 

불신의 이면에 도사리는 것이 있다. 바로 ‘경쟁’이다. 2009년 11월,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 그 넷 중 마지막이다. 이 여대생 입에서 나온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즉 패배자’라는 말에 전국이 들썩였다. 논란 초기, 이 여학생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는 점이 마땅치 않았다. 신중치 못한 발언에 대한 꾸짖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녀사냥식 비난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처사이다. 그런 식의 발언을 유도해 내 편집 과정에서 증폭시킨 방송사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정작 논점은 ‘루저’보다는 ‘경쟁력’이라는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여대생은 ‘키 작은 남자’ 이야기를 하며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부연을 했다. 경쟁은 ‘공정한 토대’가 전제돼야 한다. 비근한 예로 복싱을 할 때를 보라. 키, 몸무게별로 경쟁할 선수를 분류하지 않던가. 또 형식적으로야 모두에게 기회가 부여된 대학입시가 불공정의 전형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쟁력 즉 학력이 기실 본인의 노력 보다는 부모의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점 때문이다. (재력 있는 부모의 자녀가 질 좋은 사교육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는 점을 보라.) 외모 또한 마찬가지다. 발육과 영양에 좋다는 음식은 비싼 가격이라도 지불하고 섭취하는데다, 때에 따라 성형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특권이 과연 ‘없이 사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부여되고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 있는 청춘이라면, 이런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신체 크기를 갖고 사람의 우열을 가르는 유치한 차별구조를 파괴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는 철저한 냉소만 받았다. 꽤 상위권인 학생으로부터 ‘경쟁이 없다니요. 그러면 왜 우리는 공부하나요’ 이런 질책을 받아야했다. ‘철모르는 소리’로 격하됐다. 이미 ‘실력’이라는 이름의 학점, 어학실력, 스펙 등으로 차등하는 사회에 내면화, 체질화됐기에 그렇다. 옳음과 그름의 분별이 희미해진 세상, 결국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고 나는 20대에게 ‘희망을 접는다’고 선언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놓친 것이 적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시대를 불문하고 청년은 늘 재단(裁斷)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시대 소크라테스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고, "요즘 젊은이들 버릇없다"는 문구가 고대 이집트 로제타석(비석)에 새겨져 있다. ‘싸가지 없다’의 통념은 최근에 와서 ‘개념 없다’는 쪽으로 달라진 것 같다. 다만 평가하는 관행만은 존속한다.

 

이처럼 청춘을 선악 또는 고저로 가르는 기준 또는 근거는 무엇일까. 평가하는 본인의 경험칙이다. 숱한 세월이 흐르는 와중에 청춘의 피상(皮相)은 그때마다 달랐다. 따라서 가늠하는 잣대도 제 각각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같았다. ‘지금 청춘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안보 관념이 우리만 못하다’, ‘고난에 대처하는 뚝심이 우리만 못하다’, ‘민주주의 저항의식이 우리만 못하다’ 등이다. 학생운동이 퇴조하기 시작할 무렵, 운동권의 막차에 올랐던 1990년대 학번, 바로 우리 세대는, 현시대 대학생들의 정치 무관심 그리고 이기주의, 배금적 사고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수한 논리를 펴는 것 같지만 성찰해보면 ‘너희 세대는 우리 세대에 열등하다’라는 주제문의 다른 말들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파악되는 점은, 그 근저에 ‘그때보다 좋아진 삶의 환경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하는 인식이 굳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유복하고 안온한 환경 속에서 이들은 자라가고 있는 것일까. 과거와 다른, 나아진 인터넷 환경, 편리한 학업 인프라, 다양한 직군 출현 등 애써 강조할 구실은 많다. 그래서 한층 개선된 환경인 줄 알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은 너울이 현 청춘의 일상을 덮친 사실을 절절이 지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더 세부적으로, 지엽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381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빚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의 59.8%가 ‘현재 빚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진 빚의 평균은 1579만 원으로 집계됐다. 또 금융감독원 자료에는 총자산 100억 원 이상 대부업체 40곳에서 대학생에게 대출한 규모가 6월말 현재 47,945건의 대출 잔액이 794억5800만 원이라고 답했다. 대학생 대다수가 빚쟁이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대부업체에까지 문을 두드렸다는 점이다. 일부라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개인신용정보평가사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되고, 아울러 취업에 대한 그로부터 물거품이 된다. 과거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이는 80% 이상이 대학진학을 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20%대, 1990년대 30%대에 불과했다.) 대학과 학생정원도 대폭 늘어난 탓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졸업장없으면 사람취급 안 하는 사회 풍토에서 비롯된다. 청년층 취업자 중 고졸자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의 임금지수는 2007년 141에서 올해 150으로 더 벌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들어간 대학에서는 졸업장 한 장 발급하는 대가로 4년간 3000만 원 이상을 뜯어간다. (2011년도 사립대 등록금 평균 768만6000 원이라는 점에서.) 1980년대 대략 65만 원, 1990년대 150만~200만 원 수준, 2000년대 300~400만 원 수준임을 따져 본다면 일반 봉급생활자의 월 급여를 크게 상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빚을 쓸 정도까지는 아니었음을 가늠하게 된다.

 

만난(萬難)을 극복하고 대학을 나온들 취업 일선에서 또 다른 좌절감을 겪게 된다.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명목상 7.6%로 32만 명 정도다. 10명 중에 한 명도 노는 이들이 없다고 하니 낮은 편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런 통계는 ‘현실과 따로 논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기실 취업을 포기한 사람이나 군 입대자와 재학생, 취업재수생 총합 40만 명을 빼고 집계한 점, 아울러 단시간 근로자 즉 ‘아르바이트’직을 하는 이, 구직을 단념하는 이도 ‘청년실업’에서 예외가 된다는 점이 크다. (이상은 2011년 7월 현재) 따라서 이들 일 없는 이들을 다 합쳤을 때에 집계되는 100만을 ‘실업인구’로 보는 게 가장 적실할 것이다. 취업한 이들은 또 어떤가. 333만4000명 가운데 101만4000명이 비정규직으로 집계됐다. 비율로는 30.4%. (2011년 3월 현재) 정규직 비정규직의 성격도 불분명했던 ‘평생직장’ 시대에 살던 이들로서는 이런 환경에 낯설다.

 

‘이런 전 방위적 경제적 압박을 등에 짊어진 경험 없이 이 세대를 비판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 앞에 서게 된다. 지난 해 20대를 위한 카운슬링 서적 ‘청춘 매뉴얼 제작소’를 낸 프로레슬러 김남훈 씨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거론했다. ‘환경에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민감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사방을 둘러싼 환경을 불굴의 의지로 뚫고 나가는 자가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결국에는 생존한다는 말이다. 20대에게 이런 사회 구조적 난맥상을 개선해주는 성의를 보인 후에 매를 들어도 들어야 한다는 설명으로 나는 알아들었다.

 

이걸 이미 간파한 것 같은 기성세대는 대학의 직업기관화, 고액 등록금 및 청년 고용 문제에 대한 무성의한 대책으로 일관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생만 생각하면 두통약을 찾을 정도로 여러분이 무서워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거듭 내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네들의 고충을 헤아리려 해도 여기서 다시 주저하게 된다. 투쟁과 저항이 낡은 시대의 전유물인가.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회 경제적으로 균등해진 기회, 품격 높은 복지의 틀이 완성됐다는 말인가.

 

이 지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청춘의 형성’을 살피려 했다. 선배 세대는 어떤 선험(先驗)을 했기에 현재의 청춘과 대조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설파하려 했을까. 단초는 그 세대의 시대 현상이었다. 우리 현대사는 놀랍게도 무지르듯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할 여지가 많았다. 10년 첫 해 또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해에 현대사의 핵심 사건이 집중됐기에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 그러나 이듬해 획책된 5.16, 1971년 김대중에 90만여 표 차이로 신승(辛勝)해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가 이듬 해 영구집권을 획책하기 위해 밀어붙인 유신 체제, 1980년 5.18 학살한 시민의 시신을 딛고 일어선 신군부, 1990년 사회주의 체제 붕괴 및 민자당 창당으로 인해 보수-진보 대결구도 고착, 2000년대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한반도 불확실성 극복 및 외환위기로 인한 신자유주의 발호가 그렇다. 이들 사건은 대체로 그 10년의 시대정신 즉 빈곤, 재건, 독재, 민주화, 탈이념, 신자유주의를 상징했다. 여기서 경험이 나오고 권위가 배태된다. 대립각을 세우는 양대 주체, 즉 선배 세대는 아버지 어머니, 후배 세대는 아들딸이었다. 그들에게 평균 연령차 30년을 대입해 정리하니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 (물론 세대구성원 모두가 같은 양태의, 균질화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외적으로 지사적 풍모를 지닌 혹은 이보다 더 퇴행적인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평균 지점에서 어림잡은 것이다.)

 

우선 1930년대 생들, 한국전쟁을 겪을 무렵 전장에 차출됐고 압축성장기에 사회주도층 열반에 선다. 그 어떤 세대보다 자기 확신이 강하다. 정계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 교계에서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김홍도 금란교회 원로목사가 이 경우다. 애국보수를 자임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가 있었다’며 거리를 활보하는 선글라스와 군복 차림의 여러 ‘어버이’들 상당수도 그럴 것이다. 이들 확신체계는 주로 반공, 친미, 보수이며, 이를 토대로 결정된 관념은 종교적 신조에 가깝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세대에게서 역대 가장 저항이 거셌던 386 세대가 나왔다. 부모세대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는 이유다.

 

1940년대 생들, 20대에 이르러 4.19를 경험했고, 미국의 히피문화, 프랑스의 68혁명의 영향을 입으며 정의와 자유를 외쳤다. 이렇게 사회구조적 변화를 추동하려 했지만 훗날 이를 부질없는 행동으로 격하한다. 분단현실 아래 군사정권에 압도돼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터다. 아울러 압축성장이 가져다 준 혜택은 달고 달았다. 폭등하는 부동산, 바뀌는 팔자. 법과 정의의 규제선 따위는 허울에 불과하다 판단한 것일까. 불의와 비리에 관대했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적 동물로 전락한 양상이었다. 이 노정에 일치하는 상징적 인물은 다름 아닌 1941년생 이명박 대통령이 아닐까. 이들에게서 나온 세대가 1970년대다. 앞선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칼라TV로 상징되는 다양 다각화된 대중문화에 길들어져 갔고 민주화운동이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지는 정치상황의 선진화를 지켜봤다.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권위와 지침은 통용되지 않는다.

 

1950년대 생도 비슷하다. 유신시대 즉 1970년대에 대학생으로 지냈다. 억압과 절망의 시기, ‘아침이슬’을 벗하며 분노를 삭였다. 그러다보니 주역이 되지는 못했어도, 거리로 뛰쳐나온 아랫세대 386의 민주화 운동에 넥타이 맨 박수부대로나마 조연 역할을 했다. 다만 3저 호황기(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였던 1980년대 결혼 및 출산을 했던 터라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외환위기를 만나 집단 해고의 여파를 입게 되고, 급격한 경제적 쇠락을 경험한다. 낡은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터라 아랫세대에게 강요와 굴종을 요구하지는 않았던 이들 세대, 그러나 실직과 생계수단 부재의 상황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노출하고 만다. 자녀들의 가치관 속에 ‘돈’을 우선적인 가치로 새겼다. 이 란에서 도마 위에 올린 청년들이 바로 1980년대 생 이들이다.

 

사실 정형화된 청춘은 없다. 특히 수시로 정권이 교체되고, 한 회사가 20년 가기 힘든 경영 환경에, 1년 안에도 트렌드가 틈만 나면 개변하는 역동적인 이 나라의 사회구조라면 더욱 말이다. 따라서 ‘청춘 = 저항’이라는 도식은 단선적이다. 그러나 청춘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 역시 저항이다. 선배세대의 ‘내가 그 때에는...’로 시작하는 주어구는 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그렇기에 현 청춘에게 투영하고 싶은 희망사항에 다름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청춘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해방 이후 이념대결 공간에서 좌와 우로 편 갈라 살상을 피하지 않았던 극단의 1940년대, 그 갈등이 국가체제로 확대돼 끝내 전쟁으로 비화된 1950년대, 4.19와 6.3을 끝내 미완의 항쟁 아니 실패한 항쟁으로 끝내버린 쿠데타 정권 주도의 1960년대, 헌법상 내란에 가까운 유신으로 내내 숨죽여야 했던 1970년대, 직선제 관철이라는 반짝 성과를 내고 반 년 뒤 신군부 후계자에게 나라를 넘기는 파행을 자아낸 1980년대, 탈냉전 이후 갈피를 못 잡다가 연세대 사태로 끝내 명을 다한 1990년대, 그리고 존재감조차 없었던 2000년대. 학생운동은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물러나는 듯 했다.

 

그런데 지각 있는 학생들이 사회구조적으로밖에 풀 수 없다며 고액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말 그대로 자생적 출현이라 해야 옳다. 절박한 심정에서 택한 연대지만 빛나지 않을 수 없는 결행이다. 이들에게 승리의 추억을 안겨주고 싶다. 뜻을 갖고 응전했더니 역사로부터 화답이 오더라는 공식을 인식체계화하고 싶다. 청년의 청년 됨. 그 세대만의 몫이 아닌 세대 간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전술했다. 따라서 선배 세대의 조력은 필수가 아닐 수 없다. 청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책임한 야유와 질책만이어서는 안 되리라. 반값 등록금 요구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꾸할 것인가. 2011년 청년의 인상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 월간 '기독교사상' 2011년 9월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존경받는 부자

과거에 존경받는 부자로 경주 최부자가 있었어. 400년 동안 12대에 걸쳐 곡식 만석꾼을 배출한 가문이야. (만석꾼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만 섬 가량을 거두어들일 만한 논밭을 가진 큰 부자’라고 하네.) 최부자 집안의 원칙 중에 하나로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는 게 있어. 사실 흉년에는 땅 사기 좋아. 곡식을, 원하는 양만큼 만들어내지 못하잖아. 그렇게 해서 가난해지면 땅을 팔아서라도 입에 풀칠할 길을 찾겠지. 이렇게 되면 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교적 싼 가격에 농토를 사들일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자기 땅을 잃은 사람은 다음해에는 남의 땅에서 대신 농사해주고 아주 적은 양의 곡식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고. 한마디로 가난해지는 거야.


최부자 이야기 왜 하냐고? 요즘 재벌이라고 불리는 일부 대기업이 동네 서민이 운영하는 제과점업에까지 진출하는 흐름 때문이라고. 제빵 전문 기업으로 출발해 국내 최대 제빵 대기업이 된 '파리바게뜨'와, CJ그룹 계열의 '뚜레쥬르'야. 이렇게 되면 겉과 안의 모양이 더 예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좋은 품질이 유지되는 상품이 많은 대기업 빵집이 고객 대부분을 불러 모으게 되면, 그렇지 못한 동네 빵집은 손님이 없어질 게 분명해. 그래서 10여 년 전 동네 빵집이 10개에서 3개로 줄었다고. 이걸 다시 계산해보니까 큰 회사 빵집이 하나 들어오면 작은 빵집은 두 세 개가 문을 닫았다는 거야.


물론 ‘파리바게뜨’ ‘뚜레주르’쪽도 할 말은 있어. <국민일보> 1월 30일자에 나온 내용인데, “운영하는 가맹점주들은 혼자서는 창업하기 어려운 은퇴자가 상당수인데다, 가맹점이 하나 늘어나면 이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도 적지 않다.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 창업을 도와주고, 지역 상권도 살아나면 서로 윈윈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와중에 삼성 회장의 큰 딸, 현대자동차 회장의 딸, 롯데 회장의 외손녀, 신세계 회장의 딸이 커피 전문점 또는 빵집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어. 물론 이 사람들은 동네 골목에 진출해서 빵집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고급 호텔이나 주요 기업 건물 한 구석에 차리는 거라고 이야기해. 게다가 숫자도 50개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하지만 빵이 주식이 아닌 간식인데 따라서 사는 양이 일정한데 빵집이 어디에 있건 그게 크다면 얼마나 큰 문제겠어. 곧장 동네 빵집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빵집뿐이 아니야. 동네 포장마차에서나 팔 법한 순대를 범LG그룹인 아워홈이라는 대기업이 팔아. 대명그룹은 떡볶이 사업까지 진출했고. 라면, 비빔밥, 청국장, 물티슈 사업에까지 나선 대기업도 있다고. 원조는 사실 롯데슈퍼, GS수퍼마켓,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이마트에브리데이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이지. 이곳은 롯데마트, GS리테일,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모회사로 각각 두고 있어. 마트에 들어가는 돈은 점점 커 가는데 수입은 일정하다보니 그래서 이 대형마트들이 규모를 줄인 슈퍼마켓을 동네 구석구석에 차렸잖아. 기업의 생존을 위해 자기보다 규모가 작고 힘이 없는 상인의 몫까지 차지해가는 것. 아무리 봐도 강자의 횡포 아니겠어?


결국 삼성가에 이어 현대, 롯데까지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고 해. 늦었지만 다행이야. 기업의 존립 목적이 이윤 추구, 즉 남는 장사하는 것이지. 그러나 큰 기업인만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면 거기에 걸 맞는 책임을 져야 옳을 거야.


물론 대기업들의 동네 빵집 진출의 목적은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어. 빵집을 운영하려던 사람들, 보면 재벌 가문의 아들 딸 또는 손녀 손자잖나. 이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는 한, 나중에 대기업 회장 자리를 이어받게 될 거라고. 그러다보니 경영수업을 받으려 하는 거야. 그리고 ‘유능하다’고 인정받으려 하는 거지. 그러다보니 취미에 맞는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어머니가 일군 기업의 도움을 얻어서 운영하는 사업을 하려는 거야. 돈을 쉽게 꾸기도 하고, 그 기업이 마련한 유통망, 판매망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이 사업들, 공통점이 뭔지 알아? 아파트 짓는 건설업, 배 만드는 조선업 같이 망하면 큰 손해를 보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야. 그래서 사업하다 망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 따위는 걱정 안 하는 거지. 이런 걸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하던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가 “재벌 2, 3세는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문제 삼았다고.


이즈음에서 ‘투자의 달인’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생각나. 이 분은 2006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면 누가 싫어할까. 당연히 가만있으면 그 재산을 유산으로 받을 자녀들 아니겠어? 버핏 할아버지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하는데, 이 분들의 심정은 어떨까. 첫째 딸 말은 이래. “낡은 주방을 넓히려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려다가 ‘멀쩡한 주방을 왜 고치느냐’는 타박만 들었다.” 일찌감치 아버지 덕 볼 생각을 접었던 거지.


또 한 명이 있어. 1969년에 나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봤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라고 있는데, 여기 주연으로 나왔던 미국 사람 폴 뉴먼 할아버지가 그래. (지금은 세상을 떠났어.) 이 할아버지는 1982년에 회사를 하나 차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만드는 기업인데. 첫해에만 92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대성공이었지. 하지만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이런 말을 했어.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라고. 실제 미국에는 앞서 이야기한 버핏 할아버지 같은 갑부들이 수시로 재산을 기부하고,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이) 세금을 걷어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빵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빵 이야기로 갈음하자. 유럽에 가보면 우리나라처럼 골목 빵집이 많아. 아침마다 길쭉한 바게트를 사거나 갖가지 빵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규모는 작아도 짧게는 수십 년에서 오랜 곳은 수백 년 된 가게들도 있어. 대를 이어 직접 빵이나 과자를 구워내 파는 ‘가문의 전통’인 경우가 많지. 외국 특히 서양은 우리와 달리 빵이 주식이야. 말하자면 우리의 쌀 즉 밥과 같은 격이지. 우리끼리는 쌀 한 톨 허투루 소모하는 것을 경계하듯, 서양은 빵을 ‘하느님의 힘’으로 추앙해. 흔히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하잖아. 먹을거리가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거야.


‘대기업이 빵집을 안 한들 동네 빵집이 잘 될 거 같은가’ 하는 반론도 없지 않아. ‘대기업 발목잡기는 우리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본래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어. 어느 한쪽이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구조를 낯설어했다고. 나쁜 전통일까. 동네의 사랑방이며 또한 주민의 마실장소가 된 빵집. 그 아름다운 벗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3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학생인권조례 이야기

친구들, 새봄이 다가올 무렵이야. 곧 새 학년에는 ‘공감’의 능력을 키웠으면 해. 남이 아파하면 그 상처만큼 같이 아플 수는 없겠지만 그 고통을 최대한 이해하라는 거야. 최근 중학교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집단 따돌림 또 폭행이 얼마나 심해. 놀라운 사실은 상당수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야. 단적으로 말해서 맞으면 아플 거 아니야. 그런데 상대에게 생긴 상처에는 관심 따위가 없다는 거지.


그런데 새해 들어서 몇몇 어른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없애자고 주장해.


학생인권조례는?


 대표적으로 이런 거야. ‘사랑의 매’라도 선생님이 학생에 대해 체벌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언니 오빠들에게 야간자율학습 · 보충수업을 강제로 요구할 수 없게 돼 있으며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하든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도록 한다고. 이 인권조례는 경기도에 이어 최근 서울의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시행되고 있어.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는 주장이야. 왜냐고. 예전 같으면 말 안 듣는 학생이 있으면 체벌을 함으로써 다스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인권조례 때문에 안된다는 거야.


실제로 인권조례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의 모임(한국교총)이 조사한 내용을 보니까 답한 교사의 76%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네. 이 선생님들은 교사는 가해자, 학생은 피해자로 못 박아 두고서는 학교 교육이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게다가 이렇게 되면 학생의 본분을 벗어난 행위 즉 왕따 폭력까지 못본 척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학생들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거지.


이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인권조례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경기도의 경우를 보자고. 여기는 제정하고 1년이 지났지? 학교폭력이 2014건으로 2009년보다 54.1% 늘긴 했어. 하지만 인권조례가 공포되면서 폭력이 있는지 없는지 더 면밀하게 조사하게 되면서 나온 통계야. 다시 이야기해서 학교 폭력의 실상을 더 열심히 살피다보니 그 사례가 더 드러나게 된 셈이라는 거지. 반론을 제기하는 쪽, 즉 ‘인권조례로 폭력이 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쪽 입장은 이래. 실제 2년 전부터 체벌 대신 상담을 강화한 시흥 장곡중학교의 경우 학교폭력이 1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거의 사라졌다고. 학교폭력으로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한 대구는 인권조례 제정이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런 질문을 던지고자 해. 자유를 하락했을 경우, 사람들이 모두 제멋대로 행동할까 하는 점이야. ‘그렇다’라고 보는 쪽은 이런 이유로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통제와 억압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지.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사람은 존엄하게 여겨져야 할 대상인데 그렇게 나쁘게 인식해서야 되겠냐며 반기를 들어. 되물어볼게. 지금껏 한 번도 인권조례가 없었던 때에는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이 없었던 것일까.


학교 폭력만 놓고 보자. 왜 가해자가 나왔지? 많은 심리학자, 교육학자는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가해자가 된다”고 진단해. 가해자가 되면 공범이 되는데도 외톨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그렇다면 더 거슬러 올라가서 피해자가 왜 나오는 것일까 따져보자. “공부 잘하는 애, 집이 잘 사는 애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찬밥 더운밥이 나뉘자, 학생들은 그 차별에 익숙해 진 것”이라는 분석이 있어. 어른들부터 사람을 나누고 대접을 달리하니까 어린이들도 ‘그런 게 정당하구나’하는 생각에 누구는 떠받들고 누구는 못살게 군다는 거야.


뉴스맨 생각은 이래.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면 방종한다, 사람은 규율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정말 그러한지 안 그런지 실험부터 제대로 하자는 거야. 물론 시행하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혼란이 있겠지. 1980년대에 독재 정권이 끝나고 나서 노동조합 설립이 활발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혼란한가. 인권조례를 시행하기 이전부터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어.


또 인권조례는 무한정 자유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야. 자치와 참여를 통해 스스로 규율하도록 하는 규범으로 알려져 있어. 이건 무슨 이야기냐고? ‘규칙을 어기면 어떤 책임을 진다’고 학생들끼리 뜻을 모으도록 하는 거지. 예를 들어 ‘학교 안에서 폭력은 안 된다’부터 ‘학교에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말자’는 의견까지 이걸 다같이 머리를 모아 숙의하는 끝에 법으로 만드는 거야. 이렇게 되면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 ‘이거 대로 지키라’고 강요된 법 보다 훨씬 지키기 수월하고 능동적이지 않겠어?


물론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으로서는 ‘사랑의 매’를 허락받지 못하는 현실이 꽤나 답답할 거야.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의 폭력은 분명 문제지만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교사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는 과연 교직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낳게 한다고. 사실 학생은 존엄한 인격이기도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교사의 지도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해.


그러나 교사와 학생 사이에 관계는 통제를 하고 이를 순종을 하는 관계이기에 앞서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 존경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봐야해. 그런 것이 없다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들이 다소 힘들고 고되더라도 폭력과 폭언 없는 교실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아니야. 참고 품어주는 끝에 선생님은, 우리 동화 속에서 만나는 설리번 같은 분으로 대접받게 될 거라고.


설리번 


미국의 작가, 정치 활동가 및 교육자인 헬렌 켈러를 헌신적으로 지도한 스승. 헬렌 켈러는 눈과 귀를 제대로 쓰지못하는 장애인이었어.


사실 체벌은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그 사례를 찾기 힘들어. 유럽과 캐나다,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기타 여러 나라에서는 금지되었다고.


인권조례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체벌만이 아니야. 동성애든 아니든 차별하지 말라는 조항도 있어. 동성애를 그릇된 것, 나아가 범죄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걸 두고 동성애가 늘고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질 거라는 반론도 나와. 그러나 이를 두고 '경찰서 지으면 도둑이 증가할 것이다', '병원을 지으면 병자가 확산될 것이다'라는 주장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 차별을 없앰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내용을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또 하나는 학생들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야. 이걸 허용하면 공부는 안 하고 날이면 날마다 데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그러나 우리 헌법은 집회와 시위를 보장해. 이 아이들이 교내에서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훈련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3·1운동 때 유관순 누나도, 4·19혁명 때 앞장섰던 주인공도 모두 고등학생들 아니었나. 이런 훈련 없이 사회에 나갈 경우 불법 폭력 시위로 곤란에 처한다면 더 큰 문제 아닐까 싶어.


이런 가운데 유엔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환영하는 편지를 서울시의회에 보냈어. "이 조례가 그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의 사생활,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사유로 행하여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내용이야.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할아버지도 "문화적 태도와 보편적 인권이 대립할 때는 보편적 인권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어. 이 말은 아무리 우리 사회가 학교와 선생님을 하늘처럼 여겨왔더라도, 개인의 인격을 더 소중히 여기는 보편적 인권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뜻이지.


친구들, 인권은 나라와 법, 문화를 떠나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 권리야. 심지어 전쟁 포로에게도 적용된다고. 공감하는 한해가 돼 달라도 당부했지. 인권에 대한 바른 생각 갖기는 첫 출발점이야. 함께 토론하며 그 문화를 만들어가자. 우리 모두는 존귀한 사람들이니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2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다문화 이야기

친구들, 2012년 새해에 큰 기쁨과 보람이 넘쳤으면 해. 뉴스맨은 지금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있는 중이야. 미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 나라를 가보기는 처음이야. 미국 사회에는 피부색이 다른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라고는 하는데 남의 나라가 낯선 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사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원조 받았을 때만 해도 백인을 우러러본 면이 있었지. 지금도 어른들 중에는 미국이 우리의 ‘형님 국가’이며, 이 나라와 함께 손잡을 때에 무조건 덕 볼 거라고 믿는 경우가 있어. 이제는 우리도 잘 사는 나라가 된 만큼 다른 나라 사람에게 지나치게 위축될 이유는 없다고 봐. 또한 우리보다 형편이 안 좋은 나라 사람을 우습게 알고 멸시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돼.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잖아.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우리 사회가 한 피부를 가진 단일민족에서 이제는 서서히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거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20만 명에 달해. 실제 매년 수 만 명의 외국인이 자기네 나라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있어. 중국인, 베트남인, 필리핀인이 그래. 또한 외국인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아울러 한국인을 배우자로 만나 결혼하는 외국 출생자도 많아지고 있는 형편 아니야? 15만 가구가 그렇다는 통계도 있어.


한국인이 되고자 한 사람이 요즘에만 나온 것은 아니야. 고려시대에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정책이란 것이 있었거든. 정선 이씨는 베트남계이고, 충주 매씨와 남양 제갈씨는 중국 성이야. 몽골계인 연안 인씨, 여진계인 청해 이씨, 위구르계인 덕수 장씨, 일본계인 우륵 김씨 역시 고려에 생긴 성이라고 해. 또한 이목구비가 확연히 다른 서양인으로 처음 귀화한 경우도 있었는데 조선 인조 때 박연(朴淵)이 그 사례야. 네덜란드 뱃사람이었던 그는 일본으로 가던 중 음료수를 구하러 제주도에 상륙했다 관원에게 붙잡힌 후 귀화한 사정이지. 그런데 교통이 발달해 한국으로 오는 길이 편해졌고, 통신 수단이 나아지고 이로써 한류가 거세게 전파되면서 최근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이러다보니 민족은 곧 국가, 국가는 곧 국민으로 동일하게 여겨지던 관행이 많이 사라지게 됐어. 얼마 전부터 군에서는 선서할 때에 쓰던 ‘민족’이란 말을 ‘국민’으로 바꿨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국가와 민족’을 ‘국가와 국민’으로 고친 것이야. 민족을 강조하다보면 다른 나라 민족에서 온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배려라 하겠지. 2013년까지 징병검사 대상인 16~18세 다문화가정 출신 남성이 4000여명에 이르게 되는 현실을 염두엔 둔 거라고 해. 교과서도 달라지고 있어. 2007년부터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그런데 이런 다문화 정책에 대해 생각 바른 사람들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믿고 있어. 하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찾아와 가족이 된 이들을 멸시하는 시선이 있어. 얼마 전 나온 보도에는 지성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짱개’, 흑인 유학생을 ‘깜둥이’라며 대놓고 깔보고 ‘왕따’시키는 사례가 많다는 소식이 있었어.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밑바닥까지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데 올해 이런 충격적인 일이 있었지. 한 노르웨이 사람이 다문화를 지지하는 정당을 반대한다며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쏴 85명을 죽게 했어. 여태껏 “잔혹했지만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나봐.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야. 해마다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이 성대하게 열리는 나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자랑하는 복지국가 아니겠어. 이런 곳에서 평화를 해치는 일들이 벌어진 거야.


이게 정신 나간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 지금 유럽에서는 ‘외국인들 챙겨주다가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며 극단적인 민족의식이 힘을 얻는다고 해. 이미 역사로부터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정 나버린 나치가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선거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해.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인이라는 정당이 대표적이야. 영국과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로도 그 열기가 점점 번진다고 해.


‘왜 다문화를 거역하느냐’고 비판 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야. 단일민족국가였을 때에는 일자리도 돈벌이도 모자라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이 유입되면서 그 파이를 나눌 수밖에 없어 가난하게 돼 버렸다는 게 외국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주장이야. 보수를 조금만 줘도 일하겠다는 외국인에게 아무래도 밀린다는 것이야. 우리나라 사람 중 일부도 이런 이야기를 똑같이 해. 결국 인종차별은 모두가 두루두루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거야. 이런 현상을 어려운 말로 ‘양극화’(어느 한 쪽은 잘 살고 어느 한 쪽은 못 살게 되면서 두 쪽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현상)라고 해.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는 지혜와 의지를 가졌을 때에 우리 사회에 다문화는 탈 없이 안착될 거라고 믿어.


그렇다면 다문화가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이득이 있냐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4대 0으로 완파했어. 그런데 독일 월드컵팀은 23명 중 11명이 외국계였어. 선수 중에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폴란드, 외칠은 터키, 제롬 보아텡은 가나, 카카우는 브라질, 자미 케디라는 튀니지계야. 물론 모두 독일국적이지. (흥미로운 것은 그 독일이 100년도 안 된 지난 세월, 독재자 히틀러에 의해 자기네 나라 민족이 최고이며, 다른 족속은 경멸해도 된다는 식의 ‘아리안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나라였다는 점이야. 실제 독일 극우파들은 비독일적인 이 팀을 ‘잡탕팀’이라며 빨리 떨어지길 바라는 일도 있었다고 하고.)


월드컵 성적만이 아니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 동등한 혜택이 부여되는 나라가 된다면 구성원 모두 각기 다른 지혜와 재능으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지 않을까.


그래. 다시 말하지만 균등한 기회, 동등한 혜택이 필요해. 외국에서 이곳으로 와 한국 남편을 만난 이주 결혼 여성이 많잖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는 결국 엄마에게 말을 배워야 하는데, 엄마부터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아 애먹는 경우가 많다고 해. 어린이 10명중 4명이 또래보다 6개월 이상 언어발달이 늦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있어. 말도 안 통하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 받지. 이러다보니 열에 일곱은 적응하지 못하고 장기결석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계 엄마를 탓해야 할까. 취학 전에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도 없는 것을 탓해야 할까. 부럽게도 이웃나라 일본은 구역 단위로 초등학교에 외국인이나 이민 자녀를 위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이나 전담 선생님이 있다고 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잖아. 여기에 쓰이는 돈이 아까울리 없을 텐데. 많이 아쉽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를 수준 높다 말할 수 없을 거야.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한류 열풍의 진원지인 나라, 야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은 물론, 양궁, 사격 등 기록 종목 모두를 다 잘하는 스포츠 초강국, 우리나라의 수많은 자랑거리도 소용없을 거야. 혹시 주변에 말 못하고 소외된 다문화 가정 친구가 있으면 먼저 손 내밀고 벗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친구들, 2012년 새해에는 그런 성숙된 모습, 보여줄 수 있겠어? 기대할게!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2년 1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친구들, 올림픽 이렇게 보자고

#기사1. “‘제2의 김연아’로 불리는 곽민정(16·군포 수리고·사진) 선수가 지난 2일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 귀국 기자회견 때 단상 옆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이 들끓고 있다. 그는 회견 내내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다. 곽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 기록을 경신하며 1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누리꾼들은 3일 “메달을 따야 자리에 앉힌 거냐”라며 항의를 표시했다. “메달 못 땄으니 서서 반성하라는 건가.”(다음, 프리티아노)” (<한겨레> 3월 4일자 “‘민정이 앉혀줘’ 누리꾼 와글”)


#기사2.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각각 은ㆍ동메달을 차지한 스코브레프(러시아)와 봅 데용(네덜란드)가 금메달을 거머 쥔 이승훈을 들어 올리며 축하 세레머니를 벌인 것이다.” (모 언론, '은ㆍ동이 금을 들어올리다')


이 두 기사를 본 뉴스맨은 내내 이랬어. “씁쓸하구만.”


밴쿠버 올림픽. 친구들 어떻게 봤어? 태평양 건너 땅에서 연일 날아오는 낭보(朗報, 기쁜 소식)를 접하면서 반갑기 보다는 왠지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아. 관심을 갖고 지켜본 종목이 그동안 하나 없었는데 올림픽이 개막됐다고 이때부터 TV앞에서 열광하는 게 멋쩍어서 그랬을 거야.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없더라도 우리는 과연 이렇게 열광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니까 동계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싹 사라진 듯 해. ‘이제는 비인기 종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자’며 목청을 높였던 우리가 무관심의 자리로 되돌아왔다는 거지. 


금메달은 1등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다른 메달에 비해 값질 수밖에 없어.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가치마저 금, 은, 동메달로써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말이야. 이런 점에서 뉴스맨처럼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성을 많이 해야 해. 항상 헤드라인에는 금메달을 딴 선수만 배치하잖아. ‘모터범’ 파워, 빙상계의 ‘꿀벅지’ 이런 기사를 접하다보면 사실 읽고 보는 사람 뿐 아니라 전하는 사람까지도 낯이 뜨거워지게 돼. 물론 기자 형 누나들이 언론사에서 활동할 때 “이름이 알려진 순서대로 기사 비중을 키우라”고 배워. 그러다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금메달 선수에게 주로 이목을 모으게 되는 거지.


왜 1, 2, 3등에게 각각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할까?


메달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무엇을 기념하거나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서 유래해. 올림픽에 쓰이는 금, 은, 동메달도 당연히 우승자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겠지? 과학적으로 보면 금, 은, 동은 모두 전이 원소 가운데 같은 계열인 1B족에 속하는 금속이라 할 수 있어. 이 말은 다시 이야기해 녹이 슬거나 화학 약품에 의해 부식될 가능성이 가장 작다는 거야. 그만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똑같은 1B족 금속인 금, 은, 동은 왜 1, 2, 3위로 차등됐을까. 아마도 가격이 높은 순서대로 순서를 매긴 것이 아닌가 판단돼.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금메달에 목을 내놓고 기대할까? 이걸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스포츠 국가주의’를 이야기해.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여당과 야당으로, 또 남과 북, 동과 서로,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나뉘어 참  많은 갈등이 있어. 그런데 말이야. 올림픽이나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제 경기가 벌어져 우리 선수나 팀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벌이면 텔레비전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쳐. 그러다가 이기기라도 하면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안고 기뻐하지. 그런데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거의 없는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겐 발생할까. 여태껏 단일민족 국가로써 이어오면서 생긴 응집력 때문일 거야.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힘 센 다른 나라로부터 지배와 속박을 당했던 우리의 역사적 응어리 때문이 아닐까 해. 다른 것에서는 늘 밀리다가 스포츠에서 잠시나마 1등이 되는 사실에 환호하게 된다는 거지.


스포츠 국가주의란


전쟁을 통해 이긴 국가가 진 국가를 상대로 느끼는 우월감. 이 우월감이 하나의 의식 체계가 된 것을 말해. 많이 어렵지? 다시 이야기해볼 게. 스포츠 국가주의는 스포츠를 통해 국가와 국가 사이에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가려지는 것을 말해. 이 스포츠 국가주의가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부족국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 지배하는 부족이 지배당하는 부족의 조상 무덤을 파서 그 두개골을 꺼내 발로 차고 다니면서 우월성을 과시했다는 데서 축구 스포츠 국가주의가 비롯됐다는 설도 있어. 한 나라의 우월성을, 얼마나 돈이 많은지, 얼마나 무기와 군인이 많은지를 따지는 것도 또 다른 개념의 국가주의야. 어때? 유치하지?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로 가야 하는 시대에 이런 국가주의는 낡은 생각이며 썩은 고집이 아닐 수 없어.


그렇다면 이런 ‘스포츠 국가주의’가 온당할까.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라는 책을 쓰신 정희준 동아대 교수님 이야기는 이래. “우리 국민은 스포츠 종목, 팀, 선수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금메달과 외국에서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스포츠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한국인은 스포츠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스포츠를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는 강대국에게 위협받는 ‘열등생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탈출구는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박치기 왕’ 김일 선생부터 국민남매 박태환과 김연아까지 스포츠는 모든 삶의 시름을 덜어주는 판타지(환상)인 셈입니다.”


하지만 1등을 영웅으로 미화하고, 그 밖의 선수들은 ‘투명인간’ 나아가 ‘잉여인간’ 취급하는 것은 과연 바른 것일까. 이런 게 느껴지지 않아? 1등만 하면 그 선수를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개인적인 어려움도 극복했으며, 운동 말고도 할 수 있는 장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신문 방송이 묘사하는 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야. 그런데 이런 보도는 1등한 사람만이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어.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주목받게 된 선수들이 자칫 ‘앞으로 더 잘해야 하는데...’하는 중압감 때문에 앞으로 기본적인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야.


그런 의미에서 봅슬레이·스키점프·모굴스키·루지 같은 비인기 종목에 도전한 선수들에 관련한 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던 점은 뉴스맨을 더욱 슬프게 만들어. 다른 나라는 큰돈을 들여 팍팍 밀어주는데 우리의 경우는 선수들 스스로 돈을 내서 도전하게 만들고 있잖아. 게다가 성적이 좋지 않다고 관심까지 끊어버리고. 뉴스의 가치 중에는 ‘저명성(널리 알려진 사람의 기사일수록 비중이 있다는 뜻)’ 말고도 ‘이상성(특이한 일일 수록 비중이 있다는 뜻)’도 있어. 아무도 모르는 영역에 도전하겠다며 온몸을 불태우는 선수들의 노력과 의지는 뉴스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겠지? 우리 언론들, 그런데 ‘저명성’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것은 아닐까. 


1등만 기억하는 현실은 올림픽의 정신과도 어긋나. 고대 올림픽 때 대회가 열리기만 하면 모든 전쟁은 중단됐어. 왜냐. 전쟁을 하면 젊은이들이 경기에 참석할 수 없게 되니까. 이 정신은 근대 올림픽에도 이어져 내려와. 올림픽은 인류 평화와 화합을 기치로 내 걸지. 올림픽을 재건한 피에르 쿠베르탱 아저씨는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 그렇다면 1등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겠지만 2등, 3등 아니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불굴의 투지로 경기했다가 뒤쳐친 선수라도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는다면 다음에 더 잘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냐 이거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올림픽이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해야 할 축제여야 한다는 뜻이야.


미국의 심리학자인 빅토리아 메드벡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님이 분석한 재밌는 결과가 있어. 올림픽 시상대에 선 선수들 표정을 일일이 분석해봤는데,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는 거야. 2위는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에 실망하지만 3위는 ‘그래도 메달을 딴 게 어디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을 거야. 몇 년 째 조사하는 세계 행복지수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가난한 나라들이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을. 우리가 1등을 좋아하는 것은 1등을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 아니겠어? 그런데 1등이 되면 항상 행복할까? 언젠가 2등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초조함은 없을까? 1등하지 말자는 게 아니야. 1등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야. 


너무 1등만 강조하면 이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어. 반칙이 난무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사회가 1등만 추앙하면 선수들이 ‘2등 이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편법을 써서라도 우승하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거야. 2004년에 있었던 아테네 올림픽 때, 여자 투포환 금메달리스트를 포함한 26명이 약물 복용으로 메달은 물론 선수 자격까지 박탈됐었지? 그래서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선 아테네 때보다 25%나 늘어난 4500회의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했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1등만 기억하는’ 언론보다 우리 국민이 더욱 성숙한 것 같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산 역사’인 이규혁 아저씨. 메달을 딴 모태범 형 못지않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어. ‘국민영웅’,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영예도 인터넷 게시판을 장식했어. 5번에 걸쳐 20년 동안 올림픽에 도전했던 끈기와 열정. 비록 올림픽만 되면 지독하게도 운이 따르지 않아 성과는 없었지만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열의에 많은 국민이 눈물을 훔쳤어. 또 영화 ‘국가대표’ 때문에 더욱 주목받은 한국 스키점프팀도 박수를 받았어. 40위, 48위에 머물러 최종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국민은 “그래도 고생했다. 자랑스럽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야. 


친구들, 이 영화 봤어? ‘국가대표’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의 국가대표팀이 급히 조직되는데. 워낙 이 종목이 우리에게 생소하다보니 국가대표로 차출된 사람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였던 사람,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다가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 나이트 클럽 웨이터, 고깃집 아들, 소년 가장, 이런 소년 가장인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 4차원 동생이야. 변변한 연습장이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떠돌아 다녀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 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과 공사장 안전모 등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하게 된다는 줄거리야. 흥미롭겠지? 문제는 이 영화가 전부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야. 아직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등록 선수는 다섯 명이 전부. 이 선수들은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봐.


지난 1월 30일에 방송됐던 MBC TV ‘무한도전’ 기억해? 탈북자 출신의 한국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일본의 도전자 텐쿠 쓰바사 선수의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2차 방어전 경기를 소재로 한 내용 말이야. 두 선수 모두 불우한 환경 속에서 복싱을 해왔던 주인공으로 경기 때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정작 중요한’ 누가 이겼는지를 알려주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무한도전’은 말해. “둘 다 최선을 다했기에 모두가 승자였던 경기”였다고. 이 프로그램에서는 승자와 패자도 없었고, 오랜 앙숙인 한국과 일본도 없었어. 오로지 ‘사람’만 있었던 거지. 이 프로그램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알 수 있어. “내내 눈물을 흘렸다.” “경쟁만 알았던 나는 외눈박이였다. 경쟁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런 내용들이야. 


스포츠를 이해하려면 그 경기 결과만 따져서는 안 돼. 그 선수가 살아왔던 과정, 경주했던 노력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거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복싱의 백종섭 아저씨가 라이트급 국가대표로 나가 도전했어. 하지만 이 아저씨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8강의 벽을 넘지 못했어. 마지막 기회였어. 국가대표로서는 정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른 살 나이가 코앞에 다가왔거든. 8강 문턱에 섰어.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던 거야. 목과 가슴을 후비는 통증이 찾아온 거지. 병원에서는 기관지 파열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어. 당연히 경기에 나갈 수 없었어. “링 위에서 죽겠다”며 출전을 호소했지만, 결국 기권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이 아저씨는 패배자일까?


김연아 언니가 왜 항상 1등하는 줄 알아? 1등해야 한다는 집념 때문일까. 아니야. 즐기기 때문이야. 마찬가지야. 공부도 즐기고, 운동도 즐기면 행복은 저절로 오게 돼 있어. 어른들은 그럴 수 있지만, 뭐 하나 꿀릴 것 없이 자라나는 친구들은 이런 칙칙한 일등주의에 대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아? 2등부터 꼴찌까지의 삶에도 1등에게는 없는 진지한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들지 않아? 세상에 100명만 있다면, 2등 이하 99명은 모두 없어져도 되고, 1등하는 한 명만 필요할까. 아니야. 금메달을 따야 기쁘다면 우리는 스스로 열등감에 젖어있다는 증거야. 그러나 금메달 말고도 은메달 동메달 그리고 메달권에 들지 못한 도전자를 기억하며 박수 보낸다면 우리는 승부를 초월한 넓고 깊은 인격의 소유자가 될 거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안 되게 하는 거. 그건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어.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10년 4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특목고 이야기

애벌레가 세상에 나왔어. 그리고 다함께 어디론가 기어가. 기어가보니 오르막이 나왔어. 오르막에 이르니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어. 놀랐어. 하늘 높은 기둥 그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눈을 돌려보니 꼭대기 그 주변에는 애벌레들이 올라간 그 기둥이 천지에 널려 있었던거야.


우리는 태어나서 영문도 모른 채 다 같이 학교로, 학원으로 가. 더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누구도 여기에 대해 “왜 이래야 하는 거죠?”라고 묻지 않아. 그렇게 해서 남을 따돌리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세상 꼭대기에 이르게 되지. 남에게 우러러 보이는 그 곳, 세상 꼭대기에는 어떤 자리가 있을까. 판사도 그 가운데 하나일거야.

 

법원에서 재판장하는 분들, 이 분들이 판사 아저씨 아줌마들이야.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어디일까? 바로 대원외국어고등학교야. 좀 이상하지 않아?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나오면 외국어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어?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을 우리나라 판사들, 어째서 이렇게 외고 출신이 많을까?


“에이, (외국어) 모르는 것 보다 낫잖아요” "그 학교는 고등학교 중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판사 정도 되려면 그 학교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외고는 애초 외국어 영재를 키운다는 특수 목적을 내걸고 시작했어. 그래서 외고를 특수목적고등학교 즉 특목고로도 부르는 거라고. 지난 4년 동안 외고를 나와서는 당연히 가야할 어문계에 진출한 학생이 불과 30%를 밑돈다고 해. 어학 공부하러 돌아와 놓고는 10명 중에 3명 정도만 어학 공부를 계속한다는 거지. 실제로 외고에 가면 어문계열 뿐 아니라 자연계반, 의대진학반이 있어. 외고에 이런 게 왜 있을까?


또 다른 특목고, 과학고는 어떨까?


또 다른 특목고로는 과학고등학교(과학고)가 있지? 여기는 과학 영재를 키우기 위한 특수 목적을 갖고 있다고. 과학고는 그럼 어떨까. 외고처럼 다른 쪽 그러니까 어문 계열로 가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을까. 아니야. 200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83.6%의 과학고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해 외고와 다른 현실을 보여 줬어.


그래.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는 일반고등학교보다 더 우등한 엘리트 학교가 돼 버렸어. 대학 수학능력 평가 점수 좋기로 1등부터 30등까지인 학교를 보니까 26개가 외고였어. 그러니 학교와 학교 사이에 계급이 생기는 거야. 외고는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명문고란 이야기야.


외고에 보내는 것은 따라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으로 보면 될 거야. 좋은 대학에는 왜 가려고 할까.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인 신분도 매우 높아진다고 보는 거야. 좋은 일자리는 그렇다 치고, 양반 천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웬 신분이냐고? 물론 우리나라 헌법에는 ‘법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돼 있어. 신분은 없는 거야.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의 학력을 따지는 게 우리나라는 참 심해.


그러다보니 수많은 엄마들이 자기 자녀를 신분 때문에 마음 아프게 살지 말라는 뜻으로 외고에 보내려고 해.  1등 학교에 보내면 상류층으로 살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당연히 아이에게 외국어에 취미가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였어. 이러다보니 외고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모두 데려감으로써 1등 학교로 변질된 것이야.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학원 다녀야 외고 보낼 희망이 있다’는 말이 있나봐.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정신없이 학원 다니는 형 누나들도 있어.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 초등학교, 중학교 같은 공교육은 무시하고, 학원 같은 사교육에 좀 더 의존하지 않겠냐고. 학교에서는 쉬고, 학원가서 진짜 공부한다는 학생도 있다고 해.


외고에 가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


2007년에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사교육 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야.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등학생의 94.2%, 중학생의 87.6%가 사교육을 받았다는 거야. 얼마나 돈을 썼냐고? 연간 5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초등학생의 경우 28.6%, 중학생의 39.9%라고 해. 그렇다면 통상 초등학교 고학년인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다닌다면, 총 2500만 원을 쓴다는 얘기 아니겠어?


이 분위기에 대해서 외고는 “이게 다 우리 책임이란 말인가”라며 억울해 해. 또 “어학 능력 갖춘 아이들, 그 실력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지. 경우 없이 무조건 평등한 교육만 한다면, 영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외국어에 취미가 있는 아이에게 맞춤형 교육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야. 그 아이들이 외고에 들어가려고 하면 한참 뒤에나 줄 서야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정두언 아저씨가 “이럴 거면 외고를 폐지하자”라며 목소리를 높였어.


정두언 아저씨가 주장하는 방법은 이거야. 외고를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로 전환하자는 것이야. 자율형 사립고는 중학교에서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의 상위 50% 내에서 추첨 선발하는 거야. 상위 50%면, 전교생이 500명이면 250등 안에 들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거고, 추첨 선발한다면, 1등이 떨어질 수 있고, 250등이 붙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비싼 사교육을 받더라도 추첨에서 떨어지면 외고를 못 가는 거지. 이러면 누가 사교육을 받으려 하겠어. 따라서 사교육 열풍은 크게 줄어들게 되겠지?


하지만 입시만 고치면 될까? 아니야. 지금도 보면 대부분의 자율형 사립고가 입학한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영어 수학만 가르친다는 거야. 대학 가기 위한 공부에만 열중하는 거지. 뭘 배우고 가르칠 지 보다 어떤 대학에 갈 지에 혈안이 돼 있는 거지. 따라서 입시만 고칠 게 아니라 교육 내용도 외고를 세우게 된 취지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


외고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의 작은 한 부분이야. 외고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 핵심은 경쟁 교육이야. 경쟁의 의미가 빛나려면 잘하는 사람에게 당근을 주고, 못하는 사람은 뒤처지지 않게 뒤에서 밀어줘야 해.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경쟁은 1등부터 몇 등까지는 인정해주고, 몇 등 이하부터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핀란드에선 외고가 필요 없다


핀란드 고등학교에는 학점 제도가 있다고 한다. 필수 과목을 제외하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점을 빨리 이수하면, 이른 시기에 졸업도 가능하다. 학점을 충분히 이수하지 못하면, “잘할 때까지 다시” 이런다는 거야. 이런 방식을 택하면, 굳이 특정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따로 뽑는 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가능하겠지? 교육평론가인 이범 아저씨는 "굳이 외고를 설립하느니, 일반고교에서 외국어 강좌를 다양하게 개설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어.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학업성취도 평가, 친구들, 많이 해 봤지? 원래는 경쟁을 붙여 뒤쳐진 것으로 나온 학교에 대해 지원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도였어. 하지만 일부 학교는 학교대로 평균 점수 높이려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시험 못 보게도 해. 점수가 안 좋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니까. 이런 경쟁,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제는 경쟁의 틀이야. 잘 따져봐. 우리 집이 가난해. 그래서 학원도 못가. 그렇다면 부유한 집에서 학원 열심히 다닌 아이들의 실력은 더 낫겠지? 그 애들만 외고에 가고, 또 좋은 대학 갈 가야.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넉넉한 집의 친구들은 10m 앞에서 출발하는 거야. 가는 길은 평탄하고 고르고. 그러나 나는 늦게 출발한 것도 서럽지만, 자갈, 웅덩이가 있는 길을 달려야 해. 이래서 경쟁이 되겠어?


더 큰 문제는 잘못된 경쟁이 낳는 부작용이야. 좋은 사교육을 토대로 좋은 외고에서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는 친구들. 이 친구들만 훗날 외무고시 행정고시 패스해서 고위 공무원이 되고, 사법고시 통과해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고, 언론고시 합격해 언론사 기자, PD, 아나운서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 부잣집 아이들은 계속 상류층이 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계속 하류층이 되지 않겠냐는 거지. 이렇게 되면 앞에서 이야기한 ‘신분’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어.


이건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니야. 우리보다도 앞서서 경쟁 교육을 시도한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자고. 프랑스에는 국립행정학교가 있어. 여기서는 주로 정치인, 행정가들을 양성해. 그러다보니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까지 이 학교 출신이 많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국가 시스템 자체가 잘 바뀌지 않아. 아울러 선후배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다보니 좋은 인재를 발굴할 수 없는 한계도 있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고 불리는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우리나라 핵심 요직에 진치고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어. 같은 맥락이라고.


교육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이걸 풀려면 제도나 정책 하나로는 불가능하다고 봐. 예를 들어 학업 실력 대신 착한 마음씨를 보고 대학 입학을 결정하겠다고 하면, 아마 착한 마음씨 기르는 학원이 생겨날 걸. 우리 친구들, 왜 배워? 나는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고 답하지 않았으면 해. 누나들이 다니는 한 고등학교에 가면 “1시간 덜 자면, 남편 직업이 달라진다”라고 돼 있어. 1시간 더 공부하면 좋은 대학가고, 그 조건에 맞춰 좋은 남편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야. 슬프지 않아?


나는 ‘왜 공부하니’라고 물었을 때, 친구들이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했으면 좋겠어. 기왕이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했으면 더 좋겠고. 공부하되, 나를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나는 물론, 우리 이웃, 우리 사회에 내가 기여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했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어?

 

아, 애벌레 얘기, 그 끝이 궁금하지 않아? 꼭대기에 오른 애벌래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처럼 내려온 애벌레들을 만나. 그 애벌레들은 함께 어울려 지내다 허물을 벗고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가 돼 하늘로 날아올랐어. 애벌레일 때 기를 쓰고 오르던 기둥 꼭대기도 날개짓 몇 번으로 올랐어. 애벌레는 웃었어. 정상을 향해 오르던 그때의 부질없음을.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야.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09년 12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인사청문회는 왜 하나

십 수 년 전만 해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총리나 장관을 시킬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달라. 총리는 물론, 장관도 국회에 나와서 자신의 모든 과거를 검증받아야 해.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논문 표절, 세금 탈루 이런 식으로 법을 어긴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밝히는 것은 기본이고, 과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다 추궁 받게 돼. 자기 뿐 아니야. 자신의 직계 가족들도 다 현미경 위에 놓인 표본이 돼. 이 과정을 거치면서 큰 문제가 없으면 그 자리에 오르게 되겠지. 하지만 흠결이 너무 커서 논란이 되면 스스로 사퇴하거나 임명권자가 임명을 철회하던지 아니면 국회에서 ‘이 사람 못 쓰겠습니다’라며 인준을 거부하게 돼.


인사청문회에서는 도덕성만 따지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도 될 인물인지도 가려. 사실 자기가 자리에 앉았을 때, 펼칠 정책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가리는 게 청문회의 기본 목적이야. 그렇다고 도덕성이 다음 순위냐 하면 그렇지 않아. 정책은 참모들의 도움으로 충분히 추진할 수 있어. 하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많으면, 무슨 정책을 펴도 추진하는 주체들 즉 공무원이나 관련 종사자들에게 말발이 서기 어려워. 그래서 뒤가 구린 공직자가 임명되면 ‘반쪽짜리’라고도 해. 따라서 도덕성 검증은 첫 단추라 할 수 있겠어. 


최근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운찬 아저씨가 국무총리에 임명됐지? 이 아저씨는 병역 의혹과 위장전입, 논문 중복게재, 기업인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세금 탈루해서 줄잡아 6개에서 8개에 이르는 의혹과 결함이 제기됐어. 구체적으로 나이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군대에 안 갔다 오고, 자기가 썼던 논문의 내용 일부를 ‘예전에 썼던 것입니다’라는 말 한마디 안 붙이고 다른데 또 쓰고, 국립 대학교 총장이면 (교육) 공무원인데 기업체 대표로부터 ‘용돈으로 쓰라’며 돈을 받았고, 게다가 수입의 상당부분을 신고하지 않아 소득세를 떼어먹었다는 의혹을 샀던 거야. 그런데 정운찬 아저씨는 이런 변명 저런 변명으로 덮으려 했었어. 야당은 “문제가 많다”면서 “총리 못 시키겠다”고 했지. 하지만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결국 총리가 됐어.


누가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나요?


총리와 장관 모두 청문회에 나온다. 그러나 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이 사람 안 된다’라고 판단할 경우,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와 오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 즉 국회의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대법관, 감사원장이다.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해서 과반이 찬성하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아 그 직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반대해도 대통령이 임명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나는 자리는 국무위원(장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청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원칙은 유명무실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속한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을 훨씬 웃도는 167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반기를 들지 않는 한 한나라당은 혼자의 힘으로도 대통령이 세우고자 하는 사람 모두를 그 자리에 앉힐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엔 이러지 않았어. 2002년 첫 여성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장상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할머니는 위장전입을 했다는 이유로 결국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어. 물론 자리에 오르긴 했어도 도덕성 문제 때문에 얼마 못 가 스스로 물러난 아저씨 아줌마들이 적지 않았어. 그러다보니 청와대에서 “총리하시겠습니까?” “장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 못 합니다. 인사청문회 자신 없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고 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씁쓸한’ 상황인 거지.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높은 자리에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분들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일거야.


혹시 이런 친구는 없을까? ‘차라리 이렇게 망신주고 거짓말하는 식의 청문회라면 안 하면 안 되냐’라고.  실제로 정치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청문회가 쓸모없다’라는 주장도 나와. 아무리 잘못을 들춰내도, 대통령 아저씨가 ‘저 사람 쓰겠다’ 이러면 꼼짝없이 써야 하잖아. 그렇게 돼서 높은 자리에 올라도, ‘문제가 많은 공직자’라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 분들이 제대로 일을 하겠냐 이거야.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없어봐. 최악의 경우, 뇌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 검증도 안 받고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 권력을 이용해 자기 이롭도록 악용하지 않겠냐 이거야. ‘국민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인사청문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 


궁금하지 않아? 언제부터 청문회가 시작됐는지? 1787년 미국에서 비롯됐어. (미국은 정부가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나뉘어져 있지? 우리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부산시, 광주시,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같은 지방자치단체를 말해.) 당시 미국에선 주요 공직자 임명권을 연방정부의 대통령과 주 정부를 대표하는 상원 중 누가 가질지를 놓고 대립했어. 그러다 지명은 대통령이 하고, 인준은 상원이 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어. 결국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인사권 갖고 멋대로 행사하지 않도록 국회(상원)가 견제했고, 또 그러다보니 자리에 오르는 공직자들이 한결 깨끗하졌다고. 이게 청문회의 역사이야.


기껏해야 20년도 안 되는 우리 인사청문회에 비해 200년이 훌쩍 넘은 미국. 지금은 어떨까. 여기 인사청문회는 지금도 여전히 “독해”. 1989년에 있었던 일이야. 교육부 장관에 지명된 글렌 라우리라는 하버드대 교수라는 사람이 청문회 과정에서 20년 전 대학생 시절 등록금 대출을 받고 갚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어. “어려웠던 시절에 그랬다” “수십 년 전에 그랬던 일이다” 이러지 않았겠어? 하지만 결국 물러나게 됐어. 최근의 예도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최고 성과관리 책임자’로 지명된 낸시 킬퍼라는 사람이 있는데, 1995년에 고용했던 가정부와 관련해 납부해야 할 1년6개월가량이 실업보상세 298달러를 미납했다가 10년 뒤인 지난 2005년에서야 이자를 포함한 967달러를 납부했어. ‘그때 깜빡했다’ ‘결국 나중에 납부했다’ 이런 말이 통하지 않았어. 결국 이 사람은 물러났고,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까지 했어. 


미국은 후보자 뒷조사를 어떻게 할까요?


그 이름도 유명한 미국 연방수사국 FBI가 나선다. 그래서 후보자를 2~3개월에 걸쳐 뒤진다. 돈 어떻게 벌었고 썼는지, 인품은 어떤지,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지, 혹시 바람 피웠거나 비리에 공모하는 식의 부적절한 관계는 없는지 샅샅이 훑는다고 한다. 그래도 내정 후에 결격사유가 나오면 자진사퇴하거나 내정을 철회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나라마다 범법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국민이 ‘특히 더 괘씸해하는’ 죄목이 있어. 미국을 볼까. 인사청문회 얘기는 아니지만 들어봐. 현재 힐러리 국무장관의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때에, 한 비서와 연애를 했어. 바람을 피운거지. 그리고 그 사실이 드러났어. 그때 클린턴 대통령은 “그런 적 없다”고 했어. 그러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고. 바람 피워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런 면도 있어. 하지만 더 크게 문제됐던 것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했다는 점이야. 그래. 미국에선 거짓말에 대해 관용하지 않아. 프랑스를 가볼까? 여기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꽤 관대해. 그래서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애를 낳아도 이것 때문에 곤경에 처하지는 않아. 프랑스는 남의 사생활에 대해 꽤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야. 그러다보니 남의 부인과 결혼하려고 본부인을 버린 남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어. 현재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래.


우리는 어떨까. 우리 국민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병역’이야. 군대 갔다 왔느냐 여부야. 정당한 이유로 안 다녀오는 사람은 물론, 방위 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짧게 병역을 대신한 이들도 군대 얘기할 때면 눈치 보기 마련이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배경이 있는 사람은 병역 혜택을 입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26개월 꼬박 다 채워 복무한다”는 인식이 심했기 때문이야. 불평등의 상징이었지.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해. 이런 마당에 병역을 기피하는 의도로 군대에 안 갔다 온 사람이 있다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잘 나가던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 안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아버지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대선에서 낙선했어. 어때? 무섭지?


인사청문회는 그래서, 이걸 보고 자란 어린이 청소년에게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면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세금 꼬박꼬박 내야지. 군대도 꼼수 쓰지 않고 제 때에 잘 다녀와야지” 이런 마음을 갖게 해. 미국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뿌리내리게 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야. 외국 가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도덕적 의무를 지는 문화가 확립돼 있어. 권력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하고, 봉사하려면 그 진심이 있어야 하고, 진심을 가리려면 최소한의 면접이 있어야 해. 인사청문회가 그런 거야. 서양의 유명한 말 하나를 전하면서 글을 갈음할까 해. “명예와 사리사욕은 한꺼번에 쥘 수 없다.”


/ 월간 '웅진 생각쟁이' 2009년 11월호 > '출동! 뉴스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