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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맘으로

맑고 선한 맘으로

비젼있는 공약 가지고서 빛을 전해줄

후보가 있어 좋아요

아름다운 손으로

냉철한 두 눈으로

미래 지도자를 가려뽑아 빛을 발하는

국민이 좋아요

이렇게 투표한 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죠

투표가 너무 좋아요

투표가 너무 신나요

흥겨운 마음 가지고

축제로 만들어 봐요

우리의 소중한 권리

우리의 정당한 권리

모두 다 참여해 봐요

책임 있는 나의 한 표  Love  it, We  love it!

늦지 않게 깨달아

자랑스러운 나라로  Change it, Must  change it!

투표한 내가 세상을 바꾸죠



[노래 다운받기]

투표가_좋아요_Master (1).zip




이 노래는 조용천 님이 딴지라디오에 재능기부한 곡으로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노래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 노래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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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나꼼수'에 고성국 박사 출연케 한 사람은...

'뉴욕타임스' '나꼼수'에 고성국 박사 출연케 한 사람은...바로 접니다.


요즘 고성국 박사가 도마 위에 올랐네요. 착잡합니다. 4.11총선 이전까지는 정치평론계의 선배로서 존경하던 분이지요. 그 분은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세력의 일원으로 옥고도 치렀습니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는 바른 말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때는 6.2지방선거에서의 야당 대승을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출연하고 또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빠짐없이 고성국 박사를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도 나왔고 심지어 고박사 책 출간에 즈음해서는 ‘나는 꼼수다’에도 모시고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마다 김어준 총수는 고성국 박사의 시사평론이 일견 논리적이나 정치 공학적이라며 그 출연을 반대했습니다. 그런 논평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 바뀔 수 있다고. 지면에 함께 등장하는 건 상관없지만 방송에 함께 등장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고. 그러면서 개인적인 친소 관계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저에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을 신뢰했습니다. 김어준 총수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해 마침내 그 분의 출연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4.11총선 때였습니다. 저는 노원갑 출마 문제를 놓고 고민했고 매일 아침 출연하는 SBS에서 마주친 고성국 박사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고성국 박사는 적극 지지했습니다. 당선 가능성도 높게 쳤습니다. 그리고 “내 동생이 정치기획사를 하는데 함께 하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분에게 ‘그 기획사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요 고객이 한나라당 쪽이라 어렵겠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이후론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뒤 벌어진 일입니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한 고성국 박사는 저의 출마 자체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논평합니다. 김용민이 무슨 국회의원이냐는, 출마의 자격까지 운운했단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사석에선 적극 지지했던 분인데. 그리고는 ‘막말 파문’이 터지자 출연하는 모든 매체에서 김용민 때문에 야권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고 논평합니다. 특별한 두둔까지 바란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로서, 사안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리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고성국 박사를 신뢰했습니다.  


이후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평론하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박근혜 승리를 만들어 내야하는 역사적 사명이라도 있는 것인양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총선에서 야당이 진 것은 박근혜 같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며. 박근혜의 행보는 선의로만 해석하고 야권에 대해선 억측과 폄하 일변도로 논평합니다. 


‘김두관만이 박근혜의 적수다’, ‘손학규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다’, ‘결국 결선투표 할 것이다’ ‘안철수의 파괴력이 김문수, 김태호, 안상수, 임태희만 못할 것이다.’ 객관적 현상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주관적 바람에 대한 주술을 읊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YTN, 연합뉴스, OBS 노동조합으로부터 박근혜의 사람 취급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본인은 억울해 합니다. 하지만 본인만 억울해 합니다. 


반성합니다. 제 안목을 반성합니다. 김총수 이야기를 들을 걸. 많이 반성합니다. 또 성찰합니다. 어제 김어준 총수로부터 “고성국 박사에 대해 한 번은 네 입장을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듣고 곰곰이 되돌아보며 인간이 욕망과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합니다. 


부디 고성국 박사가 과거처럼 영민하고 건강한 평론으로 역사와 사회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한 시즌에만 몰두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장구하고 시대는 변화무쌍합니다. 


[참고 동영상] 뉴스타파 (13분 6초부터 고성국 박사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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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하이라인 방문기

 

ⓒ Highline

 

뉴욕 '하이라인'은 1930년부터 운행된 맨해튼 거리를 관통하는 높이 9m 넘는 화물철교를 개조한 공원입니다.

 

ⓒ Highline

 

원래 1847년부터 1929년까지는 지상철도였는데 열차에 사람이 치이는 사고가 많아 붉은 깃발을 든 카우보이가 앞서서 길을 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30년 기차만 다니는 13마일 길이의 철교 각을 세우기로 했고,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Highline

 

그러다가 철도를 이용한 화물 운송 량이 크게 줄면서 1980년 노선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철로 소유자는 철교 및 부지를 매각하려 했는데 이를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반대로 결국 공원화합니다. 지금의 공원 설립 계획은 1999년에 본격화됐고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완공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보면 거리 곳곳에는 운치 있는 자연환경과 감성 가득한 문화예술 공연, 풍류를 더하는 소상공인이 함께 공원의 가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공릉동 월계동에 펼치려 했던 경춘선 폐선로 재활용 구상도 이와 유사합니다. 물론 그 폐선 구간을 단순 공원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주변 대학가와 연계해 문화 예술 콘텐츠를 생성하고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그렇게 해서 지역의 상권을 살리는 총체적 번영의 구상이었다는 점에서 차별됩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 뿐 아니라, 그 기틀을 화석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 가득한 일상의 공간으로 구현하는 노력, 뉴욕에서 만나 행복했습니다.

 

2012년 9월 21일 촬영했습니다.

 

 

 

나무 가지와 풀 사이로 선로의 흔적이 보입니다.

 

 

화물 선로는 복선이었습니다. 그 중 한 개 선로 자리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로 조성했습니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입니다. 터 잡은 행상의 모습입니다.

 

 

선로가 바닥과 일체됐네요.

 

 

행인이 잠시 쉴 수 있는 자리네요.

 

 

 

중간 중간에 출구가 있습니다.

 

 

광고가 재밌습니다.

 

 

뉴욕 중심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입구입니다. 장애인 노역자를 위한 승강기도 설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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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1. 9. 10자 22면 게재] 멋진 아비 되기, 거창하지 않다


아마 중추절이 지나면 ‘연휴 직후, 이혼소송이 크게 늘었다’ ‘음식 차리고 치우느라 또 고부간에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기혼여성 상당수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렸다’는 전혀 새롭지 않을 팩트가 ‘뉴스’라는 이름으로 쏟아질 것이다. 기실 사람을 만나 즐겁고 행복해야 할 자리에 가서 도리어 사람 때문에 마음 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절에 여성, 특히 며느리는 약자다.

그러나 한가위는 본래 여성의 잔칫날이었다. “여성들을 양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 즉 일종의 경연 대결 비슷한 것을 하게 한 뒤 추석에 이르러 지는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했다.” 고대 이 땅의 한가위 풍속을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그렇다. ‘축제’였다.

축제로 말하자면 유럽 기독교의 카니발(Carnival)을 빼놓을 수 없는데 우리네 풍습과 흡사해 보인다. 이때만 되면 여흥을 즐기라며 여성은 물론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술과 고기를 잔뜩 안겼다고 한다. 참고로 카니발은 고기(Caro)와 잔뜩 배불린다(Valens)를 합한 말이다. 곧바로 사순절 40일이 시작돼 금욕을 감내해야 하니 미리 회포를 풀라는 뜻이었다.

이 무렵 도시 전체는 사회적 약자의 해방구가 된다. 질펀한 유희는 물론, 가면 쓰고 권력자와 종교 지도자를 실컷 조롱해도 뭐라 타박하는 이가 없었다. 이름의 영문 약자가 ‘MB’라 상당히 ‘친숙’한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을 일컬어 ‘소통’이라고 단언했고, 현대철학의 상징 니체는 축제를 ‘구원과 치료의 수단’이라 평가했다.

추석이면 우리 집에서도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나의 아버지 김 태자 복자 목사가 집 문을 열어놓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운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명절 식단의 전부였다. 평소에는 설거지하는 모습 한 번 보이지 않던 부친, 이날만은 팔을 걷고 어머니와 누나를 대신해 가사 노동 전면에 나섰다. 우리 가족이 놀란 부분은, 그런데 따로 있었다.

무림의 고수가 묵언수행을 마치고 일격필살이나 흑산포를 구사한다고나 할까. 접시 위에 오른 구운 고기의 맛은 별 몇 개 따위로 형언할 수 없었다. (굳이 별 숫자로 표시하라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25.7%면 승리한 것’이라는 언사를 빌려 최소 25.7개는 헌정하고 싶다고 말하겠다.) 애초 그것은 하나의 생고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 목사가 그 살점을 석쇠에 올리고 몇 번의 뒤집음 끝에 그 고기는 우리 가족에게로 와서 감동이 되고 말았다. 절묘하게 남긴 육즙과 감질 날 정도의 숯불의 향내, 게다가 후추 등 천연 양념의 적절한 투입, 김태복표 숯불구이는 식품영양학에서 물리, 화학, 나아가 예술의 경지로 승화됐다.

사람만의 즐거움이 아니다. 지금은 고견(故犬)이 된 바둑이도 생전 아버지의 고기를 기다리느라 불판 주변에서 꼬리를 쌍방향으로 흔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인수(人獸)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든 신비의 맛이었다.

나와 식구들은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설교한다는 아버지가 실은 만날 옥상에서 고기 굽기 연습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실력 발휘에 우리 집의 추석 먹거리는 단출하지만 풍성했다.

이후 삼남매는 결혼으로 분가로 독립하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는 4년 전 퇴임 후 불판 펴기가 여의치 않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신공’은 아쉽게도 추억의 한 페이지 저편에 머물고 있다.

이런 작은 섬김으로 표출된 아버지의 ‘소프트 파워’, 즉 따뜻한 권위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지금껏 사랑으로 기억된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여, 연휴에 ‘밥 차려라’, ‘전이나 송편 없느냐’, ‘술상 내와라’는 식의 ‘하드 파워’를 탈피하고, 조용히 마당에 앉아 숯불을 피워보심이 어떨지. 아내, 여동생, 딸, 조카의 ‘귀요미 인증’은 이걸로 충분하다. 설혹 맛까지 담보된다면 ‘훈남 등극’도 가능하다. 아비로 사는 멋, 그거 생각 외로 거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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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의 슬픈 오마주

소설은 아니다. 말하자면 시놉시스 같은 것이다. 따라서 문학성은 기대 말라. 한편 내심 뿌듯했다. ‘내가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다니’ 하며. 그러나 ‘자뻑’이었음을 곧 알게 됐다. ‘더 이상은 명랑만화가 아닌 공룡 둘리’ 최규석 작가의 ‘공령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의 틀거리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최규석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국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라는 ‘이매진(Imagine)’의 가사를 들려준 존 레논에게도. ‘뽀롱 뽀롱 뽀로로의 슬픈 오마주’로 붙여본 이야기, 시작한다.

얼음 숲에 잠을 깨우는 쥐 한 마리가 있었다. ‘바기’이었다. “아침 8시가 됐는데 다들 뭐해? 안 일어나?” 그 목소리보다 바기가 몰고 온 불도저의 엔진 소리가 실은 더 컸다. 포비가 느린 몸동작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어, 너는 누구니?” 바기는 되물었다. “게을러 터졌군. 여기 아이들은 해가 얼마나 더 떠야 일어나니?” 포비는 하품을 작작하며 말한다. “어젯밤 늦게까지 카드 놀이했거든.” 바기가 코웃음을 친다. “게다가 노름까지? 무한경쟁시대라는 말이 무색하다.” 포비는 머리를 긁적인다. “무한…뭐라고?”

바기가 ‘아서라’할 즈음, 작업복 차림의 에디가 나타나 포비에게 인사한다. “포비, 일찍 일어났구나.” 바기의 ‘얼씨구’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포비가 대꾸한다. “응, 그래, 에디, 너는 어디가?” 에디는 “통나무 한 토막으로 일주일을 지내는 고효율 에너지 난로를 만들려고 숲으로 가”라고 말했다.

바기가 혼잣말처럼 떠든다. “오호, 이제야 말 통할 친구가 나타났군.” 에디는 시선을 바기에게로 향했다. 입으로 포비에게 “쟤는 누구야?”라고 물었다. 포비는 “음, 우리들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친구인 것 같아. 앞으로 일찍 일어나야 하겠어”라고 답했다. 바기가 끼어들었다. “네 이름이 에디라고 했니? 나는 바기라고 해. 통나무가 필요하다고? 내 불도저로 숲을 밀면 나무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갑자기 친절모드다. 에디는 흔쾌히 응했다.

둘은 불도저로 이동하면서 여러 대화를 나눴다. 바기는 참 의아했다. 권력도, 소유도, 노동도, 재화도, 잉여도 이 마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그런 게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러면 통제를 어떻게 하냐 이 말이야!” 바기는 격앙된 언성을 섞어 물었다.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의심 반, 일이 잘 안 풀릴 것 같다는 걱정 반 때문이다. 에디는 말했다. “그런 게 왜 필요해? 없어도 서로 행복한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바기는 전략을 바꿨다. 어조까지. “에디야, 너 정말 천재인 것 같아.” 구슬렸다. 에디는 내심 신났다. 그러자 바기는 더 큰 제안을 했다. “에디야, 나는 네가 최고의 발명가가 되기를 원해. 너도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이 마을에다가 에디 과학벨트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지어주고 싶어. 네가 잘되면 나도 좋거든.” 둘의 대화는 더 깊어졌다.

다음 날이었다. 에디는 친구들을 모았다. “어제 우리 동네에 온 바기라는 친구 생쥐가 나한테 약속했어. 나를 위해 연구소를 지어주겠다고. 연구소를 지으면 뽀로로 너한테 로봇 날개를 만들어서 하늘을 날도록 해주고, 크롱에게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주고 싶어.” 루피가 끼어들었다. “그럼 나는?” 에디가 말했다. “루피를 위한 컴퓨터 오븐을 만들어주려고. 그래서 밀가루와 계란, 설탕, 물만 넣고 버튼을 골라 누르면 무슨 쿠키든 종류별로 만들 수 있게 해주려고.” 패티가 ‘나는…’ 이러며 끼어들 찰라, 에디는 “아무렴 패티 신경 안 써주겠어. 패티가 그림만 그리면 옷이 돼 나오는 기계를 만들어 줄게”라고 달랬다. 포비와 해리에게도 약속했다. 아주 큰 집과 노래방 기계를.

“그런데 여기 서명을 해줘.” 다들 궁금했다. 종이에 적힌 알 수 없는 부호 기호들에 말이다. “이게 뭔데?”라고 해리가 물었다. 에디는 “이 마을에서 공사해도 된다는 허가 서약서래. 다른 마을에서 기계와 자재가 들어올 텐데 우리 이해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평소 친구들을 위해 기발한 발명품을 착착 생산해 낸 에디를 위한 것이라면, 또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쾌히 승낙했다. 에디와 친구들은 곧 펼쳐질 더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며 즐겁게 놀다가 밤늦게 헤어졌다.

해가 다시 떴다. “퍽” 천장이 뚫렸다. 해리의 집 즉 새장에 돌 더미가 덮쳤다. 중장비 소행이었다. 포비는 절규했다. “해리야, 해리야!” 그러나 해리는 말이 없었다. 포비는 밖으로 나가 기사에게 따졌다. “왜 이러세요?” 기사는 바기를 가리키며 거기로 가서 따지라고 했다. 다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기가 입을 열었다. “안녕?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지? 설명을 들었을 텐데.” 포비가 “우리가 알기로는 에디를 위한 연구소를 짓는다고 했지, 우리 집을 부순다고 하지는 않았어”라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바기는 처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에디한테 가서 따질 일이 아닐까 싶네. 에디의 연구소는 이 마을을 모두 개발해도 부지가 모자라. 그래서 너희들 사는 공간도 필요했던 거고.” 포비는 에디에게로 갔다.

사연을 듣고 에디는 애들을 모아놓고 찾아갔다. “바기 너, 그런 말은 나한테 안 했잖아.” 바기는 에디에게 받은 서약서를 들고 흔들었다. ‘이 마을을 모두 건설업자에 헌납하며, 임시 거주지 확보 등은 당사자가 해결 한다’라는 구절을 읽어줬다. “우리가 글을 모르잖아”라고 루피가 큰소리를 냈다. 바기는 “의무 교육을 거부해 문맹이 된 거 너희야. 국민교육의 일환인 학교 체제를 부정한 너희라고. 그런데 왜 나한테 따져?”라고 톡 쏘았다. 참다못한 포비가 달려가 중장비를 넘어 뜨렸다. 그리고 장작용으로 쌓아 둔 큰 통나무로 마구 부쉈다. 바기는 품 안에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얼마 뒤 포비는 경찰에 끌려갔다. 포비를 잡아 가던 순경의 다리를 물어버린 크롱도 같이 서에 붙잡혀 갔다.

새로 투입된 장비는 본보기로 삼으려는 듯 포비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한 해리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오후가 됐다. 패티와 루피는 자기 집이 잿더미가 되는 장면을 눈물 흘리며 지켜봤다. 이제는 뽀로로의 집 차례.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간 뽀로로가 나오지 않는다. 작업반원들이 집 근처로 다가가자 코를 찌르는 인화물질 냄새가 났다. 창 속 뽀로로는 라이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불지르겠다는 기세다. 바기가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소방차 수대를 동원해 뽀로로 집을 향해 퍼붓기 시작했다. 물대포를 맞은 뽀로로는 혼절 상태로 쓰러진다. 그리고 붙잡혀 간다. 방화 혐의 또 살인 미수로.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마을은 그렇게 초토화됐다.

“바기! 바기 너… 바기를 만나야겠어. 만나게 해줘!” 바기를 찾으러 온 에디. 친구들이 죽고 잡혀가는 와중에 꼬리를 내리며 숨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요컨대 에디를 위한 과학벨트는 없었다. 오로지 아파트 공사만 있었을 뿐이다. 에디는 자재를 모아 확성기를 만들었다. 바기의 약속 위반, 사기 사실을 대대적으로 떠벌렸다.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마을촌장이 된 바기는 입주민의 영웅이 돼 버렸다. 천혜의 자연 환경에 초저가의 아파트를 공급한 능력 있는 건설업자. 기세는 대단했다. 에디 처리는 일도 아니었다. ‘명예훼손으로 걸면 너는 엄청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감옥에 가면 최소 몇 년이다.’ ‘나오면 어디에도 취업 안 되고 종국에는 폐인이 된다.’ 바기의 협박에 에디의 얼굴은 상기됐다.  바기는 소제기를 안 하는 대신, 에디는 조용히 지내기로 서로 약속했다. 상호 약속이건만 집 안 바기는 회심의 미소를, 집 밖 에디는 분루를 삭히지 못했다. 이로써 마을은 완벽하게 바기의 것이 됐다.

‘철거민 방화미수범 뽀로로 탈옥하다’는 뉴스가 온 세상에 퍼졌다. 감시와 처벌의 굴레 속에서 뽀로로가 탈출한 것이다. 뽀로로는 도시로 잠입했다. 늦은 밤, 한 허름한 식당에서 셔터를 내리는 이의 등을 쳤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이는 식당 종업원 루피였다. “어, 뽀로로. 너…” 뽀로로는 옛 모습이 아니었다. 안경을 벗었다. 모자도 벗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다. 현상범 안내 공고가 붙은 포장마차에서도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다. 루피에게 물었다.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서 무작정 패티와 도시로 왔어.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지. 둘이 같이 일할 곳을 찾는다고 했는데…” 말끝이 흐려진 루피, 더는 말 못했다. 뽀로로는 패티가 유흥업소에 팔려갔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짐작했다.

“포비는 아프리카의 한 동물원에 팔려갔데. 그 아이는 더운 걸 못 참는데…” “크롱은 정신병원에 있다고 해. 말을 못해서 정신 이상자로 몰린 거야.” 귀로 루피의 말을 듣지만, 시야는 주변을 탐색했다. 낌새가 수상했다. 현란한 경광등이 보였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뽀로로는 그렇게 루피에게서 떠났다.

마을까지 오는 길이 떠나올 때와 달랐다. 고속도로가 났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에 깔린 경찰을 지나 뽀로로를 태운 화물차는 얼음 숲에 도달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하늘 뿐. 아파트 빌딩 숲에서 뽀로로는 에디를 찾을 길은 없었다. 혹시 하는 심정에 뒷동산에 올랐다. 자신을 위해 비행기를 만들어 주겠다며 집 드나들 듯 찾았던 곳이었다. 그랬다. 우리는 마음이 통하던 친구사이였으니까. 누군가가 있다. 소주를 병 채 마시던 검정 투성이의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이지만 에디가 확실했다. “에디야.” 등진 에디지만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나야. 뽀로로. 살아있었구나.” 에디는 자리를 박찼다. 자기 자신을 뒤에서 와락 안은 뽀로로에게 에디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날 놓아줘.” 뽀로로가 격정 실어 말한다. “움직이지 마. 달라진 것은 없어.”

둘은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포비가 폭탄 방귀를 뀌어 모두를 기절하게 했던 일, 서로 ‘패티가 나를 좋아한다’며 얼굴 빨개진 일, 루피의 쿠키를 배에 한 가득 채우던 때의 일까지. 소주의 힘으로 시름을 잃기까지 했으니 달리 황금시대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밤은 그렇게 지났다. 풀을 바닥 이불 삼아, 온 몸을 흠뻑 적신 찬 이슬을 덮는 이불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 허용된 행복은 아니었다. 저벅저벅 꽤 많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뽀로로는 에디를 깨웠다. 바기 그리고 경찰 군인들이 이 둘의 주변을 에워쌌다. “뽀로로, 이런 범법자, 변장한다고 모를 줄 알아? 반사회적 사이코패스! 에디, 너는 나하고 잘 지내기로 약속해놓고 이러기야? 네가 저지른 죄를 알긴 알아? 고발하지 않은 죄, 즉 불고지죄야. 더는 용납할 수 없어. 법질서를 파괴한 너희들을 격리 수용할 수밖에 없다.”

취기가 덜 가신 에디가 목청을 높였다. “법? 그건 너희들의 잇속을 지키기 위한 방패일 뿐이지. 우리는 그 법 없이도 잘 살았어!” 바기의 추종자가 반박한다. “초법적 발상이군. 어이없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지. 얘들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냐? 어서 안 붙잡아?” 에디가 다시 소리친다. “우리는 너희의 통제를 원하지 않아! 날 죽이고 데려가!”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뽀로로가 말했다. “에디야, 이러지 말고 우리 날자.” 얼굴은 희색이었다. 그리고 누가 뭐랄 새도 없이 낭떠러지를 향해 달렸다. 둘은 그렇게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을 향해 날았다.

/ <한겨레> HOOK 2011년 5월 10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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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민포럼] 상생의 동네정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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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결과, 야권이 완승했다. 한나라당은 16개 시·도지사 가운 6곳, 시장·군수·구청장 228곳 가운데 82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반면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던 민주당은 7곳의 시·도지사 선거에서 이겼고, 228개 기초단체장 중 92곳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던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곳을 민주당에 내줬다. 또 세종시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던 대전시장과 충북·충남도 지사 등 충청권 광역단체장 3곳 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경남도 지사와 강원도 지사 선거에서도 졌다. 요약한다. 여당의 완패이다.

그러나 야당에게 위기이다. 지방정부 다수 석권은 독배(毒杯)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치권의 견제 권한이 결코 우습지 않다는 점이다. 여론의 눈치가 보여서 주저할 뿐이지 감독권을 동원해 집요하게 압박할 수 있다. 국책 사업에서 배제하거나, 예산 편성 때 일부러 소외시키는 식의 ‘보이지 않는’ 불이익도 가할 수 있다. 그렇게 2년이 지난다고 치자. 야권 단체장의 시도 또는 시군구에서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형편없을 것이다. 이러면 한나라당 조중동 KBS 등 이른바 ‘보수정략집단’은 좋은 구실을 찾았다며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야당이 2년 새 지방정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중앙정부를 넘보려 한다”라며 2012년 총선 또 대선에서의 ‘역 심판론’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비우호적인 환경과 여건을 직시하고, 가시적 성과와 주민 호응,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가운데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진보진영의 가치를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용익 교수께서 다양한 방안, 성찰의 과제를 제시했는데, 나는 여기에 다섯 가지 바람을 추가해본다.

“진보 도시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자”

지난 1월에 지방선거 야권 후보 연대와 관련한 토론회에 나가 민주당 고위 인사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열린우리당, 구 민주당)은 호남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다. 4년이 지난 오늘, 이곳은 한나라당이 승리한 광역단체에 비해 무엇이 돋보인다고 보는가.” 우물쭈물 했다. 호남에 산다 하여 특별히 덕 본 게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야권 특히 진보 세력이 집권한 지역의 시민은 특별한 혜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역 심판론’을 잠재우고 ‘대세론’을 띄울 수 있다. 단초는 역시 보편적 복지 서비스의 강화이다. 이미 주목할 만한 방안이 교육감 선거 때에 제시됐다. 친환경 무상급식 그리고 혁신학교 설치가 그렇다. 이뿐인가. 진보신당 대표인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가 제시한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무상 무선 인터넷 서비스 권역 확대, 유종필 관악구청장 당선자가 약속한 동별 도서관 설치,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가 약속한 0~5세 무상 보육 공약도 들 수 있다.

사실 보편적 서비스를 자치단체 독자적으로 풀어내기엔 인적 물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치단체의 연대와 공유가 필요하다. 무상 급식의 예를 들어보자. 네트워킹 파트너인 농어촌 자치단체에서 만든 친환경 농수산물을 도시 자치단체가 거래하는 형태이다. 무상 무선인터넷의 경우, 중계기를 공동으로 저가에 구매하는 방안도 한 방편이다. (이런 의제를 조율하고 합의할 야권 단일화 기구 수준의 공동지방정부연합체의 건설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진다.)

“생활공동체 개념의 자족기능을 확충하자”

농어촌 자치단체의 핵심 고민은 저조한 인구수이다. 이는 자족기능의 부재 문제와 직결된다. 적어도 교통, 교육, 주거, 의료, 환경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온전한 도시 기능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곧 삶의 질이 보다 나은 지역으로의 전출 욕망을 부추기게 한다.

자족 기능을 키우면, 주민의 원거리 이동 빈도가 축소되고, 이로 인해 공해 등 환경 문제를  해결되며,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다. 세종시 수정안 경우에서 봤듯 공장, 연구소, 대학 유치 정도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 동네에서나 가능한 대안인가.

나는 생활공동체의 유치를 제안한다. 영국에는 브루더호프라는 총체적 공동체가 있다. 약 2만평의 대지 위에 60여 가구 250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100% 공동재산제로 생활한다. 일체의 사유재산 없이 모든 소유를 완전히 나누면서 살고 있다. 핵심은 원예, 유기농, 가구공장 등을 통해 공동체 운영 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가꾸고 있다. 100여명이 모여 사는 독일 벨치히의 제그 공동체도 비슷한 경우이다. 생계를 위한 문제는 각자 해결하지만, 생활, 보육, 교육 등은 공동으로 일궈가는 생활공동체는 서울 안에서도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고부가가치 농업서부터 원격 업무가 가능한 문화 콘텐츠 산업까지 생계의 방식은 도시보다 다양하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근린을 이루는 직업 공동체, 자녀를 위한 교육 공동체 등 다양한 성격의 ‘마을 구성’도 가능하다. 자치단체의 역할은 부지 및 전기 상하수도 통신망 조성 외에 아이디어 정도라 하겠다.

각박한 이기적 경쟁구도의 삶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상생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 자치단체는 ‘억지’가 아닌 ‘자발’한 인구유입의 가능성을 적극 살려야 한다.

“시민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풀뿌리 전파 미디어를 만들자”

지역사회의 발전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시민은 없고, 주민만 있다. 지역 사회에 공동체성을 뿌리내리게 하게 위해 시민 사회를 위한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지역 미디어의 필요성이 절실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에 지역 신문, 방송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중앙 미디어에 예속돼 있거나 그 영향력에 짓눌려 있다.

지역 언론의 문제점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나치게 인쇄매체가 의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지역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역량 있는 인쇄매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접근 인프라가 매우 용이한 전파매체의 운용 성과는 이에 비해 대단히 미흡하다.

현실적인 대안은 자체 편성이 100%인 커뮤니티 라디오방송을 설치하는 것이다. TV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치단체와 지역 상공인이 지원하고 지역 단체가 연합해 꾸리면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러나 현행 커뮤니티 라디오의 경우 출력이 1W로 국한돼 있다. 이 정도면 기초단체의 몇 개 동 정도에서만 청취가 가능하다. 기초단체 전역의 양청을 위해서는 100W로 증강해야 한다. 정치권이 나서서 중앙정부와의 협의해야 할 사안이다.)

이런 지역방송이 생긴다면, 지역 단체장이 나와 정책을 소개하고, 주민이 목소리를 내며, 이해세력 사이에 토론과 조율을 이루는 장, 시민의 삶을 유익하게 할 생생한 생활정보를 나누는 장 또 우리 지역만의 문화 예술인을 육성하는 장이 마련될 것이다. 또한 중앙 권력이 지역 현안과 관련해 장악한 언론을 통해 호도할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미디어로써 매우 유용한 가치를 뽐낼 것이다.


“진보 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컨트롤 타워를 건설하자”

‘야당표 지방정부’의 정책 통일성, 가치 일관성을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최근에 이와 관련 아주 적실한 사례가 있었다. 전남도지사가 당선증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4대강 사업을 공개적으로 찬동하고 나선 일이다.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탈에 대한 당의 통제도 용이치 않다. 몽둥이를 들고 보니, 경고, 출당 같은 살벌한 징계만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야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지방정부 책임자는 야당과의 고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당은 자치단체장이 유발할 수 있는 정치적 부채를 모두 져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겠지만, 야권 연대의 기본 정신이 준수될 수 있는 구심체로써의 정신 또 조직이 긴요하다. 물론 구심체는 통제 기능으로써만 존재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자치단체 사이에 유기적 협력서부터 분쟁 조정 기능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팀워크가 이뤄질 때 지방 정부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이런 연합체를 통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의 연대를 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의미도 담는다.

자치단체장의 컨트롤 타워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맹제 도입을 생각했다. 단일 후보로 당선된 자치단체장에 한해 가입케 하면서 회원으로서의 혜택을 부여하되, 이들이 큰 틀의 연합 정신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일 때엔 제재하자는 이야기이다. 가치연대가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선거연합은 기득권연대에 불과하다.

“행정 서비스에 '무조건' 정신을 앞세우자”

지금까지 민원(民願 또는 民怨)은 민원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1:1로 처리했다. 민원실은 과연 친절하고 유익한가. 권위적이며, 무응답이란 횡포를 체험해보지 않은 시민이 몇이나 있을까. 민원 처리 기구가 ‘존재하기 위한 존재’에 불과했다는 평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진보적 야권 지방정부는 시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소통의 본을 돼야 한다.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시민과 격의 없이 대화하도록 벽을 낮춰야 한다. 민원 접수 인력을 크게 늘려 시민과의 24시간 온라인 소통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민원 처리가 해당 부처에 넘기고 받는 것이 아닌 특정 부서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 어려움에 대해 ‘무조건’ 응답하는 기민함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무조건’이 중요하다. 시민의 요구라면 작은 것에도 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펼친 정책 중에 ‘무한 돌봄 서비스’는 퍽 인상적이었다. 경제 형편이 열악해 공공은 물론 사금융서비스마저 이용할 수 없는 이웃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는 복지 시스템이다. 서민의 신음을 논리적 합리성을 찾아 괄시하는데서 이른바 진보 집권세력의 위기가 왔다. 영리 사기업 서비스센터 수준의 소통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서민은 또 다시 한나라당에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진보세력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검증대 위에 오른 것’이다. 시민의 일상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것인가. 골이 들어간 게 아니다. 볼이 왔을 뿐이다. 태클과 가로채기 시도가 집요하게 있을 것이다. 리그가 아니라 토너먼트이다. 한 판 승부이다. 상생의 동네정치 자리에 욕망의 동네정치가 다시 장악할지의 여부는 야권이 시민을 행복하게 할 의지의 여부와 직결된다. 7월 1일부터 이 나라가 행복의 나라로 가고 있다는 확증을 보여 달라.


[관련 한겨레 기사] “6·2선거서 복지공약 중요성 커져” 

한겨레 시민포럼서 발표…“차별화된 진보논리 필요”


제29차 한겨레시민포럼이 29일 저녁 7시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내 삶을 바꾸는 동네정치, 지자체가 달린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포럼에서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는 범야권의 큰 승리로 귀결된 6·2 지방선거에서 복지 공약의 중요성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당선자들의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 구조상 진보정당의 공천이 반드시 진보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냈다는 보장도 없으며, 진보공약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보장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금부터 본격적인 ‘복지 지방’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지방을 만드는 방법으로, 김 교수는 보수와 차별화되는 진보의 논리를 설명했다. 
이를테면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보수는 범죄를 감시·수사·엄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진보는 범죄와 사고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보수가 사고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보는 반면, 진보는 사고는 사회의 책임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지역 발전을 위한 방법에서도 보수가 중앙정부 사업을 유치하는 데 치중한다면, 진보는 지역의 내적 발전 요소를 활용하고 지역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복지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수단적 가치도 지닌다”며 “살기 좋은 지역이라면 사람과 기업이 몰려오고 지역의 성장잠재력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이번 선거가 야권의 승리인 동시에 ‘야당의 위기’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 진단을 내렸다. 그는 “중앙정부는 중앙정책에 반대하는 지방정부에 대해 감독권 강화, 국가 사업 배제, 예산 편성상 소외 같은 ‘보이지 않는’ 불이익 등 다양한 카드를 사용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야권 단체장의 지역 성적이 저조해지면 ‘보수 정략집단’의 좋은 구실을 제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김기성 이경미 기자 player009@hani.co.kr
<한겨레> 2010년 6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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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MB의 '아바타'가 돼버린 검찰


용산참사에 대한 수사기록 공개 명령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최근 무죄 결정에 직면한 검찰이 격정을 토로하고 있다. "정치적 판결을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법원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강기갑과 <PD수첩> 모두 유죄로 결론 냈다면, 그건 '비정치적 판결'이 되는 건가. 자기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법원도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라는 자문 속에 새로운 의미의 '정치적 판결'을 의심할 것이다.
 
법원 판결 흠집내는 검찰의 적반하장

검찰은 스스로의 '정치적 기소'를 반성해야 옳다.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실존하는데다 국민적 관심사가 보태졌던 '삼성으로부터 떡값 받은 검사'의 비위에 대해 조사조차 안했다. 대통령의 사돈 또 대통령 본인의 비자금 의혹도 '근거 없다'며 멋대로 뭉갰다. 반면 권력의 눈 밖에 난 인사들은 가차없이 죄를 뒤집어씌워 기소했다.

법원 중재대로 세금문제를 조정한 정연주 전 KBS 사장에게 배임혐의를 씌운 것, 상당부분 사실로 입증된 내용을 올린 인터넷논객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로 몰고 갔던 일은 검찰의 기념비적 과오이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검찰은 부끄러워하며 반성하기는커녕 '정치판결'의 한 예라며 법원을 공격하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 검사들이 이토록 아둔하게 되고 개념마저 상실한 것일까. 아니다. 지난해만도 23.5:1의 경쟁률을 보였던 사법고시의 벽을 넘어 법조계의 일원이 된 검사 개개인의 양식과 사리분별 능력은 허술하지 않다. 날마다 하는 일이 재판인데 이기고 질 것에 대해 무념무상일 리 없다는 말이다.

<PD수첩> 판결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거 봐라, 그게 어디 유죄가 될 성질의 것인가" 이런 얘기가 아주 없었을까 싶다. 지난해 1월 수사를 책임진 주임 검사가 "정부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할 수 없다"며 사실상 양심선언을 하고 사퇴한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검찰 조직 내에서 이 검사뿐이었냐는 이야기다.

그들의 분노는 누구를 대리한 것일까

이 상황에 대한 규정을 영화 <아바타>에 빗대고 싶다. 2010년 대한민국 검찰의 영혼과 육체는 '아바타'에 불과하다. 이 아바타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주체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따라서 지금 법원에 대한 검찰의 분노와 결기는 결국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 표출에 다름아니다.

기실 권력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검찰 수사권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며 공언하고 실행하지 않는 이상, 저절로 검찰의 '경배와 찬양'을 받게 돼 있다. 누구 탓할 것도 없다. 구조 자체가 그러하다. 검찰은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받게 돼 있고, 승진과 좌천 등 실질적인 인사 여파를 입게 된다.

검사 출신의 정치인 박희태 한나라당 의원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동아》 2009년 12월호 인터뷰에서 "나는 국회의원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1988년 총선을 앞두고 법무부장관이 부르더니 '여당 후보로 공천됐다'며 출마를 통보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대통령이 결재까지 했는데 검사가 대통령 말에 불복해 장래가 있겠나'라는 말을 하더라"라고 했다. 출마에 불응함으로써 대통령의 영(令)을 거역한 채 검사로 눌러앉아 있어봐야 '장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절대 충성할 수밖에 없는 검사의 운명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놀랄 만큼 예민한 검찰의 충성본능

하지만 이런 검사에게 연민의 정을 보낼 수는 없다. 권력 누수현상이 발생할 경우, 그때는 놀랍게도, 그 충성본능이 '다음(에 충성할) 권력자'를 향한다는 점이다. 1997년, 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자 검찰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거자금 수사 착수를 거부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BBK 의혹 규명 요구와 관련해 검찰은 숱한 정황 근거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취임은커녕 당선조차 되기 전인 '다음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상납했다. 검사의 '충성'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불온하고 악랄하다.

'성적 향상을 기하지 못하는 학교 교장은 퇴출하겠다'며 교육계에조차 경쟁과 효율의 원리를 강제하는 이명박정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마땅한 검사의 신상필벌은 '무죄 판결' 여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잘못된 기소가 많은 검사는 '물' 먹여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이명박정부 들어 승승장구하는 검사들의 면면을 보자. 대부분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나 주변 친인척의 부정비리 의혹사건 수사를 맡아 무혐의 처리해준 인연이 있거나 권력 핵심의 복심에 맞춰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사건 담당자들이다.

사법부 길들이기 나선 靑-政-黨-言 '4각 연대'

그래서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고 카메라 앞에서 격분한 표정을 짓던 검사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각하가 보셨겠지?"라며 만면에 그윽한 미소를 추스르는 풍경을.

아까 검사들을 아바타로 비유했다. 그러나 아바타보다는, 주인에게 절대 충성하는 대형 육식공룡새 이크란이 더 어울린다. 참, 이크란은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하는 본성이 있다지? 그렇다면 나비족 침략의 선봉자 퀴리치 대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영감(靈感)이란 건 전무한 고철덩어리 로봇이 차라리 더 흡사하겠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그런 의미에서, 법원과 이명박정권과의 갈등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영원하고, 이명박정권은 고작 3년 남았다. 그래도 판사들이 시한부 존재에 불과한 이 정권에게 행여 굴복하지 않을까 국민의 걱정이 대단하다. 불패권력 청와대-정부-한나라당-조중동의 4각 연대를 통해 이뤄지는 최근에 사법부 길들이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법원의 사법정의 의지를 가리는 시험의 성격이 크다. 법원이 권력의 압박에 못 이겨 상식과 원칙 그리고 국민을 배반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검찰이 '떡검'으로 불리며 민중의 냉소를 받는 것을 법원은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국민 누구도 '떡판(判)'의 등장을 원치 않는다.

/ 창비주간논평 (20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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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머, '이명박 시리즈'

제가 아는 한 누리꾼이 만든 유머들입니다.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겠답니다. 요구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라며요. 내용 중에는 외국 조크를 패러디한 것도 있습니다.

◆ 사우나

이명박이 민생탐방을 위해 사우나에 갔다.

탕에 들어가 살펴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구석에 혼자 앉아 때를 밀고 있는 남자 한명 뿐이었다.

이명박이 반가운 마음에 남자에게 가서 인사를 하며 때를 밀어주겠다고 말을 건네자,
남자는 목욕대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린 채 다시 저쪽 구석으로 도망가는 게 아닌가.

이명박이 다시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왜 절 피해 도망가십니까. 부끄러워서 그러십니까? '

남자는 대답했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민영화시켜서 팔아넘기려고 하시잖습니까"
 
◆ 천국의 문

아인슈타인이 죽어서 천국의 문 앞에 도달했다.
천국의 문을 지키는 베드로가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다.

'자네가 아인슈타인이라는 걸 증명해보시게. 그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네'
'제게 칠판과 분필만 주시면 증명해보이겠습니다.'

베드로가 손뼉을 치자 칠판과 분필이 뿅 하고 나타났고, 아인슈타인은 능숙한 솜씨로 상대성 이론의 공식을 풀이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 자네는 진정 아인슈타인이군!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아인슈타인 다음은 피카소 차례였다. 피카소 역시 베드로에게 칠판과 분필을 달라고 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오, 그래. 자네는 피카소가 맞군.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이명박이 천국의 문 앞에 도달했을 때, 베드로가 물었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도 자신을 증명했다. 넌 어떻게 증명할래?"

그러자 이명박이 대답했다.

'아인슈타인하고 피카소가 누군데요?'

이명박은 그 즉시 통과했다.

◆ 언론자유

100분 토론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정부 때는 그래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을 해줬거든요. 예를 들어 '노무현은 빨갱이다'라는 글을 신문에 투고해도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이게 언론의 자유라는 겁니다"

그러자 다른 한명이 말했다.

"뭐 그 정도의 언론의 자유는 지금 정부도 충분히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 '노무현은 빨갱이다'라고 몇 번이나 신문에 투고했는데 아무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 조난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간 어부들이 조난을 당했다.

구조신호를 아무리 타전해도 해양경찰에서는 아무런 응답신호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어부들은 서서히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멀리 나온 것이 아닐까?'
'만약 해양경찰이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우리를 못 찾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 무전을 담당한 어부가 모두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반드시 해양경찰이 우리를 찾을 거야. 구조신호 SOS 대신 '이명박 개XX'라고 보냈거든"

◆ 라디오

한 남자가 새 차를 구입했는데, 사용설명서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본 기종에 장착된 라디오는 음성인식으로 작동합니다'

남자가 '소녀시대' 라고 말하자, 그 즉시 소녀시대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남자가 '베토벤'이라고 하자, 다시 라디오에서는 9번 교향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 차와 음성인식 라디오에 만족한 남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시내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트럭과 하마터면 충돌할 뻔 했다.

'아.놔. 이런 개새끼가!!'

놀란 남자는 외쳤고, 라디오에선 다음과 같은 멘트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를 들으시겠습니다"

◆ 룩셈부르크

이명박과 주요 장관들이 룩셈부르크를 공식 방문했다.

방문행사 중, 룩셈부르크 수상이 국방부 장관을 소개하자, 이명박이 갑자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룩셈부르크 수상이 물었다. '아니, 무엇이 그리 우습소?'

이명박이 말하길, '룩셈부르크 같은 작은 나라에 국방부장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룩셈부르크 수상은 좀 전에 소개받은 한국의 법무부 장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는?" 

◆ 제야의 종

12월 31일 밤, 재야의 종 타종을 위해 이명박이 종각에 올라선 순간.

군중 속의 한 남자가 권총을 꺼내들고서 이명박을 겨냥하며 외쳤다

'이명박 죽어라!'

그러나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남자는 곧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체포되었다.

취조실에서, 경호실장이 물었다.

'어떻게 대통령을 암살할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총을 빼든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날 덮쳤소'

'그렇다면, 역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국민들이 자네를 막은 것이군'
'그게 아니고, 자기가 대신 쏘겠다면서 내 총을 빼앗으려고 하는 바람에 실패했단 말입니다'

◆ 파업

이명박이 동남아에 있는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 감독에게 이명박이 물었다
'만약 파업이 일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옆에 있던 통역사가 영어로 질문하자 현장 감독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Maybe they get fired' (글쎄요.해고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명박은 옆에 있는 김윤옥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들었지? 총살시켜버린다잖아'

◆ 신문

알렉산더와 줄리어스 시저와 나폴레옹이 한국을 방문했다.

알렉산더가 K-1전차를 보고 말했다.
'나에게 이런 전차 한대만 있어도 아시아를 정복했을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가 K-2소총을 보고 말했다
'내 병사들에게 이 무기가 있었다면 전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옆에서 조선일보를 읽고 있던 나폴레옹이 말했다
'나에게 이 신문이 있었다면 워털루에서 패한 것을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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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민포럼 발제문] 공간으로 본 2009년

2009, 희망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한겨레 22차 시민포럼] 용산 남일당·부엉이 바위·쌍용차 평택공장…  
   

24일 저녁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공간으로 본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22차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김용민 시사평론가(가운데)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김용민 평론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224-1 남일당 건물. 애초 1층 ‘남일당’이라는 상호의 금은방에 사무실·병원·탁구장·호프집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 1월 이곳에선 철거민 5명이 불에 타 죽었다. <부동산 계급 사회>의 지은이 손낙구씨는 남일당을 ‘서민 대청소’가 진행된 곳으로 평가했다. 그 뒤 남일당은 300일 넘게 이들을 위한 분향소 구실을 하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에게는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투기 블루오션’일 법하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취임 뒤 첫 행보로 남일당을 찾아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 자리를 떠난 뒤 더는 말이 없다. 

#2.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 3-10 부엉이 바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마을인 이곳에서 ‘농촌 살리기’의 가능성을 봤다.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보이는 봉하마을 일대에선 ‘오리 농법’으로 벼가 자랐다. 쌀은 ‘용산참사’ 유족, 이주노동자,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 등에 전달됐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죽음을 결행했다. 일부는 ‘정치적 타살’을 주장한다. 한때 ‘희망의 장소’였던 부엉이 바위 일대는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추모공간’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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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삶의 공간 권력자 힘에 의해 약자의 무덤으로"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신문방송학과·시사평론가)는 2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공간으로 본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22차 한겨레 시민포럼의 발제자로 나서 “2009년 한국 사회에서 공간의 성격은 이렇게 권력자에 의해 좌우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공간의 본래 모습이 ‘힘’에 의해 변형돼 시민들에게 무력감을 주는 곳이 되고 있다”며 “이런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권력의 두려움을 떨친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생존권을 공권력으로 진압해 ‘약자의 무덤’이 된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도 비슷한 맥락의 장소로 봤다.

충남 연기군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4대강 사업이 진행중인 경기 조안면 팔당 유기농마을에선 토건 세력과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 종로의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 무효 청구 기각 결정’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은 ‘청부 수사기관’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스스로를 희화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정부가 치밀하게 서민 삶의 현장과 밀착한 곳을 우리 사회 최악의 공간으로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대기업이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까지 장악한 동네 골목, 결식 아동에 급식을 주지 않는 학교,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맞은 대학가 등이 구체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안 팀장은 “자살·실업·출산·보육·교육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초고위험군’으로 접어들고 있다. ‘문제적 공간’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짚고, 희망을 만들 방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 <한겨레> 2009년 11월 25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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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빵셔틀'


이문열 씨가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주먹을 앞세워 학생들 사이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절대 권력자 엄석대가 구축한 왕국 아래에 ‘백성’에게는 ‘절대 복종’만이 강요될 뿐이다. 군사정권의 횡포와 압제를, 한 시골학교 교실에 빗대 묘사한 것이라지만, 이는 2009년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서 현실로써 승화된다. 지나간 시대의 소설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가 된 셈이다.

‘빵셔틀’이란 말을 들어보셨나. 여기서 ‘셔틀’은 한 온라인 게임에서 병력을 실어나는 비행선을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 ‘빵’이라는 접두어를 감안하면, ‘빵셔틀’은 ‘누군가’에게 빵을 갖다 바치는 학생의 신세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누구를 상징할까. 교내 폭력조직 이른바 일진으로 해석된다. ‘빵셔틀’은 따라서 교내 폭력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학생들을 뜻하는 것이다.

한 학생이 쓴 거라고 한다. “학교 안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다. 싸움 잘하는 1진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공부를 잘하고 돈 많은 양민, 공부도 못하고 소심해 괴롭힘을 당하는 천민. 빵 조달 능력이 탁월하면 ‘속업셔틀’, 중간에 빼앗기면 ‘셔틀추락’이라 부른다.” 세상을 말세라고 일컫던 때가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그러나 이건 정말 막장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학부모도 자기 자녀에게 학교 가서 유용하게 쓰라고 폭력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학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폭력에 떨고 있고, 폭력으로 그 공포를 이기려 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공부” “공부” 강요하며 압박한 탓이다. 공부 강요를 타박하는 것은 무리이겠지. 문제는 학부모들이 은연중 강조하는 ‘공부의 목적’이다. 한 여자고등학교의 급훈이라고 한다.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달라진다.’ 이따위 저급한 급훈을 써대는 교사 배후에 박수를 보내는 학부모가 있다.

교육을 인간다워지는 과정이 아니라 신분상승의 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우등한 학생을 중심으로 솎아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한 반교육적 철학을 가진 학자가 요직에 오르는 세상이다. 이런 압박과 강제 속에 학생들은 ‘사람 사이에 계급이 있다’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면서 학교 안에서는 부리는 사람, 부림을 당하는 사람으로 계급이 재구성된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뚜렷해지는 학생 내 계급화 현상은, 학교 폭력은 물론, 재력 그리고 외모에서부터도 형성된다. 어떤 학교 교사가 한 말이란다. “아이들 사이에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보다 ‘돈만 많으면 된다’는 목적론이 팽배한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잘생기고 부자인 일부 아이들은 ‘꽃남’을 자처하며 못 생기고 가난한 다른 친구들을 ‘서민’ 또는 ‘집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재력이, 외모가, 재력과 외모가 안 되면 폭력의 원리가 어이없는 현대판 신분제로 고스란히 승화된다. 우리 사회의 계층구조가 공고화되고 있는 현상과 엮어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기회균등의 원리는 무엇인가. 약자에 대한 배려는 무엇인가. 어른들에게 없는 이 고민들이 아이들에게 있을 리 없다. 애들 탓하기 전에 어른들부터 돌아볼 일이다. 학교는 어른 세계의 군상이 모형처럼 발현되는 공간이다.

[링크]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95403

/ 아시아투데이 '칼럼' 2009년 10월 21일 (수)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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